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는 타이밍이다. 아끼면 ‘똥’된다

방심했다 특종 놓치고 후회한들 어쩌랴

by 류재민

기자로 살면서 간혹 타이밍을 놓쳐 낭패를 보거나 후회한 적이 있습니다. 오늘은 피곤하니 내일 취재해야지, 설마 나 말고 누가 이걸 쓰겠어, 이렇게 방심하다 다른 기자에게 특종을 뺏기는 게 언론계 생리입니다.


얼마 전 <한겨레> 1면 사진기사가 눈길을 끌었습니다. 타이밍의 중요성을 실감한 기사입니다. 눈 내리는 서울역 광장, 추위에 떨던 노숙인이 지나는 시민에게 “커피 좀 한 잔 사 달라”라고 했습니다. 시민은 노숙인에게 자신이 입고 있던 잠바와 장갑을 벗어주고 돈까지 쥐여주곤 홀연히 떠났습니다.


이 광경은 서울역 대합실에서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 현장 취재를 하고 나오던 사진기자 눈에 들어왔습니다. 기자는 카메라 렌즈에 두 사람을 담았고, 다음 날 천지간에 '감동실화'로 알려졌습니다.


1월 22일 한겨레 사진. <서울역 '노숙인과 신사' 어떻게 촬영했냐면요>

만약 기자가 그때 현장에 없었다면 훈훈한 기사가 나올 수 있었을까요? 설사 현장에 있었더라도 대수롭지 않게 여겨 촬영하지 않았다면, 기사는 빛을 볼 수 없었을 겁니다.


기사를 쓴 백소아 기자 역시 “사진기자를 하면서 깨달은 것 한가지는 눈에 보였을 때 일단 찍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조금 있다 찍지 뭐’라고 생각하는 순간 중요한 장면을 놓친 적이 한두 번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처럼 기사는 타이밍이 중요합니다. 기자는 며칠 뒤 촬영 당시 상황을 별도 기사로 썼습니다. 촬영 비하인드 스토리를 독자들에게 A/S(애프터서비스) 한 셈이지요. 얼마나 친절한 기자입니까.


기자는 노숙인 행색을 미처 발견하지 못한 스스로를 부끄러워했습니다. 또 노숙인에 선의를 베푼 시민에 감사한 마음을 담았습니다. 커피 한잔 대접하고 싶으니 부담스럽지 않으면 연락 바란다는 마지막 문장은 겸손과 예의가 느껴졌습니다.


그날, 저는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 온라인 참석을 위해 충남 가로림만 앞 갯벌에 있었습니다. 그곳에도 서울역 못지않게 참 많은 눈이 내렸습니다.


어촌계 사람들은 어스름 새벽이 익숙한 양 주섬주섬 옷을 입고 나와 눈을 치웠습니다. 어디서 왔는지 모를 기자가, 대통령에게 우리 동네 얘기를 해준다기에 고마워했습니다. 그래서 트랙터를 몰고 나와 눈을 치우고, 수십 미터가 되는 거리의 인터넷 선을 연결하고, 천막을 쳤습니다.

서산시 관계 공무원들은 휴일도 반납하고 나와 일을 도왔습니다. 핫팩을 가져다 제 목과 엉덩이와 주머니에 꽂아 넣고 “가로림에 ‘가’ 자만 나오게 해 주세요” 기도 했습니다.


저도 그날 눈 내리는 충남 서산 가로림만에서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어촌계 주민들과 담당 공무원의 기도와 바람은 대통령 앞에 가닿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은 제가 왜 그날 가로림만에 갔는지 모릅니다. 지역주민들이 눈보라와 추위에 얼마나 고생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후배 기자한테 부탁해 후일담을 기사로라도 썼습니다.


저도 저녁마다 출연하는 지역 라디오에 가로림만에 간 이유와 ‘서산 사람들’을 소개했고, 브런치에도 썼습니다. 그렇게나마 그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었습니다. 그 시간과 순간을 놓치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았거든요. 이때다 싶으면 후딱후딱 써야 합니다. 기사는 타이밍입니다. 신줏단지 모시듯이 아꼈다간 ‘똥’만 됩니다.


드라마 ‘눈사람’ O.S.T 서영은의 <혼자가 아닌 나> 들려 드립니다.

*영상출처: 서영은 - 혼자가 아닌 나 - YouTube

*상단 이미지 출처: 픽사 베이(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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