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류재민 Jan 02. 2023

안녕, 도깨비(10화)

#10. 도깨비를 만난 아이들 2

비명을 지른 건 아이들이 아니라 도깨비였다. 미리는 도깨비의 길고 넓적한 귀를 잡아당겼고, 바리는 도깨비의 가녀린 팔을 비틀고 있었다. 도깨비는 아이들의 갑작스러운 공격에 곤혹스러운 표정이었다.      


“얘네들 좀 어떻게 좀 해줄래?”     


도깨비는 나에게 SOS를 보냈다. 나는 아이들에게 “그만 놓아줘. 아빠 친구란 말이야”라고 했다. 미리와 바리는 이구동성으로 “뭐? 친구?”하며 도깨비의 몸에서 떨어졌다.      


“그래, 도깨비는 외계에서 온 아빠 친구야.”

“도깨비? 외계?” 아이들은 어리둥절했다. 미리는 어이가 없다는 듯 내게 물었다. 

“아빠, 도깨비는 뭐고, 외계인은 또 뭐야?”      


나는 아이들에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 밑도 끝도 없이 외계인이라는 말을 했지만, 아이들은 믿지 않는 눈치였기 때문이다. 외계인으로 분장한 아빠의 친구인 줄로 아는 모양이었다. 그때 도깨비가 어쩔 수 없다는 듯 미리에게 말했다.     


“네가 아빠 딸이니?” 

“네, 그런데요? 아저씨는 누구세요?” 미리가 키득거리며 웃었다. 

“난, 너희들이 생각하는 아저씨가 아니야. 지구에서 5억 광년 떨어진 카트 휠이라는 행성에서 온 외계인이라구.”     


이번에는 바리가 나섰다. “에이, 그걸 어떻게 믿어요? 그리고 세상에 외계인이 어딨어요? 외계인은 텔레비전이나 영화에서나 나오는 가상 인물일 뿐이라고요.”     


도깨비는 바리 옆으로 바짝 다가가 나지막이 말했다. 


“내 얼굴을 자세히 봐. 이게 너희 같은 인간의 얼굴이라고 생각해? 귀, 코, 입 다 달라. 그리고 봐, 난 손가락이 네 개뿐이라고.”      

“거야 특수 분장을 했을 수 있죠. 손가락은 다쳐서 하나가 없을 수 있고.”     

미리의 의문 제기에 도깨비는 겸연쩍은 듯 어깨를 으쓱했다.      

“이거 안 되겠군. 이 방법까진 안 쓰려고 했는데..” 도깨비는 둔갑술을 쓰려는 모양이었다.      

“푸시키트, 아우라”     


주문이 끝나자마자 ‘펑’하는 소리와 함께 도깨비가 빗자루로 변했다. 공중에 뜬 빗자루에서 도깨비의 음성이 들렸다.      


“자, 봤지? 분장이나 변장을 한 인간이 이런 도술을 부릴 수 있을까?”      


그제야 미리와 바리는 깜짝 놀라 내가 있는 쪽으로 몇 발짝 물러서며 말했다.      


“저, 정말..도깨비, 아니 외계인이었어?”

“그래, 아빠도 처음엔 믿지 못했지만, 진짜 외계인이었어. 그리고 아빠는 도깨비가 타고 온 비행접시도 봤단다.”

“비행접시를 봤다고요? 지금 어딨는데요?”     


빗자루 둔갑술을 푼 도깨비는 아이들을 향해 기체 결함으로 불시착하는 동안에 이곳저곳 손 볼 곳이 생겨서 수리 중이라고 말했다. 아이들은 신기한 듯 도깨비 여기저기를 뜯어봤다.      


“우아, 정말 외계인이 있다니. 꿈이야 생시야.”

“맞아. 그것도 둔갑술을 하는 외계인이라고.”     


나는 도깨비가 왜 아이들이 문을 열고 들어올 때 사라지거나 둔갑술을 쓰지 않았는지 궁금했다. 자기 신분이 노출될 걸 뻔히 알면서 말이다. 도깨비는 “둔갑술은 일부러 쓰지 않았다”라고 했다. 아이들에게만큼은 자신의 존재를 숨기고 싶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나는 다시 물었다. 


“어른은 안 되고, 아이들은 되는 이유는 뭐야?”

“아이들은 영혼이 맑으니까. 네가 나를 지켜준 것처럼, 아이들도 믿을 수 있다고 생각했어.”     


그사이 도깨비는 나를 신뢰하고 있었다. 그 신뢰가 내 아이들까지 이어진 셈이었다. 한편으로 다행스럽고, 고마웠다. 아이들은 도깨비에게 서슴없이 다가가선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 도깨비가 마음에 든 모양이다. 도깨비는 아이들에게 한 가지 당부했다.      


“내 별로 돌아갈 때까지 내 존재는 비밀로 해줘. 부탁이야.” 


아이들은 도깨비를 신기하게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문밖에 쌓아뒀던 통나무 더미 위에서 오두막 안을 빼꼼히 들여다보던 고양이들이 내 눈과 마주치자 얼른 내려갔다.      


초겨울 쌀쌀한 바람이 오두막 주변에 불어왔다. 나는 아이들과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아내는 밤중에 어딜 쏘다니냐며 투덜댔고, 아이들과 나는 “비밀”이라며 키득거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