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달과 별

6. 들끓는 민심

by 류재민

겨레와 조 부장이 쓴 기사가 나간 뒤 여론이 들끓었다. 국가 최고 권력기관이 국보급 문화재를 관리하고 보호하는 데 있어 무능함이 여실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대통령실은 또다시 혼란에 빠졌다. 부랴부랴 사태 수습에 나서긴 했지만, 뾰족한 대책은 내놓지 못했다. 몇 달 앞으로 다가온 총선은 둘째치고,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한일 정상회담이 ‘발등의 불’이었다. 대통령은 수석비서관 회의를 소집했다. 그리고 청자의 행방과 사후 대책을 물었지만, 명쾌한 해법을 내놓은 참모는 아무도 없었다. 매주 발표하는 대통령과 집권 여당의 지지율은 바닥을 쳤고, 호기를 맞은 야당은 정치 공세에 고삐를 좼다. 급기야 홍보수석과 대변인이 두 언론사를 직접 방문했다. 이들은 사주와 면담을 요청했고, 저간의 사정을 설명했다. 그러고는 ‘국익’을 운운하며 보도 중지를 건의했다. 사주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고, 내부 회의를 열어 대통령실의 건의 수용 여부를 논의했다. 두 언론사 모두 격론이 오갔다. 그러나 양측 언론사 편집국장들의 태도는 단호했다.

“우리는 언론으로서 사명에 충실할 의무가 있습니다.”

“사주는 편집권에 관여하면 안 됩니다. 데스크 역시 취재 기자에게 최종 결정권을 줘야 합니다. 그것이 곧 국민들이 마지막 양심이라고 믿는 언론의 윤리입니다. 이번 일을 어떻게 결정하느냐에 따라 두 언론사의 존폐가 달렸다고 봅니다.”

사주들은 편집국장의 뜻을 따르기로 했다. 기사는 다음 주에도 보도됐다. 대통령실은 분주히 움직였지만, 여전히 갈팡질팡했다. 여론은 폭발했다. 주말마다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집회가 열렸다. 집회에 나온 시민들은 ‘문화재 반출 NO! 국민 앞에 사과하라’ ‘무능한 정부는 퇴진하라’ ‘한일 정상회담을 취소하라’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분노를 표출했다. 시간이 갈수록 집회 참여 인원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대통령실은 들끓는 민심 진화에 나섰다. 이번에는 기자회견 대신 대국민 담화 형식을 빌리기로 했다. 언론에서는 대통령이 불편한 질문을 피하려고 기자회견이 아닌, 일방적인 담화 형식을 취한 것이라는 해석을 내놨다. 어쨌든 대통령은 TV 생중계를 통해 국민들 앞에 섰다. 그리고 작금의 논란과 의혹을 해명했다. 국가수반으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했지만, 국론 분열을 초래한 데 따른 공식적인 사과는 없었다.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에도 불구하고 여론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담화 이후 첫 여론조사 결과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율은 20%대로 하락했고, 여당인 한민당 지지율 역시 비슷한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러자 대통령실은 한일 정상회담이라는 외교 성과로 반등을 꾀했다. 정상회담 날짜가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사라진 청자는 정상회담 당일까지도 찾지 못했다. 대통령실은 하는 수 없이 일본 총리 선물 목록에서 청자를 제외했다. 국내 언론 보도를 접한 일본 측도 굳이 청자에 미련을 갖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대통령은 일본 총리와 외교 사절단에 유감을 전했다. 청자 대신 일본 총리에게 선물한 건, 인삼과 토종 벌꿀 등 건강식품과 두견주, 소곡주 등 전통주였다. 일본 총리도 답례로 전통 의상인 유카타와 수제로 만든 사케를 가져왔다.

만찬장에서 만난 양국 정상은 만면에 미소를 띠며 손을 잡고 흔들었다. 여기저기서 사진기 플래시 터졌다. 양국 주요 인사는 단체 사진을 찍은 다음 테이블에 앉았다. 만찬 메뉴는 대표적인 K-푸드인 불고기와 잡채, 갈비찜, 모둠전이었다.

