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반전

8. 수월경화(水月鏡花) : 물에 비친 달, 거울에 비친 꽃

by 류재민

“그래서 결론은 누가 먼저 도자기 빚기에 성공한 거요? 월이요, 성이요?”

유민의 긴 이야기를 듣고 있던 조 부장이 입을 벌려 하품하면서 물었다. 그들 앞에는 소주병과 맥주병이 셀 수 없이 쌓여 있었다. 겨레는 이미 테이블에 고개를 푹 숙인 채 잠들어 있었다. 겨레는 술에 취하면 아무 데서나 잠드는 버릇이 있었다. 유민이 잠든 겨레를 흘끔 쳐다본 뒤 대답했다. 그 역시 취기가 올랐는지 발음이 다소 어눌했다.

“월이요. 오빠인 월이 먼저 도자기를 빚고, 구워내는 데까지 성공했어요.”

“그렇군요. 그럼 성은? 성도 오빠한테 비법을 전해 들었을 테니 금방 만들었겠군요?”

“아뇨. 성은 만들지 못했습니다. 월이 비법을 전수하려고 했지만, 성은 거부했습니다. 어떻게든 스스로 터득하겠다고 고집을 부렸다고 합니다.”

“……그럼, 성은 어떤 삶을 살았나요?”

“나카무라의 아들과 결혼했습니다. 그리고 한동안 도자기를 만들지 않았습니다. 결혼하자마자 임신했고, 아이가 태어났으니까요. 아이를 키우면서 나카무라 가마소 1호점과 2호점 운영에만 몰두했다고 합니다.”

“그럼 대통령실에서 사라진 청자는 월의 후손이 만들었겠군요?”

“그렇습니다. 마천왕의 4대손, 그러니까 월의 손자 대에서 처음 청자라는 걸 만들었고, 증손 대에서 비로소 연화 무늬 매병이 탄생했을 거라고 마 교수님께 들었습니다.”

“지금 마 교수는 어디 계시죠? 아니지, 당신들이 가져갔다는 청자의 소재 파악부터 해야겠군요?”

“교수님은 지금 장천에 계십니다. 가마터가 있던 자리에 작은 별장을 지었는데, 그곳에서 글을 쓰면서 다음 학기 강의를 준비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청자는……”

“그래, 그건 어디 있소?”

유민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알고는 있지만, 말을 하긴 곤란한 모양이었다.

“오늘 우리를 부른 건 다 얘기하려고 한 거 아니요? 그러면 말 못 할 이유가 뭡니까?”

“죄송합니다. 저도 제가 직접 보관 중인 게 아니라서요. 그리고 잘 아시겠지만, 이 청자는 국보급이기 때문에 답변드리기가 매우 조심스럽습니다. 대신 힌트를 좀 드리죠. 시간이 되면 마 교수님을 한번 만나 보세요. 그분이라면 저보다 많은 걸 알려주실 수 있을 겁니다.”

조 부장은 맥이 빠졌지만 어쩔 수 없었다. 유민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하기 때문이다. 욕쟁이 할머니의 노포에서 시작해 호프집을 거쳐 포장마차까지 이어진 술자리는 새벽 두 시가 넘어 끝났다. 세 사람은 비틀거리며 인사를 나눈 다음 저마다 집으로 향했다. 조 부장은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겨레를 부축해 택시를 잡아 태웠다. 택시 뒷좌석에 올라탄 겨레는 창문을 열어 조 부장에게 조심히 들어가라고 손짓했다. “내 걱정일랑 말고, 한 기자나 조심히 가.” 새벽의 공기는 신선했고, 선선한 바람이 조 부장의 이마와 목덜미를 훑고 지나갔다.



