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그날 밤, 중전은 대비전 몰래 옥사를 찾았다. 옥사의 공기는 비릿한 피 냄새와 오래된 목재와 곰팡내가 한 데 섞여 퀘퀘했다. 이윤은 목에 긴 칼을 쓰고 넋이 나간 듯 앉아 있었다. 중전이 이윤의 몰골을 보고 오열하려던 찰나, 복도 끝에서 둔탁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이결은 본능적으로 칼자루를 쥐며 중전 앞을 막아섰다.
“누구냐!”
어둠 속에서 나타난 건 대비의 심복이자 내금위 부장인 조충이었다.
“이 야심한 시간에 중전마마를 모시고 여긴 어쩐 일인가? 대비마마 허락도 없이 대역죄인을 만나는 건 그 자체로 역모인 것을 모를 리 없을 텐데.”
조충의 뒤로 수 명의 군사가 나타나 출구를 봉쇄했다. 이결의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여기서 칼을 뽑으면 돌이킬 수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중전을 보호하지 못하면 모든 게 끝장이었다.
“조 부장, 길을 비켜라. 이건 주상 전하의 밀명이다.”
“전하의 밀명? 편전에서 복통으로 쓰러졌다고 들었는데, 언제 그런 명을 내렸단 말이냐?”
조충이 비웃으며 칼을 뽑아 들었다. 옥사의 좁은 복도에 팽팽한 살기가 감돌았다. 중전은 이윤의 손을 놓고 이결의 옷자락을 꽉 쥐었다. 이결은 깨달았다. 오늘 여기서 누군가는 반드시 죽어야만 이 비밀이 유지되리란 걸. 두 사람이 빼든 칼이 옥사 안 횃불에 반사돼 반짝였다.
“멈추세요.”
칼과 칼이 금방이라도 부딪치려는 찰나, 중전이 앞을 막아섰다.
“조충은 듣거라. 난 이 나라의 중전이자 국모이다. 밀명을 정 믿지 못하겠다면, 지금 당장 나와 전하를 뵈러 가자꾸나. 그러면 참인지 거짓인지 알 것 아니냐.”
조충은 중전의 당찬 행동에 순간 멈칫했다. 중전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오금을 박았다.
“대신, 밀명이 거짓이 아니었다는 게 확인되면 네놈의 목은 바로 떨어질 것이야.”
조충은 중전의 기세에 눌렸다. 그는 결국 칼을 내리고 부하들과 함께 옥사를 떠났다. 그러고는 이 사실을 알리러 곧장 대비전으로 향했다.
조충이 자리를 뜨자 중전은 다시 이윤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왕의 말을 전했다.
“아버지, 잘 들으세요. 전하께서는 역모를 꾀했다는 밀지가 거짓이라는 걸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조만간 있을 어전 회의에서 아버지 무고를 밝혀낼 것이니, 그때까지 조금만 참으세요.”
중전도 아버지를 향한 애처로움에 눈물을 흘렸다. 이윤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옥문 사이로 손을 내밀어 딸의 손을 잡았다. 혹독한 고문의 상처가 손마디 마디에 만져졌다. 중전은 애써 눈물을 참고 입술을 꽉 깨물었다. 이결은 다시 복면을 쓰고 중전을 데리고 왔던 길로 돌아갔다. 이윤은 딸과 이결의 뒷모습을 보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
이결은 중전과 옥사를 찾기 전, 내의원에서 왕을 만났다. 내의원 침상에 누워 신음하던 왕은 맥을 짚으러 다가온 어의를 막았다.
“물러가라, 잠시 혼자 있고 싶구나.”
“아니되옵니다, 전하. 옥체가 크게 상할 수 있습니다. 진맥을 하고 탕약을 지어야 합니다.”
“내가 괜찮다고 하면 괜찮은 것이다. 이결과 할 말이 있으니 나가보라.”
어의가 주저하는 사이, 이결이 다가와 어의를 내보내고 문고리를 걸어 잠갔다. 어의가 나가자마자, 침상에서 신음하던 왕이 벌떡 일어났다. 고통으로 번들거리던 눈동자는 간데없고, 그 자리엔 서늘한 냉기가 감돌았다.
“가까이 오라.”
