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동치는 바다 2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정신을 차린 동영의 눈에 고향마을이 펼쳐졌다. 어릴 적 뛰놀던 고갯마루 서낭당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돌무더기를 원뿔 모양으로 쌓아 놓은 누석단(累石壇) 아래서 동영은 동무들과 술래잡기를 하고 놀았다. 마을에 큰 행사가 있으면 어른들은 오색(五色) 천을 걸어 놓은 서낭나무에선 치성을 올리며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굿을 했다. 정월 대보름에는 달집을 태웠고, 한가위에는 씨름판이 벌어졌다. 힘깨나 쓴다는 장정들이 샅바를 그러쥐고 모래밭을 뒹굴었다. 일등 상품으로 내건 황소는 늘 김복만의 몫이었다. 김복만은 동영의 아비였다. 복만은 열 살 무렵부터 또래보다 머리 두 개가 더 컸고, 덩치도 산 만해 씨름꾼으로서 싹이 보였다. 열다섯 살 때 처음 출전한 씨름판에서 기골이 장대한 장정들을 죄다 메다꽂으며 ‘소년장사’로 불렸다. 스물한 살까지 씨름판에서 황소 여섯 마리를 얻었다. 그의 부친 김선재는 해마다 추석 명절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렸고, 송아지까지 생기면서 벼농사를 그만두고 아들과 본격적인 축산을 시작했다. 복만은 스물두 살이 됐을 때 장가를 들었다. 처자는 건넛마을 이장을 보던 조진학의 여식이었는데, 당시 나이는 열여섯이었고 이름은 명자였다. 조진학은 양반 집안 후손이었는데, 선친이 주색잡기로 재산을 탕진하면서 몰락한 집안의 장남으로 자랐다. 겨우 서당을 나와 학문이나 익혔을 뿐, 일머리는 없어 남의 집 잡일이나 도우며 근근이 생계를 이었다. 오지랖은 넓고, 배운 티 내는 걸 좋아해 동네일에 참견했다. 그러다 이장을 보면 면사무소에서 수당을 준다는 말에 번쩍 손을 들었다. 10년 넘게 건넛마을 이장은 조진학이 도맡았다. 그러던 참에 씨름 구경을 하러 왔다 복만을 봤고, 소를 끌고 가는 복만의 뒤를 따라가 김선재에게 자기 딸과 복만을 결혼시키자고 제안했다. 딸만 내리 여섯인 조진학은 입 하나라도 줄여야 했다. 소 키우는 집에 딸을 시집보내면 굶어 죽을 일은 없겠다 싶었다. 조진학은 그 길로 빨래터에서 이불을 빨던 명자 손목을 붙잡고 복만의 집으로 데려갔다. 복만과 명자는 김선재와 조진학이 보는 앞에서 정한수 한 사발만 차려놓고 혼례를 치렀다. 부부는 이듬해 딸 쌍둥이를 낳았다. 계집애도 못마땅한 데 한꺼번에 둘이나 나왔으니 명자의 시집살이나 얼마나 고됐을까. 명자는 조리도 하는 둥 마는 둥 출산 사흘 만에 여물을 쑤러 나왔다. 눈이 다 녹지 않은 입춘, 꽃샘추위와 함께 부는 바람이 명자의 아랫도리를 파고들었다. 복만은 수척해진 명자를 방으로 들이밀었지만, 그녀는 한사코 남편의 손을 뿌리쳤다. 그때마다 시어머니는 복만을 향해 눈을 흘겼고, 어머니와 눈이 마주친 복만은 큼큼, 마른기침만 두어 번 한 채 외양간으로 향했다. 방에선 포대기에 눕혀진 딸들이 명자 얼굴을 보자마자 자지러지게 울음을 터뜨렸다. 어미 젖을 찾는 송아지의 간절한 눈망울처럼. 명자는 저고리 앞섶을 풀어헤쳤다. 젖이 잘 돌지 않던 명자는 한 번은 큰애부터, 다음 번에는 작은애부터 순서를 바꿔가며 젖을 물렸다. 하루는 복만이 장에 가 분유를 몇 통 사온 적이 있다. 명자를 생각해 큰맘 먹고 거금을 쓴 것이다. 하지만 며느리에게 절절매는 아들이 못마땅한 시어미는 분유통을 죄다 뜯어 도랑에 버렸다.
“사램은 사램 젖을 멕여야지, 어디 소 젖을 사다 멕여? 더구나 소 키우는 집이서?”
복만은 그런 어머니가 야속하고 답답했지만, 워낙 드센 성격에 대꾸할 엄두를 못 냈다. 명자도 아무 말 말라는 듯, 복만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김선재 역시 불같은 성질을 건드리기 싫다는 듯 에이그, 하며 혀만 찰 뿐 감히 아들 며느리 편을 들지 못했다. 그래서 명자는 집집을 돌며 동냥 젖을 먹였는데, 그걸 본 시어미는 아무런 제지를 하지 않았다. 그저 ‘사램은 사램 젖을 멕여야지’라고 중얼거릴 뿐. 그렇게 딸들이 첫 돌이 될 무렵, 수두가 돌았다. 쌍둥이들은 열이 펄펄 나고, 젖조차 물려고 들지 않았다. 복만 부부는 아이들을 하나씩 둘러업고, 병원에 데려갔지만, 손을 쓸 방도는 없었다. 되레 병원에선 다른 환자들한테 옮길 수 있다며 현관문도 열어주지 않았다. 시름시름 앓던 어린 딸들은 한날한시에 죽었다. 세상에 나올 때도 같이 왔다가 떠날 때도 같이 갔다. 자식 둘을 한꺼번에 잃은 명자는 식음을 전폐하고 드러누웠다. 이번에도 시어미는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복만은 이러다 명자까지 잃을까 속이 바싹 탔다. 안 되겠다 싶었는지, 부엌에 들어가 미음을 쑤어 명자 앞에 내놓으며 말했다.
“목심이 그기까진 걸 어찌겄나? 자네까정 곡기를 뚝 끊으믄 내는 워티기 하라는 겨. 고만 추스르고 일어나시게. 지발 부탁이네.”
명자는 폭 뒤집어쓴 이불 사이로 복만의 눈물이 미음 사발에 뚝뚝 떨어지는 걸 봤다.
“산 사램은 살아야 하지 않겄어. 아는 또 맹글믄 되는 겨.”
김선재 역시 며느리를 달랬다. 남편과 시아버지 읍소에 명자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쌍둥이가 떠난 지 열흘 만이었다. 명자는 그길로 약재원에 가 한약을 사다 달여 먹었다. 아들 들어서는 약이라고 하자, 시어미는 암말도 하지 못했다. 그 약이 어찌나 용했는지, 명자는 한 달 보름 만에 입덧이 나왔다. 그리고 열 달 뒤 아들을 낳았다. 그가 바로 동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