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일담
마강진 장천 문화재 전시관장은 연화 무늬 매병과 오룡 청자 정병의 기원과 전설을 어떻게 알았을까? 아무리 마씨 가문이고, 집안 이야기라도 구전되는 동안 왜곡이 불가피했을 터. 그 배경은 대대로 내려온 ‘마 씨 가문연대기’라는 서적에 근거한다. 그건 ‘족보’나 ‘가보’ 같은 존재였다. 마 관장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 그리고 더 위의 아버지 세대부터 귀중하게 보관해 대물림했다.
‘마 씨 가문연대기’에는 마천왕부터 마강진까지 자손 이름과 가계도가 적혀 있었다. 마 관장은 어릴 적부터 그걸 보고 읽으며 자랐다. 아쉬웠던 건, 연화 무늬 매병과 오룡 청자가 탄생하던 순간의 기록은 확인하기 어렵다는 거였다. 다시 말해,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곳곳의 기록이 불에 타거나 찢겨 있었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훼손했을 수도, 아니면 거란과 몽고를 비롯한 외세 침입부터 조선시대 호란과 왜란을 겪으며 봉변을 당했을 수도 있다. 그저 기존 문서를 토대로 미루어 짐작만 할 따름이었다.
마 관장은 가문연대기에 빠진 부분을 채워 넣고 싶었다. 그래서 대학에서 고고미술사학을 전공했고, 박사학위를 받아 교수가 됐다. 그리고선 문화재와 유물, 유적 조사와 연구에 매진했다. 하지만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처럼 여전히 두 청자가 만들어진 구체적인 시기와 과정은 파악하지 못했다. 그 옛날 월과 성이 도자기와 청자를 만들려고 애썼지만, 실패를 거듭했던 것처럼. 그래도 포기는 하지 않았다. 선조들이 살았던 지난한 삶처럼, 그 역시 그 일이 자신의 운명이라고 여겼기에. 마 관장은 전시관을 운영하면서도 틈틈이 관련 논문을 썼다. 오랜 제자인 유민이 작업을 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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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관장이 논문작업에 몰두하고 있을 즈음, 겨레는 준비했던 소설 초고를 마쳤다. 여러 번 퇴고를 거친 뒤 공모전에도 내보고, 출판사에도 보냈다. 2주일 넘도록 한 군데서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겨레는 기대를 접었다. 기사 쓰는 건 자신이 있었지만, 처음 써 본 소설은 스스로 봐도 미덥지 못했기에. 겨레는 마음을 접었고, 한동안 투고 결과를 잊고 있었다.
한 달이 지났을 무렵, 한 출판사에서 출간을 제안하는 전화가 걸려 왔다. 이름만 들어도 대번에 알 정도인 국내 유명 출판사였다. 겨레는 놀라움과 신기함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출판사와 계약 후 필요한 부분의 교정이 이루어졌고, 석 달 뒤에 그의 책이 전국 서점에 깔렸다.
겨레는 맨 앞 장에 사인한 책을 마 관장과 조 부장에게 선물했다. 책을 받아본 그들 역시 기뻐하며 출간을 축하했다. 조 부장은 ‘이제는 한 작가님이라고 불러야겠네.’라고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겨레는 이후 여러 방송에 출연하고, 도서 관련 유튜브에서도 섭외가 쇄도했다. 작은 도서관에서 조촐한 북콘서트도 열었다. 책은 불티나게 팔렸고, 주요 서점 베스트셀러 차트에도 올랐다.
겨레는 처음 펴낸 책이 그 정도로 호응을 얻을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꿈만 같았다. 그는 받은 인세 일부를 장천 문화재 전시관에 기부했다. 큰돈은 아니지만, 자신이 책을 쓸 수 있었던 곳에 최소한의 마음을 담아 보냈다. 다음은 겨레가 쓴 책의 맨 앞장에 적힌 글이다.
‘이 책은 마씨 일가가 수천 년에 걸쳐 이루고 싶었던 꿈같은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제가 이 책을 쓰면서 깨달은 사실은, 포기하지 않는다면 결코 실패는 없다는 것입니다. 간절히 원하면 꿈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저는 당신의 꿈을 응원합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