이결이 당황하며 무릎을 꿇자 왕이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내가 단순히 매를 벌기 위해 이 연극을 했다고 생각하느냐? 이태겸의 품에 있던 그 밀지, 똑똑히 보았다. 종이 끝에 무언가 찍혀 있었다. 좌상과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봤는데, 그 인장은 장인의 것이 아니야.”
이결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왕은 이미 알고 있었다.
“네가 찍었는지, 아니면 대비가 직접 찍었는지 대답할 필요는 없다. 단, 너에게 기회를 주마. 사냥개로 죽을지, 아니면 나와 함께 사냥터를 뒤엎을지.”
“전하를 따르겠사옵니다.”
이결은 바짝 엎드렸고, 왕은 중전과 옥사로 가 이윤을 만나라고 했다. 가서 자신의 말을 전하라고 일렀다.
중전이 이결과 옥사에 있을 때, 대비는 거울 앞에 앉아 머리에 꽂힌 비취 비녀를 뚫어지게 들여다봤다. 사람들은 그녀가 권력에 미쳤다고 수군대겠지만, 그녀에게 이 궐은 지켜내야 할 최후의 보루였다.
“주상은 너무 약해. 그 선한 눈망울로는 화인의 탐욕도, 수인의 오만도 누를 수 없다. 나라의 근본이 백성이라고? 아니, 나라의 근본은 피비린내 나는 질서다.”
그녀는 선왕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혼란을 권력이라는 갑옷으로 덮어왔다. 이윤을 치는 것은 개인적인 원한 때문이 아니었다. 왕의 외척을 거세시켜 오직 자신만이 이 위태로운 왕좌의 유일한 버팀목이 되기 위함이었다.
“나를 원망하세요, 주상. 하지만 훗날 장성해 피 묻은 용포의 무게를 알게 된다면, 그때는 알게 될 겁니다. 내가 왜 주상 손에 장인의 피를 묻히려 했는지.”
대비가 거울을 보며 혼잣말을 중얼거리는데, 밖에서 묵직한 사내들의 발소리가 들렸다.
“대비마마, 내금위 부장 조충 들었나이다.”
엄 상궁이 안에다 고했다.
“들라 하라.”
대비전 문이 열리자마자 조충이 황급히 들어와 꿇어앉았다. 서둘러 오느라 미처 칼집도 두고 오지 못했다.
“자네가 이 시간에 대비전에는 무슨 일인가?”
대비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조충의 안색을 살폈다. 조충은 기다렸다는 듯 옥사에서 있던 일을 전했다.
“뭣이? 중전과 이결이 옥사에?”
“그러하옵니다, 하오나 중전께서 전하의 밀명을 가져왔다고 몰아붙이는 통에 소인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대비는 왕과 중전, 그리고 이결의 행태에 기가 막혔다. 어리기만 한 줄 알았던 왕이 머리를 쓰기 시작했고, 중전의 배포는 날이 갈수록 담대해졌다. 또 믿었던 사냥개는 목줄을 끊고 자신을 향해 달려들 태세였다.
“고약하구나. 아주 고약해! 내일 어전 회의에서 이윤을 참형하고 중전을 폐할 것이야.”
대비는 이를 꽉 깨문 채 불끈 쥔 주먹으로 보료를 내리치며 말했다. 조충은 노기 띤 대비의 눈치를 살피며 낮은 소리로 물었다.
“마마, 이윤은 어찌할까요? 혹시 모르니 미리 손을 써두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만.”
조충의 말에 대비는 분을 삭이며 뭔가 골똘히 생각했다. 생각의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오냐. 알았다. 대신 뒷말 나오지 않게 해야 할 것이야.”
밤은 깊었으나 궐 안의 그림자들은 잠들지 않았다. 옥사 뒷문이 열리고 수레 한 대가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어둠 속으로 스며들었다. 수레를 끄는 것은 조충과 그의 정예 병사들이었다. 그들은 횃불도 들지 않은 채, 짐승들이나 다닐 법한 북악산 험한 뒤쪽 길을 택했다. 수레 안에는 온몸이 포박된 채 입이 틀어막힌 이윤이 실려 있었다.
조충은 옥사에서 소란을 덮기 위해 이윤을 다른 신문지로 이송한다고 설명했다. 실은 산속에서 이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위장하려는 의도였다. 조충의 소매 안에는 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숨을 거두게 할 독약이 들어 있었다.
