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반전

6. 폭풍우

by 류재민

그들이 식사를 막 마칠 무렵, 가마터에서 첫 기물이 나왔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저마다 먹던 밥을 두고 가마터로 올라갔다. 들뜬 마음을 감추지 못한 채. 그러나 설렘과 기대는 곧바로 실망과 허탈로 돌아왔다. 기물의 상태가 영 볼품없었기 때문이다. 나카무라 가마소에서 생산되는 기물과 별반 차이 없었다. 천왕은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먹은 밥이 거꾸로 올라오는 듯했다. ‘왜 이런가. 대체 무엇이 잘못됐단 말인가.’ 도공과 일꾼들도 넋을 잃고 망연자실했다.

기물을 유심히 살피던 봉이 말했다. “혹시, 흙 때문 아녀? 수비질할 때 느꼈지만, 여기 흙이 우리 땅이랑 달라. 기물은 흙이 젤로 중한데 말이여.”

천왕은 봉이 말에 정곡을 찔린 듯 움찔했다. ‘맞다, 그거였다. 미처 그걸 깨닫지 못했구나!’ 봉이 말에 누구도 토를 달지 못했다. 그것은 무언의 동의였다. 천왕은 자리에서 일어나 가마에서 막 구워 나온 기물들을 돌로 내리쳐 깼다. 그건 자신을 향한 분노였다. 기물은 산산이 조각났고, 파편은 여기저기로 튀었다. 그의 손은 깨진 기물에 베어 피가 흘렀다. 옆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도공들이 뜯어말렸지만, 천왕은 멈추지 않았다. 눈물을 흘리며 악다구니를 썼다. 그것은 동료들을 향한 미안함이었다.

한참을 주저앉아있던 천왕이 자리에서 일어나 가마터 한쪽에 걸터앉았다. 봉이 다가와 앉아 등을 두드렸다. “마 행수 잘못이 아니오. 우리가 진즉에 알았어야 했는디. 다 같이 잘못한 거요.”

봉이 말에 천왕의 눈가에 멈췄던 눈물이 뺨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렸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 하나 없겠소. 너무 자책하지 말더라고요.”

천왕과 일꾼들은 가마터를 정리하고 터덜터덜 걸어 집으로 돌아왔다. 첫 기물이 나왔다는 소식을 들은 나카무라는 가마터에 갔다가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다 가마터 한쪽에 깨진 기물 조각들을 발견했다. ‘실패한 모양이구나!’ 나카무라는 그 길로 곧장 천왕 일행이 묵고 있는 집으로 내려갔다.

“마 행수, 안에 있는가?”

방에 있던 사람들은 나카무라가 부르는 소리에 다들 밖으로 나왔다. 문 열린 방 안에서 천왕은 나카무라에게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나카무라는 성과 일꾼들에게 얼마간의 돈을 쥐여주곤 주막에 가서 요기라도 하고 오라고 했다. 주변을 물린 두 사람은 방 안에서 대면했다. “미안하오. 내 일천한 실력을 새삼 깨달았소. 뭐라 할 말이 없소.”

의기소침한 천왕의 고백에 나카무라는 별일 아니라는 듯 빙긋 웃으며 말했다.

“마 행수. 난 지금 상황이 썩 나쁘진 않다고 보네. 생각해 보게. 자네가 처음 나를 찾아와 제안했을 때 내가 받아들인 이유가 뭐였겠나. 우리도 우리 땅의 흙으로는 그런 기물을 만들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네.”

나카무라의 말을 들은 천왕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뭔가 떠오르는 듯 나카무라를 응시했다. “그래, 그거요. 우리 땅에서 흙을 가져오면 되오. 그러면 여기서 얼마든지 멋지고 근사한 기물을 구워낼 수 있을 것이요.”

나카무라는 천왕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장천의 흙을 자루에 담아 배에 실어 보내면 부두에서 받아다 기물을 만들면 된다는 거였다. 천왕은 천당과 지옥을 오간 기분이었다. 저녁 무렵 성과 동료들이 돌아왔을 때, 천왕은 나카무라와 나눈 이야기를 전했다. 그리고 날이 밝는 대로 장천에 다녀오기로 했다. 장천의 흙을 배편으로 정기 배송할 계획을 세우기 위해서다. 모처럼 장천의 식구들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천왕은 밤새 잠 못 이뤘다.

