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게임, 이정재만큼 축하받을 ‘두 사람’

김지연 싸이런픽처스 대표와 김훈 작가

by 류재민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가 에미상의 새 역사를 썼습니다. 에미상은 미국 방송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상인데요. 오징어게임은 비영어권 드라마 최초로 감독상과 남우주연상을 받는 영예를 안았습니다.


이정재는 한국인 최초를 넘어 아시아 국적 배우 최초로 에미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는데요. 최근 감독 데뷔작인 <헌트>가 히트 치면서 잊지 못할 한 해가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정재만큼 축하받을 사람은 또 있습니다.


제작사 대표와 조연, 스태프 등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작품이 빛날 수 있도록 헌신한 이들입니다. 그중 제작사인 싸이런픽처스 김지연 대표가 혹시 누군지 아세요? 김훈 작가의 딸이라고 합니다. 저도 ‘페친’ 소개 글을 보고야 알았습니다. 부전자전(父傳子傳), 청출어람(靑出於藍)이 이들을 두고 하는 말일까요?

김훈 작가가 지난 2005년 <시네21> 인터뷰에서 딸에 대해 했던 말이 이번 수상을 계기로 역주행하고 있습니다.


딸 아이가 영화 찍는다고 해서, 돈을 1000만원을 줬거든. 10분짜리 만드는데 그렇게 든대. 현장에 오라고 해서 가봤더니 한 놈이 막대기에 걸레 같은 걸 달아서 들고 있더라고. 그게 마이크래. 그놈이 만든 영화를 봤어. 제목이 ‘일상에 대한 구토’야. 거기 나오는 아빠가 일상에 매몰돼가지고 머리맡에 담배꽁초가 가득한 재떨이가 있고 관념과 추상에 빠져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거야. 나중에 자막에 ‘아버지 고맙습니다’라고 뜨더라고. 돈 받아다가 지들끼리 논 거야. 신바람이 나니까. 친구놈들 봐도 인문적 소양이 없어. 저런 놈들이 어떻게 뭘 만드나. 신뢰가 안 가.


신뢰가 안 간다고 하면서도 딸의 꿈을 이루어주고 싶은 ‘부정(父情)’을 느낄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때 아버지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면, 김 대표는 지금의 위치도, ‘오겜’ 같은 걸작도 세상에 내놓을 수 있었을 까요?

오징어게임 메인 포스터.

이정재는 수상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제가 여기 와서 ‘비영어권 콘텐츠로 어떻게 그렇게 많은 관객에게 사랑을 받았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면서 “제 대답은 연기자는 언어로만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표현하는 여러 방법이 많다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언어가 다르다는 것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오징어 게임의 성기훈을 통해서 증명된 것 같다”고 밝혔습니다.

그렇습니다. 연기자는 언어뿐만 아니라 손짓이며, 몸짓이며, 표정으로 연기할 수 있습니다. 언어가 다르다고 메시지를 전달하지 못하는 게 아닙니다. 작가도, 기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외국어를 모른다고 글을 못 쓸까요? 글만 잘 쓰면 번역가들이 따라붙어 원작을 뛰어넘는 솜씨를 보여줄지 모릅니다. 아니, 요즘은 구글에 입력만 하면 자동 번역이 가능한 세상입니다.


얼마 전 김훈 작가가 소설 <하얼빈>을 쓴 동기에 감명받았습니다.


3일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김훈은 “청년 시절부터 안중근의 짧고 강렬했던 생애를 소설로 쓰려는 구상을 품고 있었지만 엄두가 나지 않아 일생 동안 방치하며 뭉개고 있었다”면서 “지난해 몸이 아픈 후 여생의 시간을 생각했고, 더이상 미룰 수 없다는 절박함이 벼락처럼 나를 때려 바로 시작했다”고 소개했다. 2022년 8월 3일, 서울신문 <포수, 무직… ‘청년 안중근’을 쓰다> 중

칠순을 훌쩍 넘긴 노(老) 작가가 청년 시절 안중근의 표현한 것도 결국은 ‘언어의 힘’에서 비롯됐습니다. 그 언어를 만들기 위해 작가는 대학 시절 안중근의 신문 조서를 읽던 기억을 더듬어 떠올렸습니다. 수많은 사료와 논문을 찾았습니다. 이토 히로부미의 생애를 추적하기 위해 직접 일본으로 건너가 취재도 했습니다. 이렇듯 세계가 인정하는 작품은 하루아침에 탄생하진 않습니다. 그리고 혼자의 힘으로 되는 것도 아닙니다.

“돈 받아다가 신바람이 나니까 지들끼리 논 거야”라고 한 아버지 김훈의 말처럼 딸 김지연 대표의 성공에는 ‘신바람’이 있습니다. 싸이런픽처스 직원은 김 대표를 비롯해 단 2명이라고 합니다. 단 두명이 세상을 놀래킬 작품을 만들 수 있었던 건 신바람 덕분 아니었을까요?김 작가도 <하얼빈>을 집필하는데 신바람이 난 장면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 소설을 쓰면서 가장 신바람 나고 행복했던 순간은 안중근과 우덕순이 블라디보스토크의 어느 허름한 술집에서 만나 이토 살해를 모의하는 장면을 쓸 때였습니다.”



신바람 넘치고 행복하게 작업한 작품은 전 세계인들로부터 축하와 박수를 받았습니다. 이제 ‘오겜 시즌2’가 기다려집니다. 앗, 그러고 보니 아직 시즌1도 못 봤네요. 흐흐흐. 저도 신바람 나게 기사도 쓰고, 글도 쓰면 에미상은 아니어도 ‘에비상’은 받을 수 있을랑가요? 흐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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