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재미스트 Jan 26. 2022

소속을 잃고 나는 대답을 잃었다.

무소속의 시작

   스물일곱, 대학 졸업과 동시에 나는 운이 좋게도 바로 취업을 했다. 그러나 정신없이 보내던 신입사원 시절, 뜬금없는 회사 대표의 돌발행동으로 회사 내부에 큰 문제가 생기는 바람에, 나는 짧은 직장생활을 뒤로하며 자의 반 타의 반 회사를 나오게 되었다.


   초, 중, 고, 대학과 군대 그리고 입사.

   돌이켜보면, 나는 지방 소도시의 어느 유치원 문을 들어선 이후 단 한 번도 소속이 없던 적이 없었다. 그 흔한 재수도 해봤지만, 그것은 비겁하게(?) 한 다리를 걸치고 했던 반수였다.


   "어떻게 지내냐."는 친구의 말에 그랜저로 대답할 수는 없었지만, 나는 늘 "○○학교 다니고 있어." "△△회사 다녀."라는 나의 소속을 말하며 나의 신분(근황)을 말했다. 나는 아니 우리는 늘 자신의 신분을, 어쩌면 정체성을 소속으로 이야기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회사를 나온 후에는 어쩌다 지인을 만났을 때 대답할 소속이 없었다는 것을 처음 깨달았다. 무리에서 이탈해버린, 눈에 초점을 잃은 초식동물의 허망함이랄까. 하긴 인간도 무리 생활을 하는 동물이었으니 다를 게 없는 유전자를 가졌을 것이다.


   나의 근황을 묻는 상대의 말에


무리에서 이탈했다.


라고 말하기 정말 쉽지 않았다.


   나는 이 말을 해야 하는 상황을 점점 피하게 되었다. 친구도 피하고, 나의 정체를 알거나, 근황을(나의 정체를) 물을 것 같은 사람들은 일단 모두 피했다.


"나? 그냥 놀지."

"요즘 쉬고 있어."

"음, 할 일 찾고 있는데, 잘 안 보이네. 너는 어떻게 지내?"라는 이 상황을 가볍게 넘길 말을 왜 못 했을까.


   거의 1년여를 보냈던 것 같다.

   그러던 와중에 대학 때부터 6년을 사귀던 여자 친구와 헤어졌고, 친구들과도 연락이 뜸해지고 끊겼다. 나는 비로소 연인이라는, 친구라는 일종의 소속(감)마저도 떼어냈다.




   ‘어떻게 지내냐’는 질문은 곧 나의 소속을 묻는 것이었고, 그 소속이 없었던 나는 그렇게 무소속이 되어 있었다.


   사실 재취업의 길도 있었지만, 쉽게 자리를 내어주지 않는 세상의 벽에 내가 먼저 고개를 숙이고 고향에 내려왔다. 다행히 부모님은 집으로 돌아온 나를 재워 주고, 밥을 주고, 가끔 용돈도 내어주셨고, 나의 미래를 애써 묻지 않으셨다. 한 동안 '다음 날의 일과'를 고민해야 하는 생활을 보냈다. 아들의 소속으로 나의 근황을 말씀하셨을 부모님도 무소속 아들의 근황을 말하기가 참 곤란하셨을 것 같다.




   얼마 후 사촌 형의 권유로 취업 대신 개인사업을 시작했다. 직원이 없는 개인사업자로 시작하여, 현재도 여전히 직원이 없는 1인 법인으로 형태와 사업규모를 바꿔 일을 이어오고 있다. 내가 설립한 법인에 나만 있으니 여전히 나는 무리 없이 들판을 혼자 걷고 있다. 나는 여전히 무소속이다.


   40대 중반인 내가 Retire Early(Financial Independance Retire Early)에 해당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근래에 곧 FIRE를 선언할 예정이라, 무리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업자 타이틀도 가까운 미래에 떼어낼 것이다.


   온라인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퇴직 관련 글에서, 돈이 퇴직 이후에 가장 큰 문제이지만, 소속이 없어지는 것도 퇴직 공포 중에 하나인 듯 보인다. 하긴, 28년 만에 무리에서 나온 나도 익숙하지 않은 삶이었는데, 40년 50년 만에 갑자기 무리 밖으로 내몰리면 오죽할까. 무리 속에서 살아왔던 관성이 더 센 만큼 과거에서 벗어나기 더 어려울 것이다.


   퇴직, 무소속, 재취업 또는 창업의 단계를 스물 여덟에 시작한 나는 은퇴라는 남은 단계를 향하며 현재 마흔 중반을 지나가고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