성은 윗목에서 아버지가 뒤척이는 이유를 알 것 같았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아버지에게 자신도 같이 장천에 가고 싶다고 말하고 싶었다. 어머니와 오라버니 얼굴이 눈에 선했다. 당장이라도 보고 싶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빈자리를 메꿔야 했다. 일꾼들 끼니도 챙겨야 했다. 그래서 일부러 눈을 감고 자는 척했다. 부녀가 잠 못 이루는 사이 서서히 여명이 밝아오고 있었다.


날은 맑고 쾌청했다. 성은 부둣가에서 아버지를 배웅했다. 천왕은 가마터 식구들을 잘 챙기라고, 너도 몸조심하라고, 배에 오르면서도, 배에 올라서도 신신당부했다. 성은 걱정하지 말고 아버지나 잘 다녀오라며 배시시 웃었다. 가서, 어머니와 오라버니, 가마터 식구들에게 안부 전해 달라며 손을 흔들었다. 그렇게 딸은 아버지를 보냈고, 아버지는 딸을 떠나왔다. 배가 힘차게 물살을 가르며 바다를 향해 나아갔다. 성은 멀리 사라지는 배를 보면서 눈물을 글썽였다. 어쩌면 다시는 아버지를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과 더불어. 그사이 천왕이 탄 배는 수평선 너머 한 점이 되었다가 이내 사라졌다.

갑판에 걸터앉아 저녁 바다를 보던 천왕은 만감이 교차했다. 백제가 멸한 뒤 고향을 떠나, 장천이란 곳에서 새롭게 터를 잡고, 왜국에서 가마터를 짓기까지 겪은 역경과 고난이 주마등처럼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가을바람이 쌀쌀해지면서 한기를 느낀 사람들이 하나둘 아래 칸으로 내려갔다. 천왕도 그들을 따라 내려가는데, 가랑비가 약하게 내렸다. 하늘을 보니 먹장구름이 몰려오고 있었다. 잔잔했던 바다에는 너울이 일기 시작했고, 그때마다 배는 좌우로 기우뚱거렸다.

얼마 안 지나 가늘게 내리던 비는 장대비로 바뀌었다. 굵은 빗줄기가 천왕이 탄 배에 퍼붓기 시작했다. 불어오는 파도와 강풍에 좀처럼 배가 전진하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맴돌았다. 바다 한가운데서 폭풍우가 몰아쳤다. 목선은 심하게 흔들렸고, 아래 칸에 있던 사람들은 몸을 가누지 못하고 이리저리 비틀거렸다. 아이를 안은 어미는 기둥을 꼭 끌어안고 있었고, 멀미가 난 사람들은 바닥 아무 데나 토악질했다. 나이 든 노인들은 힘없이 쓰러졌다.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신음과 비명에 배 안은 순식간에 혼란스러워졌다. 천왕은 두려웠다. 예사 바람과 폭풍우가 아님을 직감했기 때문이리라. 그때 갑판 위에서 선원으로 보이는 누군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배에 물이 들어온다, 배에 물이 차고 있어.”

사람들은 어쩔 줄 몰랐다. 겁에 질린 아이들 울음소리까지 섞이며 배는 아비규환의 공포에 휩싸였다. 성난 파도는 배를 집어삼킬 듯이 사납게 달려들었다. 갑판으로 들이친 바닷물이 서서히 아래 칸으로 흘러 들어오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우르르 뛰쳐나가 쳐들어오는 물을 막고, 이미 들어온 물은 빼느라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거세게 부는 바람에 제대로 서 있기조차 힘들었다. 그때 선원 하나가 강풍에 날아가 바다에 빠졌다. 동료 선원들이 건지려고 애를 썼지만, 억수같이 쏟아지는 빗줄기에 바닥은 몹시 미끄러웠다. 딱히 사람을 끄집어낼 도구조차 변변치 않았다. 선원들은 바닥에 엎드려 물에 손을 뻗어 봤지만, 닿기는커녕 점점 더 멀리 떠내려갔다.

물에 빠진 선원은 수면 위아래를 몇 번 오르내리더니 높은 파도 속에 자취를 감췄다. 설상가상으로 흔들리던 배는 암초에 부딪혔다. 그 바람에 목선 하부가 파손됐고, 사람들이 모여있는 아래 칸으로 물이 쏟아져 들어왔다. 부서진 곳은 물살을 견디지 못해 더 벌어졌고, 그 틈으로 바닷물은 더 세차게 쳐들어왔다. 물에 잠긴 배는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죽음의 밤바다는 칠흑같이 어두웠다.

