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달과 별

8. 사건의 지평선

by 류재민

몇 달 후, 옛 백제 왕도였던 충청도 땅에서 ‘대백제전’이 열렸다. 개막식은 충남 공주에서, 폐막식은 부여에서 각각 진행됐다. 금강 변에는 황포 돛배를 띄웠는데, 관광객들로부터 가장 큰 인기를 얻었다. 생김새는 마치 과거 마천왕이 장천에서 왜로 갈 때 탔던 목선과 흡사했다. 축제에는 해외 10개국 축하 사절단이 왔는데, 그중 일본 방문단이 유독 눈길을 끌었다. 금강 수변 특설무대에서 열린 개막식에는 대통령이 직접 참석했다. 대통령은 축사에서 백제 문화가 일본 고대 문화와 교류하며 긍정적 영향을 준 사실을 언급했다. 아울러 축제를 축하하러 온 일본 사절단에 고마움도 표했다. 개막식 이후에는 인기 가수 공연을 비롯해 축하 무대와 각종 이벤트가 이어졌다. 수변에서는 미디어아트 쇼가 화려한 무대를 연출했고, 형형색색으로 밤하늘을 수놓은 불꽃놀이는 축제의 대미를 장식했다.

개막일부터 전국에서 수많은 인파가 몰렸다. 행사장 주변 푸드트럭과 체험 공간에는 연인과 가족 단위 방문객으로 북새통을 이뤘다. 마 관장과 겨레, 조 부장도 행사장을 찾아 축제를 즐겼다. 조 부장의 아이들은 얼굴에 알록달록한 무늬로 페이스페인팅을, 손목에는 끈으로 묶은 풍선을 매달고 다녔다. 일행의 발걸음이 어느 전시장 앞에 멈췄다. 백제시대 도자기를 전시하는 곳이었다. 도자기뿐만 아니라 각종 그릇과 다기 등이 함께 전시돼 있었다. 다른 한쪽에는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 중인 금동대향로를 축소한 모조품을 가져다 놓기도 했다.

“금동대향로는 백제 유적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죠.”

마 관장이 무료로 나눠주는 금동대향로 기념품을 아이들 손에 쥐여주며 말했다.

“책이랑 뉴스에서 본 것 같아요.”

조 부장의 큰아들이 꾸벅 인사하며 대답했다.

“이런 행사가 자주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삼국시대 백제는 가장 먼저 멸망했다는 이유로 사실상 후세의 역사가 긍정적으로 평가하지 않고 있으니까요. 특히 의자왕의 경우, 백제 멸망의 주범으로 역사책에 실려 있고, 근거도 없는 삼천궁녀 이야기로 역사에 씻을 수 없는 패주로 기록돼 있잖습니까.”

“저희도 학창 시절 그렇게 배웠죠. 하지만 이제 백제의 역사도 새롭게 재정립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백제의 문화가 일본으로 건너가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과정을 소상히 조사할 필요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들의 창의성과 예술성이 어떤 경로와 과정을 통해 한반도와 일본을 뛰어넘어 아시아의 찬란한 문화를 이뤄냈는지 말이죠,”

“그렇습니다. 그런 노력이 우리가 앞으로 하나하나 만들어가야 하는 일입니다.”

마 관장은 행사장을 지나가는 젊은이들과 어린이들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겨레는 책을 쓰기로 했다. 책을 써본 적은 없지만, 기사와 다른 형식으로 자신이 겪은 이야기를 기록하고 싶었다. 제목은 ‘백제문(百濟門)’으로 정했다. 장천에서 조 부장과 함께 진행했던 마 관장 인터뷰를 토대로 삼았다. 거기에 그의 가문 이야기를 더하기로 했다. 연말 기사에 다뤘던 내용과 기사에 담지 못했던 것을 각색해 소설로 쓰기로 했다. 소설 작법을 따로 배운 건 아니었기에 도입부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본업인 취재 활동과 기사 작성에 하루 대부분을 할애해야 하는 여건도 걸림돌이었다. 겨레는 사흘 동안 회사에 휴가를 냈다. 차를 몰고 장천으로 내려갔다. 공기 맑은 곳에 가서 작품의 전체적인 틀이라도 잡을 생각이었다. 간 김에 만수산과 천담사에 오르고, 마 관장이 운영하는 전시관도 둘러볼 참이었다. 겨울 오후의 고속도로는 한산했다. 창밖으로 앙상한 나무들이 겨울 산을 지키고 있었다. 눈 쌓인 나무에 햇살이 비추자 움츠렸던 나뭇가지들이 반짝였다. 졸음이 밀려들었다. 그때 조 부장으로부터 카카오톡이 왔다.

