갇힌 섬
파도는 평화롭게 잔잔했다. 짠 내 섞인 해풍이 섬을 향해 불어왔다. 섬은 조용했다. 떠밀려 온 밀물이 바위에 부딪혀 철썩이는 소리만 간간이 들려올 뿐. 연안에는 이름 모를 물고기가 떼 지어 헤엄치고, 해변 바위틈에는 게와 낙지가 때로는 천천히, 때로는 느리게 움직였다. 돌 틈에는 새까만 다슬기와 회갈색 따개비가 다닥다닥 붙어 일광욕을 즐기는 듯했다.
저 멀리, 배가 들어오는 방파제 앞으로 여섯 명의 사내가 걸어왔다. 맨 앞에서 걷는 사내는 황토색 모자를 썼고, 같은 색의 군복차림이었다. 대강 아홉 자나 되는 듯 키가 컸고, 다부진 몸매에 근육질 체형이었다. 눈매는 뱀처럼 쫙 찢어졌고, 얼굴에는 칼자국 모양의 흉이 군데군데 나 있었다. 그는 일본 육군 보병 제107연대 3대대 소속인 이토 고이치 소좌였다. 이토는 석 달 전 본국에서 훈련 도중 갑작스러운 동원령에 대원 스무 명과 군함을 타고 떠밀리듯 이곳에 도착했다. 그는 이곳이 어느 나라에 붙어 있는 섬인지조차 알지 못했다. 먼저 도착해 있던 사카이 대좌에게 대략 본국으로부터 얼마나 떨어져 있고, 이곳에서 자신이 해야 할 역할이 무언지만 개략적으로 들었을 뿐이다. 본국의 가족들에게 안부도 제대로 전하지 못하고 온 게 내내 마음에 걸렸다. 전황이 불리하게 돌아간다는 소식이 들렸지만, 섬은 고요하고 적막해서 전쟁 중이라는 사실조차 잊은 채 일상을 보내는 중이었다.
이토의 뒤로는 해진 천을 덧대 만든 누더기 차림의 사내들이 서너 보 간격을 유지하며 따라왔다. 사내들 손에는 호미와 망태기, 대나무 작살이 들려 있었다. 이들은 조선에서 끌려온 인부들이었다. 이토와 달리 체구가 작달막했고, 핏기라곤 찾아보기 어려웠다. 초점을 잃은 듯한 눈은 멍했고, 걸음걸이는 느릿느릿했다. 이토는 못마땅하다는 표정으로 일행을 향해 연신 손짓을 해댔다.
“서둘러라. 시간이 없다.”
이토의 재촉에 인부들의 발걸음은 잠시 빨라지는 듯하다 이내 속도가 줄었다. 일행 중 하나는 부상을 입은 듯 왼 다리를 절었다. 까맣게 탄 얼굴을 한 열 서넛 먹은 소년이 부축해 겨우 걷는 정도였다. 일행이 연안에 다다랐을 때, 이토는 인부들을 두 조로 나누었다.
“너랑 넌 육지에서, 너와 너, 그리고 넌 바다로.”
인부들은 아무 말 없이 지시에 순응했다. 절름발이 사내와 그를 부축했던 소년은 갯벌에서 낙지와 조개를 잡았고, 나머지 셋은 물속에 들어가 고기를 잡았다.
바다는 열대어들의 천국이었다. 하지만 쏜살같이 움직이는 고기들을 대량으로 사냥하기란 쉽지 않았고, 물속에서 숨을 참을 수 있는 시간도 수 분에 불과했다. 수중 사냥 조가 차례대로 물속으로 잠수했다. 동시에 갯벌 조도 서둘러 작업을 시작했다. 섬에서 끼니를 해결할 유일한 방법은 바다에서 나오는 어패류가 전부였다. 섬 자체가 염분과 산호초로 둘러싸여 농사를 지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숲속에는 나무조차 없어 토끼나 노루 한 마리 살 수 없었다. 설상가상, 1944년 6월 미군이 마셜 제도 대부분 섬을 점령한 뒤부터는 사실상 식량 보급이 끊긴 상태였다. 식수도 구하기 어려워 석회 동굴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받아먹었지만, 그 역시 양이 넉넉지 않았다. 부족한 식량과 노역에 시달린 징용자들은 굶주림에 시달렸다. 피부는 가죽밖에 남지 않았고, 저마다 늑골과 갈비뼈가 선명하게 드러났다. 풍토병에 걸리거나 기아에 허덕이던 이들은 시름시름 앓다 죽었다. 남은 자들은 바다 생물에 의지해 겨우 연명했는데, 그조차 일본 군속들 입으로 먼저 들어갔다.