천왕은 죽음을 예감했다. 배가 가라앉는 동안 왜국에 오기 전 꾸었던 꿈이 떠올랐다. 이름 모를 섬에서 겪었던, 화려한 고래 떼의 향연에 넋을 잃다가, 폭발한 화산에서 불구덩이가 날아와 아찔했던. 아, 그게 내 죽음을 암시했던 거였나! 천왕은 탄식했다. 하지만 상황을 반전시킬 순 없었다. 시야가 뿌예졌다. 그의 몸은 어느새 머리끝까지 물에 잠겼다. 희미해져 가는 의식 속에 눈이 감겼다. 장천의 아내와 아들, 이국땅에 두고 온 딸이 차례대로 떠올랐다. 장천 가마터와 왜 가마터 동료들의 얼굴이 하나둘 지나갔다. 환하게 웃던 나카무라 행수의 얼굴도 어른거리다 사라졌다. 배는 망망대해에서 흔적도 없이 침몰했다. 천왕도 배와 함께 침몰했다.

수십 명이 탄 배를 집어삼킨 바다는 서서히 진정됐고, 날이 밝으면서 고요를 되찾았다. 고요를 되찾은 바다에는 고래 떼가 펄떡거렸다. 물 위로 힘껏 솟구쳐 올라 등을 활 모양으로 구부린 다음 물속으로 들어가기를 반복했다. 녀석들은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마다 숨구멍에서 분수 같은 물줄기가 쏴- 하고 뿜어져 나왔다. 고래 떼는 장천만 앞까지 다가가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면서 사람들을 끌어모았다. 고래 떼의 장관을 보며 넋을 잃었던 사람들은 뭔가 모를 스산함에 소름이 돋았다. 며칠 뒤 장천만 부둣가 근처에 시체 수십구 가 떠밀려 왔다. 그중에는 천왕도 있었다.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웠지만, 옷고름에 매달린 그릇 조각이 그의 신원을 확인했다.

천왕의 아내 서 씨는 그 자리에서 혼절했고, 월은 다리에 힘이 풀려 그만 주저앉았다. 장천 가마터 일꾼들 역시 행수의 황망한 죽음에 형언할 수 없을 만큼 비통했다. 장천 가마터는 한동안 실의에 빠졌다. 천왕의 장례가 치러지던 날, 봉이 월과 도공을 비롯한 가마터 식구들을 총소집했다. 그들은 천왕이 없는 가마터를 어떻게 운영할지를 의논했다. 그리고 왜국에 있는 성과 일꾼들에도 부고를 알려야 했다. 도공들은 월을 새로운 행수로 만장일치 추대했다. 그리고 월은 왜국에 가서 부고를 알리고, 나카무라를 만나 현지 가마터를 어떻게 할지 논의하기로 했다. 월은 장천만에서 새로 들어온 목선을 타고 왜국으로 향했다. 아버지가 부푼 꿈을 안고 떠났던 바닷길로, 그 길에서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떠올리며, 동생과 가마터 식구들을 만나러, 장도(長途)에 올랐다.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나카무라 가마소 2호점 일꾼들이 그랬던 것처럼, 월도 심한 뱃멀미 끝에 왜 항에 다다랐다. 월은 항구에 내려 물어물어 가마소를 찾아갔다. 기다리던 천왕 대신 그의 아들이 왔다는 소식을 들은 나카무라는 불길한 예감으로 가마소 2호점에 득달같이 달려왔다. 가마터에서 불을 살피던 성은 멀리 보이는 낯익은 남정네가 설마 오라버니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월이 “성아!”라고 부르지 않았더라면.

남매는 반가움에 얼싸안고 울었다. 가마터에서 일하던 도공과 일꾼들도 오랜만에 본 월을 반갑게 맞았다. 하지만 월의 얼굴 한쪽에는 그늘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월이 가마터 식구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는 동안 나카무라가 도착했다. 월은 땅에 엎드려 절했고, 나카무라는 그를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근심 어린 눈빛으로 천왕의 안부를 물었다. 월은 호흡을 가다듬고 부친의 부고를 알렸다. 풍랑을 만난 배가 암초에 부딪혔고, 배에 물이 들어차 안에 있던 승객들이 모두 바다에 수장됐노라고. 그 안에 아버지도 있었다고. 아버지는 살아서가 아니라, 시신으로 떠밀려 장천으로 돌아왔다고.