겨레는 오전 내내 숙취에 시달렸다. 전날 얼마나 마셨는지, 온몸에서 술 냄새가 진동했다. 욕실 거울에 시뻘겋게 충혈된 눈동자가 비쳤다. 샤워기를 틀고, 비누칠하고, 칫솔질하면서 겨레는 전날 유민이 들려준 마천왕 일가 이야기를 떠올렸다. 어쩌면 대통령실에서 사라진 연화 무늬 매병이 그 옛날 마씨 일가 손에서 처음 시작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예감이 퍼뜩 뇌리를 스쳤다. 하지만 또다시 속이 울렁거리고 머리가 깨질 듯해 더 이상 깊이 있는 생각은 하기 힘들었다.

찬물에 샤워를 마친 겨레는 드라이어로 머리를 말리며 핸드폰으로 실시간 기사를 훑어봤다. 세상은 오늘도 온통 시끄러운 뉴스로 도배하다시피 했다. 여야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티격태격했고, 곤두박질친 경제는 회복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물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사건 사고는 날로 늘었고, 흉악범죄도 기승을 부렸다. 기사를 보던 겨레는 연신 한숨을 내쉬었다. 뉴스 창을 닫고 카톡을 확인하려는 순간, 부르르 진동과 함께 전화가 걸려 왔다. 조 부장이었다.

“한 기자! 속은 좀 어때? 어제 많이 마신 것 같던데, 괜찮아?”

“네, 선배! 선배님은 어떠세요? 댁에 잘 들어가셨어요?”

“나야 뭐. 주량이 약하니 살살 마셔서……가뿐하지.”

“근데 어쩐 일로 아침 일찍 연락하셨어요?”

“약속 없으면 같이 해장이나 하자고.”

겨레는 알았다고 했고, 조 부장은 카톡으로 겨레 숙소 근처라면서 식당 위치를 찍어 보냈다. 겨레는 조 부장이 단순히 해장이나 하려는 게 아니라는 걸 눈치챘다. 주섬주섬 옷을 갈아입은 겨레는 자전거를 타고 약속 장소로 나갔다. 술이 덜 깬 탓인지 중심을 잡기가 어려웠다. 자전거가 취한 사람처럼 여러 번 비틀거렸다. 횡단보도 신호를 두 번 지나자 해장국집이 보였다. 겨레는 식당 앞에 자전거를 대고, 식당 옆 편의점에서 숙취해소 음료를 두 병 샀다.

“자네나 먹지 내 것까지 사 왔어. 난 얼마 먹지도 않았는데…….”

“아유, 얼마 안 드셨더라도 마셔요. 이거 숙취에 아주 특효약입니다.”

조 부장은 겨레가 건넨 숙취 해소 음료를 따 마신 뒤 말을 꺼냈다.

“어제 차유민 행정관이 한 얘기를 토대로 후속 취재를 해볼까 하는데, 한 기자 생각도 좀 들어보고 싶고.”

“후속 취재라뇨? 그게 무슨?”

겨레의 눈이 동그래졌다. 숙취에 허덕이던 동태 같은 눈이 호기심에 잔뜩 찬 눈빛으로 돌변했다. 조 부장은 뭔가 중대 발표를 앞둔 사람처럼 뜸을 들였다. 겨레는 침을 꼴깍 삼키며 조 부장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이 사람아. 그렇게 쳐다보고 있으면 할 말도 까먹겠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하니까 일단 속 좀 풀고 얘기하자고. 오케이?”

겨레는 애가 탔지만, 뒤 집어질 듯한 속부터 달래기로 했다. 둘은 선지해장국에 공깃밥을 말아 정신없이 퍼먹었다. 먹는 동안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겨레는 조 부장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무척 궁금했고, 조 부장은 겨레가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일지 머릿속이 복잡했다.

“한 기자, 다 먹었으면 일어나. 커피나 한잔하러 가게.”

“네에? 커피는 무슨 커피에요? 아까 하려던 말씀이나 얼른 하세요. 그거 땜에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도 모르게 먹었는데.”

뾰로통한 겨레를 보며 조 부장이 싱긋 웃었다.

“할 일은 많고, 시간도 많아. 뭐가 그리 급해. 천천히 하자, 천천히!”

