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류재민 Jan 23. 2024

이보다 빛나는 졸업장이 또 있을까

사소한 정성 하나가 한 사람의 평생 기억을 남다

‘라떼’는 졸업 시즌이 2월 초였다. 초중고뿐만 아니라 대학교도 그랬다. 그런데 요즘에는 12월에 졸업식을 하는 학교가 많아졌다. 방송통신중학교를 졸업한 내 어머니도, 초등학교를 졸업한 딸아이도 모두 12월에 졸업식을 했다.      


졸업식을 12월 하든, 2월에 하든 나와는 크게 상관없다. 난 이미 초·중·고·대 다 졸업했으니까. 나중에 무슨 바람이 불어 대학원을 갈진 몰라도, 내 인생에 졸업식은 아마 없으리라고 본다. 장례식은 몰라도.     


얼마 전에 뉴스를 보니, 중고등학교 졸업식 때 교장이 직접 쓴 졸업장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대개 졸업장은 이름 밑에 ‘위 학생은~’ 이렇게 시작한다. 그런데 이 학교 교장은 이런 평범함을 과감히 깼다. 색다른 문구로 평생 잊지 못할 졸업장을 학생들에게 수여했다. 얼마나 이색적인가 보자. 

2023학년도 개운중학교 졸업장
“학생은 솜털 보송한 아이로 우리 학교에 왔었는데, 울고 웃으며 보낸 3년 동안 몸과 생각이 자라서 더 넓은 곳으로 보냅니다. 붙들어 안아주고 싶고, 말하고 싶은 이야기가 가득하지만 출가하는 자식을 보듯 입술을 깨물며 보냅니다. 우리 보다 더 좋은 선생님, 더 좋은 벗들을 만나서 멋진 삶을 가꾸시길 기원합니다.”     


경남 양산시에 있는 개운중학교 오수정 교장 이야기다. 학교 이름도 교장 선생님 이름도 찬란하다. 졸업장 내용도 이름 못지않게 개운하고 보석처럼 반짝거린다. 같은 학교법인인 효암고등학교 졸업장도 눈길을 끌었다. 효암고는 졸업장 표지에 ‘졸업장’ 대신 ‘지극한 정성’이라는 글씨를 새겼다. 글씨체는 캘리그래피에 조예가 깊은 이강식 교장 작품이다.     


이강식 교장은 “삶에 졸업은 없을 것”이라며 “결국 매 순간 정성을 다하는 것이 삶의 본질이라는 교사들의 의견을 담아 세상에 단 하나의 이름이 새겨진 졸업장을 만들게 되었고 이 이름은 매년 바뀌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2024년 1월 12일, 양산신문, <개운중·효암고, 이색 졸업장 ‘신선’>     


어떤가. 이만하면 학생들에게 애틋하며 가슴 뭉클한, 영원히 잊지 못할 ‘빛나는 졸업장’ 아닌가? 학부모들에게도 3년간 자녀를 맡긴 학교에 고마움을 느끼기 충분한 선물이리라.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평생 기억에 남을 졸업장을 만든 두 학교는 격하게 칭찬받아 마땅하다. 다른 학교들도 귀감 좀 받았으면. 새로운 출발을 하는 학생이나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응원과 격려가 되겠나. 덩달아 학교 이미지가 좋아지는 건 두말할 나위도 없고.   

  

2023학년도 효암고 졸업장 표지.

그러고 보니, 우리 집 졸업식이 하나 남았군. 평생의 반려자 오 박사 졸업식. 지난해 태풍으로 연기된 박사 학위 수여식을 다음 달에 한다고. 그래, 난 거기 가서 오 박사의 졸업을 격하게 축하할 것이다. 학위기(증)도 신박하게 만들어주길 바라며. ‘위 사람은~’ 이렇게 말고. ‘세상 하나뿐인 위 사람은~’ 앞에 몇 글자만 넣어도 아름답지 아니한가. 눈부시지 아니한가. 음, 캘리그래피 잘하는 내 스폰서님께 신간 장편소설 표제 부탁해 볼까?

작가의 이전글 출판사 거절 메일이 보내준 선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