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달과 별

3. 비밀의 열쇠

by 류재민

만경루에서 인터뷰를 마친 마 교수 일행은 점심을 먹으러 갔다. 절 주변에는 예나 지금이나 사찰 음식점이 자리를 틀었는데, 천담사도 비슷했다. 마 교수는 일행을 ‘청자골’이라고 적힌 식당으로 안내했다. 닭과 오리백숙, 버섯전골이 대표 메뉴였다. 마 교수는 식당 주인과 잘 아는 사이인 듯했다. 식당 여주인 역시 마 교수에게 반갑게 인사한 뒤 기다렸다는 듯 버섯이 잔뜩 들어간 오리 전골을 내왔다.

“서울에서 귀한 손님들이 오셨는데, 미역국만 계속 드시게 할 순 없죠.”

마 교수는 겨레와 조 부장을 번갈아 쳐다보며 말했다.

“아유, 이렇게까지 안 하셔도 되는데…….”

“괜히 저희가 교수님께 부담만 드리는 것 같아서 송구합니다.”

겨레와 조 부장의 당혹한 표정에 마 교수는 두 손을 흔들며 괜찮다고 했다.

“두 분, 그런데 여기가 어딘지 아십니까?”

“여기요? 백숙집 아닌가요?”

“그렇죠. 백숙집이죠. 그런데 그냥 백숙집이 아닙니다.”

마 교수가 웃으면서 하는 소리에 겨레와 조 부장은 서로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했다.

“몇 년 전, 댐 수몰지구 유적발굴 조사문화유적 발굴을 마치고, 반원들과 회식하러 처음 왔던 곳이죠.”

“그럼 혹시 차 행정관이랑 같이 왔던?”

“맞습니다. 여기가 바로 그 식당입니다.”

조 부장은 차유민과 했던 술자리의 기억을 더듬었다. 그중에도 식당 곳간채에서 마 교수와 같이 봤다던 그림 이야기를 떠올렸다.

“교수님, 차 행정관 말로는 두 분이 이 식당 어딘가에서 도자기 그림을 두 점 발견했다고 하던데요. 그리고 그중 하나가 이번에 대통령실에서 유령처럼 사라졌다는 연화 무늬 매병이고요.”

“지금은 곳간채가 없습니다. 당시 식당 사장님은 암 투병 끝에 얼마 전 돌아가셨고요. 지금 사장님은 그분 여동생입니다.”

“아…….”

겨레와 조 부장은 동시에 대답했다,

“그럼, 작고한 사장님과 그림은 어떤 관계였나요?”

“그분은 바로, 봉의 후손이었습니다.”

겨레와 조 부장은 깜짝 놀라 눈이 동그래졌다.

“아니, 그렇다면 그 그림은 조상대에서 물려 내려온 그림이었겠네요?”

“그렇습니다. 봉의 딸이 조 월의 부인이었으니, 제 직계 조상이기도 하죠.”

“세상에 이런 일이…….”

겨레의 입이 떡 벌어졌다.

“이런 걸 두고 인연이라고 하나 봅니다. 회식 다음 날 차 행정관과 여기를 다시 왔고, 사장님과 만나 저희 집안 내력과 역사를 설명했죠. 사장님께서도 두 분처럼 처음에는 깜짝 놀라더군요. 그리곤 곳간채에 그림을 붙여놓고 정화수를 떠 놓은 이유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건 바로 연화 무늬 매병이 도난당한 사실을 알고 부디 안전한 곳에 가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고 합니다. 간절한 기도에도 불구하고, 연화 무늬 매병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죠.”

“그게 바로, 대통령실에서 사라진 청자라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대통령실 수장고에 들어오기 전부터 청자는 이곳 사장님의 손을 떠났습니다. 아마도 암시장에서 거래가 되다가 대통령실까지 흘러 들어간 것으로 추측할 따름입니다.”

“그런 국보급 문화재를 훔쳐다 암시장에 내다 팔다니…….”

겨레는 화가 치밀어 하마터면 욕이 나올 뻔했다. 조 부장이 침착한 어조로 마 교수에게 다시 물었다.

