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달과 별

5. 마지막 인터뷰

by 류재민

아침상을 물린 겨레와 조 부장, 마 교수는 서재로 들어가 마지막 인터뷰를 준비했다. 인터뷰는 겨레가 진행했다. 마 교수는 호흡을 한 번 길게 하고 나서 차분한 자세로 질문을 기다렸다.

“연화 무늬 매병, 그러니까 도난당한 청자의 전설은 들었고요. 간단히 정리하겠습니다. 여러 질곡의 나날과 역경을 겪고도 보존이 잘 됐잖아요. 그러다 누군가 천담사에 있던 청자를 몰래 훔쳐다 암 거래를 한 것으로 추측되고, 거기서 또 어떤 경로를 통해서 대통령실 수장고까지 들어갔다는 건데요. 맞습니까?”

“대략, 그렇습니다.”

“그러면 지금 그 청자는 어디에 있습니까? 차 행정관이 최초 저희에게 제보했을 때 그 청자를 보관하고 있다고 말했거든요. 교수님은 청자의 소재를 알고 계시나요?”

“네, 알고 있습니다.”

“어딨습니까?”

“그건……말씀드리기 곤란합니다.”

“무슨 이유죠? 저희가 이곳에 며칠을 머물면서 교수님께 인터뷰를 청한 건, 종국적으로 청자를 누가 어디에 보관 중인지를 알고 싶어서였습니다. 교수님도 아시잖습니까?”

“알죠, 압니다. 그럼 저는 이렇게 여쭤보죠. 청자의 소재도 알고 있고, 두 기자님이 여기 온 의도도 알고 있는데, 왜 공개하기 어렵다고 했을까요?”

겨레와 조 부장은 침묵했다. 아무 말 없이 마 교수의 다음 대답을 기다렸다.

“대통령실 수장고에 연화 무늬 매병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어떻게든 빼 와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건, 거기에 있어야 할 물건이 아니니까요. 종친회를 열어 대책을 논의했죠. 마침 누군가 마철훈 국정원장을 잘 안다는 사람이 있더군요. 그래서 저와 그분, 종친회장이 비밀리에 마철훈 원장을 만났습니다. 이번 사건은 그렇게 시작된 겁니다.”




마철훈은 종친회 사람들을 만나 저간의 사정과 사연을 전해 듣곤 깜짝 놀랐다. 하지만 대통령실 수장고에 있는 물건을 함부로 빼돌린다는 건 큰 위험이 따르는 문제였다. 잘못하면 그동안 자신이 쌓아온 명예와 사회적 위치가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마 교수와 종친회는 끈질기게 그를 설득했다.

“원장님, 이건 어느 한 개인이나 마 씨 종친회 명예만 달린 게 아닙니다. 우리의 고유 문화유산을 지키고 보존해야 하는 건 국가와 지도자의 책무란 걸, 원장님도 잘 알지 않습니까.”

마 교수는 절박한 심정으로 호소했다. 마 원장은 며칠 말미를 달라고 했다. 일주일 뒤 마 원장은 마 교수에게 전화해 믿을만한 사람을 한 명 보내달라고 했다. 마 교수는 차유민을 추천했고, 유민은 대통령실 경호실 소속 행정관으로 들어갔다.

마철훈과 차유민은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잘 알고 있었다. 사실 마 원장은 상당히 정치적인 인물이었다. 1년 뒤 총선에 출마해 국회의원이 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러나 자신이 출마를 희망하는 지역구는 3선 의원 출신인 대통령 비서실장이 일찌감치 점 찍어 둔 곳. 마 원장은 자신의 정치적 야망을 이룰 방법을 고민했다. 그러던 차에 마 교수 일행이 찾아왔고, 이를 계기로 자신의 정치 행보에 결단을 내려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야당으로 투신이었다. 마 원장은 민국당 지도부와 내밀하게 정보를 주고받았다. 대통령실 수장고에 청자가 들어오게 된 경위와 그것이 곧 일본 총리 선물로 보내질 거란 계획과 청자를 빼돌린 이후 시나리오까지. 그는 이번 일에 자신의 모든 걸 걸었다.

청자가 도난당했을 때, 검경이 아닌 국정원이 수사를 전담한 배경도 마 원장이 미리 짜놓은 시나리오였다. 대통령실에 들어간 유민은 수장고 담당 업무를 맡았고, 자신의 근무시간을 이용해 수장고에 들어갔다. CCTV 사각지대를 알고 있던 유민은 조심스레 청자를 종이상자에 담았다. 유민은 상자를 들고나와 곧장 외부로 향했다. 밖으로 나가는 출입구에는 검색대가 있었다. 마침 검색대 근무자가 평소 자신을 잘 따르던 두 살 아래 요원이었기 때문이다.

“차 행정관님, 거기 들고 가는 건 뭐예요?”

요원이 잔뜩 궁금한 표정으로 다가왔다. 유민의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어이 비켜, 비켜. 폭탄이다, 폭탄.”

“네? 폭탄이요?”

깜짝 놀란 요원을 향해 유민은 살짝 윙크했다.

“수장고 청소하고 나온 쓰레기 폭탄이야. 갖다 버리러 간다.”

그제야 요원은 어이없다는 듯이 웃으면서 뒤로 물러섰다.

대통령실을 빠져나온 유민은 그길로 차를 몰아 장천으로 향했다. 마 교수는 마 원장에게 ‘작업 완료’라고 문자메시지를 보냈고, 마 원장은 이후 준비한 시나리오대로 수사를 진행했다. 하지만 이 사실은 오직 그들만이 아는, 그들만 알아야 하는, 절대 비밀이었다.

“기자님들께 드릴 부탁이 있습니다.”