‘지금 당장 라디오를 켜시오.’

겨레는 무슨 영문인지 몰랐지만, 잠도 깰 겸 라디오를 켰다. 오래전 들었던 음악 프로그램이 폐지되지 않고 진행 중이었다. 두 명의 진행자도 그대로였다. 남녀 진행자의 진행 솜씨에 오랜 경륜이 묻어났다. 마치 만담을 듣는 듯 입담마저 출중했다. 중간중간 신청자 사연을 소개하는 코너가 있었다. 때마침 한 40대 남성의 사연이 소개됐다. 사연은 낭랑한 여자 진행자가 다정한 목소리를 타고 흘렀다.

“안녕하세요? 저는 서울에 사는 40대 직장인입니다. 직장은 언론사이고, 직업은 기자입니다. 제가 기사 대신 라디오에 사연 글을 띄운 건 제가 무척 사랑하는 후배를 위해서입니다. 그 친구도 기자인데요. 신문사는 서로 다르지만, 기자에 대한 열정만큼은 저나 그 친구나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입니다. 1년 전, 저희는 하나의 사건을 취재해 보도한 적이 있습니다. 아는 분들도 계실 텐데요. 우리 사회의 큰 반향을 일으켰고, 덕분에 기자협회에서 주는 상을 받는 영광도 얻었습니다. 기자 생활의 한 획을 그은 그때의 기억을 저는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제 파트너로서 기자 생활에 잊지 못할 기억을 남겨 준 후배 기자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습니다. 그 기자는 지금 장천으로 가는 길일 겁니다. 저희가 쓴 기사를 토대로 소설을 쓴다고 하는데요. 작품 구상 잘하고 와서 베스트셀러 쓸 수 있도록 청취자 여러분께서 큰 힘을 주셨으면 합니다. 참, 그 친구는 30대 중반이고, 아직 미혼입니다. 관심 있는 분들은 주저하지 마시고 많은 연락 부탁드립니다. 인물 됨됨이는 제가 보장합니다. <지구일보> 한겨레 기자님 파이팅하고, 한 기자가 ‘최애’하는 윤하 씨의 ‘사건의 지평선’ 신청합니다.”

운전대를 잡고 있던 겨레는 사연을 듣고 빵 터졌다. 하마터면 핸들을 놓칠 뻔했다. 조 부장의 깜짝 이벤트에 깔깔거리며 웃음이 튀어나왔다. 얼마나 웃었는지 눈물이 핑 돌 정도였다. 겨레는 곧바로 조 부장에 전화를 걸었다. 조 부장도 크게 웃으면서 전화를 받았다.

“선배님 아이디어는 아닐 테고, 형수님이 시켰죠?”

“무슨 소리야. 순전히 내 아이디어거든!”

“정말요? 이거 왠지 수상한데?”

“이 친구가 속고만 살았나. 내가 이래 봬도 순정파야. 감수성도 아직 살아있다!”

겨레는 수화기 너머 조 부장이 발끈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피식 웃었다.

“네네, 고맙습니다. 덕분에 꼭 베스트셀러 써야겠어요~”

“암, 그래야지. 이렇게까지 응원했는데, 100쇄는 찍어야지!”

“아이고, 선배. 아직 시작도 안 했어요. 김칫국부터 마시긴!”

“야야. 김칫국부터 시원하게 마신 다음에 시작해야 글도 잘 써지는 거야.”

“네네~ 알겠습니다. 분부 받들어 잘 다녀오겠습니다.”

“무리하지 말고, 바람 쐬러 다녀온다고 생각해. 운전 조심하고.”

“알겠습니다. 다녀와서 연락드릴게요.”

통화를 마친 뒤에야 조 부장이 신청한 노래가 귀에 들어왔다.

‘여긴, 서로의 끝이 아닌 새로운 길모퉁이 익숙함에 진심을 속이지 말자. 하나둘 추억이 떠오르면 많이 많이 그리워할 거야. 고마웠어요. 그래도 이제는 사건의 지평선 너머로~’

노래가 끝날 무렵, 겨레의 차는 어느덧 장천 IC에 다다랐다. 겨레는 톨게이트를 통과할 때 서서히 속도를 줄였다. 창문을 반쯤 열었다. 찬 공기가 상쾌함을 안고 차 안으로 들어왔다. 눈 내린 장천의 숲길을 향하면서 겨레는 윤하의 노래를 흥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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