일본 측을 배려해 회와 조개찜 등 해산물도 곁들였다. 전통 누룩으로 빚은 막걸리가 건배주로 쓰였다. 양은 주전자에 담겨 나온 막걸리를 집어 든 대통령은 일본 총리에게 한 잔을 가득 부었다. 그러고 나서 건배를 제의했다. 일본 총리는 대통령에게 건배사를 양보했다. 겸연쩍은 듯 잔을 들고 일어선 대통령은 이렇게 건배사를 했다.

“한일, 일한 양국은 이제 지난 과거사의 아픔을 딛고, 협력하는 파트너로서 미래와 희망을 향해 나아갑시다. 양국의 동반성장을 위하여! 간빠이!”

테이블마다 잔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한 모금씩 마신 잔을 내려놓은 참석자들은 힘껏 손뼉을 치며 만찬장의 흥을 돋웠다.

다음 날, 양국 정상은 공동선언문을 발표했다. 양국의 관계를 ‘전략적 동반자’에서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로 격상하고, 양국 간 교류와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한민당은 대변인 논평을 통해 양국의 우호와 관계 개선을 이룬 외교 성과라고 극찬했다. 반면 민국당은 강제 징용과 위안부 문제 등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사과가 없는 상태에서 이루어진 ‘굴욕 외교’라고 비판했다.

더구나 대통령이 건배사에서 ‘건배’ 대신 ‘간빠이’라는 일본어를 사용한 건 국민 정서와 위배한 처사라며 반발했다. 국민들은 둘로 갈렸다. 보수와 진보가 서로 뒤엉켜 으르렁댔고, 진영 대결은 극한으로 치달았다. 국론은 분열됐다.

한일 정상회담을 TV로 지켜보던 겨레와 조 부장은 경악했다.

“어떻게 국가 지도자라는 위치에 있는 대통령이 저럴 수 있죠?”

겨레는 아연실색했다.

“이래서 민주주의 국가에서 주권자인 국민의 의사가 중요하다고 한 건가?”

조 부장 역시 쓴 웃음을 지으며 입맛을 다셨다. 정상회담이 끝난 즈음, 국정원은 고려청자 도난 사건을 마무리했다. 마철훈 국정원장은 별도 기자회견 없이 서면 보고서로 갈음했다. 국정원이 특별조사단을 꾸려 한 달 남짓 조사한 결과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대통령실 수장고에 보관 중이던 고려청자는 도자기 애호가가 기증한 것이다. 수장고 내에 보관 중이던 청자는 ‘도난’이 아닌, 원 기증자에게 돌려준 것으로, 기증자의 신원은 보안상 공개할 수 없다. 수장고 보안과 관리에 소홀한 책임을 물어 담당 행정관은 징계 처리했다. 다만, 담당자가 도의상 책임을 지고 자진 사퇴 의사를 밝혀 수용했다. 한일 정상회담 때 청자를 일본 총리에게 선물하려고 했다는 일부 언론의 보도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정상회담에서는 양국을 대표하는 상징물로 선물을 교환했고, 정상회담 역시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남겼다.

대통령실은 특조단 결과 보고서를 보도자료 형식으로 출입 기자들에게 배포했고, 언론은 즉시 보도했다. 사건의 내막을 알고 있는 겨레와 조 부장은 대통령실이 공개한 자료를 보고 또다시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마철훈 원장의 신분을 보장해야 했기 때문에 그저 실소만 지을 뿐이었다. 고려청자 도난 사건은 그렇게 매조지었다. 그리고 그해 첫눈이 내렸다. 첫눈이 내리던 날, 겨레와 조 부장은 광화문 앞 포장마차에서 술잔을 기울였다.

“선배,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내가 뭘 한 게 있다고. 다 한 기자 덕분이지.”

“언론의 역할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던 사건이었어요. 제 기자 생활에서 영원히 잊지 못할 장면일 겁니다.”

“한 기자만 그런가. 나도 그래. 정말 꿈만 같던 시간이었어.”

술잔을 기울이던 두 사람에게 전화가 걸려 온 건 1차를 어느 정도 마감하려고 할 때였다.

“네, 지구일보 한겨레입니다.”

“…….”

수화기 너머는 조용했다. 겨레는 모르는 핸드폰 번호로 걸려 온 전화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여보세요? 한겨레 기자입니다. 누구시죠?”