이토는 무료한 듯 허공을 향해 긴 하품을 했다. 해안에는 첨벙거리는 물소리와 모래밭을 때리는 호미 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렸다. 환초(環礁)의 하늘 위에 태양이 작열했다. 잔잔했던 파도가 서서히 일렁거리기 시작했다.
바다에 들어갔던 인부 셋은 자리돔 몇 마리와 소라, 조개 따위를 가져왔을 뿐이었다. 갯벌 조 역시 작은 돌게와 이름 모를 해초 줄기만 건져 돌아왔다. 인부들이 가져온 망태 안에 담긴 수확물을 들여다본 이토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금방이라도 불호령이 떨어질 듯 이마에 주름이 깊게 파였다. 찢어진 눈이 길게 늘어졌다.
“쓸모없는 죠센징들 같으니. 이걸 누구 입에 갖다 붙인단 말이냐. 책임감도 없는 녀석들. 네놈들 오늘 저녁은 없는 줄아라.”
이토는 인부들 손에 들린 망태기를 빼앗듯 낚아채더니 왔던 길로 혼자서 되돌아갔다. 인부들은 뒤도 안 보고 종종걸음으로 멀어지는 이토의 뒷모습을 희멀거니 바라봤다.
“이런 염병할. 언제까지 이렇게 살라는 겨. 차라리 물에 빠져 죽지.”
신세 한탄을 하던 절름발이 노인이 갑자기 바다를 향해 달려갔다.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이 재빨리 달려가 노인을 붙잡았다.
“이거 놔. 놓으라고. 나 하나라도 없어지믄 입 하나라도 줄어들 거 아니냐.”
“선재 아재. 목심을 그리 쉽게 끊으면 못 쓴당게요. 저그 있는 손자 생각도 해야 쓰지 않겠소.”
장순팔은 연신 발버둥 치는 김선재를 겨우 뜯어말리며 악다구니를 썼다. 그제야 선재는 몇 발 뒤에서 안절부절못하고 서 있는 손자 동영의 눈과 마주쳤다. 동영의 까만 눈이 부신 태양에 부딪혀 반짝거렸다.
“할압씨, 그만 가쇼잉.”
동영은 선재를 천천히 일으켜 세워 부축했다. 올 때도 그랬던 것처럼, 인부들은 빈손으로 돌아갔다. 힘 빠진 다리는 걸음을 더디게 했고, 쪼그라진 뱃고래에선 꾸르륵거리는 소리가 번갈아 들렸다. 밀물이 들어오면서 파도는 세차졌다. 태양이 작열했던 하늘은 어느새 검은 구름 장막에 뒤덮였다. 한바탕 비가 쏟아질 듯 천둥이 치고, 번개가 번쩍거렸다. 느릿느릿 걷던 인부들의 발걸음이 조금씩 분주해졌다. 동굴 쪽에서 장작불을 피우는지 허연 연기가 하늘로 오르다 바람에 밀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거처에선 구수한 밥 냄새 대신 소금물에 절여 짭조름한 생선과 조개 굽는 냄새가 풍겨왔다. 끌려온 조선인 여자들은 생선 배를 갈라 내장을 빼낸 뒤 꼬챙이에 끼워 장작불 옆에 세운 받침대에 걸쳤다. 조개는 통째로 불 위에 올렸고, 미역은 솥에 넣고 끓였다. 바닷물로 간수가 된 상태라 소금을 넣을 필요는 없었지만, 양념을 구할 수도 없었다. 그 모든 음식 준비가 끝났을 때, 이토는 사카이 대좌와 동료 군속을 데리고 주섬주섬 먹을 채비를 갖췄다. 부녀자들은 슬금슬금 일본군들 눈치를 보며 자신들 몫을 따로 담았다. 백여 명이 먹기에는 턱없이 적은 양이지만, 그마저 많다 싶으면 일본군들은 덜어내 자기들 군영으로 가져가 간식으로 먹었다. 그러다 자신들의 말을 잘 듣거나 식량 생산에 기여한 조선인이 있으면 선심 쓰듯 던져주곤 했다. 조선인들은 그렇게라도 끼니를 해야 했기에 군말 없이 복종했다. 더구나 꼼짝할 수 없었던 건, 일본군들은 자신들에게는 없는 총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후드득, 빗방울이 쏟아졌다. 거처로 돌아오는 인부들의 머리며, 이마며, 얼굴로 떨어졌다. 거처에 있는 사람들도 비를 맞으며 식사를 준비했다. 일본 군속은 옷이 젖을까 동굴 안으로 뛰어 들어갔고, 밖에선 조선인들이 옷을 젖어가며 부산하게 몸을 놀렸다. 세찬 빗줄기와 검은 구름이 환초의 하늘을 뒤덮었다. 그 사이를 천둥과 번개가 오갔다. 하늘이 뚫린 듯했다.
