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전쟁

1

by 류재민

왕이 죽었다. 왕위에 오른 지 사 년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장례는 국장으로 치러졌으나 조용했다. 그 조용함은 너무도 생경해 사람들에게 좀처럼 가닿지 않았다. 죽음이 갑작스러웠기 때문이 아니라, 왜 죽었는지, 다음에 누가 그 자리에 앉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온 나라에 붙은 것은 단 한 문장의 글뿐이었다.

왕이 죽었다.

사람들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죽음보다도 먼저 이상했던 것은, 아무런 이유도 주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 시절에는 이유 따위는 필요 없었다. 왕이 죽었다면, 죽은 것이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궐의 공기는 무거웠지만, 그 결은 여염과 달랐다. 왕좌를 물려받을 다음 왕을 서둘러 정해야 했기 때문이다.

사정전에는 붉은 관복을 입은 신하들이 빈 왕좌를 가운데 두고 양옆으로 나란히 섰다. 그들은 화인과 수인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화인은 동쪽에, 수인은 서쪽에 자리했다. 머리에는 사모를 썼고, 허리에는 관대를 찼고, 흰색 버선을 신었다. 관복에는 위아래로 마주 보는 학 두 마리가 수놓아져 있었다. 모두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했으나, 얼굴에는 감추지 못한 초조가 떠돌았다.

잠시 뒤, 진주 비녀를 꽂은 대왕대비 민 씨가 긴 치마로 바닥을 쓸며 들어왔다. 그 뒤를 상선과 제조상궁이 그림자처럼 소리 없이 따랐다. 민 씨는 망설임 없이 왕좌에 앉았고, 그제야 회의가 시작됐다. 수인의 당수 이윤이 먼저 앞으로 나섰다.

“마마, 마땅히 윤 씨 집안에서 대통을 이어받아야 할 줄로 아옵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화인의 당수 이태겸이 한 발 앞으로 나왔다.

“아니 되옵니다. 이 나라는 엄연한 이 씨의 나라입니다. 윤 씨가 왕이 된다니, 당치도 않습니다.”

“허허. 언제부터 이 나라가 이 씨의 나라였습니까?”

“좌상, 좌상도 이 씨 아니십니까.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두 사람의 설전이 이어지는 동안, 대왕대비는 입도 가리지 않고 크게 한 번 하품했다. 그리고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고정들 하세요. 이러다 밤이 새도 답이 나지 않겠군요.”

장내가 잠잠해지자 대비가 말을 이었다.

“수인은 윤 씨, 화인은 이 씨를 말하는 것 아닙니까. 그렇다면 윤 씨와 이 씨에서 적임자를 하나씩 세워 검증해 봅시다.”

신하들은 찬물을 뒤집어쓴 듯 입을 다물었다. 서로의 눈치만 오갈 뿐, 누구도 먼저 나서지 않았다.

“이의가 없으면 내 말대로 하세요. 사흘 뒤, 윤가와 이가 가운데 왕으로 손색없는 자를 이 자리로 데려오도록 하세요. 검증의 방식은 그날 내가 정하겠습니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마마.”

신하들은 일제히 머리를 조아렸다. 대비가 퇴장할 때까지 허리는 펴지지 않았다. 대왕대비는 사정전을 빠져나가며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그 웃음에는, 어딘가 서늘한 기운이 묻어 있었다. 신하들은 말없이 흩어졌고, 사정전은 비었다. 전까지 오가던 말들은 무의미해진 공기와 함께 사라졌다.

*

집으로 돌아온 이태겸은 화인 수장답게 불처럼 급히 가문의 족보를 뒤졌다. 총명한 자는 제외했다. 총명한 자는 묻고, 따지기 때문이다. 지금 필요한 건 허울이었고, 매사에 순응하는 인물이었다. 족보를 뒤지던 그의 눈이 한곳에 머물렀다. 이태겸은 족보를 덮었다. 이름 하나가 머릿속에 남았다. 바로, 개국공신 이억의 아들 이결이었다.

이억은 삶의 절반 이상을 전장에서 보냈고, 서른이 넘어서야 혼인했다. 전장에서 세월을 보내다 마흔에 이르러서야 대를 이을 아들 하나를 겨우 얻었는데, 그게 바로 이결이었다. 그는 부친을 닮아 가문 내에서 가장 기품 있게 생겼다. 이억이 병사한 뒤 그의 가세는 기울었다. 이를 불쌍히 여긴 이태겸은 왕에 주청해 외관직 무관인 수군만호 벼슬을 내렸다. 하지만 그는 군사 훈련에는 얼굴을 비치지 않았고, 서책은 먼지가 쌓이도록 두었다. 밤새 술병과 기생만 끼고 놀다 다음 날 해가 중천에 떠야 일어났다. 이태겸의 심복이 이결을 찾아왔을 때, 그는 아직 술이 덜 깬 상태였다.

“당수 대감께서 하찮은 나를 왜 찾는다는 것이냐?”

“그것까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촌각을 다투는 일이라 속히 모셔오라 일렀습니다.”

