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후예-2
첫날 인터뷰는 3시간가량 이어졌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니 오전 11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마 교수는 두 사람에게 근방에 오래된 사찰이 있다고 소개했다. 바람도 쐴 겸 갔다가 아예 점심까지 먹고 오면 어떠냐고 물었다. 겨레와 조 부장은 흔쾌히 수락했다. 가벼운 복장으로 갈아입은 셋은 별장을 나섰다. 마 교수는 가는 동안 별장 주변을 감싸 안고 있는 산과 찾아가려는 절을 소개했다.
“이 산의 이름은 만수산이라고 합니다. 참나무와 떡갈나무, 녹나무, 동백 같은 상록 활엽수가 많습니다. 특히 동백나무 군락지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될 만큼 장관이죠. 바로 그곳에 우리가 가고 있는 절 ‘천담사’가 있습니다.”
“아, 천담사…….”
“선배, 천담사를 아세요?”
“들어봤지. 그 옛날 전두환 씨 부부가 은신해 있던데 아닌가?”
“아유 참, 거긴 백담사고요.”
“아, 그런가? 잠깐 헷갈렸네. 하하하.”
조 부장이 겸연쩍게 머리를 긁적이며 웃자 겨레와 마 교수도 따라 웃었다. 천담사는 별장에서 차로 10분 거리였다. 차량도 올라갈 수 있지만, 일행은 운동도 하고 경치도 볼 겸 걸어서 올라갔다. 주차장을 가로질러 올라가자 일주문이 나타났다. 일주문 현판에는 한자로 ‘만수산 천담사’라고 새겨 있었다. 절 입구에는 사찰 설명을 적어놓은 안내판이 보였다. 사찰은 통일신라 시대 한 스님이 창건했다고 적혀 있었다. 절 인근에는 조선시대 유명한 문신이 유배를 와 10여 년을 머물며 후학 양성과 실학을 집대성한 유적이 명소로 각광 받고 있었다.
길은 험하지 않았다. 방문객이나 등산객도 많지 않아 한적했다. 절은 아담했다. 다채로운 음각의 색이나 저 멀리 보이는 바다 풍광은 휴가지로 제격이었다. 무엇보다 일주문에서 대웅전까지 가는 길에 마 교수가 설명했던 동백나무 숲길이 가을의 정취를 만끽하게 했다. 꽃은 일찌감치 지고 없었지만, 하늘과 땅의 기운이 비자나무, 후박나무, 푸조나무 등 수천 그루 나무 속으로 스며들어 방문객들에게 낭만과 추억을 선사했다.
일행은 동백나무 숲을 지나 팔작지붕의 대웅전 앞에 섰다. 셋은 활짝 열린 대웅전 안 불상을 향해 세 번 합장했다. 겨레는 절을 올리고 싶다며 법당 안으로 들어갔다. 실내에는 여러 마리의 용과 봉황 조각으로 장식돼 있었다. 겨레는 방석을 앞에 가져다 깔고 두 손을 모았다. 그러고는 자비심 넘치는 부처님을 바라보며 연거푸 절을 올렸다. 절을 하는 동안 그는 속으로 이런 기도를 올렸다.
‘부디, 이 상황이 해피엔딩으로 끝나길, 그래서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게 살펴주소서!’
겨레가 법당에서 나오자 일행은 대웅전 바로 앞에 있는 만경루에 올랐다. 만경루는 스님들이 수행하던 공간이었는데, 지금은 템플스테이나 문화행사를 하는 공간으로 바뀌었다. 몇 년 전에는 정약전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의 한 장면을 촬영하기도 했다. 셋은 만경루 창밖으로 보이는 긴 의자에 나란히 앉았다. 분홍색 꽃이 핀 배롱나무가 운무가 어우러져 진풍경을 연출했다. 조 부장은 헛기침을 한번 한 뒤 말을 뱉었다.
“경치가 장관이네요. 오래된 사찰에서 느껴지는 향내와 아늑한 분위기도 좋고요.”