먼저 일어나 카운터에서 계산을 마친 조 부장이 이쑤시개를 하나 집어 입에 물었다. 겨레는 하는 수 없이 자전거를 끌고 조 부장 뒤를 따랐다. 밥을 급하게 먹었는지, 술이 덜 깼는지 겨레는 골치가 지끈거리고 속이 울렁거렸다. 조 부장은 식당 근처 어느 찻집 앞에 멈췄다. 겨레는 찻집 앞에 끌고 온 자전거를 받치고 안으로 들어갔다. 에어컨 바람이 두 사람을 시원하게 맞았다.



‘수월경화(水月鏡花)’ 두 사람이 들어간 일본풍 찻집 이름이었다. 겨레는 간판이 하도 특이해 무슨 뜻인지 핸드폰을 열어 검색했다.

“물에 비친 달, 거울에 비친 꽃이란 말로……눈으로 볼 수는 있으나 잡을 수는 없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다분히 시(詩)적인 표현이었다. 조 부장은 무슨 의미로 찻집 이름을 그렇게 달았는지 자못 궁금했다. 곧이어 한 젊은 여성이 메뉴판을 들고 왔다.

“여기 간판이 ‘수월경화’인데, 무슨 뜻이 있는 건가요?”

서빙 온 여성은 조 부장의 돌발질문에 당황스러워했다.

“네? 아, 그게……제가 여기서 일한 지 얼마 안 돼서요……이따 사장님 오시면 여쭤볼게요.”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미안해요. 저희 멜론 소다랑 오미자차 주세요.”

겨레는 생뚱맞게 그런 걸 왜 묻냐고 핀잔을 주고는 알바생을 돌려보냈다. 찻집 안에 손님이 달랑 한 팀이었기에 주문한 음료는 금방 나왔다. 아까 그 알바생은 쟁반에 받쳐 온 음료 두 잔을 조심스레 원목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는 돌아갔다. 유리잔 안에는 음료 반, 얼음 반이었다. 멜론과 오미자 향이 상큼하게 풍겼다.

“선배. 이제 정말 할 얘기란 거 해보시죠.”

그제야 조 부장은 알았다며 말문을 열었다.

“한 기자도 어젯밤에 같이 들어서 알겠지만, 차 행정관이 말한 마천왕과 그 일가 말이야. 자네는 그 이후의 이야기가 궁금하지 않아?”

“궁금하긴 하죠. 근데 어제 술자리도 너무 길어졌고, 저는 엄청 술에 취해서 그 양반이 뭔 소리를 했는지 제대로 기억이 안 날 정도예요.”

“난 지금도 그 사람들의 후일담이 무척 궁금해. 월과 성이 어떻게 도자기 빚기에 성공했는지, 성이란 여자는 계속 일본에서 살았는지, 그들의 후손은 어떻게 고려청자를 만들어냈는지…….”

“그야 뭐, 조상 대대로, 또 집안 대대로 가업으로 전승했겠죠. 도자기는 송나라 때 유행했으니, 직접 가서 배웠든, 그 나라 사람들이 와선 가르쳐줬든 해서 만들지 않았을까요?”

“그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얘기고……내 말은 우리가 직접 그 지역에 가서 그들의 전설과 역사를 취재해 보자는 거지.”

“우리요? 왜요? 우리가 무슨 문화부 기자들도 아니고, 대통령실 출입 기자들한테 그게 취재할만한 꺼리가 될까요? 전하려는 메시지는 또 뭔데요?”

겨레는 조 부장 제안을 선뜻 받아들일 수 없었다. 마천왕 일가 이야기야 나중에 차 행정관에게 마저 들으면 될 일이고, 도난당한 청자의 행방 역시 차 행정관을 통해 파악하면 되는 것 아닌가. 그러나 조 부장 생각은 달랐다. 그는 차 행정관이 청자의 소재까지 알려줄 리는 없다고 믿었다. 그가 두 기자를 찾아왔을 때는 언론을 통해 뭔가를 세상에 알리고 싶었을 터. 하지만 대통령실을 한 번 뒤집어 놓은 것으로는 강도가 약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차유민이 언급한 ‘마강진 교수’를 만나 그들 집안의 행적을 추적해볼 필요가 있다고 봤다. 그 가마터, 아니 별장에 가보면 뭔가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고도 여겼다.