“그럼 그 연화 무늬를 새긴 청자는 누가 만들었고, 도난당하기 전까지 누가 어디에 보관했는지 아십니까?”

마 교수는 백숙과 함께 나온 도토리묵 한 점을 나무젓가락으로 집어 물었다. 아무래도 오후부터 저녁까지 이곳에서 꽤 긴 시간을 보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주인에게 막걸리를 가져다 달라고 했다.

“이곳은 산자락이지만, 날이 금방 저물진 않습니다. 시간이 오래 걸릴 듯하니, 시원하게 막걸리 한잔하면서 마저 이야기를 들려 드리죠.”

겨레는 가방에서 주섬주섬 노트북과 핸드폰 거치대를 꺼냈다. 술 취하기 전에 받아적든, 영상 녹화를 해둬야겠다는 생각에.

이윽고 주인이 내온 막걸리에 세 사람은 한 잔씩 따라 붓고 건배했다. 뽀얗고 맑은 술에서 풍기는 곡주 냄새가 백숙과 도토리묵 무침과 어울려 운치를 더했다.



잔을 비운 마 교수는 고기 한 점을 씹으면서 바람이 불어오는 산허리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의 눈은 아주 먼 역사의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는 중이었다.

“연화 무늬 청자를 처음 만든 건, 월의 딸 미란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월의 손자이며, 마천왕의 증손자뻘이죠.”

“미란의 아들이라면, 외가 쪽이겠군요.”

“그런데 당시 족보가 상당히 복잡합니다. 미란은 자기의 아들 성(姓)을 마 씨로 했으니까요.”

“네? 그게 어떻게 가능하죠?”

“미란은 시집을 가지 않았습니다. 지금 말로 따지면 양자를 들인 거죠. 집안을 일으키기 위해 자신의 모든 인생을 도자기에 걸었던 겁니다. 그 덕에 마씨 집안의 손은 끊기지 않았고, 그 아들이 기술을 배우고 익혀 후세에 청자가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겁니다.”

“실로 놀랍군요.”

조 부장은 미란의 쌍둥이 언니 미연의 행방이 궁금했다.

“그럼, 미연은 어떻게 됐나요? 그분도 같이 도자기를 만들었나요?”

“아뇨. 미연은 고관대작 집에 시집을 갔습니다. 월의 야심작인 새 가마터가 화재로 잿더미가 된 이후 그의 집안 상황은 급속히 악화했습니다. 가마터를 확장하는데 들어갔던 땅과 건축비, 그리고 인력 품값이 빚더미로 돌아왔으니까요. 그동안 모아둔 재산으로 어떻게든 버텨보려 했지만,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웠습니다. 자칫하면 기존의 가마터까지 넘어갈 지경이었으니까요.”

“그럼 미연은 집안을 살리려고……?”

“거의 그런 셈이죠. 그렇지 않으면 집안이 풍비박산 나고, 식구들이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웠으니까요. 마침 대가 집 종손이 자손이 없어 속을 끓이던 참에, 빚을 모두 탕감해준다는 말에 시집을 가겠다고 나선 거죠.”

“말이 시집이지, 씨받이로 팔려 간 거나 다름없네요”

조 부장은 혀를 차며 술잔을 들이켰다.

“월은 딸의 결심을 듣고 며칠을 끙끙 앓아누웠습니다. 얼마나 비통하고 딸에게 죄스러웠겠습니까. 하지만 미연은 오히려 부모에게 마음 단단히 먹으라고 일렀고, 미란에게도 무슨 일이 있어도 가마터는 온전히 지켜내라고 신신당부했다고 합니다.”

겨레는 미란이 결혼하지 않고 양자를 들였다는 대목에 의문이 들었다.

“그럼 시집간 미연이 낳은 아들이 미란의 양자가 된 건가요?”

“자손을 이어주러 간 집안에서 낳은 아들을 어떻게 양자로 보낼 수 있겠습니까?”

“하긴, 그렇겠군요.”

“미란의 양자는 다름 아닌 겐조 아들이랍니다.”

“네? 뭐라고요?”

