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새로운 길
열도의 겨울은 지독할 만큼 추웠다. 대낮에도 볕이 잘 들지 않았다. 그래서 눈이 한번 내리면 열흘이 넘도록 녹지 않았다. 바람은 칼날처럼 매서웠다. 옷깃을 파고드는 칼바람은 살을 에는 듯했다. 나카무라 가마소 2호점은 강추위가 몰아치는 동안 문을 닫기로 했다. 한겨울에 땔감을 구하기도 어려울뿐더러, 기물을 찾는 곳도 적었다. 저자에 나오는 인파도 드물어 도매상을 거쳐도 푼돈이나 건질 정도라는 나카무라 행수 조언이 있었다. 나카무라의 조언도 있었지만, 성은 그간 쉼 없이 달려온 몇 달을 돌아볼 시간이 필요했다. 또한 그녀와 함께 달려온 일꾼들에게도 휴식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성은 가마터 근처에 새로 생긴 노천탕을 찾았다. 꽝꽝 언 얼음덩이가 주변을 둘러싸고, 매서운 바람이 콧잔등을 스치고 지나갔다. 성은 아무도 없는 물에 들어가 몸을 담갔다. 연못 크기의 웅덩이에서 나오는 뜨끈한 온천수가 그녀의 몸 구석구석을 애무했다. 새해가 되면 그녀의 나이도 열여덟이다. 작고 여렸던 체구는 어느덧 여인네 티가 제법 났다. 가슴과 엉덩이가 풍만해졌다. 성은 더운 김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탕에 앉아 가만히 눈을 감았다. 잠시 후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뜨듯한 물에 몸이 나른해졌다. 피로가 풀리면서 잠이 몰려왔다. 성은 길게 하품하다가 이내 고개를 양옆으로 세차게 흔들었다. 잠이 들어선 안 된다. 그녀는 한 번 잠들면 누가 업어가도 모를 정도였다. 게다가 지금은 벌거벗은 몸으로 혼자 탕 속에 있지 않은가. 성은 손바닥으로 뺨을 두어 번 때려 잠을 몰아냈다. 그리고 월이 왜를 떠나기 전 한 말을 떠올렸다. 월은 장천으로 돌아가기 전날 밤, 성에게 몇 가지를 당부했다. 그중에 성의 뇌리를 맴도는 말은 ‘새롭고 색다른 물건’이었다.
“성아, 앞으로는 사발이나 접시, 항아리, 옹기만 만들어선 안 돼. 뭔가 우리만의 혼과 정신을 담은 기물을 만들어야 해. 그래야 왜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도 우리 고유의 기술과 우수성을 떨치지 않겠느냐. 그것이 곧 아버지 유지를 받는 일이기도 할 것이야.”
성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
“아버지의 유지? 오라버니, 저는 우리만의 혼과 정신을 담은 기물이라는 게 통 감이 오지 않습니다.”
월은 어릴 적 아버지가 읽던 책을 보여주며 들려줬던 이야기를 동생에게 설명했다. 당시 그들의 부친 천왕은 외국 서적을 구해다 틈나는 대로 읽었다. 특히 기물과 관련한 서적에 탐독했다. 천왕은 어린 월에게 과거 당에서 들여온 책을 보여주었는데, 그 안에는 기이한 모양의 도자기가 여럿 그려져 있었다. 천왕은 그걸 아들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우리도 이런 기물을 만들어야 한다. 아니 이보다 더 뛰어나야 한다. 우리만의 색과 멋을 가진, 새롭고 색다른 물건 말이다.”
어린 월은 그때 아버지가 가마터 옆 곳간채에 물레를 가져다 놓고 도자기를 빚는 광경을 자주 목격했다. 성도 어릴 적 월과 그 모습을 함께 본 기억이 났다. 며칠 전, 월이 장천에서 도자기를 빚기 시작했다는 전갈이 왔다. 성은 오라비가 자신에게 했던 당부나 아버지와 일화를 들려준 이유를 어렴풋이 알 듯했다. 하지만 왜에서 도자기를 빚는 건 불가능했다. 무엇보다 도자기 재료인 흙의 상태가 나빴다. ‘이곳의 흙으로는 도저히 도자기를 빚을 수 없어…….’ 머릿속이 복잡해진 성은 눈을 질끈 감았다. 성은 그날 날이 어둑어둑해질 때까지 온천물에 들어앉아 있다 돌아왔다. 사위는 어두웠고, 그녀의 속도 끝 모를 동굴처럼 캄캄했다.
온천을 다녀온 성은 다음 날 아침 일찍 도공들을 불렀다. 그리고 전날 머릿속에 그린 구상을 자분자분 설명했다.
“난 이제부터 도자기를 빚을 거요.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도자기를 만들려고 합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은 내가 가마소 일에 소홀하다고 하여 게을러졌다고 탓하지 말 것이며, 내가 한동안 가마터에 나타나지 않아도 궁금해하지 마세요.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도자기는 하루아침에 만들 수 없는 법이니, 조급한 마음에 안달하지도 마세요.”
