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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재민 Jan 05. 2023

안녕, 도깨비(12화)

#12. 생사의 기로

김유의 뒤에서 선화가 외쳤다. “멈추어라.” 가마에서 내려 선화가 다가오면서 다급하게 소리쳤다. “목숨을 거둘 때 거두더라도, 내 저자에게 물어볼 것이 있다.” 선화는 무릎을 꿇고 있는 장의 가슴 앞까지 왔다.      


“너는 무슨 흑심을 품어 나를 음해하고, 어찌하여 나를 이 지경까지 만든 것이냐.”

“공주님, 제가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죽여주십시오.” 

“오냐. 그건 걱정 말거라. 대신 내가 물어본 말에는 대답하고 나서 죽여주마.”    

 

장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선화를 올려다봤다. 달빛에 비친 선화의 얼굴은 금방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 같았다. 머릿결은 비단결처럼 길게 늘어뜨렸고, 얼굴은 갸름했다. 코는 오뚝했고, 입술은 앵두처럼 붉었다. 몸 전체에서는 꽃향기가 났고, 동시에 범접할 수 없는 기품이 풍겼다.      


선화도 장을 내려다봤다. 달빛에 비친 장의 얼굴에 눈물이 흘렀다. 달빛에 비친 눈물에 순간 마음이 요동쳤다. 그의 눈은 까마중처럼 새까맣고, 눈썹은 숯처럼 검었다. 귀는 부처님만큼 길고 넓적했고, 입과 코 주변에는 거뭇거뭇 수염이 돋아나 있었다. 다만, 죽음을 목전에 둔 몸은 사시나무 떨 듯했다. 장은 자신이 어떻게 태어나 살아왔는지 선화에게 솔직히 말했다.    

  

“공주님, 제 어머니는 바다의 용과 사랑을 나눠 저를 낳았습니다. 어머니께선 저를 낳고 몸이 약해 아무런 일도 하지 못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제가 어릴 때부터 산에서 마를 캐다 팔아 근근이 먹고 살고 있습니다.”     


장은 계속 말을 이어갔다.    

  

“서라벌 장안에서 구운 마를 팔고 있는데, 공주님이 선녀 같은 마음씨를 가졌다는 소리를 듣고, 그만 천벌 받을 짓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공주님과 함께 어머니 봉양하며 오순도순 살고 싶다는 마음만 앞서서 공주님께서 궁궐에서 쫓겨나고 고초를 겪게 했습니다. 제발 제 목을 단칼에 쳐 저자에 거십시오. 그러면 왕의 진노가 풀려 다시 환궁할 수 있으실 겁니다.”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선화는 장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특히 그가 어머니를 봉양하며 오순도순 살고 싶다고 한 대목에선 갑자기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선화는 나지막이 혼잣말했다. “나랑 함께, 살고..싶다고?”      


장을 내리치려던 김유는 짐짓 놀랐다. 선화의 표정에서 살기 대신, 온기가 퍼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유는 선화의 분부를 기다렸다. 이윽고 선화는 김유에게 칼을 거두라고 지시했다. “나쁜 사람처럼 보이진 않는구나. 내 오늘 밤, 이 자의 집에 가서 묵도록 하겠네.”     


선화의 갑작스러운 통고와 선언에 김유는 깜짝 놀랐다. 하지만 그녀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선화를 성격을 옆에서 지켜본 김유였다. 따를 수밖에 없었다.     

 

“네, 공주님. 분부 받잡겠습니다.”     

선화는 다시 가마로 돌아갔고, 김유는 적토마에 올라 장에게 소리쳤다.      

“자, 앞장서거라. 너희 집으로 갈 것이다. 안내하거라.”     


장은 꿈인지 생시인지 어안이 벙벙했다. 조금 전만 해도 죽음을 앞두고 혼비백산했는데, 금세 상황이 반전했으니. 어머니께 하직 인사도 못 드리고 떠나나 싶던 그의 얼굴에 다시금 핏기가 돌았다. 장은 김유를 향해 “장군님, 살려주셔서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김유는 장을 내려다보며 “이놈아, 내가 살려준 게 아니니라. 네 생명의 은인은 공주님이시다.”      

장은 아차 싶었다. 정신이 번쩍 뜨였다. 그리고 이번에는 “공주님, 고맙습니다. 이 은혜 죽을 때까지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외쳤다. 장은 가마 쪽에 대고 넙죽 절했다.    

  

밤하늘 별은 사라졌고, 사위는 고요했다. 가마를 든 네 명의 발걸음과 적토마의 또각또각하는 말발굽 소리, 걷다가 뛰다가 하는 장의 짚신 소리만 들렸다. 일행은 벌판을 지나 무왕산 초입에 진입했다. 멀리, 장의 집 앞에 유아등(誘蛾燈)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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