겨레와 조 부장은 기겁했다. 소설을 써도 이렇게는 쓰기 어려울 법했다. 섬나라에 살던 겐조가, 또 그의 아들이 어떻게 장천으로 와 양자가 되었다는 말인가. 두 기자는 마 교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그의 집안이 참으로 묘하고 신비로운 역사를 대물림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자, 이제부터는 어떻게 왜국에 있던 겐조가 장천을 왔고, 그의 아들이 미란의 양아들, 그러니까 마씨 집안과 인연이 맺어졌는지를 설명하고자 한다.



겐조는 어머니 성과 자신의 세 아들, 그리고 아내를 데리고 항구에서 배를 기다렸다. 어머니 고향인 장천으로 가는 길이었다. 외사촌 격인 미연이 혼례를 치르는 걸 보러 길을 나선 참이다. 성은 근 이십 년 만에 찾는 장천행에 사뭇 들떴다. 얼굴 한 번 못 본 새색시는 얼마나 예쁠까 머릿속으로 상상하면서. 당시 왜국 해안도 경비가 삼엄했지만, 애경사를 다녀오기 위해 배를 타려는 이들까지 단속하진 않았다.

문제는 장천만에서 이들을 받아줄지가 관건이었다. 하지만 미연의 시집이 워낙 지체 높은 집안이라 큰 문제는 없을 거라는 게 월의 전언이었다. 항구를 떠난 배는 거친 물살을 헤치며 힘차게 나아갔다. 처음 타보는 배가 신기한 듯 겐조의 세 아들은 파도에 부서지는 물살을 신기하게 바라보며 종알댔다. 하늘에는 솜사탕 같은 뭉게구름이 두둥실 떠 어린 삼 형제의 첫 해외 나들이를 환영했다. 겐조의 세 아들인 히로키, 신야, 토모야는 마냥 들떠 갑판을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성은 손주들이 행여 미끄러져 바다에 빠질까 염려했고, 겐조의 아내 역시 아이들을 말리고 쫓아다니느라 부산했다. 배가 출발한 지 몇 시간이 지났을 때, 성은 아버지 천왕을 떠올렸다. 넘실대는 파도와 푸른 바닷물결에 아버지 얼굴이 희미하게 어른거렸다.

“아, 아버지……한없이 그리운 분, 불쌍한 분……저 깊은 물 속이 얼마나 차가웠을까, 얼마나 숨이 막히고, 고통스러웠을까. 가족들 얼굴이 얼마나 떠올랐을까…….”

성은 넋이 나간 듯 바다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겐조는 조용히 옆으로 다가와 앉았다.

“어머니, 무슨 생각을 그리하세요?”

“응. 늬 외할아버지.”

“외할아버지라면……파도에 배가 뒤집혀 돌아가셨다는?”

“그래. 여기쯤인가 어디쯤인가, 할아버지의 외로운 넋이 떠돌겠구나.”

“어머니. 할아버지는 좋은 곳으로 가셨을 거예요. 바다가 아니라 저 파란 하늘 위에서 지금 어머니와 저를 지켜보고 계실 거예요. 외삼촌 댁 식구들도 다시 일어서고, 저희 식구들도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켜주실 거니까, 아무 걱정하지 마세요.”

아들의 말이 위안이 됐는지, 성의 미간이 잔잔한 바닷물결처럼 펴졌다.

구름이 달을 가렸다. 밤바람이 바다 위를 쓸듯이 지나갔다. 북서풍을 탄 배는 나는 듯이 가볍게 바다를 가로질렀다. 그리고 이틀 만에 목적지인 장천만에 도착했다. 장천만에 도착한 건 노을이 빨갛게 물든 저녁나절이었다. 월의 말대로 배에서 내린 일행을 제지하는 관군은 없었다. 배에서 무사히 내린 5명의 겐조 가족은 부둣가로 걸어갔다. 그곳에는 월이 보낸 우마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소달구지를 끌고 온 일꾼은 월과 닮은 얼굴의 눈매를 보고 대번에 그가 성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일꾼은 성에게 먼 길 오느라 고생했다며 꾸벅 허리 숙여 인사했다. 그런 다음 아이들부터 차례로 달구지에 앉혔고, 모두 탑승한 걸 확인한 뒤 출발했다. 길이 평탄치 않은 탓에 달구지는 자꾸 터덜거렸다. 그래도 탑승자들에게는 아무런 불편도 아니었다. 그리운 장천 땅을 밟은 성은 달구지에 앉아 가는 내내 주변 경치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오라버니와 산자락을 오르내리며 산짐승을 잡고, 나물과 약초를 캐던 시절, 이사 온 가마터에서 신나게 뛰놀던 시절이 하나둘 떠올랐다. 부친의 부고를 듣고도 장례조차 치르러 오지 못했던, 애증의 땅 장천에, 그녀가 돌아왔다. 아들 며느리, 손자들을 대동하고.