성은 도자기 빚는 일에 몰두했고, 가마터는 봉이 주도해 운영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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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기 왜국과 친분이 있던 후백제 왕이 물러났다. 부흥 운동을 꾀했던 장수가 군사들을 그러모아 왕위에 올랐다. 새로운 왕은 왜국에 볼모로 잡혀갔다 왕위에 오른 전임 왕이 못마땅했다. 왜국 왕 앞에서 무릎을 꿇고 책봉을 받던 즉위식 때, 그는 치욕감에 이를 악다물었다. 그래서 새로운 왕은 전임 왕과는 달리 왜국과 교역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왜국도 그런 태도를 마뜩하지 않아 했다. 결국 왜국은 후백제에서 들어오는 항만의 출입을 통제하기 시작했고, 교역에도 규제를 가했다. 그 바람에 장천에서 공수해 오는 흙의 양이 절반으로 줄었다. 나카무라 가마소 2호점에서 나오는 기물은 그럭저럭 팔리긴 했지만, 흙의 양이 대폭 줄면서 생산량은 전보다 못했다. 성은 봉에게 매일 보고를 받으면서도 도자기를 빚는 데 열중했다. 하지만 창작의 길은 고됐다. 가마터 일이 신경 쓰여 집중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온종일 물레 위에 흙 반죽을 올려놓고 발을 굴려도 만족할만한 자기는 형태를 드러내지 않았다. 가마터에서 사용할 흙이 날마다 허무하게 버려졌다.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 눈을 떴나 하면 해가 중천에 떴고, 잠시 한숨을 돌릴라치면 어느새 밤이 왔다. 마치 하루가 1년처럼 지나는 듯했다. 성은 점점 의욕과 의지를 잃어갔다. ‘내가 정말 도자기를 빚을 수 있을까.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을 물건을 만들 수 있을까.’ 그녀는 갈수록 자신이 없어졌다.
그녀 혼자 일하는 곳간채 공방에는 도자기 대신 한숨만 늘어갔다. 가마터 일꾼들 사이에서는 불평불만이 쏟아졌다. ‘가마터에서 쓸 흙도 없는데, 행수는 도자기인지, 개자기 인지 만든답시고 가마터에 코빼기도 안 비치고 흙만 버리고 있으니 말이 되느냐’고. 성도 들려오는 말이 귀에 거슬렸지만 괘념치 않았다. 그런 말에 하나하나 대응해봤자 득보다 실이 더 많으리란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성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다만, 그렇게 흘러가는 시간이 길어지면 곤란하다는 것 역시 알았기에 조바심이 났다.
그즈음 장천의 오라버니로부터 연통이 왔다. 월은 인편을 통해 그림을 한 장 보냈다. 입구가 잘록한 병이었다. 주둥이는 가녀린 여인의 허리처럼 호리호리했고, 아래로 갈수록 넓어졌다. 마치 미끄러지는 몸매와 풍만한 엉덩이처럼. 몸체에는 어릴 적 고향에서 봤던 연꽃을 새겼다. ‘어쩜 이리 곱고 아름다울까. 내 생에 이런 작품을 만들 수 있을까.’ 성은 그림을 보며 한동안 넋을 잃었다.
병은 술을 담을 수도, 물을 담을 수도, 꽃을 꺾어다 담을 수도 있어 보였다. 그건 바로 월이 지금 빚고 있다는 도자기였다. 하지만 그 역시 실패를 거듭하면서 상심이 이만저만 아니라고 인편은 전했다. 월은 성도 자신이 만들고 있는 연화 무늬 병을 만들어보라고 권했다. 누구라도 먼저 만들면 되지 않겠느냐면서. 성은 그림만 보고는 흉내조차 내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해 보기로 작심했다. 오라버니가 얼마나 절박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도자기를 빚고 있는지, 또 얼마나 자신을 믿고 응원하고 있는지 그림을 통해 고스란히 느껴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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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기 빚기에 곤욕을 치르는 건 월도 마찬가지였다. 빚었다 버리고, 구웠다 깨버리기 일쑤였다. 하나같이 성에 차지 않았다. 유약을 발라도 색이 나오지 않았고, 형태도 온전치 못했다. 사발이나 항아리와 달리 불 온도를 맞추는 일도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그때마다 월은 산꼭대기에 올라가 목청껏 소리를 질렀다. 그렇게라도 해야 화가 풀렸고,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또 그렇게 해야 다시 물레를 돌리고, 도자기를 빚을 마음이 생겼다. 바다 건너 섬나라의 동생이 겪고 있을 지난한 삶이 마치 자신 때문인 양 자책도 했다.
그때마다 구름은 빨갛게 변해 있었다. 가마 속에서 이글거리는 화염처럼, 아버지가 빠져 죽은 바다를 비췄던 붉은 노을처럼. 월은 달을 바라보며 손 모아 기도했다. 부디 아버지가 저승에서 편히 쉬게 해달라고, 동생이 자기보다 하루라도 먼저 도자기 만들기에 성공하게 해 달라고. 눈물을 흘리며 두 손을 모았다. 장천 우물에 비친 달빛은 반쪽이었고, 나카무라 가마소 2호점 앞 우물에도 반쪽 달빛이 비쳤다. 달 주변으로 별 무리가 반짝였다. 월과 성은 같은 마음으로 달과 별을 보며 기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