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달과 별

4. 풀리는 비밀들

by 류재민

다음 날 아침, 성은 선친 산소를 찾기로 했다. 마천왕이 파도에 실려 장천만에 쓸려 왔을 때, 월은 부친의 시신을 수습해 만수산 양지바른 곳에 묻었다. 부친의 황망한 죽음에 충격을 받은 부인 신 씨는 실성했다. 장맛비가 세차가 내리던 날, 정처 없이 산골짝을 헤매며 남편 이름을 수도 없이 불렀다. 그러다 발을 잘못 디뎌 낭떠러지로 떨어져 죽었다. 월은 어머니 시신을 거둬 부친과 합장했다. 1년 새 양친을 허망하게 보낸 월은 한동안 슬픔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그때 곁을 지키고 마음을 다잡아준 이가 지금의 부인 언년이었다.



만수산 묘소를 찾은 성은 장만해 간 음식을 차려놓고, 야트막한 봉분 앞에서 크게 두 번 절했다. 그리운 부모의 얼굴이 어른거렸다. 서늘한 산바람이 땀은 식혀줬지만, 뜨거운 눈물까지 식히진 못했다. 성은 두 번째 절을 마치고는 한참을 일어서지 않았다. 그녀는 땅바닥에 엎드린 채 흐느꼈다.

“아버지, 어머니. 저 왔어요. 성이 왔어요.”

눈물범벅이 된 성을 월이 다가와 어깨를 감싸며 달랬다.

“두 분 다 얼마나 아팠을까. 얼마나 억울했을까……아이고 아버지, 어머니! 원통하고 애통해서 어쩌나.”

성은 목놓아 통곡했고, 동생의 곡소리에 월도 덩달아 눈물이 왈칵 솟았다.

“그만 울거라. 좋은 곳으로 가셨을 거다. 내가 천담사 주지 스님께 공양미 오백 석을 주고 기도를 올려 달라고 부탁했으니……지금쯤 저승에서 두 분이 다시 만나 그간 못 나눈 정 나누면서 알콩달콩 살게야. 지금도 우리 성이 왔구나, 하며 환히 웃으며 보고 계실 걸?”

오누이는 양친 무덤에 난 잡초를 뽑고, 가져간 술을 부으며 양친의 극락왕생을 축원했다.

산소를 다녀온 성은 왜로 돌아갈 채비를 했다. 겐조와 며느리에게 아이들과 떠날 준비를 하라고 일렀다. 월은 며칠 더 묵어가라고 했지만, 성은 한사코 거절했다.

“가야 합니다. 저도, 겐조도 가마터를 오래 비웠어요.”

가마소를 돌봐야 한다는 말에 월도 더는 동생을 붙잡을 수 없었다.

장천으로 올 때 다섯 식구였던 성 일행은 넷이 돌아갔다. 남은 토모야는 미란의 아들로 입적했고, 이름은 ‘기작(器作)’으로 썼다. 기작은 ‘기물을 만든다’라는 의미로 월이 손수 지었다. 토모야는 미란을 “어머니”라고 부르며 새로운 환경에 빠르게 적응했다. 미란은 기작을 친자식처럼 키웠고, 기작 역시 미란을 친어미처럼 따랐다. 그렇게 또 해와 달이 뜨고 별이 지며 1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그사이 후고구려의 왕건이 삼국을 통일했다. 그는 국호를 ‘고려’라고 지었다.



천담사에서 돌아온 겨레와 조 부장은 마 교수 별장에서 인터뷰를 이어가기로 했다. 점심을 두둑하게 먹은 터라 저녁은 건너뛰어도 될 듯했다. 마 교수도 흔쾌히 동의했다.

이번 인터뷰는 조 부장이 진행했다.

“그럼 청자는 고려시대 토모야, 아니 마기작 시대에 만들어졌겠군요.”

“그렇죠. 청년이 된 기작은 도자 기술이 발달한 송나라를 자주 왕래했습니다. 당시 무역이 발달했던 벽란도에서 송나라 도자기를 보고 그 나라 기술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던 걸로 짐작합니다.”

“그럼 연화 무늬 매병은 마기작이 만든 건가요?”

“확실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아요. 다음 대, 아니면 그 다음다음 대에서 만들었을 수도 있습니다. 다만, 미란이 시집간 쌍둥이 언니 미연을 늘 염려했다는 기록은 있어요. 그런 점에서 볼 때, 미란이 언니 이름 중 ‘연(蓮)’을 딴 연꽃 그림을 그렸고, 그걸 바탕으로 아들인 기작이 만든 게 아닐까 짐작할 따름입니다.”

“그렇군요. 고려가 청자로 유명한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인데, 교수님 말씀을 듣고 보니 마씨 일가가 고려청자의 선구자 역할을 한 셈이군요.”

