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달과 별

7. 새로운 역사

by 류재민

연말 서울의 거리는 한산했다. 장기적인 불황에 내수 경기가 꽁꽁 얼어붙었기 때문이다. 사람들마다 주머니는 홀쭉해졌고, 통장은 가벼워졌다. 경제 전문가들은 새해에도 경기가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며 비관적으로 전망했다. 국민들의 한숨은 한겨울 입김처럼 새어 나왔지만, 정부는 뾰족한 경기 활성화 방안을 내놓지 못했다.

겨레는 새해를 이틀 앞두고 혼자 장천으로 내려갔다. 마 교수에게 미리 새해 인사를 하기 위해서였다. 조 부장은 온 식구가 감기에 걸리는 바람에 함께 가지 못했다. 만수산은 일주일 내내 내린 눈으로 설국(雪國)으로 변했다. 산기슭이 얼어붙어 차가 제자리에서 쌩쌩거릴 뿐, 좀처럼 나아가지 못했다. 그러다 뒤로 미끄러지는 느낌이 들었다. 겨레는 하는 수 없이 시동을 끄고 차에서 내렸다. 수북이 쌓인 눈길에 차가 지나간 흔적은 없었다. 겨레는 차를 그대로 둔 채 마 교수의 별장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눈이 무릎까지 빠질 정도로 푹푹 들어갔다. 산허리에서 불어온 바람에 눈가루가 휭 날렸다. 겨레는 날아오는 눈가루에 잠시 고개를 돌려 피했다. 계곡에는 고드름이 겹겹이 매달렸고, 숲은 새소리 하나 들리지 않고 고요했다. 겨레가 걸음을 뗄 때마다 뽀드득거리는 발자국 소리가 유일한 소음이었다. 급경사를 오를수록 겨레는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이마에는 어느새 땀이 흥건히 고였다. 한참을 낑낑거리며 올라가자 드디어 마 교수의 별장이 보였다. 겨레는 다리에 좀 더 힘을 주고 대문 앞에 다다랐다. 초인종을 누르려던 찰라, 마당 안에 마 교수의 실루엣이 보였다.

“교수님! 안녕하셨어요?”

마 교수는 갑작스러운 인기척에 깜짝 놀랐다.

“아니, 한 기자! 어떻게 왔어요, 연락도 없이?”

“보시다시피 걸어서 왔습니다. 하하하.”

겨레의 능청스러운 웃음에 마 교수는 반색하며 맞았다.

“추운데, 어서 안으로 들어갑시다.”

마 교수는 한 기자를 데리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따뜻하게 우린 녹차를 다기에 담아 겨레 앞에 내밀었다.

“연락도 없이 갑자기 이게 무슨 일입니까?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요?”

“무슨 일은요. 아무 일도 없고요. 교수님께 새해 인사드리려고 왔습니다. 지난주에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협회에서 주는 상도 조 선배랑 같이 받았어요. 그래서 교수님께 감사 인사도 드리려 겸사겸사 왔습니다. 참, 조 선배는 식구들이 감기에 걸려 못 왔습니다. 대신 안부 전해 달라고 하더라고요.”

“그렇군요. 겨울에는 독감이 유행이라 건강을 조심해야죠. 두 분이 상 받은 소식은 기자협회보에서 봤습니다. 축하드립니다.”

“교수님께서 흔쾌히 인터뷰에 응해주신 덕분입니다.”

“제가 한 게 뭐 있나요. 그저 저희 집안 이야기만 했을 뿐인걸요.”

“그 집안의 이야기가 이 나라와 사회에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는 게 ‘사건’이죠.”

“뉴스에 실린 한 기자 수상 소감 중에 와 닿은 부분이 있습니다. 우리 문화재와 유산에 대한 정체성과 소중함을 이야기한 대목입니다. 그 대목에서 벅찬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제가 언론과 인터뷰를 하기로 결심한 배경이 바로 그것 때문이었거든요.”

“그렇군요. 인터뷰하는 동안 교수님 이야기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으려고 했어요. 장면 하나하나를 떠올리기도 했죠. 그러면서 교수님이 인터뷰를 통해 무슨 메시지를 전하려고 했는지 짐작되더라고요. 참 많은 걸 느끼고 깨달았습니다.”

“제가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제대로 기사에 담아주셨습니다. 두 분은 제 평생 잊지 못할 겁니다.”

“아이고, 과찬입니다. 그저 저희가 할 일을 했을 따름입니다.”

겨레와 마 교수는 한동안 안부를 비롯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러다가 마 교수가 겨레에게 놀랄만한 소식을 전했다.

“봄이 되면 별장을 리모델링하려고 합니다.”