그러나 뒤를 쫓는 시선이 있었다. 이결이었다. 그는 내의원에서 왕의 눈빛을 마주한 순간부터 자신의 자리를 바꿨다. 사냥개로 죽기보다 사냥터를 뒤엎으라는 왕의 명은 이결의 심장 깊은 곳에 박혀 새로운 맥박으로 요동쳤다. 그는 발소리를 죽인 채, 나무 사이를 유령처럼 건너뛰며 조충의 행렬을 추적했다.
산등성이를 하나 넘자, 깎아지른 절벽이 나타났다. 조충이 손을 들어 행렬을 멈춰 세웠다.
“여기면 적당하겠군. 짐승들이 시신을 치워줄 테니, 뒤처리도 깔끔할 것이다.”
병사들이 이윤을 수레에서 거칠게 끌어내렸다. 조충이 독이 묻은 젖은 수건을 꺼내 이윤에게 다가갔다. 이윤은 이들이 자신을 제거하려고 한다고 직감했다. 하지만 저항하지 않았다. 눈빛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오히려 그는 자신을 죽이려는 자들을 가련하다는 듯 바라봤다.
조충이 수건을 이윤의 안면에 덮으려는 찰나, 어둠을 가르는 파열음과 함께 단검 하나가 날아와 조충의 발치에 박혔다.
“웬 놈이냐!”
조충과 병사들은 급히 칼을 뽑아 들었다. 수풀 사이에서 복면을 쓴 이결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 검을 뽑아 들었다. 달빛조차 닿지 않는 깊은 산속에서 칼과 칼이 부딪치기 시작했다. 이결의 검이 차례로 조충의 정예 병사들을 베었다. 맨 마지막까지 남았던 병사마저 쓰러지자 조충은 그 길로 달아났다. 이결은 주위가 정리된 걸 확인한 뒤 이윤을 부축했다.
“뉘신데, 이렇게 고맙게….”
이윤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그가 이결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결은 이윤을 업고 반대쪽 기슭으로 내려왔다. 도망간 조충이 병사들을 다시 모아 올라온다면 마주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결은 자신만이 알고 있는 암자로 피신했다. 다행히 병사들은 마주치지 않았다. 이결은 궐로 들어가지 않았다. 이미 조충이 대비에게 보고했을 것이고, 궐 안에는 자신을 잡으라는 대비의 명이 떨어졌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그는 덜컥 걱정이 들었다. 날이 밝으면 열릴 어전 회의에서 어린 왕이 대비를 앞세운 이태겸과 대결에서 승리할 수 있을지 노심초사했다. 이윤은 잠들었고, 이결은 암자 돌탑 앞에서 두 손을 모아 빌었다.
“모두 무사하게 도와주소서.”
암자 골짜기부터 짙은 어둠을 밀어내며 서서히 동이 트고 있었다.
새벽 안개가 궁궐 담장을 감싸며 낮게 깔려 있었다. 봄 날씨에도 그 기운이 얼마나 서늘한지, 바람이 아니라 침묵이 살을 스쳤다. 하지만 누구도 내색하지 못했고, 숨소리조차 크게 낼 수 없었다. 상석에 앉은 민 대비 얼굴이 빳빳하게 마른 한지처럼 서슬 퍼런 독기를 내뿜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좌의정 이윤이 옥사에서 도주했다고 들었습니다.”
침묵을 깬 것은 화인 수장 이태겸이었다. 그의 목소리는 제대로 벼려진 칼처럼 날카롭게 왕과 중전의 어깨를 겨눴다.
“역모의 증좌가 드러나자 아비는 도망치고, 그 딸은 여전히 중궁전 주인 노릇을 하고 있으니, 이것이 어찌 법도라 하겠습니까. 마마, 당장 중전을 폐위하고 이윤의 가문을 멸하소서!”
이태겸의 뒤로 화인 신료들이 일제히 머리를 조아리며 ‘통촉하여 주시옵소서!’를 외쳤다. 그들의 파상공세에 중전의 안색이 창백하게 질려갔다. 그녀는 소매 안에서 옆에 앉은 왕의 손을 꼭 쥐었다. 왕의 손바닥에선 축축한 식은땀이 배어 나왔지만, 중전은 그 손을 놓지 않았다. 오히려 부서질 듯 힘을 주어 용기를 주었다.
‘전하, 지금입니다.’
왕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늘 겁에 질려 아래만 보던 어린아이의 눈이 아니었다. 왕은 곁에서 자신을 지켜보던 상선 최진수를 향해 낮게 읊조렸다.