부친의 부고를 듣던 성은 기진해 그 자리에서 실신했다. 아이고, 소리 한 번 내지 못했다. 가마터 사람들도 천왕의 죽음에 애도하며 꺼이꺼이 울었다. 나카무라는 눈앞이 캄캄해졌다. ‘사람 인생이 이렇게 허무하게 끝나는 수도 있구나! 그 좋던 사람이 그렇게 가다니!’

날벼락 같은 소식에 주변은 금세 숙연해졌다. 산자락에서 찬 바람이 불어왔다. 기운을 잃은 가마터 사람들은 잠시 일손을 놓았다. 월은 성을 업고 집에 돌아와 방에 뉘고, 나카무라와 함께 본점으로 갔다. 어깨너머로 왜국어를 배운 봉이 통역하러 따랐다.

“행수님, 나카무라 2호점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그걸 의논하러 왔습니다.”

“으음…….” 나카무라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이미 만들어놓은 가마와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을 어찌할 것인가. 남에게 넘기자니 당장 인수자가 나타날 것 같진 않고, 그렇다고 2호점에서 천왕을 대신할 만한 행수를 뽑는 것도 쉽지 않은 노릇이니.

“내가 할 거야.”

언제 왔는지 성이 대뜸 방문을 열어젖히며 말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내 아비가 만든 가마터입니다. 그리고 거기서 일하는 아재들도 다 우리 식구나 마찬가집니다. 행수께선 제가 그간 부엌데기로 컸다고 여길지 모르지만, 장천에 있을 때부터 오라버니와 함께 사발이며 항아리며 만드는 법을 배웠고, 여기서도 아버지한테 여러 기술을 배웠습니다. 그러니 2호점은 저한테 맡겨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선언과도 같은 성의 작심 발언에 월과 나카무라, 봉은 짐짓 놀랐다.

“그래도 여인의 몸으로 어떻게 불구덩이 앞에서 나무를 넣고 빼고, 억센 장정들을 부릴 수 있겠느냐.”

“그래, 나카무라 행수 말대로 자기를 빚는 일은 할는지 몰라도, 가마소를 운영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야.”

나카무라와 월은 성을 말렸다. 하지만 성의 태도는 단호하고, 확고했다.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행수님, 그리고 오라버니. 제가 지금 한 말은 그저 아버지 죽음에 대한 순간적인 감정이 아닙니다. 백제인의 혼과 얼이 담긴 기물을 이곳에 널리 알려 우수성을 인정받고, 왜국에도 전파해 기술을 보급하고 싶은 도공으로서 책임감 때문입니다. 그러니 부디, 허락해 주세요.”

성의 당찬 결기에 월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나카무라는 결심했다는 듯이 성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좋다. 허락하겠다. 대신 나도 너희들에게 분명히 해 둘 게 있다. 네가 마천왕의 딸이라는 사사로운 정에 끌려 행수 자리를 주려는 게 아니다. 네가 약속한 것처럼, 네가 가진 실력을 최대한 발휘해 걸작을 만들어 내보려무나. 그래서 네 아비가 못다 이룬 꿈을 대신 이루고, 우리에게도 천년만년 이어갈 도자 기술과 역량을 전수해 주길 바란다.”

“네, 행수님. 약조하지요. 행수님 기대에, 그리고 제 아비 이름에 누가 되지 않도록 2호점을 전국 제일가는 가마소로 만들겠습니다.”

월은 위풍당당한 동생의 말을 옆에서 들으면서 탄복했다. 그녀는 이제 더는 자신이 챙겨야 할 동생이 아니었다. 더 이상 철부지 소녀도, 가녀린 계집도 아니었다. 그녀는 이제부터 ‘나카무라 가마소 2호점’의 새로운 행수였다. 동생 당찬 모습에 월은 매우 흡족했다. 아버지가 맘 편히 저승으로 갈 수 있겠구나, 싶었다. 나카무라는 월과 성을 앞세워 2호점에 가 성을 신임 행수로 발표했다. 가마소가 문을 닫을지도 몰라 노심초사하던 사람들은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기뻐했다. 도공을 비롯한 일꾼 모두가 성 앞에 서서 넙죽 절했다.

“새로운 행수를 모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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