“아, 그러세요. 고풍 있고 아늑한 분위기가 좋았는데, 개조를 하려는 건가요? 펜션 같은 숙박업이라도……?”

“문화재 전시관을 운영해 볼 생각입니다.”

“문화재 전시관이요?”

“네. 제 마지막 꿈이기도 했죠. 다행히 이번에 청자를 찾을 수 있어서 그 시간이 앞당겼습니다. 제1호 전시물은 연화 무늬 매병입니다.”

“놀랍군요. 정말 기대되는데요.”

“문화재를 소장하고 계신 분들께도 기증받을 계획입니다. 여러 곳에 뿔뿔이 흩어져 있는 것보다 한자리에 모아 놓고 사람들이 편히 와서 보고, 느낄 수 있다면 괜찮을 거 같아서요.”

“좋은 생각입니다, 교수님. 그렇지 않아도 제가 수상 소감에서 그런 얘기도 했거든요. 사비를 털어 일본이 약탈한 문화재를 사들인 집안의 속사정이요.”

“그것도 봤습니다. 정부가 어떤 지원 정책을 내놓을 진 몰라도, 그동안 모아 놓은 돈으로 일단 시작해 보려고 합니다.”

“그런 생각을 마지막 꿈으로 삼으셨다니 존경스럽습니다.”

겨레는 마 교수를 쳐다보며 말했다. 마 교수는 머쓱한지 까만 뿔테 안경을 살짝 고쳐 쓰며 마른기침을 두어 번 했다.


새해가 밝았다. 첫날부터 함박눈이 내렸다. 겨레 숙소가 있는 서울 시청에도, 마 교수 별장이 있는 장천에도 소복이 내렸다. 온 세상이 새하얀 눈으로 뒤덮였다. 겨레는 두툼한 패딩을 입고 북한산에 오르고 있었다. 눈길에 미끄러지지 않도록 등산 스틱과 아이젠을 준비했다. 방한 장갑을 끼고, 털모자에 귀마개, 핫팩까지 체온을 보호할 수 있는 장비를 제대로 챙겼다. 숨을 내쉴 때마다 하얀 입김이 새어 나왔다. 털모자 밑으로, 콧잔등으로 땀방울이 맺혔다. 한참을 올라가자 정상에 다다랐고, 산 위에서 내려다보는 도시의 겨울은 포근했다.

‘또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됐구나.’

새해 첫날 산행을 온 겨레는 지난해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들을 정리하며 깊은숨을 몰아쉬었다. 그리고 새해에도 건강하게 일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산신령에게 기도했다. 겨레는 조 부장에게 영상통화를 걸어 새해 인사를 한 뒤 산 정상의 경치를 보여줬다. 조 부장은 아내와 아이들을 일일이 바꿔주며 인사를 시켰다. 아이들은 화면에서 겨레에게 세배했다.

“엥? 선배. 이러면 내가 조카들 세뱃돈을 줘야 하는 거 아냐?”

“당연하지. 안 주려고 그랬어?”

“무슨 말씀을. 저 그렇게 쩨쩨한 사람 아닙니다. 하하하.”

내려오는 길은 올라갈 때보다 한결 편했다. 기분 좋은 하루를 시작한 겨레는 집으로 돌아와 따뜻한 물로 씻었다. 그러고 나서 돌아오는 길에 사 온 라면 두 개를 끓였다. 라면을 끓이면서 <카더가든>의 ‘네 번의 여름’을 틀었다.

Don't be afraid 그건 너에게 무던히 손 내밀던 나의 모습과 경계일 거야 이젠 지나쳐야 해

우리의 밤 너의 곁을 기억해 아무도 모르게 사라질 듯 사라지지 않는 조각들도 네 번의 여름 지나 난 알 수 있었어 넌 내 꿈을 키웠고 넌 내 마음이었어~