“그 밀지…다시 좀 봐야겠다.”
편전의 공기가 순간 묘하게 뒤틀렸다. 민 대비가 미간을 찌푸리며 왕을 흘겨봤다.
“주상, 몸이 좋지 않다더니 정신까지 혼미한 겁니까? 역적의 서찰을 계속 본다고 무엇이 달라지겠습니까.”
“제가…직접 살펴보겠다고 하였습니다.”
왕의 목소리에는 쇳소리가 섞여 있었다. 대비의 강요 아래 짓눌려 있던 아이 목소리가 처음으로 편전의 높은 천장에 닿았다. 대비는 불쾌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으나, 이내 손짓으로 밀지를 건네라 명했다. 상선이 가져온 밀지는 이결이 이윤의 서가에 숨겨두었던 바로 그 종이였다. 왕은 떨리는 손으로 밀지를 펼쳤다. 삐뚤삐뚤한 필체 사이로 이윤의 이름이 선명했다. 왕은 종이를 유심히 살폈다.
작은 손가락이 밀지의 한쪽 모서리, 아주 미세하게 번진 인주 자국 위를 훑었다. 얼핏 보면 평범한 인장 같았지만, 아주 작은 연화 무늬가 찍혀 있었다. 오직 대비전 비밀 서찰에만 쓰이는, 대비 민 씨의 사적인 소인(小印)이었다.
왕의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그것은 어머니의 주검 앞에서 울음을 참으며 지었던 그 서늘한 웃음과 닮아 있었다.
“대비마마, 좌상의 역모 밀지가 참으로 기이합니다.”
“기이하다니요? 그것이 무슨 말씀입니까?”
대비의 목소리에는 경계심이 잔뜩 묻어 있었다. 왕은 밀지를 번쩍 들어 신료들을 향해 펼쳐 보였다.
“좌상이 어찌나 치밀한지, 역모를 꾸미면서 대비마마 서랍에만 들어있다는 연화 무늬 인장을 빌려다 찍었나 봅니다. 마마, 혹여 좌상과 함께 역모라도 꾸미신 것입니까?”
편전 안이 얼음물을 끼얹은 듯 정지했다. 이태겸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고, 민 대비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그녀는 자신이 쳐놓은 완벽한 덫에 이결이 심어둔 독이 섞여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주상! 지금 그게 무슨 망발이오!”
대비가 자리에서 일어서려 하자, 왕이 먼저 자리에서 내려와 계단을 밟았다. 발바닥이 차가운 바닥에 닿았다. 허공에 덜렁거리던 다리가 드디어 지면에 닿는 순간이었다. 왕은 대비를 똑바로 올려다보며 한 걸음씩 다가갔다.
“왕은 묻는 자리가 아니라, 정해지면 따르는 자리라 하셨지요?”
왕의 눈동자에 깊은 심연이 들어앉았다.
“이제 제가 정하겠습니다. 이 밀지는 좌상의 것이 아니라, 누군가 왕실의 인장을 도용해 꾸민 가짜입니다. 그러니 이 서찰을 가져온 자부터 추포해 그 배후를 밝혀야겠습니다. 상선, 당장 내금위장을 부르시오!”
민 대비는 경악했고, 얼굴이 일그러졌다. 자신이 주장했던 논리가 거대한 부메랑이 되어 돌아와 목을 겨눈 격이었다. 그때, 편전 밖에서 거친 발소리와 함께 내관 하나가 숨 가쁘게 뛰어 들어와 엎드렸다.
“전하! 대비마마! 좌의정 이윤이 궐문 앞에 당도하였나이다. 조충 부장이 자신을 살해하려 했다며, 직접 진실을 고하겠다 하옵니다!”
민 대비 손에 들려 있던 찻잔이 떨어져 바닥에 박살 났다. 흩어진 찻물이 붉은 양탄자 위로 스몄다. 왕은 겁에 질린 아이의 가면을 완전히 벗어던졌다. 그는 중전을 돌아보며 나직하게 속삭였다.
“이제 연극은 끝났습니다. 이제부터 진짜 사냥을 시작해야지요.”
편전의 닫힌 문 너머로, 사냥개에서 사냥꾼으로 변한 이결의 강렬한 기운이 궐 전체를 에워싸고 있었다. 가식이 멈춘 자리에, 어린 왕의 반격이 본격적인 막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