이결은 귀찮다는 듯 이부자리를 걷어찼다. 이유도 없이 부르는 게 영 내키지 않았지만, 그나마 벼슬자리라도 내준 은인이었기에 마다하기도 어려웠다.

“의복을 정제하고 나올 테니 기다리거라.”

이결은 느릿느릿 일어나 주섬주섬 옷을 입었다. 그는 갓끈을 매며, 자신이 왜 불려가는지 굳이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

반대편 수인의 당수 이윤도 분주하게 움직였다. 이윤은 수인 수뇌부를 집으로 불러들였다. 그리고 왕 후보를 물색했다. 모인 사람들은 서로 눈치만 살필 뿐 선뜻 입을 떼는 이가 없었다.

“왜 아무 말씀들이 없는 것이오. 지금 상황이 얼마나 엄중한지 몰라서 그러시오. 우리 수인의 명운이 걸린 일이오. 시간이 없소.”

그때 종이품 관직인 최종직이 한 사람을 추천했다.

“이판의 자제는 어떻겠습니까?”

최종직의 옆자리에 앉았던 이조판서 윤영식이 흠칫 놀랐다.

“대감, 그게 무슨 말이오? 제 자식을요?”

“그렇소이다.”

“제 아들은 몸이 병약해 왕이 될 상이 못됩니다.”

“큰 아이를 얘기하는 게 아니요. 차남을 말하는 거요, 윤사월.”

“예? 사월이를요?”

최종직은 고개를 끄덕였고, 이윤도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윤사월이 어떤 인물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감, 그 아이는 이제 겨우 일곱 살입니다. 국사를 보기엔 너무 어립니다. 다른 사람을 알아보는 게 어떨까 합니다만….”

윤영식은 당황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윤의 생각은 달랐다.

‘어려서 고분고분할 것이고, 무엇보다 서출이다. 그 점이 마음에 든다.’

“그 아이가 적임일 것 같소. 더 찾아봐야 마땅한 인물도 없어 뵈고 시간도 촉박하니. 이판의 자제로 낙점하겠소. 다들 어떠시오?”

이윤의 말은, 의견을 듣겠다는 게 아니라 확인이었다. 그의 결정에 반대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만장일치로 윤사월이 수인의 대표로 정해졌다. 회의는 끝났고, 모였던 사람들은 돌아갔다. 결정된 이름은 더 이상 입에 오르지 않았다.

사흘이 지났다. 민 대비는 사정전에 나가기 전, 한껏 치장을 부렸다. 제조상궁 엄 씨가 지켜보는 앞에 나인 셋이 붙어 머리부터 발끝까지 만지고, 바르고, 다듬고 살폈다.

“서둘러라.”

엄 상궁이 나인들을 채근했다.

“괜찮다. 천천히 하거라.”

민 대비의 짧고 굵은 지시에 대비전은 조용해졌다. 문밖에서 다급히 걸어오는 상선 최진수의 발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대비전 앞에 도착한 상선이 고했다.

“대왕대비 마마, 이동하실 시간입니다.”

“기다려라. 뭐가 그리 급하다고 다들 호들갑이냐.”

“사정전에서 신하들이 모두 기다리고 있사옵니다.”

민 대비는 머릿속에 사정전 내부를 그려봤다. 화인과 수인 당수를 비롯한 핵심 들이 도열해 있을 것이고, 왕 후보로 정해진 이가와 윤가도 한쪽에 서 있을 것이었다. 적막이 흐르는 가운데 모두가 긴장한 표정으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떠올렸다. 민 대비는 이미 화인과 수인이 왕으로 추천할 인물이 누군지 알고 있었다.

“좋아, 아주 맘에 들어.”

민 대비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혼잣말했다.

“마마, 매우 어여쁘십니다. 마치 선녀가 강림한 듯하옵니다.”

엄 상궁이 비위를 맞췄다. 거울을 찬찬히 들여다보던 민 대비도 흡족한 얼굴이었다.

“엄 상궁. 궐에 들어온 지 얼마나 됐지?”

“올해로 십 삼년이옵니다.”

민 대비는 시선을 거울에 고정한 채 다음 말을 이었다.

“자네는 사람의 마음을 아주 잘 읽는 재주가 있어. 그러니 십 년 넘게 궐에서 버틸 수 있었겠지.”

엄 상궁은 대비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듯말듯했다. 그러나 굳이 내색하거나 다음 말을 덧붙이진 않았다. 대비는 말 많은 궁녀를 싫어한다는 걸 오랜 궐 생활을 통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 이제 가세나.”

대비전 문이 열렸다. 민 대비는 허리를 곧게 펴고, 고개를 빳빳이 들었다. 그리고 한 치의 흔들림 없이 문을 나갔다. 그 뒤를 상선과 엄 상궁, 나인들이 허리와 고개를 깊이 숙인 채 따랐다.

*

사정전 앞에 서 있는 동안, 이결과 윤사월에게 말을 거는 이는 없었다. 두 사람은 서로가 누구인지, 왜 지금 이곳에 있는지, 대비를 만나면 어떻게 답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화인과 수인의 책사들은 각자의 집에서 그들을 가르쳤다. 대비가 내놓을 검증 시나리오를 여러 개 준비한 뒤 그때그때 대응책을 알려줬다. 이결은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나와 한참을 빈둥거렸고, 윤사월은 책사가 알려주는 내용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다. 만 하루를 꼬박 그들과 씨름한 책사들은 지친 나머지 손을 들었다.

