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꽃의 시들지 않음에 대한 멋대로 고찰

집착과 미련 vs 끈질긴 생명력

by 류재민

퇴근길 울타리 너머로 한 떨기 장미 한 송이를 발견했습니다. 바람도 찬데 달랑 한 송이만 피어있으니 쓸쓸함을 넘어 처량 맞아 보였습니다. 가을이 저물어가는 계절에 장미라니요. 제 상식으로 장미는 오월에 피는 꽃이거든요. 지구 온난화에 장미의 평균 수명도 길어졌나 봅니다.


다른 꽃은 다 떨어지고 넝쿨과 잎들만 앙상하게 남아 바람 불 때마다 바들바들 떨고 있었는데요. 그 속에서 한 송이 장미가 붉은 자태를 뽐내고 있는 것 아니겠어요. 그것 참 신기해 휴대폰을 꺼내 사진에 담았습니다. 집까지 오는 내내 ‘장미꽃의 시들지 않음에 대한 멋대로 고찰’을 했습니다.


고찰의 갈래는 크게 두 줄기였습니다. 하나는 떠나야 할 때 떠날 줄 모르는 ‘집착과 미련’이고, 다른 하나는 ‘끈질긴 생명력’입니다.


전자부터 보자면요. 떠날 때가 되면 떠나야 하는 게 세상 이치요 순리입니다. 사람도 그렇잖아요. 엄마 뱃속에서 태어나 파란만장 인생 살다 늙고 병들면 죽는 것처럼. 아무리 발버둥 쳐도 막을 수 없는 게 사람 목숨입니다. 유한의 생을 살면서 우리는 너무 많은 집착과 미련을 갖습니다. 우리는 그것이 ‘행복’인 줄 알지만, 사실은 ‘욕심’입니다.


조직이나 직장도 마찬가집니다. 직급과 직위가 올라가면 그만큼 성과를 내야 하고, 선배와 상사로서 존경받아야 합니다. 더 나이가 들어 정년이 되면 은퇴합니다. 그게 순리입니다. 실상은 어떻습니까. 무슨 부귀영화를 보겠다고 앞길 창창한 이들을 밀쳐내려는 OB(올드보이)가 적폐처럼 쌓였습니다.


중국 속담에 ‘장강의 뒷물이 앞 물결을 밀어낸다(長江 後浪 催前浪)’는 말이 있는데요. 앞 물결은 뒷물결을 결코 밀어낼 수 없습니다. 천지간에 순리를 거스르는 일은 통하지 않습니다. 자연스럽게 세대교체가 이루어져야 조직도, 사회도, 국가도 튼튼하게 성장 발전할 수 있습니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고 하잖아요. 떠날 때를 알고 떠나야 뒷모습이 아름답고, 우레와 같은 박수도 받습니다.

제가 오늘 만난 장미입니다. 이름은 '한송이'입니다.

다음은 후자에 대한 멋대로 고찰입니다. 오늘 본 장미는 실내 수목원이나 온실에 핀 꽃이 아닙니다. 어떻게 보면 광야에 홀로 서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白馬) 타고 오는 초인(超人)을 기다리는 저항시인 이육사 같습니다. 또 어떻게 보면 고단한 삶 속에도 생을 포기하지 않고 악착같이 버티는 이 시대의 청춘들 같습니다.


이육사가 살던 시대나 오늘을 사는 청년들의 시대나 쉽지 않은 세상인데요. 역경과 압박에도 꿋꿋이 버티고 있는 장면과 한 송이 장미가 오버랩됩니다. 보기에는 한 없이 약해 보이는 꽃 한 송이지만, 꽃이기 전에 존엄성을 지닌 하나의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아파트 현관에 다다랐을 때 빨간 열매가 흐드러진 산수유나무를 만났습니다. 마치 '이제는 나의 계절'이라는 듯 위용을 뽐내고 서 있습니다. 이제 장미는 내년을 기약하고, 산수유를 지켜볼 때인가 봅니다. 아차, 아내가 저녁거리를 사 오라고 한 걸 깜박했습니다.


선곡도 심오한 고찰 끝에 정했습니다. 신인수의 <장미의 미소>입니다.


*영상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wf5XPn1D_3w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우리 아이 머리는 좋다는 착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