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시장에 다녀온 어머니께서 새 운동화를 사 오면 그렇게 좋았습니다. 얼마나 좋았으면 머리맡에 두고 잘 정도였습니다. 때가 타기라도 할까, 주말이면 칫솔로 닦았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저와 같은 경험을 한 분들도 꽤 많을 걸로 예상합니다.
나이 마흔다섯에 어머니께 운동화 선물을 받았습니다. 곧 있을 마라톤대회에 나간다고 하니 격려 차원에서 ‘금일봉’을 하사하셨습니다. 극구 사양했지만, 자식을 생각하는 부모 마음이겠거니, 감사히 받았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얘기입니다. 가을 운동회 달리기 시합에서 저는 늘 꼴등이었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맨 뒤에서 뒤뚱거리며 뛰는 모습을 보던 어머니는 어떤 감정이었을까요.
제 어머니는 학창 시절 임춘애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달리기를 잘하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와 제 두 동생이 운동회에서 늘 꼴찌를 하는 건 “늬들 아버지 DNA를 받았기 때문”이라고 확언했습니다.
저도 대청 호반길을 달리면서 성거에 계신 어머니를 떠올릴 작정입니다. 어릴 적 못 보여드린 등수 손목 도장 대신, 완주 메달이라도 목에 걸어 드려야겠습니다.
아무튼, 40대 중반에 마라톤대회 나가는 아들한테 운동화와 선글라스 사주는 어머니도 드물 겁니다. 황영조 선수는 바르셀로나 몬주익 언덕에서 일본의 모리시타 고이치를 추월할 때 고향 삼척의 어머니를 떠올렸다고 합니다.
저도 대청 호반길을 달리면서 성거에 계신 어머니를 떠올릴 작정입니다. 어릴 적 못 보여드린 등수 손목 도장 대신, 완주 메달이라도 목에 걸어 드려야겠습니다.
아내와 함께 매장으로 향했습니다. 운동화를 사기까진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마음에 드는 신발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제 발에 맞는 신발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280mm를 신으면 꽉 끼고, 290mm는 헐렁했습니다. 285mm가 딱인데, 280mm 이후부터는 10mm씩밖에 사이즈가 없다고 합니다.
운동화든 구두를 사러 가면 이래서 늘 골치가 아픕니다. 그렇다고 발을 깎을 순 없는 노릇이고 말이죠. 결국 280mm를 사서 며칠 신고 다니면서 ‘5mm 늘리기’로 했습니다.
그래도 산 하얀색 운동화는 마음에 꼭 들었습니다. 밑창에 쿠션이 있어서인지 착용감이 좋았습니다. 새 신을 신고 뛰면, 총알처럼 날아갈 것 같습니다. 용돈이 남아 10만 원 넘는 스포츠 선글라스까지 샀습니다.
새 운동화와 선글라스와 배번호입니다.
제가 입고 뛸 유니폼을 소개합니다.
마라톤은 티셔츠와 반바지만 있으면 되지, 돈이 들어가는 운동은 아니라고 여겼습니다. 아니었습니다. 무릎보호대와 모자 구입에도 적잖은 돈이 들었습니다.
어머니의 ‘쌈짓돈 응원’까지 받으니 부담이 더 크게 듭니다. 복장만 보면 웬만한 선수급 뺨칠 정도입니다. 금메달이라도 따야 할 판입니다. 며칠 전, 대회 주최 측으로부터 우편을 통해 유니폼과 배 번호를 받았습니다.
제 목표는 10km 완주입니다. 지난 8월 중순 3km를 시작으로 두 달여 대회를 준비했습니다. 비 오는 날에도 뛰었고,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도 달렸습니다. 대회 당일 변수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훈련을 거듭했습니다.
이제 결전의 날이 일주일 남았습니다. 넘어져 다치지 않기를, 포기하지 않기를, 끝내 이겨내기를 기도합니다. 여러분도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기적은 단 한 번의 훈련으로 일어나지 않는다. 수백 번, 수천 번 반복하는 훈련은 물리적인 변화 이상의 것을 가능하게 한다. 눈비 오는 날이나 심한 피로가 느껴지는 날에도 나는 달린다. 자신의 의지가 문제 되지 않을 때 기적은 일어난다. -에밀 자토펙(체코 마라토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