두 사람이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을 즈음, 한 중년의 남성이 테이블로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실례하겠습니다.”

“누구시죠?”

“저는 여기 사장입니다. 알바 학생한테 들으니 여기 간판 이름에 관해 여쭤보셨다고요?”

조 부장이 엉거주춤 일어나 허리를 반쯤 숙인 채 인사했다.

“아, 네. 제가 들어오다 보니까 찻집 이름이 인상적이어서요. 무슨 뜻이 담겨있나 궁금해서요.”

“그렇군요. 손님처럼 물어보는 분들이 간혹 있긴 합니다만…….”

사장은 두 사람을 번갈아 보며 살짝 미소를 지었고, 겨레는 자리를 옆으로 옮겨 사장이 앉을 자리를 마련했다.

“그럼 잠깐 실례하겠습니다.” 사장은 양해를 구한 뒤 겨레가 앉았던 의자에 앉았다. 그러고는 “한 10년 전쯤 일”이라며 찻집 이름을 ‘수월경화’로 지은 배경을 천천히 설명했다.

사장 이름은 민병배로, 나이는 쉰다섯이었다. 10년 전, 다니던 IT 회사를 그만두고 얼마 안 되는 퇴직금으로 아내와 함께 카페를 차렸다. 하지만 초보 자영업자에게 카페 운영은 무척이나 버거웠다. 결국 1년도 못 가 문을 닫았다. 민 사장은 공허하고 울적한 마음에 아내와 바닷바람이나 쐬자며 여행을 떠났다.

민 사장 부부는 여행 첫날 오후 어느 바닷가에 이르렀다. 저녁을 먹을 참으로 허름한 식당에 들어갔는데, 식당 안에서 기묘한 그림 한 점과 마주쳤다. 한 여인이 손에 거울을 들고 서 있고, 거울 속에는 이름 모를 붉은 꽃 한 송이가 비쳤다. 여인이 서 있는 옆으로는 우물이 있었는데, 그 속에는 반달이 들어 있었다. 꽃도 달도 눈으로 볼 수는 있으나 거울과 우물 안에 있어 잡을 수도, 만질 수도 없었다. 그래서일까, 여인의 눈은 한없이 슬퍼 보였다. 돼지불고기를 안주 삼아 소주잔을 기울이던 민 사장은 그림에서 한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앞에 앉은 아내가 상추쌈을 싸 입 앞에 대고 있어도 알아채지 못했다. 아내도 민 사장이 바라보는 그림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녀 역시 그림에서 풍겨 나오는 신비로운 기운을 감지했다.

“왠지 외롭고, 쓸쓸하고, 슬퍼 보이는 그림이네요.”

“그러게. 무슨 사연이 있는진 모르지만, 지금 내 마음처럼 보이네.”

두 사람의 대화는 한동안 멎었다. 민 사장은 혼자 술을 따라 마셨고, 아내는 그림과 남편의 안색을 번갈아 보며 분위기를 살폈다. 그사이 식당 주인이 서비스 안주라며 계란찜을 내왔다. 침울해하는 부부를 보던 주인은 그림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민 사장 아내를 보면서 말을 걸었다.

“‘수월경화’라는 그림입니다.”

“‘수월경화’요?”