“모르는 게 있으면 당수나 내게 눈짓을 하거라.”

두 사람 모두 자신을 믿지 않았다. 그들 스스로 자신들이 왕의 재목이 아니란 걸 알고도 남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왜 이 자리에 서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두 사람은 사정전 입구 댓돌 앞에서 마주쳤다.

“공이 윤사월이요?”

“네. 이결 나리 맞으시죠?”

통성명을 나눈 두 사람은 각기 신발을 벗고 사정전 안으로 들어섰다. 내시 두 명이 한 사람씩 화인과 수인 쪽으로 안내했다. 신하들은 두 사람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들의 시선은 온통 민 대비가 들어올 통로 쪽에 쏠려 있었다.


곧이어 내시들이 낮은 상 두 개를 갖고 들어왔다. 상은 화인과 수인이 서 있는 한가운데 놓였다. 크기도, 모양도 같았다. 상 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이결과 윤사월은 각기 화인과 수인 쪽 맨 끝에 서 있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적당한 거리만 남아 있었고, 그 거리를 건너는 이는 없었다.

잠시 뒤, 발소리가 들렸다. 민 대비가 들어섰다. 신하들은 일제히 허리를 굽혔다. 대비는 잠깐 정지해 전체를 한 번 내려다본 뒤 왕좌 앞으로 걸어가 섰다. 앉지 않았다.

“둘은 앞으로 나오라.”

내시가 두 사람을 앞으로 이끌었다. 이결은 한 걸음 늦게 움직였고, 윤사월은 누군가의 손에 이끌리듯 나왔다. 둘은 각자 상 앞에 섰다. 대비는 그제야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눈길은 오래 머물지 않았고, 곧바로 입이 열렸다.

“첫째.”

대비가 말했다.

“왕은 말을 잘해야 한다.”

내시들은 붓과 먹, 종이를 상 위에 올려놓았다. 대비는 설명하지 않았다.

“하고 싶은 말을 적어보라.”

이결은 대비의 위엄에 손이 조금 떨렸으나, 애써 붓을 들었다. 그러고선 평소 외워두었던 문장을 적었다. 백성, 효, 충성, 하늘 같은 단어들이 줄을 이었다. 종이는 곧 채워졌다.

윤사월은 붓을 들지 못했다. 자주 쥐어본 적이 없어 서툴렀다. 손에 쥐고 있다가 떨어뜨렸다. 내시가 다시 쥐여줬다. 윤사월은 빈 종이만 우두커니 바라보다가, 한 글자도 쓰지 못했다. 종이는 그대로였다. 대비는 모르는 체했다.

“다음.”

상 위에 있던 필기도구가 치워졌다.

“둘째.”

대비가 말했다.

“왕은 두려움을 숨길 줄 알아야 한다.”

내시가 긴 칼을 가져왔다. 장식도, 무늬도 없었지만, 잘 벼려져 날이 잔뜩 서 있었다.

“들라.”

무관인 이결은 자신 있게 칼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몇 번 허공에 휘둘러본 다음 내려놓았다. 이태겸은 입을 꾹 닫고 들리지 않을 정도로 얕은 신음소리를 냈다.

반면 윤사월은 칼을 보자 두려운 표정을 지으며 한 걸음 물러섰다. 물러설 때 가녀린 어깨가 몹시 떨렸다. 내시가 다시 그를 상 앞으로 데려왔다. 윤사월은 칼에 손도 대지 못했다. 고개를 숙인 채 서 있었는데,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이윤은 흠칫 놀랐다. 대비는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았다.

“셋째.”

잠시 침묵이 흘렀다.

“왕은, 오래 버텨야 한다.”

이번에는 아무 것도 상에 놓이지 않았다. 대신 대비가 물었다.

“여기서 하루를 보낼 수 있겠느냐.”

이결은 대답했다.

“네 마마, 할 수 있사옵니다.”

윤사월은 답하지 않았다. 내시가 귓가에 속삭였다. 윤사월은 고개를 끄덕였다.

대비는 그제야 빈 왕좌에 앉았다. 손가락으로 팔걸이를 가볍게 두드렸다.

“그만 됐다.”

신하들이 동시에 숨을 들이켰다. 당수들이 뭔가 말을 하려고 나섰지만, 대비는 손을 들어 막았다.

“검증은 끝났다.”

누가 통과했고, 누가 탈락했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대비는 자리에서 일어나 퇴장했다. 최 상선과 엄 상궁이 뒤를 따랐다.

이결과 윤사월은 어찌할 바를 모른 채 그대로 서 있었다. 내시와 신하들도 움직이지 않았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알 수 없었다. 사정전 안에는 발소리도, 말소리도 없었다. 숨소리만 가늘게 들렸다.

잠시 뒤, 상선이 들어왔다. 그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선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한 분만 남으셔야 합니다.”

그 말이 누구를 향한 것인지는 바로 발표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