일행을 실은 달구지가 마을 어귀에 다다랐을 때, 고래 등 같은 집들이 눈에 들어왔다. 곧이어 대궐 같은 집에 당도하자 성의 입이 떡 벌어졌다. 맥과 심장 뛰는 속도가 빨라졌다.

“여기가 정녕 내 오라버니가 사는 집이란 말이요?”

성은 달구지에서 내리지도 못한 채 소를 끌고 온 일꾼에게 몇 번을 물었다.

“아이고, 참말로 그만 좀 물어보소. 여기가 바로 조 월 행수님 자택이 맞습니다.”

목이 빠질세라 담장 너머를 보고 있던 월은 밖에서 소 울음소리를 듣는 순간 심장이 멎는 듯했다. 신발을 신는 둥 마는 둥 내처 대문으로 내달렸다. 문이 열리고, 드디어 성과 재회했다. 두 사람의 눈빛이 서로 마주친 순간,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참았던 눈물이 쏟아졌다.

“오라버니, 저 왔소. 그간 무탈하셨소?”

“오냐, 먼 길 오느라 고생 많았네. 내가 여태껏 기침도 한 번 않고 살았다. 너를 만나면 건강한 모습을 봬 주려고. 요 며칠 새벽바람으로 동네 어귀를 몇 바퀴 돌았다. 네가 오는 길 풍랑 많이 치지 말라고 천담사 부처님 전에 시주도 하고, 절도 하고, 기도도 했다.”

“그 절 부처님 염력이 참 신통한 건지, 오라버니 기도가 방통한 건지, 오는 내내 물결이 어찌나 잠잠한지, 뱃멀미 한번 없이 편하게 왔소.”

이십여 년 만에 만난 오누이는 그렇게 눈물 바람으로 인사를 나눴다. 그사이 겐조의 아이들이 대문 안을 기웃거리며 서성거렸다.

“오라버니, 우리 아들 내외랑 손자들이 같이 왔어요.”

“오오, 그렇구나. 어서 오려무나.”

“외삼촌, 나카무라 겐조라고 합니다.”

겐조는 어릴 적부터 성에게 백제어를 배워 의사소통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아버지 칸쿠로를 쏙 뺐구나. 이래서 씨도둑은 못 한다고 했는가.”

월은 나카무라 가마소에 들렀을 때 청년 칸쿠로를 잠깐 본 적이 있다. 가마터 주변에 앉아 조용히 책을 보던 모습이 눈에 선했다. 그 청년이 동생과 혼인했고, 또 그 아들이 커서 세 아이의 아버지가 돼 자신 앞에 서 있었다.

‘그렇고 보니 세월이 참 모질게도 흘렀구나!’

월은 일행을 데리고 안채로 들어갔다. 안채 부엌에서 음식을 준비하던 언년이, 다시 말해 봉의 딸은 성을 보자마자 버선발로 뛰쳐나왔다.

“아이고, 이게 누구요. 성님 아니요?”

언년과 성은 부둥켜안고 또다시 눈물 바람을 했다.

“봉이 아재도 같이 오셨으면 참말로 좋았을 건디…….”

성이 죽은 아비의 말을 꺼내자 언년은 에고, 에고, 소리를 내며 곡을 했다.

“말년에 고생을 좀 하긴 했지만, 편히 가셨네. 내가 잘 모셨으니, 좋은 데로 가셨을 걸세.”