“네. 한자 그대로 해석하면 ‘물에 비친 달, 거울에 비친 꽃’이란 뜻이죠. 간절히 얻고 싶은 건, 쉽게 얻어질 수 없는 법이죠. 수많은 시행착오와 실패를 거듭해야 겨우 얻을까 말까 하죠. 우리네 인생처럼 말입니다. 지인께서 개업 선물로 준 그림입니다. 도예가인데, 화가 뺨칠 정도로 그림 솜씨도 탁월합니다. 집안 대대로 도자기 빚는 일을 해 왔다는데, 혹시 저 그림 끄트머리에 가마터가 보이십니까. 저기가 그분 조상께서 직접 만든 가마터라고 하더군요.”

민 사장 부부는 주인의 말을 듣고서야 그림 맨 끝부분에 그려진 가마터를 확인할 수 있었다. 가마터 옆에 서 있는 어린아이 모습도. 여행을 마치고 민 사장 부부는 찻집을 열기로 했고, 간판 이름을 ‘수월경화’라고 지었다. 실패를 거듭하다 보면, 그 실패에서 얻은 교훈으로 언젠가는 성공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과 믿음을 담았다. 민 사장은 찻집에서 간간이 사이언스 잡지에 연재할 글을 썼고, 그의 아내는 공방에 나갔다. 찻집을 연 지 9년째라는 민 사장은 카페를 할 때보다 심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낫다고 했다.



겨레는 조 부장의 제안과 계획이 썩 내키진 않았다. 그렇다고 대통령실 출입이 막힌 상태에서 멀뚱멀뚱 있을 수만도 없었다. 다음 날 두 사람은 회사에 한 달간 출장 계를 제출했다. 출장지와 목적에는 ‘장천군-마강진 교수 인터뷰 및 탐사취재’라고 썼다. 마 교수 별장 주소는 유민에게서 받았다. 두 사람은 겨레의 차를 타고 이동하기로 했다. 겨레 숙소 근처인 시청역에서 출발한 차량은 경부선과 호남선을 번갈아 가며 달렸다. 평일 고속도로는 한산했지만, 워낙 거리가 멀어 두 사람은 중간중간 휴게소에 들러 커피를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며 허리를 폈다. 4시간 남짓 달린 차량은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한적한 국도변으로 접어들었다. ‘장천군’을 알리는 이정표가 눈에 들어왔다. 내비게이션은 마 교수 별장까지 7킬로미터가 남았다고 일러줬다.

“거의 다 와 가는군요.”

겨레는 조수석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던 조 부장에게 말을 걸었다. 조 부장은 창밖으로 지나는 차를 보는 건지, 넘실거리는 황금 들판을 보는 건지, 아니면 멀리 보이는 산맥을 보는 건지, 하늘에 떠가는 구름을 보는 건지 유민의 말에 아무 대꾸하지 않았다. 겨레는 말없이 차를 몰았다. 목적지가 가까워질수록 노면 상태는 불량했다. 군데군데 싱크홀을 지날 때마다 차가 덜컹거렸다. 도착지점을 2킬로미터가량 앞두고부터는 비포장도로였다. 구불구불한 길을 지날 때마다 두 사람의 몸은 들썩거렸고, 겨레는 차체가 흔들리지 않도록 핸들을 두 손으로 꽉 잡았다. 비포장도로의 끝에는 산허리로 올라가는 언덕길이 나타났다. 경사가 급해 속도를 줄여야 했다. S자 코스의 꼬불꼬불한 산길을 차가 헐떡거리며 올라갔다.

마 교수 별장은 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었다. 두 사람이 별장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1시 30분이었다. 오전 8시 30분에 출발했으니 꼬박 5시간이 걸린 셈. 두 사람은 별장 입구에 차를 세우고 짐을 내렸다. 별장 입구에는 들고양이 두 마리가 빈 사료통 주변을 서성거리다 차 문 닫는 소리에 놀라 쏜살같이 담 밑으로 숨어들었다. 한 녀석은 새끼를 뱄는지 배가 불룩했다.