“절 주변에 심어진 동백도 아름답고, 차밭도 좋습니다. 천담사라는 이름은 이 절과 관련한 전설이 천 개나 된다는 데서 지어졌고, 만경루는 만 가지 경치를 볼 수 있다고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니, 그야말로 천년고찰이라고 할 수 있죠.”
마 교수는 천담사와 만경루 유래를 간단히 설명했다. 두 번째 인터뷰는 만경루에서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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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마 교수가 인터뷰를 통해 설명한 것으로, 되도록 큰따옴표를 생략한다. 성과 다르게 월은 장천에서 도자기 굽기에 성공했다. 지금의 고려청자처럼 색이 곱고 문양이 고르진 못했지만, 부친인 천왕이 물려준 그림과 엇비슷했다. 불 조절에도 성공해 금이 가지도 않았다. 당나라에서 전해진 유약이 그리 좋지 않아 색감은 나오지 않았지만, 모양은 제법 그럴싸했다. 월이 만든 도자기는 지금 말로 ‘대박’이 났다. 특히 관가에서 월이 만든 자기를 진상품으로 올리면서 입소문이 났다. 그 덕에 비싼 값에 팔리며 호황을 이뤘다. 그 덕에 월은 갑부가 됐다. 그리고 월은 봉이 딸인 민(閔)가 언년과 결혼해 가정을 꾸렸다. 하지만 섬나라에서 고생하고 있을 동생을 떠올릴 때마다 가슴 한구석이 답답했다.
언년은 월과 가정을 이룬 이듬해 딸 쌍둥이를 낳았다. 이름은 아름다운 연꽃과 난초를 떠올려 ‘미연’과 ‘미란’이라고 지었다. 월 부부는 왜국에 있는 봉과 성에 대한 그리움을 아이들을 키우며 이겨냈다. 쌍둥이들이 장성해 열일곱이 되었을 때, 월은 그녀들에게 도자기를 빚도록 했다. 산에 가서 장작을 해오는 일부터 시켰다. 무슨 일이든 기본과 기초가 튼튼해야 다음 단계를 넘어갈 수 있고, 모든 과정을 직접 할 줄 알아야 비로소 장인의 길을 걸을 수 있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쌍둥이들은 고분고분 아버지 말을 따랐다. 그들 역시 어릴 적부터 가마터가 놀이터였고, 흙이 놀잇감이었기에. 월과 성이 아버지 천왕의 가마터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것처럼, 그들도 스스럼없이 운명을 받아들였다. 더구나 쌍둥이들은 도자기를 만들어 팔면 돈이 생긴다는 걸 일찌감치 알았다. 예쁜 도자기를 하나라도 더 만들겠다고 아침부터 졸린 눈을 비비고 일어나 제일 먼저 물레 앞에 앉았다. 그런 딸들을 바라보는 월 부부는 신통방통하게 여겼고, 그들이 만든 도자기는 만드는 족족 팔려 나갔다.
월의 가마소에서 높은 품삯을 준다는 소리에 도공과 일꾼들이 앞다퉈 몰려들었다. 하지만 월은 새로운 일꾼을 들이지 않았다. 그것이 자신이 데리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다. 아프고 병들어 일을 쉬거나, 결원이 생겼을 때 한둘씩 충원하는 형태로 가마소를 운영했다. 제 식구만 감싼다며 곱지 않은 시선도 있었지만, 월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월의 가마 안에서는 요염하고 아리따운 자태의 자기뿐만 아니라 튼튼한 사발과 접시, 항아리, 옹기, 장독이 날마다 쏟아져나왔다. 그때마다 월은 소달구지에 가득 실은 기물을 저자와 벼슬아치에게 가져다주고 돈을 받아왔다. 월은 그 돈을 가져다 가마터 확장에 썼다. 인근 땅을 사들였고, 그 땅에 가마를 추가로 지었다. 그렇다 보니 인력 충원도 불가피했는데, 그것에 토를 다는 가마소 일꾼은 아무도 없었다. 월의 가마소에서는 본인이 원치 않는 한 강제로 해고하지 않았고, 해를 거듭할 때마다 품삯을 늘려 사기를 북돋웠기 때문이다. 월의 파격적인 장사수완과 경영방식은 장천을 떠나 주변 지역까지 입소문이 났다. 다른 사업을 해보지 않겠냐고 꼬드기는 치도 더러 있었지만, 월은 단칼에 거절했다. 자신은 나고 자랄 때부터 흙만 만져서 다른 일은 할 줄 모른다며 물렸다. 언년은 남편의 완고한 고집과 성격이 썩 맘에 들지 않았다. 그렇다고 남정네가 하는 일에 감 놔라, 배 놔라 하기도 싫어 그냥 뒀다.