성은 언년을 껴안고 등을 가볍게 토닥거렸다.

언년과 전을 부치고 있던 미란이 부엌에서 쭈뼛거리며 나왔다. 말로만 듣던 왜국의 친척이 낯설게 다가왔다.

“미란아, 너도 이리 와서 인사드려라. 고모님이시다. 그리고 여기는 고종사촌인 겐조와 아이들이란다.”

“어서 오세요. 오랜 뱃길에 고단하실 텐데, 그렇게 서 있지 말고, 안으로 드시지요.”

미란은 어느새 겐조의 아내 곁으로 가 어린 삼 형제 손을 잡고 별채로 이끌었다.

“그래. 먼 길 오느라 힘들었을 생각을 내 미처 못했구나. 별채로 가서 좀 씻고, 새 옷으로 갈아입거라. 장천에서 제일 좋은 천으로 옷을 지었단다. 준비를 마치는 대로 저녁을 먹자꾸나.”

월은 신이 나서 직접 동생 일행을 별채로 안내했다. 별채는 안채 뒤쪽에 있었는데 방이 네 칸에 정자와 우물을 갖추고 있었다. 성과 겐조 식구는 별채에 있는 방 두 곳에 나눠 들어갔다. 방은 널찍해서 한 방에 열 명이 자도 남을 정도였다. 겐조의 아내는 서둘러 아이들을 우물 옆으로 데려다 씻기고 옷을 갈아입혔다. 왜국에서 올 때 가져온 옷이 있긴 했지만, 월이 손수 마련한 새 옷을 입히기로 했다. 성과 겐조 역시 새 옷으로 갈아입었는데, 모양새가 대가 집 규수와 대감마님처럼 풍채가 있어 보였다.

“아주 잘 어울리는구나. 꼭 맞췄어.”

월은 가족들을 일일이 바라보면서 흡족한 듯 말했다.

“이렇게 귀한 옷을 준비해주시다니……고마워요, 오라버니.”

“고맙다니. 당치도 않다. 오라비가 돼서 이 정도도 못 할까. 아무 소리 말거라.”

남매가 옷을 품평하는 동안 언년과 미란은 저녁을 내왔다. 상은 푸짐했다. 씨암탉을 잡아 만든 백숙, 장천만에서 잡아다 뜬 전어회, 굴비, 갈비찜, 버섯과 호박, 명태살로 부친 모둠전, 도토리묵과 채소 무침, 수정과에 식혜까지. 갓 지은 쌀밥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오르며 구수한 냄새를 풍겼다. 산해진미가 따로 없었다.

“아니, 오늘 무슨 잔칫날 같네요. 상다리가 휘어지겠어요.”

성은 수북한 밥과 반찬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암만, 잔칫날이고 말고. 내 딸이 시집을 가고, 내 동생과 조카 식구들이 오랜만에 왔으니 겹경사가 아니겠느냐. 하하하.”

월은 어찌나 기분이 좋은지 웃음소리가 담장 밖까지 들렸다. 식구들이 웃고 떠드는 소리에 밤도 깊어갔다. 여독 때문인지 아이들은 겐조의 아내 무릎에서 잠이 들었다. 그러나 막내 토모야는 눈을 똘망똘망 뜨고 어른들의 대화를 지켜봤다.

“토모야, 형님들은 잠들었는데 너는 졸리지 않느냐?”

성이 물었다.

“네, 할머니. 저는 하나도 졸리지 않아요. 그냥 너무 즐거워요.”

말은 졸리지 않다면서 토모야는 즐겁다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하품을 길게 했다. 올해 다섯 살인 토모야는 손 위 형들보다 체구는 작았지만, 몸이 단단했다. 근성도 남달라 누구에게도 지는 걸 싫어했다. 그래서 동네 꼬마들과 모여 놀이라도 할라치면 어떻게든 이겨야 직성이 풀렸다. 이길 때까지 놀이를 끝내는 법이 없었다. 끝내 지기라도 하는 날에는 씩씩거리며 잠도 제대로 못 자는 아이였다.