겨레는 한옥으로 지은 별장 앞에서 초인종을 누른 뒤 마 교수를 불렀다. 잠시 후 안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마룻바닥에 발 딛는 소리에 이어 신발 신는 소리가 났다. 이윽고 한 남자가 대문을 열었다. 소나무로 만든 대문은 오래됐는지 삐거덕거렸다. 남자는 60대 중반쯤 되는 얼굴에 머리는 하얗고, 뿔테 안경을 쓰고 있었다. 옷차림은 밤색 개량 한복에 검정 고무신을 신고 있었다. 마강진 교수였다.

“기자님들이시죠? 어서들 오세요.”

겨레와 조 부장은 마 교수에게 명함을 건넸고, 마 교수는 둘을 안내했다. 대문 안으로 들어가니 돌과 나무로 예쁘게 꾸민 널찍한 마당이 나왔다. 셋은 마당을 가로질러 대청마루에서 신발을 벗고 서재로 들어갔다. 수많은 책이 책꽂이에 꽂혀 있었고, 책에서 나는 종이 냄새가 방안에 진하게 뱄다.

“먼 길 오셨습니다. 힘드실 텐데, 앉아서 숨부터 돌리시죠.”

쭈뼛거리며 서재를 둘러보던 겨레와 조 부장은 마 교수를 정면으로 보고 앉았다. 그들 사이에는 소반이 하나 놓였는데, 그 위에는 다기와 찻잔, 다식이 놓여 있었다. 마 교수는 며칠 전 차유민으로부터 겨레와 조 부장이 곧 찾아갈 거라는 기별을 받았다. 마 교수는 다기에 담긴 차를 찻잔에 따라 두 사람 앞에 내놨다.

“이 근처에 차밭이 있어요. 조금 얻어다 우렸습니다. 다식은 제 딸이 만들어 보내왔는데, 맛이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한번 드셔 보시죠.”

차를 마시고 난 겨레는 향이 아주 깊고 그윽하다고 호평했고, 마 교수는 말을 이어갔다.

“차 행정관은 대통령실에 들어간 뒤부터는 연락도 뜸하고 얼굴 보기가 힘들더군요. 참, 두 분도 거기 출입하는 거죠? 좀 어떻습니까?”

“아무래도, 그곳 성격이 성격이다 보니…….”

겨레가 주저하자, 조 부장이 대신 대답했다.

“교수님도 아시다시피 최근에 대통령실에서 고려청자가 사라지는 사건이 있었잖아요. 대통령실 수장고 관리 업무를 차 행정관이 맡고 있다 보니 무척 곤란한 상황일 겁니다. 솔직히 이번 조사가 끝나면 대통령실을 나와야 할 가능성이 크고요.”

“으흠.”

차를 마시던 마 교수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두 분께서 보기에 이번 사건은 어떻게 정리될 것 같습니까?”

마 교수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겨레와 조 부장을 번갈아 보며 물었다.

두 사람은 서로 얼굴을 쳐다볼 뿐 즉답할 순 없었다. 그들도 사태의 진행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만, 유민이 더는 그곳에서 일할 수 없으리라는 예상은 충분히 할 수 있었다. 조 부장이 쑥색 다식 하나를 입에 넣고 오물거리며 마 교수를 찾아온 이유를 밝혔다.

“차 행정관께 어디까지 들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저희가 여기 온 건, 사라진 청자의 행방을 여쭙고 싶어서입니다. 또 괜찮으시면 교수님의 먼 조상인 월과 성의 후일담을 더 듣고 싶고요.”

마 교수는 조 부장의 말에 가만히 고개를 숙였다. 그는 찻잔을 들어 한 모금을 마시더니 나직이 말했다.

“그럽시다. 내 이야기도 차 행정관이 들려준 것만큼 꽤 길 겁니다. 옆 칸에 별채가 있으니 거기서 며칠 묵으시죠. 오늘은 운전하느라 힘들고, 진이 빠졌을 테니 일단 좀 쉬세요. 전설의 고향은 차차 떠나보기로 하고.”