“저희 집안 자랑을 제 입으로 하긴 쑥스럽지만……그렇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저희 가문은 청자를 비롯해 도자기 만들기를 가업으로 대물림했죠. 그건 비단 우리 가문의 자부심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전체의 자부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전통문화를 지키고, 계승해야 하는 일도 후손인 우리가 할 의무고 역할이고요.”

“그런데 고려는 일본과는 교류가 없었나요? 청자는 주로 송과 교류한 것 아닌가요?”

“도자나 청자 기술이 주로 송나라에서 보급됐기 때문에 아무래도 일본보다 중국과 가까웠겠죠. 벽란도도 지리적으로 중국과 가까웠으니까요.”

“그럼 왜국으로 돌아간 성의 일가는 어찌 됐습니까?”

“아, 그걸 깜박했군요. 차 한잔 마시고 나서 성과 겐조 일가 얘기를 들려 드리겠습니다.”

별장에는 어느새 어둠이 짙게 내려앉았다. 마 교수 방에 둘러앉은 세 사람은 청자 다기에 담긴 녹차를 마시며 잠깐 휴식을 취했다. 그윽하고 쌉싸름한 향미를 풍기는 녹차 맛이 가을밤의 운치를 자아냈다. 차향이 은은하게 방 안 공기를 타고 흘렀고, 이야기도 계속 흘렀다.



겐조의 장남과 차남인 히로키와 신야도 도자기 빚는 일을 배웠다. 두 아들은 오룡 청자 빚기에 성공했다. 호리병처럼 생긴 청자는 광택이 빛나는 비색 유약을 칠해 투명했다. 병 입구에 기다란 관(管)을 위로 올려 두 마리 용이 솟은 형태로 만들었다. 둥그렇게 퍼진 몸통에도 3개의 용 머리를 장식했다. 누구도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오룡 청자 정병을 만들었다는 소식이 온 나라에 퍼졌다.

이들 형제에게 청자 만드는 법을 배우겠다며 전국에서 이름난 도공들이 구름처럼 몰려왔다. 하지만 그들은 누구에게도 비법을 알려주지 않았다. 오로지 자기 집안과 후손들에게만 기술을 전수했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대대손손 내려오던 오룡 청자 비법은 세간에 알려졌다. 오늘날 일본의 한 문화관에는 오룡 청자를 뛰어넘은 구룡 청자 정병이 중요문화재로 지정돼 소장 중이다. 한데 그것이 현지에서 만들어졌는지, 고려에서 건너갔는지는 정확히 확인되지 않고 있다.



“교수님, 그럼 연화 무늬 매병은 그 긴 시간 동안 어떻게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던 걸까요? 조선시대 왜란과 호란, 일제강점기, 한국전쟁을 거쳐 지금까지……금이 가거나 깨지지도 않고요?”

“숱한 위기가 있었겠죠. 다만, 제 짧은 소견으로는 청장의 운명 아닐까 싶습니다. 부처님 음덕도 있었을 테고.”

“부처님 음덕이요?”

겨레와 조 부장은 마 교수의 말을 통 이해할 수 없었다.

“아까 우리가 다녀온 절이 있지요?”

“만수산 천담사요?”

“네. 그 천담사가 천년고찰이라고 불리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겁니다.”

겨레와 조 부장은 여전히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임진왜란 때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선 도공들을 닥치는 대로 일본으로 끌고 갔습니다. 역사서를 보면 당시 강제로 끌려간 도공이 수만 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도요토미가 워낙 도자기에 애착이 강했기 때문인데요. 도공들뿐만 아니라, 백자를 비롯해 달항아리와 사발, 대접을 쓸어 담다시피 약탈해 갔습니다.”

“이런 나쁜…….”

조 부장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하지만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 도공들은 핍박 대신 오히려 대우를 받았다고 전해집니다. 조선인 특유의 도자 기술을 발휘해서 일본인들을 깜짝 놀라게 했죠. 그 덕에 벼슬을 받은 도공들도 있다고 하니, 어쩌면 조선보다 그곳에서의 삶이 나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 당시 연화 무늬 매병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천담사 부처님 불상 밑에 숨겨놨기 때문이에요.”

“청자를 불상 밑에 숨겼다고요?”

“그렇습니다. 조선이 유교 국가라고 해도, 장천에서는 불교를 숭상하던 고려의 문화가 여전히 남아있었다고 합니다. 특히 마씨 집안은 천담사에 열심히 불공을 올리고, 공양도 꾸준히 했기 때문에, 주지 스님이 용단을 내릴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왜구들이 절을 샅샅이 뒤졌을 텐데, 불상 밑까지는 미처 생각을 못 했나 보네요?”

“그랬을 수도 있고요. 다만, 왜구들이라고 해도 부처님을 함부로 대하면 큰 변을 당한다는 두려움이 있었기 때문에 불상까지는 손대지 못했을 것으로 짐작합니다.”

“아, 그렇군요.”

“그렇게 일제강점기까지 연화 무늬 매병은 천담사 부처님의 보살핌으로 명을 이었죠. 그러다 해방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격동의 근대사를 거치면서도 연화 무늬 매병은 꿋꿋하게 버텼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새벽 기도를 준비하던 상좌스님이 불상 밑을 열어보니 청자가 사라졌다지 뭡니까. 유령처럼.”