그때 전화기가 뚝 끊겼다.

“누군데 그래?”

조 부장이 겨레의 전화기를 휘둥그레 쳐다보며 말했다.

“글쎄, 저도 모르죠. 아무 말도 없이 그냥 끊어졌네요.”

“혹시, 이거 또 대통령실에서 뭐가 없어졌다는 제보 전화 아냐?”

조 부장은 실실 웃으면서 농담했다. 겨레도 실없이 웃으면서 손사래를 쳤다.

“조금만 기다려봐요. 또 오겠죠.”

겨레의 말처럼 같은 번호로 다시 전화가 걸려 왔다.

“지구일보 한겨레 기자님 맞으시죠?”

“네, 맞습니다. 어디시죠?”

“한국기자협회에서 연락드렸습니다.”

“기자협회요? 거기서 웬일로. 저한테?”

“다름이 아니라요. 올해 ‘한국 기자상’에 한 기자님과 조선일 기자님을 선정해서 알려드리려고 연락드렸어요.”

“네? ‘한국 기자상’이요?”

스피커폰으로 대화 내용을 들은 조 부장은 깜짝 놀랐다.

“저희한테 그 큰 상을 주신다고요?”

“네. 시상식은 12월 24일 오전 11시 프레스센터 12층입니다.”

겨레와 조 부장은 얼떨떨한 기분으로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끊었다.

“조 선배! 2차는 선배가 사야 할 것 같아요.”

“엉? 그, 그래……야 이 사람아, 지금 2차가 문제야?”

두 사람은 주황색 포장마차 천막을 걷고 나오면서 크게 웃었다. 웃는 동안 하얀 입김이 새어 나와 밤공기를 가로질렀다. 겨레와 조 부장은 어깨동무하고 2차 장소로 향했다. 갑자기 기분이 좋아진 조 부장이 겨레 귀에 대고 속삭였다.

“한 기자, 근데 상금은 얼마래?”

“아니, 지금 그게 무슨 소리예요? 선배는 상금이나 받으려고 기사 쓰는 사람이었어요?

겨레는 정색하며 조 부장을 몰아세웠다.

“아니, 난 그냥, 혹시나 해서…….”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는 조 부장에게 겨레는 다시 짓궂은 표정을 지었다.

“농담이에요, 농담. 쫄기는. 흐흐흐.”

“뭐야? 한 기자, 너 정말 이러기야?”

겨레는 녹색 불이 켜진 횡단보도를 향해 냅다 뛰었고, 조 부장은 씩씩거리며 잡히면 가만히 두지 않겠다며 뒤쫓았다. 겨울바람이 밤하늘에 박힌 별을 어루만지며 쌩쌩거렸다.



‘한국 기자상’ 수상자로 선정된 겨레와 조 부장은 프레스센터로 향했다. 겨레는 시상식 당일 입으려고 양복도 새로 사 입었다. 조 부장은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식장에 나타났다.

“오, 한 기자. 그렇게 빼입으니까 새신랑 같네?”

조 부장이 겨레를 보고 아는 체했다. 겨레는 조 부장과 그의 가족을 발견하고 수줍은 인사를 건넸다.

“인사해. 우리 와이프랑 애들이야.”

“안녕하세요. 한겨레입니다.”

“안녕하세요. 한 기자님. 이 사람한테 얘기 많이 들었어요. 덕분에 이런 상을 받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아유, 덕분이라뇨? 선배님께서 워낙 열정적으로 기자정신을 발휘한걸요?”

겨레의 말에 조 부장이 아내를 쳐다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조 부장의 두 아이도 겨레에게 배꼽 인사를 했다. 천진난만한 얼굴에서 겨레도 결혼이라는 걸 하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그사이 행사 시작을 알리는 사회자 멘트가 마이크를 통해 흘러나왔고, 두 사람은 각자 이름이 붙은 자리에 앉았다.

“자, 이제부터 올해 ‘한국 기자상’ 시상식을 시작하겠습니다. 호명하는 기자분은 단상 위로 올라와 주시기 바랍니다. 수상자는 지구일보 한겨레 기자, 시사주간 창 조선일 기자입니다.”