“토모야는 어찌나 힘이 좋고, 날쌘지 동네에서 소년 장사로 소문이 자자해요.”

겐조가 막내아들 자랑을 늘어놨다. 겐조의 말에 월은 “얼굴 생김새나 눈매가 예사롭지 않구나. 나중에 정말 큰 일을 할 상”이라며 분위기를 띄웠다.

어른들의 칭찬에 기분이 한껏 좋아진 토모야는 자리에서 일어나 왜국어로 노래를 불렀다. 엉덩이를 양쪽으로 흔들며 춤도 췄다. 방에 모인 사람들은 토모야 재롱에 손뼉을 치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노래와 춤추기에 지쳤는지 토모야는 얼마 못 가 곯아떨어졌다. 이제부터는 온전히 어른들만의 시간이었다. 언년이 내온 술상을 앞에 놓고 월이 성과 겐조에게 근심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다들 알다시피 나는 딸만 쌍둥이야. 아들이 없지. 더구나 미연이는 내일 혼례를 올리면 집을 떠나 살아야 해.”

그늘진 오라비 얼굴을 쳐다보던 성이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미란이가 내 뒤를 이어 도자기를 만들겠다곤 하지만, 아비 된 자로서 맘이 편치 못하구나. 천추의 죄를 짓는 것 같기도 하고…….”

“대를 이을 자식이 없다는 게 마음에 걸린다는 말씀이시군요.”

겐조가 월을 안타깝게 바라보며 물었다.

“그래. 그래서 저 어린아이들을 보니 이런저런 생각이 들더구나. 저 녀석들이 내 아들이었으면, 친손자였으면 어땠을까…….”

“그 무슨 당치도 않는……모처럼 술을 드시더니 벌써 취했나, 허튼소리를 할 거면 이불이나 펴고 주무시오.”

옆에서 푸념을 듣고 있던 언년이 월의 손을 탁, 치며 쏘아붙였다.

월 부부를 지켜보던 성과 겐조의 동공이 흔들렸다. 월의 진심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건 바로, 평생을 가마터에서 살아오면서 도자기를 빚어온 장인(匠人)의 소명 의식이었으리라.

“어이쿠. 내가 정말 쓸데없는 소리를 해서 술맛을 떨어뜨렸구나. 이녁 말대로 내가 취했다 보구먼.”

늦은 밤까지 이어졌던 술자리는 그렇게 끝이 났다. 언년이 술상을 물렸고, 겐조의 아내가 따라 나가 부엌에서 뒤치다꺼리를 도왔다. 성과 겐조, 미란이 아이들을 하나씩 업고 별채로 향했다. 성은 삼 형제를 뉘어 놓고 나가려던 미란의 소매를 붙잡았다.

“미란아!”

“네. 고모님.”

“너는 정녕 시집을 가지 않고, 평생을 도공으로 살기로 결심한 거냐?”

성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자애로웠다. 하지만 질문 속에는 미란의 의중을 재차 확인하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언니가 시집을 갔는데, 저까지 집을 떠나면 아버지랑 가마터는 어떻게 해요. 그리고 저는 사내 몸 만지는 것보다 흙 만지는 게 더 좋아요. 호호.”

“요 녀석. 이제 그런 농도 아무렇지도 않게 할 정도로 컸구나. 어른이 됐다고.”

“아유, 고모님도 참.”

미란이 부끄럽다는 듯이 얼굴을 붉혔다.

“미란아.” 성이 미란을 가만히 불렀다.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저기, 너 말이야…….”

“네, 괜찮으니 말씀하셔요.”

“토모야를 양자로 데려다 키울 수 있겠느냐?”

“네? 고모님, 지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미란은 성의 갑작스러운 제안에 눈이 커다래졌다. 머리가 쭈뼛 서고, 등골이 오싹해졌다. 등에선 식은땀이 주르륵 흘렀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잘 듣거라. 네가 가업을 물려받더라도, 네 후손이 없으면 어차피 가마소는 너에게서 끝날 수밖에 없는 노릇 아니냐.”

“그, 그건, 그렇지만…….”

