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선화공주의 출궁
선화가 궁을 나올 때 나이는 겨우 열두 살이었다. 화려하고 편하기만 했던 궁에서 쫓겨났을 때, 그녀 옆에는 호위무사인 ‘김유’가 유일했다. 김유가 열여덟 되던 해 선화가 태어났다. 그때부터 선화의 옆을 지켰다.
김유는 화랑도를 나와 국선(國仙)인 ‘무학’의 명을 받고 궁에서 살았다. 처음에는 태세자의 호위를 맡았지만, 진흥왕은 선화가 태어나자 그를 공주의 옆에 뒀다. 선화는 총명했고, 효심이 지극했다. 진흥왕은 선화를 무척 아꼈다. 하루 한 번씩은 불러다 그날그날의 일을 물었고, 선화는 왕의 어깨와 다리를 주무르며 재밌는 얘기를 들려줬다.
진흥왕은 후궁들 처소에도 가지 않은 채 밤늦도록 공주가 들려주는 옛날이야기에 푹 빠져 있었다. 어느 날 왕은 생각했다. ‘내 딸이긴 하지만, 이렇게 뛰어난 아이일 줄이야. 어쩌면 내 뒤를 이어 성군이 될 자격이 충분해.’ 하지만 서라벌에 ‘서동요’가 울려 퍼지면서 왕은 달라졌다.
“선화공주님은 남몰래 시집가서 서동이를 밤에 몰래 안고 간다.”
왕은 애지중지하던 딸이 자신을 배신했다는 생각에 분노했다. 고약하고 괘씸했다. 대소신료들 역시 날마다 선화의 출궁을 건의했다. 왕이 며칠을 고민하고 있을 때, 왕후가 왕을 찾았다. 왕후는 선화가 그럴 아이가 아니라는 걸 누구보다 알지 않느냐, 고 왕에게 조아렸다. 왕 역시 누구보다 선화를 믿었다.
하지만 궐내 분위기는 이미 돌이킬 수 없이 악화했다. 왕이 손을 쓸 수 없을 만큼 여론은 들끓었다. 결국 왕과 왕후는 선화의 출궁을 결정했다. 대신, 선화가 출궁할 때 김유를 호위무사로 붙였다. 김유는 신뢰할 수 있는 자였다. 그의 나이는 서른이었다.
김유는 적토마를 타고 맨 앞에 섰고, 그 뒤를 선화가 탄 가마가 따랐다. 밤길의 공기는 차가웠고, 별 무리는 부서져 내렸다. 길가의 꽃은 시들었고, 적토마는 이따금 ‘흐응’ 거리며 조용한 콧김을 내뿜었다. 말발굽과 냇물 흐르는 소리만 적막한 들판에 퍼졌다.
선화와 김유 일행이 무왕산 초입에 들어섰을 때였다. 일행 앞에 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장은 김유가 탄 말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자신을 소개했다.
“내 이름은 장이요. 내가 서동요를 퍼트린 장본인이요.”
김유의 눈썹이 긴장한 채 위로 솟았다. 그는 곧 말에서 내려 장에게 다가갔다. 허리춤에 장검이 손에 느껴졌을 때, 선화가 탄 가마도 멈췄다. 김유는 장을 소리쳤다.
“네 이놈. 네가 죽고 싶어 환장했더구나. 감히 신라 왕실을 어떻게 보고! 게다가 여기가 어느 안전이라고 모습을 드러내는가. 오냐, 네가 이 자리에서 죽음으로 죄를 씻고 찾아온 게로구나. 그렇다며 내가 신라의 이름으로 너를 죽여주마.”
김유는 칼집에서 칼을 꺼냈다. 칼은 날카롭게 벼려졌고, 서릿발처럼 매서운 기운이 서려 있었다. 김유가 긴 칼을 하늘로 치켜들었을 때 은색의 칼 빛이 달빛에 반사돼 번뜩였다. 칼을 쥔 김유의 손아귀에 잔뜩 힘이 들어갔다. 손과 팔에 튀어나온 핏줄이 팽팽해졌고, 장은 순순히 목을 내놓았다. 장은 속으로 어머니를 떠올렸다.
‘어머니, 죄송합니다. 불초한 아들, 이렇게 생을 마감합니다. 용서하시오.’
김유는 장의 목에 칼을 한 번 겨눈 다음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준비를 마쳤다는 듯, 두 손으로 칼을 움켜쥐었다. 온 힘을 모아 단숨에 목을 벨 참이었다. 그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