아픈 역사의 청산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광복절, 독립운동가와 일제 만행을 기억하다
이토가 죽었다면, 총알을 맞고 나서 숨이 붙어 있는 동안에, 왜 총에 맞았는지를 알았을까? 그것까지 알 수는 없었더라도, 총을 쏜 자가 한국인이라는 것은 알고 죽었을까. 이토가 죽었다면, 그것을 물어볼 길이 없겠구나.
-김훈 장편소설 『하얼빈』 193쪽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은 러시아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습니다. 그 사건을 배경으로 한 김훈 작가의 소설은 보는 내내 쓸쓸하며 슬펐고, 분했으며, 황량하면서 강렬했습니다.
나라 잃은 나라의 국민으로 살면서 받아야 했던 억압과 구속, 폭력이 눈에 선해 한동안 가슴이 먹먹하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우리의 아픈 역사의 한 자리는 꽤 지난하고, 혹독했습니다.
자신의 유해를 하얼빈 공원에 묻었다가 해방되면 조국 땅에 묻어달라던 안중근의 유언은 순국 112주기인 올해까지 지켜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의 묘지가 독립운동 성지가 될 것을 우려한 일본이 유해를 끝끝내 넘겨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뤼순 감옥 주변은 이미 오랜 세월이 흘러 당시 흔적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지난 2008년 남북 공동으로 진행한 발굴 사업에서도 유해를 찾지 못해 사실상 그의 유해가 고국으로 돌아올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합니다.
독립운동가와 이름 없는 의병들의 목숨 건 투쟁, 또 그들을 돕던 민초 덕분에 우리는 이 땅에서 자유롭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KBS 뉴스 갈무리.1902년부터 1905년까지 하와이로 건너간 이민 1세대는 7천여 명, 창원대학교 연구팀은 2019년과 올해 상반기 두 차례에 걸쳐 하와이 현지 농장과 공동묘지에 방치된 이민 1세대의 비석 165기를 추적 조사했습니다. 이 가운데 3분의 1인 53명이 안중근 의사 구명운동을 지원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고된 농장 노동으로 한 달 15달러를 벌면서 1달러에서 10달러까지 의연금을 낸 겁니다. -2022년 8월 12일, KBS 뉴스 <버려진 하와이 이민자 묘비 추적했더니 ‘안중근 지원군’> 중
독립운동가와 이름 없는 의병들의 목숨 건 투쟁, 또 그들을 돕던 민초 덕분에 우리는 이 땅에서 자유롭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독립운동가 후손이 생계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산다는 뉴스를 접할 때마다 가슴은 다시 먹먹해집니다. 친일파 후손이 떵떵거리며 산다는 소식을 들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시절 독립운동가들은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목숨을 내놓고 싸운 걸까요?
안중근처럼 총을 들고 싸우진 않았지만, 시로 저항했던 윤동주도 일제의 고문을 이기지 못하고 감옥에서 숨졌습니다. 사망 과정에 생체실험(일명 ‘마루타’)을 당했을 가능성이 여러 차례 방송을 통해 알려졌죠.
국가보훈처는 최근 윤동주를 비롯해 일제 강점기 직계 후손이 없어 무(無) 호적 상태였던 독립운동가 156명에게 본적을 부여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임을 증명하는 공적 서류가 없었던 독립운동가들이 비로소 공식적인 대한민국 국민이 된 것입니다.
국가보훈처는 9일 윤동주·송몽규 지사 등을 포함한 ‘무호적’ 독립유공자의 가족관계등록 창설을 마쳤다고 밝혔다. 직계 후손이 없는 독립유공자의 가족관계등록을 정부 직권으로 창설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독립유공자들의 등록기준지는 독립기념관 주소인 ‘충남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 독립기념관로 1’이다. -2022년 8월 10일, 서울신문 <윤동주 본적은 천안 ‘독립기념관로 1’> 중
어디 안중근과 윤동주뿐이겠습니까. 강제적으로 진행된 징용과 위안부도 아픈 역사의 굴레입니다. 이렇듯 일제의 만행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잔인했습니다. 하지만 21세기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은 일본의 과거 만행과 우리의 아픈 역사를 올바르게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한국갤럽이 지난 9~11일 전국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일제 강점기의 시작인 한일 병합이 일어난 연도(1910년)를 맞춘 응답자는 전체의 14%에 그쳤습니다. 이건 맞히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광복 연도(1945년)를 맞춘 응답자는 절반(54%) 정도밖에 안 된다는 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2년 전, 국회의원회관에서 평화의 소녀상 챌린지 캠페인을 진행했는데요. 맨발로 앉아 있는 소녀의 어깨를 안아 주었습니다. 2년 전, 국회의원회관에서 평화의 소녀상 챌린지 캠페인을 진행했는데요. 취재를 하러 가다 행사장 한쪽에 자리한 평화의 소녀상 옆에 앉아 사진을 찍었습니다. 맨발로 앉아 있는 소녀의 어깨를 안아 주었습니다. 사흘 후면 광복절입니다. 올해로 77주년입니다. 광복절 하루 전인 8월 14일은 ‘위안부 기림의 날’입니다. 비극적 역사의 청산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