“뭐죠?”

“다른 건 보도해도 상관없지만, 마 원장만큼은 신분을 지켜주셨으면 합니다. 그분은 자신의 직까지 걸고 용기를 내주셨습니다.”

겨레와 조 부장은 마 교수에게 그들만의 ‘비밀’을 지키겠노라 약속했다. 그날 오후 겨레와 조 부장은 3박 4일 일정의 출장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왔다. 마 교수는 떠나는 두 기자를 대문 밖까지 나와 배웅했다. 차 뒷좌석에는 정성껏 포장한 선물꾸러미를 두 개 실었다.

“올해 처음 따서 말린 찻잎입니다. 눈 내리고 바람 부는 날 한잔 씩 우려 드시면 몸이 따듯해질 겁니다. 운전 조심히 올라가시고, 건필하십시오. 수고들 많았습니다.” 별장을 내려올 때, 산등성이에서 부는 바람이 두 사람이 찬 타를 떠밀듯 배웅했다. 그 바람에 실려 하얀 겨울이 오고 있었다.



서울로 복귀한 겨레와 조 부장은 주말과 휴일을 쉰 뒤 월요일 오전 각자 신문사로 출근했다. 그리고 각자의 편집국장에게 장천 출장 내용을 보고했다. 데스크 회의는 길어졌다. 두 신문사 모두 기자들이 취재해 온 인터뷰에 넋이 나갔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청자 도난 사건이 현직 국정원장이 관여했다는 사실은 그야말로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마 교수 요청대로 보도하지 않기로 내부 방침을 세웠다. 그것은 취재원 보호가 우선인 언론사의 소명 의식과 같았다. <지구일보>와 <시사주간 창>은 한겨레와 조선일 기자에게 일주일간 인터뷰 내용을 정리하고, 보도 계획을 정하도록 말미를 줬다. 두 사람은 겨레의 숙소에서 기거하며 장천에서 담아온 ‘마씨 집안 이야기’를 하나하나 복기했다. 그리고 일주일 뒤 두 기자는 보도 기획서를 데스크에 제출했다. 첫 보도는 11월 마지막 주부터 하기로 했다. 일간지인 <지구일보>는 매주 수요일과 목요일, 주간지인 <시사주간 창>은 금요일에 각각 연재하기로 했다. <지구일보>는 마 교수 인터뷰 전문을 싣고, <시사주간 창>은 특별판을 통해 인터뷰 요약본과 비하인드 스토리를 담기로 했다.

보도 이틀 전, 겨레와 조 부장은 차 행정관과 ‘수월경화’에서 만났다. 그는 마 교수 인터뷰를 소개해 준 장본인이자, 이번 사건의 핵심 인물이었다. 기자들을 만난 차 행정관은 자신의 거취부터 밝혔다.

“저는 두 분 기사가 나오는 날, 대통령실을 나오게 될 겁니다.”

“마철훈 원장과 얘기가 된 겁니까?”

“네, 그것 역시 저희가 짜놓은 시나리오입니다.”

두 기자는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다. 여러 감정이 교차했기 때문이다. 권력 내부에서 꾸민 일에 꼭두각시 노릇을 한 건지, 공익을 위한 언론의 역할과 본분을 한 건지, 확실히 정의할 수 없었다. 다만, 장천에서 한 마 교수 말마따나 이번 사건은 개인과 특정 집안의 민원 성격이 아니었다. 숱한 고초와 역경을 이겨내 온 장인들의 정신을 온전히 평가해야 했다. 그리고 우리 문화유산을 무단 반출도 막아야 했다.

“그럼, 행정관님은 앞으로 어떻게 되나요?”

“일단, 근무지 이탈로 징계를 받을 겁니다. 징계 여부를 떠나 저는 사직서를 낼 예정입니다. 그다음 장천으로 내려가 좀 쉬면서 교수님 논문작업을 도울 생각입니다.”

“행정관님 말고, 경호실장이나 관련 부서장들 거취도 궁금합니다.”

“그거야, 두 분이 기사를 어떤 수위로 쓰냐에 달리지 않겠습니까. 내부적인 가이드라인은 세웠어도, 여론을 움직이는 건 언론이니…….”

“내부 가이드라인은 어떤 식으로……?”

“그분들이 무슨 죄가 있습니까. 견책 처분 정도로 미미한 수준입니다. 책임을 져야 한다면 수장고에서 청자를 갖고 나온 저와 그걸 기획한 국정원장이 져야 할 일이죠. 그리고 벌을 받아야 한다면 고귀한 우리 선조의 얼과 문화유산을 당사자나 국민 동의 없이 일본으로 넘기려고 한 무능한 지도자가 져야 할 일이죠.”

차 행정관의 어조는 단호하고 당당했다. 듣고 있던 겨레와 조 부장의 고개가 절로 끄덕여질 정도로.

“저, 그런데……마 교수께서는……청자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는 알려주지 않으셨습니다.”

겨레가 매우 어렵게 말을 꺼냈다.

“그러셨을 겁니다. 또 그래야 하고요. 청자 소재는 당분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자는 내부 의견이 있었습니다.”

“그렇군요.”

“청자는 결국 본래 주인에게 돌아갈 겁니다.”

차 행정관은 의미심장한 말을 전했다.

본래 주인에게 돌아가다니, 그 ‘주인’이란 게 누구란 말인가. 청자 본류가 마씨 집안에서 시작했다는 건 알겠는데, 주인이 누군지는 알 길이 없었다. 천왕인가, 월인가, 성인가, 겐조인가, 기작인가. 차 행정관과 헤어진 뒤 겨레와 조 부장은 골똘히 생각했지만,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았다. 막연한 상상만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정신을 흩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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