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달밤의 축제
항구에 도착한 천왕 일행은 나카무라 행수가 마련한 임시 거처에 머물렀다. 가마터 위치가 정해지면, 그 옆에 터를 잡아 세간을 들여놓을 숙소를 마련할 계획이었다. 천왕과 성, 함께 온 일행까지 여덟 명은 움막이나 다름없는 처소에 묵었다. 별채와 독채로 나뉘어 있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별채는 도공과 일꾼들이, 독채는 천왕 부녀가 각각 기거했다.
천왕 일행과 나카무라 가마소 일꾼들은 새 가마터와 보금자리를 짓는 데 주력했다. 새벽부터 저녁나절까지 고정 인력 스무 명이 구슬땀을 흘리며 흙과 모래를 나르고, 물을 길어 날랐다. 솜씨 좋은 목수들은 소나무로 기둥을 세웠고, 참나무 원목으로 방과 방 사이에 마루를 댔다. 도공들은 흙을 반죽해 벽을 만들어 가마를 꾸미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가마터는 석 달 만에 위용을 드러냈다. 길이가 10미터는 족히 넘는 가마를 세 개나 지었다. 천왕 일행이 머물 숙소도 그 무렵 공사를 마쳤다. 예상보다 빠른 완공에 나카무라는 혀를 내둘렀다.
“백제인들은 보면 볼수록 매력적이오. 도깨비방망이도 아니고, 뚝딱뚝딱하면 모든 게 금방 만들어지니 고것 참…….”
놀란 건 나카무라뿐만이 아니다. 천왕 역시 믿기지 않았다. 아무리 손재주가 좋고, 부지런하기로선 이렇게 빨리 일을 마칠 줄은 미처 몰랐기 때문이다. 엄청난 속도전에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천왕 일행은 새로 지은 가마터에서 고사를 지내기로 했다. 나카무라 행수가 2호점 개점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꺼먹돼지를 잡았다. 돼지머리는 푹 삶아 고사상에 올렸다. 술과 과일도 푸짐하게 한 상 차려놓고 큰절을 올렸다. 그날 저녁은 모두가 흥겹게 어울려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다. 성은 아버지와 일꾼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며 덩달아 신이 났다. 열넷 소녀도 무리에 끼어 덩실덩실 팔을 휘저었다. 하늘에선 달이 차올랐다. 보름달이 뜬 이국(異國)의 밤하늘은 대낮처럼 밝았다. 천왕과 나카무라는 달을 바라보며 얼싸안고 아무렇게나 소리를 질렀다. 손에는 하나씩 술병이 들려 있었다. 그들은 밤새도록 먹고 마셨다. 가마터 뒷산에서 산새와 짐승들 우는 소리가 까마득하게 들렸다. 밤은 깊었고, 별 무리가 가을 밤하늘을 가득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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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이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아버지는 보이지 않았다. ‘눈이라도 좀 붙이셨을까?’. 그녀 역시 전날 혼이 나갈 정도로 먹고 마시고 뛴 바람에 언제 들어와 까무룩 잠들었는지 알 수 없었다. 희미하게 기억나는 건, 내려앉는 눈꺼풀을 이기지 못하기 직전, 아버지가 자신을 업고 방으로 들어와 눕혀준 장면, 그리고 폭신한 이불을 덮어주곤 슬며시 밖으로 나가던 뒷모습이 전부였다.
성은 일어나 주섬주섬 옷을 고쳐 입고 밖으로 나왔다. 대야에 물을 담아 찬물에 얼굴을 씻고서야 겨우 정신이 들었다. 젖은 머리를 매만지고 있을 때, 담장 너머로 봉이 지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봉이 아재! 울 아버지 못 봤소?”
“응? 성이로구나. 행수님은 시방 가마터에서 일하고 있제.”
“아, 정말요? 벌써?”
“벌써는 무슨, 해가 벌써 중천인디. 어제 부지런히 놀더니, 잘 잤냐?”
“아버지가 일어나서 일하러 나가고,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잤으니 잘 잔 것 같소.”
“하하하. 그래, 자고로 클 적에는 잠을 잘 자야 하는 법이지.”
“다들 시장할 텐데 얼른 쌀 앉혀 놓을게요.”
“그려, 행수랑 아재들 데리고 올 테니 천천히 준비하거라.”
봉이 가마터로 향하는 걸 물끄러미 바라보던 성은 재빨리 가마솥에 물을 붓고 장작불을 땠다. 그런 다음 보리쌀 닷 되와 콩 서 되를 씻어 부었다. 그러고는 채소를 다듬었다. 시금치와 섬초를 무치고, 콩나물과 푸성귀, 된장을 넣고 국을 끓였다. 구수한 장 냄새가 바람을 타고 가마터까지 퍼져나갔다. 일꾼들 배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났고, 천왕은 식(食) 때가 됐음을 알아차렸다.
성은 산비탈에서 얼굴이 빨갛게 익은 아버지와 일꾼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내려오는 모습을 발견했다. 서둘러 밥상을 차렸다. 일꾼들은 시뻘건 불구덩이에 장작을 넣고 빼기를 반복한 통에 얼굴이 녹아버릴 지경이었다. 땀이 쉬지 않고 흘렀고, 그때마다 마른 천으로 연신 훔쳤다. 집으로 내려온 이들은 우물가에 삼삼오오 모여 등목을 시작했다.
“어이구, 시원하다! 몸속까지 다 후련하구먼.”
열기를 식힌 일꾼들은 두레 바가지에 물을 담아 머리와 몸통 여기저기에 쏟아부으며 장난을 쳤다.
“아재들! 어린애만큼 장난질 그만하고 얼른 와서 식사들 하소.”
성의 호통에 일꾼들은 실실 웃으면서 툇마루에 올라 둘러앉았다. 가을 햇살에 잘 익은 풋고추는 고추장에 찍어 먹고, 애호박은 얇게 썰어 들기름에 볶았다. 찐 옥수수에서는 허연 김이 올라왔다. 군침만 삼키던 일꾼들은 행수가 수저를 들자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들었다. 산골 밥상은 푸짐했다. 사람들은 볼이 미어지도록 욱여넣고, 척하니 엄지를 추켜세웠다. 성은 부산을 떨며 차린 음식을 맛있게 먹는 사람들을 보니 어깨가 으쓱했다. 아버지는 소녀에서 처녀로 성장하는 딸을 보며 만감이 교차했다. 든든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애처롭기도 했다. 성은 그런 부정(父情)을 아는 모르는지 연신 아재들과 웃고 떠들기 바빴다. 구수한 밥 냄새가 산맥들 사이로 풍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