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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재민 Dec 25. 2023

잃어버린 꿈을 찾아주는 ‘정다운 흥신소’

# 첫 번째 의뢰인

동생 현재의 악몽이 시작된 건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였다. 조용히 공부만 했던 미래와 달리, 현재는 남들 앞에 나서기 좋아했던 명랑 소녀였다. 한부모 가정이라는 생활환경은 현재에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만큼. 결손가정 아이라고 여길 친구들은 한 명도 없었다. 그만큼 인기 있었던 현재는 학기 초 학급 회장이 됐다.      

“그 당시엔 학급 회장이나 부회장이 되면 부모님들이 반에 간식거리를 돌렸어요. 하지만 식당에서 받는 월급 60만원에 두 딸을 길러야 하는 엄마에게 그건 부담이고, 사치라고 여겼을 거예요. 저희 세 식구는 외식은커녕, 흔한 생일 파티 한 번 해본 적이 없었으니까요. 어쩌다 엄마가 일하는 식당에서 늦게까지 일하는 날이면, 손님과 식당 주인이 다 돌아간 다음 셔터를 내리고 남은 음식을 먹곤 했어요.”     

미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다운의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건 쾌한과 달래도 마찬가지였다. 

“참, 힘들었겠다.” 

달래가 무겁게 입을 뗐다. 

“그런 건 힘들지 않았어요. 정말 힘들었던 건, 현재 성격이 갈수록 의기소침해진 거예요. 반 친구들은 간식을 돌리지 않은 현재에게서 멀어졌고, 현재를 질투하는 아이들도 하나둘씩 생겼어요. 동생은 다음 학기에도 학급 회장 선거에 나갔지만, 아무도 뽑아주지 않았어요. 정말 한 표도 안 나왔대요. 얼굴이 빨개져 자리로 돌아오는데 아이들이 비웃는 소리를 들었다고 하더라고요. 그 뒤로 현재는 반에서 왕따가 되었습니다.” 


현재의 사연을 접한 흥신소 직원들은 우물처럼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할지 모를 만큼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래도 그때는 현재를 괴롭히거나 신체적인 폭력을 행사한 아이들은 없었다고 했다. 4학년과 5학년까진.      


“그러다 6학년이 되었을 때, 같은 반 남자아이들이 시비를 걸어오기 시작했대요. 엄마 아빠가 이혼한 사실이 알려졌고, 볼품없는 임대아파트에서 살아서 학급 회장 때도 간식을 못 돌렸고, 가난한 엄마는 식당 일이나 하러 다닌다고. 동생이 한번은 그 아이들에게 ‘너희 때문에 죽어버리고 싶다’라고 말한 적이 있었대요. 그 말을 들은 아이들은 ‘그럼 죽어봐’라고 자극했는데, 동생은 정말로 칼을 꺼내 들었습니다. 마침 교실에 들어온 선생님이 그것만 보고 동생을 크게 혼냈대요. 전후 사정은 들어보지도 않고, 동생한테 ‘너 미쳤어’하며 다짜고짜 뺨을 때렸대요. 그런 다음 아이들이 전부 보이는 복도로 내보내 무릎 꿇고 손 들고 있으라는 벌까지 주고….”     

여기까지 말하던 미래는 결국 눈물을 흘렸다. 닭똥 같은 눈물이 두 뺨을 타고 뚝뚝 떨어졌다. 쾌한은 테이블 위에 놓인 갑 티슈를 몇 장 뽑아 미래 손에 쥐어 줬다. 화장지를 건네받은 미래는 눈물을 닦은 뒤 코를 킁 풀었다.      

변두리에 학군이 좋지 않은 동네다 보니 중학교 배정은 거리순으로 정해졌다. 그래서 현재가 다닌 초등학교를 졸업한 아이들은 거의 같은 중학교로 진학했다. 중학교에 가서도 현재의 따돌림은 이어졌고, 사사건건 꼬투리 잡아 괴롭히기 일쑤였다. 더러는 여러 명이 후미진 공사장 골목으로 끌고 뺨을 때리고, 발로 차 쓰러뜨렸다. 쓰러진 몸 위에 온갖 욕을 내뱉었다. 침도 뱉고, 씹던 껌도 뱉었다. 심지어 그 모습을 핸드폰 동영상으로 찍어 단톡방에 올려 돌려보기도 했다. 현재는 그런 사실을 엄마나 언니에게 한 번도 말하지 않았다.      

“엄마는 일하느라 바쁘고, 건강은 갈수록 안 좋아 약을 달고 살았어요. 저도 햄버거집 알바하랴, 고등학교 입시 준비하랴 밤늦게 집에 돌아오곤 했죠.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동생한테 미안해요. 제가 조금이라도 신경을 썼으면 일찍 알았을 텐데….”     

“그건 미래 양 잘못이 아니에요. 동생 잘못도 아니고. 그렇게 만든 녀석들과 그걸 막지 못한 학교가 책임질 문제지.”

다운은 자리에서 일어나 눈 내리는 창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의 눈은 이미 뻘겋게 충혈돼 있었다. 그의 음성은 분노를 애써 억누르는 듯 떨렸다. 

“동생을 데리고 상담 치료도 몇 번 다녔는데, 비용이 만만치 않아 그만뒀어요. 아직 중2이고, 고등학교도 다녀야 하는데,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해요. 이러다 동생이 못된 생각이라도 한다면….”

미래는 차마 말을 잇지 못한 채 흐느꼈다. 그러면서 ‘제발 제 동생을 도와주세요, 제발 살려주세요’라며 애원했다. 그 모습을 애처롭게 바라보던 다운은 결심을 굳혔다. 

“좋아. 이 사건 우리가 접수합시다. 장미래 동생 장현재의 미래를 위해!”

“좋아요!”

“콜!”     

미래는 자신의 호소와 부탁을 들어준 흥신소 직원들이 무척 고마웠다. 하지만 수임료가 얼마인지 알 수 없는 마음에 또다시 눈빛이 흔들렸다. 눈썰미 좋은 달래가 미래의 손을 꼭 잡았다. 

“미래 양, 돈 걱정은 하지 말아요. 우리 소장님, 그렇게 야박한 분 아니야. 그렇죠, 소장님?” 

“응? 아, 뭐, 제가 그런 분은 아니지. 그치, 아니지. 그래요, 수임료는 걱정할 거 없어요. 사건이 끝난 뒤에 청구하겠지만, 그렇게 크게 걱정하지 말아요, 미래 양.”

그제야 미래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입가에 옅은 미소를 지었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미래는 자리에서 일어나 세 사람에게 돌아가며 허리 숙여 인사했다. 

“이제 그만하고, 학교 가야지. 동생 걱정은 이쯤에서 우리한테 맡기고, 미래 양은 학교 가서 열심히 공부해요. 그게 동생과 엄마를 위하는 길이에요.”

달래가 서둘러 미래를 데리고 밖으로 끌고 나가다시피 했다. 목도리를 친친 둘러 감은 미래는 문을 나갈 때까지 고맙다며 고개를 꾸벅거렸다. 창밖에는 함박눈이 그칠 줄 모르고 계속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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