동굴 안에서 배식이 이루어졌다. 어른 아이할 것 없이 저마다 양은그릇을 하나씩 들고 서 있었는데, 죄다 찌그러져 밥그릇인지, 깡통인지 알아보기 힘들었다. 밥통이든, 깡통이든 그릇 안에 들어가는 내용물은 많지 않았다. 일본군은 배급망이 끊긴 이후로 식량을 최대한 아꼈다. 멀건 국물에 쌀보리는 수저로 몇 번을 헤집어야 바닥에서 겨우 몇 톨을 구경했고, 해초류와 작은 생선 부스러기가 전부였다. 조선인들은 피죽도 먹지 못해 얼굴이나 피부에 핏기가 없었다. 대부분 영양실조에 의한 각기병에 걸렸고, 강제노역에 시달리면서 밤새 곳곳에서 신음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징용자들은 환초 중심부에 건설 중인 비행장 활주로에서 강제 노역을 했다. 조선에서 끌려온 인원은 200명 남짓이었는데, 일본군까지 합하면 환초에는 약 300명이 동굴에서 생활했다. 이들이 섬에 처음 도착했을 땐 굴 밖에 막사를 쳐 지냈지만, 변덕스러운 날씨와 태풍에 소용이 없었다. 그렇게 시작한 동굴 생활이 벌써 3년째. 동굴 안에는 또 다른 굴이 여러 개 있었다. 입구를 기준으로 오른편 2개 굴에선 일본군이, 왼편 4개 굴에는 조선인 사오십 명이 먹고 잤다. 장순팔과 김선재, 김동영은 마지막 4번째 굴에서 기거했다. 장순팔은 전남 담양, 김선재와 동영은 순천 출신이었다. 이들은 갑자기 마을에 들이닥친 총칼 든 일본군들에게 강제로 징집돼 끌려왔다. 일본군들은 주로 장정들을 차출했는데, 밥을 지을 부녀자들도 여럿 차에 실었다. 사람들은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 돼지 마냥 군용 트럭에 올랐다. 이후 부산으로 이동해 배를 타고 일주일을 걸려 도착한 곳이 바로 이곳, 밀리환초였다.
날씨가 맑은 날, 환초의 밤하늘에는 별이 소금을 뿌려놓은 듯 반짝였다. 동영은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다 굴 밖으로 나와 백사장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비가 그친 뒤 별은 더욱 선명했고, 금방이라도 자신에게 쏟아져 내릴 듯했다. 하늘을 바라보던 동영은 까무룩 잠이 들었다.
“잘라믄 안에서 잘 거이지, 와 밖에 나와 궁상을 떠누?”
인기척을 낸 건 장순팔이었다. 장순팔을 알아본 동영은 벌떡 일어나 앉았다.
“됐다. 그냥 누워 있시라. 내가 뭐라꼬 일어나누.”
“아재 땜에 잠이 홀라당 깨부렀소.”
“와, 잠이 안 오나?”
순팔은 동영의 그늘진 얼굴을 바라보면 물었다.
“할압씨 때매 안 그렇소. 먹을 것도 없시매 통 들질 못하니 얼매나 버틸랑가 모르겄어요.”
동영의 말을 들은 순팔도 걱정이라는 듯 한숨을 후, 하고 내쉬었다.
“아재가 바다에 빠져 뒈져뿐다고 난리를 칠 때 솔직히 말리고 싶지 않았다. 어쩌믄 그렇게 가는 게 당신한티 차라리 맴 편한 걸 수 있겄다 싶어서.”
“근디 왜 뜯어 말리셨소?”
“니 때문이다.”
“지 때문이라고요?”
“할압씨 잘못되믄 니는 어쩌겄냐. 너도 따라간다고 난리 칠 게 뻔헌디. 우야튼 해방이 되믄 다 함씨 고향으로 돌아가야 하지 않겄냐.”
순팔의 말에 동영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아버지뻘인 순팔의 진심에 동영의 가슴은 뜨거워졌다. 별똥별 하나가 수평선을 향해 빠져들듯 지나갔다. 두 사람은 별무리를 말없이 쳐다봤다.
“우덜 동네에도 별이 저러코롬 밴짝거리고 있을긴데.”
혼잣말하던 순팔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동영은 촉촉해진 그의 눈빛을 봤지만 모른 체 했다. 별똥별이 하나 더 바다를 향해 떨어졌다. 환초의 밤은 길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여명이 밝아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