겨레와 조 부장도 며칠 묵을 작정으로 왔기에 서두르지 않았다. 두 사람은 남은 차를 마저 마시곤 서재에서 나왔다. 별채는 아담했다. 그 앞에는 매화나무 한 그루가 고고한 자태를 뽐냈다. 죽 뻗은 가지마다 붙은 초록색 잎이 은은하게 빛나며 꼿꼿하게 버티고 있었다. 매화나무 옆 화단에는 데이지와 크리스마스 꽃으로 유명한 포인세티아가 가지런히 심어 있었다. 별채로 들어간 두 사람은 옷을 갈아입었다. 방안에는 이불이 두 채 준비돼 있었는데, 원래부터 두 채였는지, 아니면 마 교수가 두 채를 가져다 놓았는진 알 수 없었다. 편한 복장으로 갈아입은 두 사람은 방안에 대(大)자로 드러누웠다. 조 부장은 연신 ‘아이고’ 소리를 내다 잠들었고, 겨레도 장거리 운전에 지쳤는지 금세 곯아떨어졌다. 두 사람의 코 고는 소리가 마당까지 흘러나왔다. 매화나무와 화단의 꽃들은 이방인들의 방문이 낯설다는 듯 가지와 꽃잎을 이쪽저쪽으로 흔들며 저녁을 기다렸다.


두 사람은 저녁 7시가 다 돼서야 잠에서 깼다. 먼저 일어난 겨레가 늘어지게 하품했다. 그 소리에 조 부장도 눈을 비비며 부스스 일어났다.

“아이고.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그러게요. 달게 자긴 했는데, 긴긴 가을밤을 어떻게 지새울지 모르겠네요?”

겨레와 조 부장이 방안에서 두런거리는 사이 마 교수의 인기척이 들렸다.

“눈 좀 붙이셨습니까?

겨레가 방문을 열어보니 밖은 이미 어두웠고, 마 교수가 부침개에 막걸리 두 통을 쟁반에 받쳐 들고 있었다. 두 사람은 얼른 일어나 마 교수 손에 들린 쟁반을 받아 들었다.

“교수님, 이게 다 뭡니까?”

“일주일에 두 번씩 별장 청소하는 아주머니가 계세요. 오늘은 서울에서 특별한 손님이 오셨다고 했더니 호박이랑 가지랑 풋고추를 따다가 부추를 넣고 부침개를 만들지 뭡니까.”

“아유 그렇게까지 안 하셔도 되는데……이런 게 시골 인심인가 봅니다. 솔직히 자고 일어났더니 배가 출출하던 참이었습니다. 고맙게 잘 먹겠습니다.”

겨레가 군침을 꿀꺽 삼키며 말했다. 마 교수는 한숨 자고 일어나 표정이 밝아진 두 사람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방을 나왔다. 마 교수는 방문을 닫다 말고 공지를 하나 했다.

“참, 내일 아침은 안방에서 저랑 같이 드세요. 아주머니가 미역국을 잔뜩 끓여두고 가셨거든요. 찬은 얼마 없어도 그냥저냥 한술 뜨시죠.”

“여러모로 신세를 지게 됐습니다. 죄송하고 고맙습니다, 교수님.”

조 부장이 어쩔 줄 몰라 하자 마 교수는 쓸데없는 소리 말라며 손사래를 쳤다. 마 교수가 돌아간 뒤 방안에 남은 두 사람은 막걸리 뚜껑을 따 잔에 부었다. 조 부장은 고소한 들기름 냄새가 풍기는 부침개를 젓가락으로 죽죽 찢었다. 그러고는 종지에 담긴 집 간장에 살짝 찍어 먹음직스럽게 한 입 욱여넣었다. 겨레도 막걸리 한잔을 쭉 들이킨 뒤 부침개 한 점을 입에 넣었다.

“세상에! 이런 맛이 있네. 살살 녹네, 녹아.”

“와, 진짜 대박. 여태껏 먹어본 것 중에 제일 맛있어요. 아주머니 음식 솜씨가 대장금 수준인데요.”

