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왜 마라톤에 비유하는지 알 것 같다

내일은 해가 뜬다

by 류재민


비가 오락가락한 하루였습니다. 역대급 태풍으로 예고된 ‘힌남노’가 북상 중인 걸 새삼 느끼게 한 날이었습니다. 저녁을 먹고 달리기를 하러 갔는데요. 빗줄기가 가느다랗게 떨어졌습니다. 뛰는 데 큰 문제는 없어 보였습니다.

하늘을 보니, 1시간 정도는 충분히 버틸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오늘의 목표는 6.5km. 마라톤대회 10km 참가를 신청했으니, 오늘 목표에 성공하면 65%를 달성하는 셈이었습니다. 머리띠를 두르고, 손목시계를 찬 뒤 가볍게 스트레칭을 했습니다. 목도 돌리고, 허리도 돌리고, 무릎도 돌리고, 발목도 다 돌리고 돌리고~ 몸을 풀었습니다.


인생을 흔히 마라톤에 비유하는데요. 요즘 마라톤대회 준비를 하면서 그 의미를 절실히 느끼고 공감하고 있습니다. photo by제 달리기 습관을 열렬히 칭찬하고 있는 아내님.

이윽고 달리기를 시작했습니다. 천천히 뛰었습니다. 들숨과 날숨을 규칙적으로 하면서 아스팔트 운동장 트랙을 한 바퀴, 두 바퀴 돌았습니다. 바닥 곳곳에는 비가 고여 있었고, 뛸 때마다 빗물이 들어와 신발과 양말은 금세 젖었습니다. 가랑비는 오다 그쳤다를 반복했습니다. 햇빛도 없고 비는 적당히 내려서 뛰기에는 안성맞춤이었죠.

하지만 3km 구간부터 빗줄기가 굵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옷은 비에 젖어 무거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달리는 데 꽤 힘이 들었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할까’하는 악마의 속삭임이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이 앙다물고 뛰었습니다. ‘조금만 버티자!’ 비는 더 많이 내렸습니다. 악마의 속삭임은 절규로 들렸습니다. ‘그냥 빨리 뛰고 끝낼까?’ 오버페이스를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습니다.


순간, 초중반에 속도를 올리면 안 된다는 조언을 떠올렸습니다. 이 꽉 깨물고 페이스를 유지했습니다. 배에 힘 빡 주고, 엉덩이에도 힘 빡 주고, 다리에도 힘 빡 주고, 달렸습니다. 그래야 무릎과 허리에 무리가 덜 간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5km 구간을 돌 때 빗줄기는 가늘어졌고, 거의 그쳤습니다. 페이스를 올렸으면 어쩔 뻔했나, 싶었습니다. 다행히 6km까지 비는 잘 참아줬습니다. 하지만 나머지 300미터를 남기고 다시 하늘에서 구멍이 뚫렸습니다. 장대기가 세차게 쏟아졌습니다. 그래도 꿋꿋이 페이스를 유지한 채 6.5km를 마쳤습니다. 기록은 55분 48초.

기록보다는 비가 오는 날, 생애 최장 거리를 달렸다는 것에 뿌듯함이 밀려왔습니다. 마라톤 대회 당일에도 비가 올 수 있으니 우천 대비 훈련을 제대로 한 셈입니다.


제가 다니는 헬스클럽에 붙어 있는 사진입니다. 얼마나 멋지고 좋은 표현입니까.

왜, 인생을 흔히 마라톤에 비유하잖아요. 요즘 그 말에 백번 공감하고 있습니다. 급하게 뛴다고 먼저 가는 게 아닙니다. 금방 힘에 부치고, 숨이 차니까요. 쨍하고 해 뜰 날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흐린 날도, 비 오는 날도 있으니까요. 인생도 그런 거 아닐까요?


비도 세차게 내릴 때도, 약하게 내릴 때가 있습니다. 그쳤다가 다시 올 때도, 오다가 멈출 때도 있습니다. 한치 앞도 모르고, 언제 어디서 ‘돌발 변수’가 일어날지 알 수 없는 우리네 인생처럼.


긴 호흡으로 멀리 보고 가야겠습니다. 힘들어도 멈추거나, 포기하지 않아야겠습니다. 40년 하고 몇 년 더 살아온 인생입니다만, 요즘 마라톤을 하면서 배운 공부는 대략 이렇습니다. 세상에는 못하거나 안 되는 건 없습니다. 안 하는 것뿐이지.


우천 대비 훈련 성공적으로 마쳤습니다. 6.5km 목표 달성!!
비가 억수로 퍼붓는 풋살장에 새파랗게 젊은 영혼들이 웃통을 벗고 공을 차고 있더군요. 비가 오니까, 저만 미친 게 아니더라고요.

달리기를 마치고 우산을 쓰고 집까지 걸어오는데요. 비는 더 거칠고 사납게 내렸습니다. ‘이런 날에 한 시간을 뛰다니. 나도 참 미쳤군!’ 이런 생각도 잠시였습니다. 풋살장을 지나올 때였습니다. 세상에! 젊은 청년 10여 명이 웃통을 벗어젖히고 공을 차는 것 아니겠습니까. 새파랗게 젊다는 게 한밑천이라던가요. 비가 오니까, 저만 미친 건 아니었습니다.


*모두에 언급했듯이 태풍 ‘힌남누’가 강한 세력을 형성하며 북상 중이라고 합니다. 피해를 입지 않도록 각별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민족 대명절인 추석을 앞두고 인명사고를 비롯한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힌남누! 좋은 말로 할 때 조용히 지나가라 잉.


*오랜만에 노래 한 곡 띄웁니다. 들국화의 <사노라면> 링크합니다. 아래 눌러보세요~

들국화 - 사노라면 -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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