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신입) 기자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급하다’라는 것입니다. 내공이 없으니 기사 쓰는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그러다 보면 선배나 데스크로부터 채근당합니다. 마감 시간이 다가오면 심장이 쿵쾅거리고, 마음만 조급해집니다. 늘 바쁩니다. 쫓기듯 글을 씁니다. 그렇다고 좋은 기사가 나오는 것도 아닌데.
‘초보 기자가 기사를 쓰는 방법’을 제목으로 한 이유는 그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어서입니다. 실력은 하루아침에 생기는 게 아니죠. 단기간에 실력을 바란다면 그건 양아 ‘욕심’입니다. 공부도 하지 않고 100점을 받고 싶다거나, 걸음마도 못 뗀 아이가 뛰려는 것이나, 운동이나 식습관을 바꾸지 않은 채 살을 빼고 싶다는 얘기와 같습니다.
기사를 쓰려면 ‘기초’를 튼튼히 다져야 합니다. ‘기초’라는 단어는 모든 면에서 중요합니다. 건물을 지을 때 기초가 튼튼해야 붕괴 위험이 없고, 기초 체력을 쌓아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것처럼. 기초가 없으면 아무리 연차가 쌓여도 실력은 향상될 수 없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좋은 기사’는 독자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글입니다. 주어와 목적어, 서술어가 순서대로 이어져야 합니다. ‘어순’이라고 하죠. 예를 들어 ‘영희는 아침에 일어나 학교에 갔습니다.’라는 문장이 있습니다. 이걸 ‘오늘 아침에 일어나 학교에 영희가 갔습니다.’ 이렇게 하면 어떤가요? 이해는 갑니다. 다만, 어딘가 어색하고, 읽기도 불편하죠?
우리는 초등학교 국어 시간에 이런 걸 배웠습니다.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5W1H). 문장의 기본 구성 요소입니다. 이번에도 예를 들어 볼까요. ‘(누가) 영희가 (언제) 오늘 아침에 (어디서) 집에서 (무엇을) 밥을 먹고 (어떻게) 걸어서 (왜) 공부하러 학교에 갔습니다.’
이걸 이렇게 바꿔 보겠습니다. ‘오늘 아침에 밥을 먹고 집에서 걸어서 공부하러 학교에 갔습니다.’ 이렇게 쓰면 어떨까요? 억지로 주어를 찾아보면 ‘오늘 아침에’이고, 서술어가 ‘갔습니다’가 됩니다. ‘오늘 아침에 갔습니다.’는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더구나 ‘누가’는 없습니다. 내가 갔는지, 영희가 갔는지, 철수가 갔는지 당최 알 길이 없습니다.
새내기뿐만 아니라 연차 있는 기자들도 어순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 주어가 빠진 문장, 날짜(시간)가 없는 기사는 독자로 하여금 ‘물음표’를 자아내게 만듭니다.
물론 주어를 생략하거나 주어와 서술어만으로도 문장을 만들 순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문장의 ‘기초 편’을 완전히 익힌 다음 ‘실용 편’에서 사용하거나 구사해야 합니다. 구구단도 외우지 않고, 방정식과 함수부터 풀려고 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답’은 안 나오고 ‘답답’ 한 것처럼.
기사는 독자들이 모르는 정보나 궁금한 내용을 ‘알기 쉽게’ 전달해야 합니다. 읽으면 읽을수록 오히려 궁금증만 커진다면 기사로서 가치가 있을까요? ‘기자만 아는 기사’는 신문이 아니라 일기장에 써야 합니다. 대개 문장을 길~게 쓰면 이런 사달이 납니다. 간결하게 쓰면 되는데, 중언부언과 동어반복을 합니다. 그러면 독자들은 짜증 나고, 나아가 기자의 자질까지 의심합니다.
문장을 길게 써도 됩니다. 대신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중간중간 ‘쉼표’도 찍어야 합니다. 읽다가 숨넘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독자들을 숨 막히게 하면 큰일 납니다. 내 글을 보러 온 독자에 대한 예의가 아닙니다.
‘기초’의 마지막은 ‘맞춤법’입니다. 맞춤법과 철자 오류는 차원과 성격이 다릅니다. ‘병이 낫다’를 ‘병이 낳다’라고 쓰거나, ‘치르다’를 ‘치루다’고 쓰거나, ‘위험을 무릅쓰고’를 ‘위험을 무릎쓰고’라고 쓴다면, 독자들은 한숨부터 내쉬고 말 겁니다. 독자들의 수준이 높다기보다, 맞춤법은 기자들의 ‘기본상식’이라고 여기고 있을 테니까요.
철자 오류는 맞춤법에 비하면 ‘애교 수준’이라는 말이 있는데요. 그렇다고 마냥 ‘애교’나 ‘실수’로 치부할 순 없습니다. 실수도 실력이기 때문입니다. 사소한 실수 하나가 기사 전체의 신뢰도를 뚝 떨어뜨립니다. 공들여 쓴 기사가 철자나 맞춤법 오류로 ‘싸구려’ 취급을 받으면 되겠습니까.
기초를 튼튼히 쌓으면 ‘중간’은 갑니다. 적어도 데스크나 독자에게 ‘욕’은 안 먹습니다. 따라서 기자 초년생들은 기초를 다지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어떻게? 열심히, 부지런히. 선배나 데스크가 일일이 가르쳐 주는 건 한계가 있습니다. 스스로 노력하지 않으면 발전할 수 없습니다. 그게 바로 ‘기사’입니다. ‘스스로 노력’은 어떻게 하냐고요? 책과 신문 많이 보면 그게 기자에게는 ‘참 공부’입니다.
며칠 전, 이태원 참사 현장에 가보지도 않고, 참사 칼럼을 쓰는 신입 기자를 봤습니다. 지면이 아까운 걸 떠나 ‘기자’라는 직업이 이렇게 쉬운 건가, 라는 자괴감이 들었습니다.
‘좋은 기사’의 반대말은 ‘나쁜 기사’입니다. ‘나쁜 기사’는 실력으로 충분히 예방할 수 있습니다. 초보 기자들이 바르게 성장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사회에 빛과 소금이 되는 기사를 생산하는 기자들이 넘쳐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그런 마음에서 정리해 봤습니다. 저라고 이런 걸 처음부터 알았겠습니까? 부딪치고, 깨지면서 배우는 겁니다. 깨지는 걸 두려워하지 마세요. 깨(우) 쳐 주는 사람에게 감사하세요. 시간이 지나면 그 사람이 엄청 고마워지는 날이 올 테니까요.
우리 자신을 배우라고 가정한다면, 상사는 연기코치다. 상사는 당신의 연기를 냉정하게 모니터링하고 잘한 점을 칭찬함으로써 당신의 역량을 이끌어내는 사람이다. 겉으로 드러난 당신의 역량이 부족하다 하더라도 연기코치는 당신의 잠재 역량을 120% 끌어내어 당신을 톱스타로 만들어줄 수 있다. 류량도,『일을 했으면 성과를 내라』 17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