별미로 저녁을 해결한 두 사람은 밖에 나와 산책하기로 했다. 주위는 가로등 하나 없이 어두웠다. 하늘에 뜬 달이 유일한 빛줄기였는데, 보름이 가까워 차오른 달은 두 사람이 걷기에 큰 무리는 없었다. 능선을 따라 난 작은 산길이 마을 쪽으로 오붓하게 나 있었다. 몇 시간 전 차를 타고 올라온 길이었는데, 밤과 낮의 시간적 배경이 바뀌면서 물리적 공간은 색다르게 다가왔다. 겨레는 주머니에서 담배를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담배가 다 떨어진 모양입니다. 마을에 내려가면 편의점이 있을 것 같은데, 같이 가실래요?”

“그러자고. 어차피 낮잠을 오래 자서 다시 잠들긴 어려울 것 같고, 소화도 시킬 겸 걸어보자고.”

조 부장은 가만히 웃으면서 걷기 시작했다. 마을까지 거리는 꽤 길어 보였지만, 둘은 이런저런 말을 주고받으며 오순도순 내려갔다. 달이 계속 따라오며 두 사람의 앞길을 비췄다. 산골짜기에서는 이름 모를 새와 산짐승 소리가 주기적으로 들렸고, 풀벌레가 찌르르, 찌르르하며 장단을 맞췄다.

“선배, 마 교수라는 분……어때 보였어요?”

“어때 보이긴? 뭐가?”

“겉으로 보이는 풍모는 전형적인 학자 스타일이고, 성격도 나이스 한 것 같긴 한데, 어딘지 모를 묘한 분위기가 풍겨서요. 뭐랄까, 여러 개의 비밀을 숨겨놓고 사는 사람 같다고 해야 하나…….”

“한 기자는 기사가 아니라 소설을 써도 성공하겠어. 뭐, 사실 나도 비슷한 느낌을 받긴 했어. 그거야 연륜에서 풍기는 느낌일 수 있고, 아니면 지금 벌어지고 있는 사건과 관련해서 뭔가 마음을 쓰고 있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아무튼 내일부터 차차 알아보자고, 마강진 교수와 그의 집안을.”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난 두 사람은 마 교수의 방으로 건너가 함께 식사했다. 마 교수는 미역국에 산나물, 깍두기, 배추김치를 반찬으로 내왔다.

“어제 부침개는 아주 잘 먹었습니다. 처음 먹어본 맛이었습니다. 아주머니 음식 솜씨가 장금이 뺨칠 정도던데요. 천상의 맛이라고 할까요?”

겨레는 마 교수에게 덕분에 한 끼를 잘 먹었다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원래 배가 고플 땐 뭘 먹어도 맛있다잖아요. 국 식어요, 어서들 듭시다.”

마 교수도 한결 밝아진 안색으로 수저를 들고 식사를 권했다.

소고기를 넣고 끓인 미역국이 들어가자 몸에 생기가 도는 듯했다. 조 부장은 뜨거운 국에 밥을 말아 후후 불어먹으며 아주머니 음식 솜씨에 또 한 번 경탄했다.

“한 기자 말마따나 아주머니 음식 솜씨가 대장금입니다. 아주 예술입니다.”

“이러다 여기서 아예 눌러앉는 거 아닌지 모르겠어요. 하하하!”

겨레도 산나물에 고추장을 넣고 비빈 밥에 미역국을 떠먹으며 말했다.

마 교수는 아주머니 월급이 꽤 비싸다며 장기 투숙하려면 거금을 내야 할 거라고 농담했다.

아침 식사가 끝난 뒤 겨레는 설거지를 자처했다. 자취 경력 20년에 설거지는 달인급이라며 너스레를 떨면서. 뒷정리를 끝낸 일행은 장천에서 본격적인 일정을 시작했다. 겨레와 조 부장은 노트북과 사진기, 핸드폰 영상 녹화용 미니 삼각대를 꺼내 들고 마 교수 서재로 갔다. 곧 첫 인터뷰가 시작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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