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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재민 6시간전

밀리환초

노역장

비행장 활주로 건립 공사는 정확히 언제부터 시작했는지 모른다. 동영과 일행들이 환초에 닿기 전부터 터는 닦여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이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것이 1941년이니 그 전였을 것으로 가늠할 뿐이다. 조선에서 끌려온 사람들은 밥을 먹거나 잠을 자는 시간 외에는 대부분 활주로 공사 작업장에서 일했다. 노임은커녕 밥도 제대로 챙겨주지 않는, 말 그대로 ‘강제 노역’이었다. 이토와 일본군들은 장총을 어깨에 메고 인부들을 다스렸다. 사카이 대좌는 미국 출신 기술자 험프리 겐죠와 함께 비행장 설계도를 뚫어져라 들여다 보면서 이것저것을 지시했다. 둘은 이따금 해안가 쪽으로 손가락을 가리키며 일본어와 영어로 대화를 주고받았는데, 말소리가 워낙 작았고 거리가 떨어져 있어 인부들은 그들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무엇보다 한눈을 팔기라고 하면 내리치는 채찍을 고스란히 맞아야 했기에 인부들은 허리 한번 펴기도, 곁눈질 한번 할 새 없었다. 한 시간을 일하고 나면 겨우 10분 정도 휴식을 주는 것이 전부였다. 고된 일에 지친 노인 인부들은 절벽에서 떨어지거나, 김선재처럼 바다에 뛰어들어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먹을 것이 부족한 상황에서 당신들의 입이라도 하나 덜겠다는 결기의 행동화였다.

“이토!”

“핫!”

사카이가 이토를 향해 이리 오라는 식으로 손짓했고, 이토는 공사장 가운데로 곧장 달려갔다. 뛸 때마다 군화가 일으키는 바람에 흙바람이 날렸다. 말끔한 용모에 단정한 군복 차림인 사카이와 달리, 이토의 복장은 썩 청결하지 않았다. 빨래도 그렇거니와 제때 씻지도 않아 몸에서 쉰내가 풍겼다. 사카이도 그걸 알고 있다는 듯이 가까이 다가오려는 이토를 이미터 정도 앞에서 세웠다.

“겐조 말을 들어보니, 비행기가 뜨려면 두 달은 더 걸릴 것 같다는군. 두 달은 너무 길어. 한 달 안으로 이 자리에서 비행기가 떠야 돼. 그러면 어떻게 해야겠나?”

“아직 힘 있는 죠센징들이 많습니다. 대좌님 지시대로 한 달 안에 대일본제국 국기가 새겨진 전투기를 띄울 수 있도록 진력하겠습니다.”

“좋아, 이토. 자네만 믿겠네, 제군.”

이토에게 작업 지시를 내린 사카이는 겐죠와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산 아래로 내려갔다. 해안가 주변에선 아낙들이 수북이 쌓인 빨래를 하고 있었다. 일본군들 군복이 대부분이었고, 더러는 사카이의 속옷도 보였다. 강진 댁과 순자도 십여명 아낙 무리 틈에 끼어 부지런히 방망이를 두드리고 있었다.

“이거이 꼭 일본군들 대갈통이었음 월매나 좋것어?”

강진댁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말을 뱉었다. 빨래하던 아낙들이 강진 댁의 말에 낄낄거리며 웃었다. 그러자 순자도 한마디 거들었다.   

“대갈통뿐이겄소. 사타구니 사이에 달린 물건은 어떠요?”

“시집도 안 간 년이 사내 사타구니 사이에 무슨 물건이 있는지 어찌 아누?”

“것두 모르믄 시집을 어찌 가겄소. 밤일은 할 줄 알아야제”

“아니, 이년이 남자 맛을 보긴 했나 베 그려?”

강진댁과 순자의 음담패설에 주변에서는 더 큰 폭소가 터져 나왔다. 아낙들의 웃음소리는 산까지 전해졌고, 그 모습을 보던 이토가 해안가를 향해 총을 한 발 쐈다. 별안간 총소리에 기겁한 아낙들은 입을 다물었고, 환초에는 다시 적막이 흘렀다. 빨래 방망이 두드리는 소리만 해안가에서 바다 쪽으로 퍼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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