그러다 시련이 닥쳤다. 봉이 세상을 떠났다는 부고가 전해지면서 월 부부는 한동안 슬픔에 빠져 지냈다. 왜국에 가보고 싶었지만, 당시 후백제는 내부 왕권 다툼에 시끄러웠다. 그 여파로 배가 뜨지 못했다. 탈출하는 백성이 늘어나면서 해안 경비가 삼엄해진 까닭이다. 관가에서는 갈수록 월에게 더 저렴한 것, 더 튼튼한 것, 더 아름다운 것을 원했다. 거래처가 하나둘 끊겼고, 월의 고민은 깊어졌다. 부부 사이에 다툼이 잦아졌고, 그때마다 월은 술집을 찾아갔다. 가서 기생을 끼고 술을 마셨다. 돈을 탕진하거나, 기녀들에게 행패를 부리거나 한 건 아니었지만, 일과가 여느 때와 사뭇 달라졌다.
월의 가마소는 한순간에 분위기가 축 가라앉았다. 하루는 쌍둥이들이 월의 방을 홱 젖히고 들어왔다. 그러고는 ‘어찌 일으킨 집안인데, 망조가 들게 하느냐’며 다짜고짜 따졌다. 월은 술이 덜 깨서인지, 갑작스러운 딸들의 행동에 놀라서인지 정신이 어렴풋했다. 눈앞에 있는 아이가 미연인지, 미란인지 분간하기도 어려웠다. 워낙 똑같이 생겼는지라 잠시 누군지 알아보지 못했는데, 실제 그의 앞에서는 미연과 미란 둘이 같이 앉아있었다. 월은 딸들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러고 보니 요즘 들어 가마소 일도 등한시한 게 사실이다. 장부도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다. 월은 무슨 불길함을 느꼈는지, 밖에 나와 찬물에 세수하고,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곤 가마소로 올라갔다. 멀리 새로 만든 가마터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건 가마를 구울 때 나는 연기가 아니었다. 월은 불이야! 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뛰어갔다. 그가 가마터에 도착했을 때 불길은 이미 걷잡을 수 없이 번졌고, 일꾼들은 저마다 물동이를 나르며 불을 끄려고 무진 애를 썼다.
성난 불길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자칫 산바람까지 불어 기존 가마소까지 옮겨붙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언년은 어쩔 줄 몰라 하며 아이고, 아이고 소리를 내다 졸도했다. 월은 정신없이 물을 퍼다 날랐다. 불은 한 시진(時辰)이 지나서야 꺼졌다. 모든 것을 태웠다. 불을 끄던 인부들의 얼굴도, 월의 속도 하나같이 새카매졌다. 월은 잿더미가 된 가마터 땅바닥에 힘없이 주저앉았다. 한숨 대신 나온 건 눈가를 타고 흐른 눈물뿐이었다. 미연과 미란이 월의 옆에 다가와 검게 그을린 월의 손과 얼굴을 어루만졌다.
“아버지, 저희가 예전처럼 돌려놓을게요. 괜찮아요. 아무 걱정하지 마세요.” 월은 쌍둥이를 끌어안고 엉엉 울었다. 울면서 미안하구나, 미안하다만 되풀이했다. 불에 탄 새 가마터는 그날부터 가동을 멈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