“아까 네 아비가 한 말도 다 그런 걱정 때문 아니겠느냐. 손이 끊기면 우리 집안도 끊기고, 대대로 물려 내려온 가마터도 끝나는 것이니.”

미란은 길게 심호흡했다. 정신을 가다듬어야 했다. 신중하게 판단해야 했다. 그런 다음 대답해야 했다.

“고모님, 저도 그런 사정을 모르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토모야를 제 양자로 들이려면 맨 먼저 토모야 부모가 허락해야 해요. 그들이 승낙하지 않으면 아무리 제가 토모야를 키우고 싶다고 해도 불가능할…….”

미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성이 대꾸했다.

“그건 걱정 말거라. 겐조와 며느리는 이미 알고 있다. 결정도 했고.”

“네? 고모님, 그건 또 무슨…….”

성은 장천으로 오기 며칠 전 겐조 부부를 조용히 불렀다. 그리고 세 아이 중 토모야를 미란의 양자로 보내자고 제안했다. 겐조 부부는 당혹스러웠지만, 성의 말뜻에 공감했다. 당시 왜국에서는 양자를 들이는 풍속이 만연했다.

자초지종을 전해 들은 미란은 말없이 방에서 나와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잠이 오지 않았다. 이리 뒤척, 저리 뒤척이며 밤을 꼬박 새웠다.

다음 날 아침, 미란은 결단을 내린 듯 상을 물린 뒤 양쪽 식구들을 모아놓고 토모야를 양자로 삼겠노라 선언했다. 어려운 결정을 내린 미란에게 모두가 잘했다고 격려했다. 성은 미란에게서 자신의 젊은 시절을 보는 듯했다. 아버지인 천왕이 죽은 뒤 나카무라 가마소 2호점을 맡겠다고 호언장담했던 지난날이 떠올랐다.

“미란이는 잘 할 수 있을 게야. 토모야를 훌륭한 도공으로 키울 수 있을 게야. 암, 그렇고말고.”

성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는데, 옆에 있던 미란은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토모야는 어른들이 어떤 결정을 내렸는지 영문도 몰랐다. 그러나 웬지 새로운 곳이 마음에 들어 떠나기 싫었다. 그러다 갑자기 겐조에게 “아버지, 저는 왜로 돌아가기 싫어요. 여기서 살고 싶어요”라고 말해 모두를 놀라게 했다.

토모야의 돌발 발언에 어른들은 수월하게 그를 미란의 양자로 들일 수 있었다. 아침 설거지를 마친 월과 성의 가족은 미연의 혼례식을 보러 갈 채비를 했다. 어른들은 혼례 예복을 갖춰 입었고, 아이들은 색동저고리를 입었다. 미연은 대감집으로 살림을 옮긴 상태였다. 미연의 시댁은 월의 이웃 마을이었는데, 거리는 멀지 않았다. 식장에 도착한 일행은 미연의 얼굴부터 살폈다. 그녀는 의외로 행복해 보였다. 쪽 머리에 긴 비녀를 꽂았고, 얼굴에는 하얀색 분을 칠했다. 파란색과 빨간색 염료로 짠 옷을 입은 미연은 하늘에서 금방 내려온 선녀처럼 예뻤다.

신랑은 얼굴이 워낙 동안이라 신부보다 열 살이나 많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사모관대를 쓴 신랑과 족두리를 쓴 신부는 그렇게 백년가약을 맺었고, 월과 성 가족은 부디 금실 좋은 부부로 살기를 소망했다. 혼례식은 약식으로 치러져 금방 끝났다. 이어진 피로연은 대감집 마당에서 성대하게 열렸다. 평소에는 보기도, 먹기도 힘든 음식이 끊임없이 나왔다. 하객들은 왁자지껄 떠들며 피로연을 즐겼다. 피로연은 저녁나절에야 끝이 났다. 월 부부는 사돈과 마지막 인사를 나눈 뒤 성의 가족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월 부부는 대사를 치르느라 녹초가 됐다. 집에 돌아왔을 때, 월은 아무런 말 없이 방으로 들어가 자리에 누웠다. 미연이에게 더없이 미안한 동시에 행복하게 살기를 바랐지만, 그의 눈에선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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