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하루였습니다. 이번 주는 일요일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온종일 정신이 없고, 혼란스러웠습니다. 어제 발생한 이태원 참사가 휴일 내내 뉴스를 장식했습니다.
어젯밤 늦은 시간부터 새벽까지 뉴스 특보를 보다 잠을 설쳤습니다. 아침에는 대통령실에 나오는 브리핑과 대통령 대국민담화 등 기사를 썼습니다. TV를 봐도, 라디오를 켜도, 핸드폰을 열어도, SNS를 봐도, 사람들을 만나도 온통 '사고 이야기'뿐이었습니다.
핼러윈을 즐기겠다고 간 곳에서 비명에 간 청년들. 누가 이렇게 어이없는 변을 당할 줄 상상이나 했을까요. 유가족들의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두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서, 4년 전, 길 위에서 아버지를 잃은 자식으로서 이번 사고 소식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런 끔찍한 일이 우리나라에서 일어날 줄이야. 경악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찬 바닥에 깔려 얼마나 아팠을까요. 숨쉬기 어려운 고통에 죽음의 공포까지 느꼈을 땐 얼마나 두려웠을까요. 가족을 떠올렸을 땐, 눈물도 흘렸겠죠. 제대로 눈이나 감을 수 있었을까요. 여러 감정이 하루 내내 정신을 짓누르면서 넋이 빠진 채 시간을 보낸 것 같습니다.
사고 현장에서 한 사람이라도 살려보겠다고 심폐소생술을 했을 의료진,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목숨을 건진 생존자, 친구와 연인의 죽음을 그저 안타깝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 모두가 살아도 살아있는 게 아닐 것 같습니다. 그들은 죽을 때까지 그 현장의 순간을 잊지 못할 겁니다.
비단 그들뿐만이 아닙니다. 전 국민이 트라우마에 시달릴 수 있습니다. 따라서 언론 보도나 SNS, 유튜브 게시 등에서 신중한 태도가 요구되고 있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30일 성명을 내고 "사고 당시 참혹한 영상과 사진이 SNS 등을 통해 일부 여과 없이 공유되고 있다”면서 “이런 행위는 고인과 피해자 명예를 훼손하고 2차, 3차 피해로 이어질 수 있고 다수 국민에게 심리적 트라우마를 유발할 수 있다”고 밝혔다. 2022년 10월 30일, 뉴시스, <의료계 “트라우마 남기는 무분별한 사진 공유 멈춰야”> 중
트라우마가 생기면 우울과 불안, 분노, 불면 등을 경험할 수 있다고 합니다. 전문가들은 그런 경험들은 정상적인 반응이라고 합니다. 대신 원망과 죄책감이 심해지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나 우울증 등 정신건강에 문제가 생기고, 삶 전체가 고통스럽게 바뀌는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럴 땐 반드시 정신건강 전문의에게 상담과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무엇보다 이번 사고와 같은 갑작스러운 참변은 고인의 잘못도, 내 잘못도 아니라는 ‘마인드 컨트롤’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실은 오늘은 제 아들의 열 번째 생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전 국민이 사고의 충격과 애도를 갖는 시간에 웃으며 먹고 노는 게 미안해서 SNS에 사진을 올리지 않았습니다.
아들과 시간을 보내면서도 ‘이 아이가 청년이 돼서 핼러윈 행사에 간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 했습니다. 아들과 딸을 보면서 나오는 건 한숨뿐이었습니다.
저는 오늘 세상에 태어나 준 아들에게 감사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오늘 그런 소중한 아들을 잃었으니 애끓는 심정이야 오죽할까요. 이번 사고로 목숨과도 같은 자녀를 잃은 부모와 유가족 모두에게 깊은 위로를 전합니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정부의 조속한 사고 수습을 바랍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