“유령처럼……? 누가 훔쳐 갔겠죠.”

“그렇죠. 그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보안이 완벽하게 지켜지지 않았겠죠. 천담사 미륵보살 불상 아래를 뜯어보면 세상에 하나뿐인 고려청자가 있다는 소문이 수십 년 동안 끊임없이 돌았으니까요.”

“도굴꾼들 소행이 클 것 같습니다.”

“저도 그쪽을 의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암시장을 통해 밀매를 거듭하면서 소재 파악이 너무나 힘들더군요. 시간이 갈수록 후손으로서 조상들께 죄인이 된 것 같기도 하고…….”

마 교수는 심적 고통 때문인지, 피곤이 밀려든 탓인지 잔기침이 잦았고 한숨을 내쉬었다.

“교수님, 힘드시면 오늘은 그만 쉬세요. 내일 하셔도 됩니다.”

“음, 그래도 될까요? 아까 식당에서 먹은 술 때문인지 골치가 지끈거리고, 저희 집안의 슬픈 이야기를 자꾸 되살리다 보니 솔직히 마음이 편치 않네요.”

겨레와 조 부장은 마 교수를 배려해 인터뷰를 중단했다. 그리고 방에서 나와 자신들이 묵고 있는 별채로 돌아왔다. 두 사람도 산사에서 보낸 하루가 고단했는지 씻을 생각도 하지 않고 곯아떨어졌다.



다음 날, 마 교수는 일찌감치 일어나 마당을 거닐고 있었다, 가지와 잎만 남은 매화나무 주변을 돌며 하늘을 올려보다 정원 한쪽에 있는 나무 벤치에 앉았다. 부스스한 표정으로 밖으로 나온 겨레의 눈에 마 교수 모습이 들어왔다.

“교수님, 일찍 일어나셨네요?”

겨레의 아침 인사에 마 교수는 빙긋 웃으며 화답했다.

“컨디션은 좀 어때요? 괜찮아요?”

겨레가 마 교수가 앉아있는 벤치 옆에 나란히 앉으며 물었다.

“모처럼 편히 잤더니 한결 가뿐한데요. 솔직히 두 분이 이곳에 오기 전까지 자주 밤잠을 설쳤거든요. 언제부터, 어디까지, 또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막연하고 막막함에…….”

“본의 아니게 죄송합니다. 괜히 저희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게 해서…….”

“아녜요, 아녜요.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닙니다. 어쩌면 이 인터뷰는 제가 더 원했을지도 모릅니다. 저희 집안 이야기를 언젠가를 책이든, 언론에든 해야겠다는 생각이었어요. 마침 대통령실에서 사라진 청자가 저희 집안과 직접적으로 얽힌 문제이기 때문에 지금이 적기라고도 판단했습니다.”

“저희에게 인터뷰 기회를 주시고, 큰 용기를 내주셔서 고맙습니다.”

“대기자님들을 뵙게 돼 제가 감사하고 영광입니다.”

“교수님, 저희가 이곳에 오래 머물긴 어렵습니다. 민폐 끼치는 것도 그렇고, 인터뷰 내용을 정리하고, 촬영분도 점검하고, 기사를 쓰려면 시간이 만만치 않아서요. 내일 오전에 떠날 계획입니다.”

“아, 그래요? 민폐라고 할 건 없지만, 기사를 마감해야 한다니 어쩔 수 없네요. 그럼, 오늘이 마지막 인터뷰가 되겠군요?”

“그렇습니다. 어렵더라도 오늘까지만 부탁드리겠습니다.”

“으음. 알겠습니다. 최대한 압축하고 정리한 얘기를 들려 드리죠.”

벤치에서 일어서려는 마 교수에게 겨레가 지나가는 말로 물었다.

“근데 저 매화나무는 언제부터 저 자리에 있던 거죠?”

“제 부친께서 심은 겁니다. 이 근처는 동백이 유명한데, 하루는 어디서 구했는지 매화나무 묘목을 가져다 심으시더군요. 무슨 연유인지는 모르지만…….”

“도자기랑은 연관성이 없겠죠?”

“글쎄요. 제 아버지는 가마터를 없애고 그 자리에 벽돌공장을 지으셨으니까요. 도자기와 얼마나 연관성이 있는진 모르지만, 지금 여기가 바로 가마터와 벽돌공장이 있던 자리입니다. 그리고 저 매화나무가 심어진 곳은 바로 장작불이 활활 타오르던 가마의 중심부였다고 들었습니다.”

겨레는 별장 터가 그 옛날 마씨 집안이 대대손손 일궈온 가마터가 있던 곳이었다는 사실에 새삼 놀랐다. 그러곤 방으로 돌아가 조 부장에게 마 교수가 들려준 이야기를 전했다. 조 부장 역시 무척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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