여름이 오기 전에 총선이 열렸다. 바닥을 치던 대통령 지지율은 총선 결과로 이어졌다. 여당인 한민당은 참패했고, 야당인 민국당은 압승을 거뒀다. 민국당은 서울과 수도권을 비롯해 영남권을 제외한 전 지역에서 승리했다. 한민당은 개헌 저지선을 겨우 확보한 것에 위안 삼았다. 하지만 정부와 여당은 국정 운영 중간 평가에서 국민들의 준엄한 심판을 받은 데 큰 충격을 받았다. 한민당 대표는 선거 참패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국무총리와 내각도 전원 사표를 제출했다. 압도적 야당이 된 민국당은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를 요구했다. 대통령은 총선이 끝난 뒤 이틀째 되던 날 대국민 담화를 통해 선거 패배에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며 고개를 숙였다. 개각 등 국정 쇄신에 일로매진(一路邁進)하겠다는 다짐도 전했다. 민국당에 입당해 총선에 출마한 마철훈 원장은 첫 배지를 달았다. 3선 중진 출신에,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관록의 정치인을 꺾는 파란을 일으켰다. 그토록 바라던 꿈을 이룬 마철훈은 국회의원 1호 법안으로 ‘문화재보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문화적·사료적 가치가 높은 문화재를 사재로 구입한 경우 상속세를 감면해 주는 내용을 담았다. 그것이 설령 국가 지정 문화재라고 할지라도 함부로 경매 시장에 내놓지 못하도록 규제했다. 입찰자가 외국인일 경우 문화재 반출을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개인이 소장하고 있는 문화재를 박물관이나 문화원, 전시관으로 운영할 경우 정부나 지자체가 위탁관리를 맡겨 운영을 지원하도록 했다. 법안은 그해 하반기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첫 수혜를 입은 사람은 두말할 것 없이 마 교수였다. 마침 그는 법안 통과 시점에 별장 리모델링을 마쳤다.

마 교수는 선선한 가을 녘 전시관 개관 행사를 개최했다. 예스러움이 묻어나는 전통가옥 형태의 전시관이 가을 햇살 아래 고즈넉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행사에는 마철훈 의원을 비롯해 마 씨 종친회장과 관계자, 장천군수, 차유민과 한겨레, 조선일이 참석했다. 조 부장의 아내와 아이들도 꽃다발을 갖고 전시관 문을 들어섰다. 입구에는 ‘장천 문화재 전시관’이라고 써진 목판 간판이 붙어 있었다. 행사 사회는 차유민이 맡았다. 유민은 내빈소개에 이어 마철훈 의원에게 축사를 요청했다.

마 의원은 자신의 첫 법안 통과를 언급하며 전시관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했다. 아울러 전시관이 운영에 차질이 빚지 않도록 국회의원으로서 아낌없는 지원을 하겠노라 약속했다. 축사 다음에는 마강진 초대 전시관장의 인사말이 이어졌다. 마 관장은 검은색 정장에 흰색 와이셔츠를 입었고, 목에는 나비넥타이를 맸다. 뿔테 안경이 고상한 품격을 돋보였다. 마이크를 잡은 마 관장이 벅찬 음성으로 말을 시작했다.

“오늘은 장천 문화재 전시관이 문을 여는 역사적인 날입니다. 역사적인 날을 축하하기라도 하는 걸까요? 날씨도 매우 좋습니다. 자, 하늘을 보십시오. 푸른 하늘에 구름 한 점 없습니다. 바람은 선선하게 불고, 그 바람에 실려 오는 가을 냄새가 느껴지지 않으십니까?”

참석자들은 하늘을 쳐다보며 잠시 눈을 감고 가을 정취를 만끽했다. 마 관장은 잠시 끊어졌던 말을 다시 이어갔다.

“문화재 전시관 초대 관장으로 취임할 수 있어 매우 기쁘고 영광입니다. 전시관 개관에 물심양면 도움을 주신 마철훈 의원님을 비롯해 군수님 이후 공무원 여러분, 그리고 많은 관심과 성원을 보내주신 모든 분께 이 자리를 빌려 깊은 감사 인사를 올립니다.”

마 관장은 연단 옆으로 나와 참석자들에게 깊이 허리를 숙여 인사했고, 참석자들은 힘찬 박수를 보냈다.

“오늘 문을 연 장천 문화재 전시관은 장천 문화재만 있는 게 아닙니다. 전국 각지에서 기증한 귀한 문화재 100여 점이 3개 전시실에 나뉘어 있습니다. 문화재 하나하나 모두 우리가 지켜야 할 소중한 재산이고, 우리 후손들에게 길이 물려줘야 할 유산입니다. 이곳에 전시된 문화유산을 만든 선조들의 공을 기리고, 후손으로서 그들의 숭고한 얼을 기리는 건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지키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조속한 시일 내에 전시관을 열 수 있어 참으로 감회가 깊습니다.”

마 관장은 조 부장 부부 옆에 나란히 앉은 아이들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이 전시관은 저기 있는 우리 어린아이들에게 우리 역사의 자부심과 자긍심을 갖도록 공부할 수 있는 배움터 역할을 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의 염원을 담은 전시관을 아름다운 계절에 아름다운 분들을 모시고 개관할 수 있어 가슴이 벅찹니다. 많은 분이 뜻과 정성을 모아주셨습니다. 모쪼록 이 전시관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전시관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그리고 마천왕의 후손으로 명예에 누가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관리하겠습니다. 많은 응원과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고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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