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라도 먹고는 살아야 합니다만
사익보다 공익적 가치를 추구하며
기자는 박봉입니다. 정년이 보장된 직업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알량한 자존심과 소명의식만 갖고 살 순 없습니다.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하고, 애도 키우려면 기본적으로 ‘소득’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기본소득이 적다 보니 기자들이 가욋일을 합니다. 식당도 차리고, 카페도 차리고, 꽃집도 차리고, 세차장도 합니다. 그들한테 ‘기자가 기사를 써야지 왜 이런 일을 하냐’고 물으면, 열이면 열 이렇게 대답할 겁니다. “먹고살려고 합니다.”
먹고사는 일, 어쩌면 그것이 우리 삶에서 절대 도려낼 수 없는 가장 뿌리 깊고 본질적인 것일지도 모른다. 인생이란 것이 아주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그 모든 것이 함께 먹고살려는 단순한 동기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부정한 방법으로 최고 권력을 탐한 자도, 빵을 몇 개 훔쳐 가슴에 품고 달아난 자도 결국 식솔과 함께 먹고살기 위해서라는 가장 원초적인 스타팅 블록에 발을 디디고 출발한 것인지도 모른다. <죽은 자의 집 청소, 김완>
먹고살려고 한다는 말에 토를 달긴 어렵습니다. 버둥거리며 살아보려는 의지가 있으니까요. 그런데요. ‘투잡’도 하지 않고, 기자 명함만 들고 다니면서 돈을 찾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사이비 기자’라고 부릅니다.
그들은 주로 공사 현장이나 폐기물 업체를 돌아 다니면서 공갈과 협박을 일삼습니다. 칼만 안 들었지, 강도와 다를 바 없습니다. 물론 그러다 잡혀 법적 처벌을 받는 경우가 많지요. 그 사람들도 “먹고살려고 그랬다”라고 합니다.
세상에 ‘먹고사는’ 방법은 다양합니다. 어떻게 먹고사느냐가 중요합니다. 선량한 사람을 괴롭히고, 불법을 저지르며 먹고사는 건 바람직한 삶의 방식이 아닙니다. 더구나 언론은 ‘사회의 공기(公器)’라고 하지 않습니까.
이틀 전 발행한 기자협회보를 보니 코로나19에 지역 언론 환경이 더 나빠졌다네요. 지역 언론사의 주된 수입원은 지자체 광고인데요. 코로나 여파로 행사나 축제가 취소되면서 1년 넘게 광고 지원을 받지 못하니 경영난을 겪는 곳이 부쩍 늘었다고 합니다.
구조조정은 물론, 기자들 월급도 제때 주지 못하는 곳도 많고요. 그렇다 보니 취재현장이 아닌, ‘불법현장’으로 내몰리는 기자들이 많아질 수밖에요. 먹고살려고.
코로나19로 지역 기업들의 경영이 어려워지고 광고 수입이 급감하며 애초 약했던 지역 언론사들의 존립 기반은 점점 위태로워지고 있다. 지자체 광고 의존도가 심화하며 할 말을 못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지만 생존 문제 앞에 저널리즘은 어느덧 배부른 소리가 돼버렸다. 급기야 지난해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은 일부 지역 언론사는 명예퇴직과 순환 유급·무급휴직, 감봉, 감면, 감부를 단행했다.
출처: 한국기자협회(http://journalist.or.kr/news/article.html?no=48852)
기자는 사회 정의를 위해 발로 뛰며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공정한 보도를 하는 메신저입니다. 그러다 경험이 쌓이면 내구성이 생겨 ‘자기 글’도 쓸 수 있습니다. 책도 내고, 강연도 다닐 수 있습니다.
공익적 가치를 추구하며 먹고사는 방법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자기 계발을 게을리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래야 실력도 쌓고, 기사도 잘 쓰고, 잘 먹고, 잘 살 수 있습니다. 그럭저럭 먹고사는 저는 이제 밥이나
먹어야겠습니다.
오늘은 Doop(둡)이 부릅니다. <먹고살기 힘들다>
*이미지 출처: 한국기자협회 홈페이지. 일러스트=김성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