두 기자는 설레는 기분으로 단상으로 향했다. 벅찬 기분에 심장이 요동쳤다. 시상은 기자협회장이 했고, 상장과 상패, 상금을 전달했다. 조 부장 아내와 아이들이 쪼르르 나와 준비해 온 꽃다발을 두 사람에게 전달했다. 사회자는 두 기자에게 수상 소감을 요청했다. 조 부장부터 소감을 말했다. 조 부장은 허리를 90도로 숙여 인사한 뒤 벅찬 감정을 추스르며 말을 꺼냈다.

“고맙습니다. 기자 생활 20년을 하면서 특종상 한 번 못 받았습니다. 이렇게 기자 생활을 마감하나 했던 제 삶에 자존심을 세울 수 있는 상을 받게 돼 영광입니다. 이제 기자를 떠나 제 아내와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남편과 아빠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 같아 매우 기쁩니다.”

조 부장의 말에 청중들이 웃으면서 박수를 보냈다. 조 부장의 수상 소감은 이어졌다.

“한겨레 기자와 이 사건의 제보를 받던 날을 기억납니다. 취재하는 동안 숨 가빴던 순간도 여러 번이었고, 과연 제가 이걸 기사로 쓸 수 있을까 막연한 불안감을 가졌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제 옆에는 항상 한겨레 기자가 있었고, 한 기자 덕분에 용기를 낼 수 있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한겨레 후배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언제까지 기자 명함을 들고 다닐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기자’라는 이름으로 사는 동안은 부끄럽지 않은 기자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조 부장의 수상 소감이 끝난 뒤 겨레가 마이크를 넘겨받았다. 겨레는 만감이 교차했다. 순간 가슴 깊은 곳부터 솟구치는 감정에 울컥했다. 그는 심호흡을 크게 한 번 하고 나서 정면에 있는 청중을 향해 천천히 소감을 밝혔다.

“지구일보 한겨렙니다. 앞서 조선일 기자의 수상 소감대로 저 역시 이번 사건을 취재하고 보도하면서 정말 많은 걸 배우고 깨달았습니다. 그건 바로 우리만의 정체성입니다. 우리의 선조들이 지켜온 나라, 그리고 이 나라에서 그들이 목숨 바쳐 만들고, 지키고자 했던 문화유산의 소중함입니다. 반대로 그런 장인 정신을 외면한 채 문화재를 함부로 다루고, 관리에 부실했던 지도자의 무능이 얼마나 국가의 위상을 떨어뜨리는지도 확인했습니다.”

겨레는 잠시 말을 멈추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청중의 시선이 자신에게 집중하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면서 다시 말을 이었다.

“얼마 전 어떤 기사에 이런 내용이 있더군요. 이름난 거부(巨富)가 일제강점기 문화침탈이 극성이던 때 자신의 전 재산을 털어 우리 문화유산을 사들였는데요. 사유재산이다 보니 그 후손이 상속세를 내기 버거워 경매에 내놨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얼마나 비극적이고 참담한 이야깁니까. 문화재 독립운동을 한 선대의 유산을 재정난에 팔아야 한다는 심정이 얼마나 비통했을까요. 더구나 경매에 나온 유물을 외국인이 산다면, 국보급 문화재가 해외로 나가는 현실에 직면할 수 있습니다. 소중한 우리 문화재의 정통성과 정체성, 상징성을 보존하고, 후손들에게도 찬란한 우리 문화유산을 물려주려면 세제 혜택 등 정부의 실질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합니다. 저와 조 기자님의 보도가 우리 문화유산을 지키고, 그에 따른 정책을 만드는 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고맙습니다.”

겨레의 수상 소감이 끝나자 청중은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냈다. 두 기자는 손을 잡고 청중들에게 깊게 허리를 숙여 인사한 뒤 단상을 내려왔다. 시상식이 끝난 뒤에는 오찬이 이어졌고, 두 신문사 동료 기자와 지인들이 테이블로 와 두 기자에게 축하 인사를 건넸다. 겨레는 크리스마스이브에 받은 성탄절 선물에 마냥 즐거웠다. 그러다 장천에 있는 마 교수가 떠올랐다. ‘교수님도 이 소식을 들었을까. 모든 게 교수님 덕분인데, 한번 찾아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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