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속 적응기
혼밥, 혼술이라는 줄임말이 언제 만들어지고 회자되기 시작한 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무소속을 시작할 때 만해도 당시에는 아마도 세상에 흔하지 않던 표현이었다. 물론 그런 행태는 언제나 있었겠지만 말이다. 명칭(줄임말)이 존재하지 않거나 널리 회자되지 않았다면 적어도 행태 역시 현재보다 일반적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16년 전에 처음 무소속의 삶을 시작한 이후로 나는 꽤 오랜 혼밥, 혼술, 혼영화 등의 혼 라이프를 살아왔다. 일도 직원이나 동료 없이 프리랜서처럼 일해왔고, 보통 직장인이 퇴근 후 늦은 밤 TV 보다 잠자리에 들만한 시간에 조용한 사무실에서 퇴근을 하니 나는 누군가와 만나 교류하기가 무척 어려웠다.
보통사람들의 근무시간에 맛집을 찾기 위해 또는 개봉 당일 조조로 봐야 하는 재미있는 영화를 위해, 같이 갈 누군가를 찾기 어려웠다. 처음에는 식당에 혼자 들어서거나 빈 영화관에 혼자 우두커니 앉아있기가 너무 불편했지만, 혼자 다니는(다녀야 하는) 횟수가 늘다 보니 어색함은 점차 줄어들었다. 오히려 누군가와 기호를 맞추고, 시간 조율을 하는 일들이 조금씩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혼자서 영화를 보면서, 소위 명당이라고 하는 자리들보다 맨 앞자리에서 화면을 시야에 꽉 채워 보는 것을 좋아한다는 몰랐던 나의 취향을 새로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와 상대의 교집합에서 식사메뉴를 정해야 하는 조건(?)에서 벗어나 보니 나의 음식취향 스펙트럼도 점점 넓어졌다.
듣기 싫은 상대의 말을 들어주는 일도, 때론 내가 선호하지 않는 음식도 먹어줘야 하는 일도, 보고 싶은 영화를 보기 위해 보고 싶지 않은 영화를 봐줘야 하는 일들이 사회생활이라면 사회생활이고, 어쩌면 거래라고도 할 수 있지만, 언젠가부터 내 자유를 깎아내어 가면서 까지 하고 싶지 않아 졌다.
그렇다고 아무도 만나지 않고 산다는 말은 아니다. 여전히 가끔은 누군가를 만나고 있고, 안부를 묻고 전하며 살고 있다. 다만 나의 곁에 지금 누군가가 없다고 해서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새로운 것을 알게 되는 기회도 열려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라이프 스타일이 과거와 많이 달라졌고, 만나는 사람도 달라졌으며, 음식이나 여행 스타일 심지어 수입income도 과거와 많이 달라졌다. 어쩌면 다 바뀌었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아주 가끔은 내가 느끼는 자유의 순간만큼, 외로운 것도 사실 부인할 수는 없다.
고독과 자유는 한 몸이다.
고독은 자유와 한데 붙어있다는 말이다.
고독하지만 자유롭기도 하고, 자유롭지만 어딘가 고독한 마음을 한 문장으로 심플하게 표현했다. 이 글귀를 읽은 후로는 두 감정의 공존이 더 이상 '괴리감'이 아닌, '자연스러움'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 전보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고독을 받아들일 용의가 있다면, 그만큼 자유롭게 된다.
어쨌든 나는 내가 있던 과거의 무리에서 완전히 나왔고, 현재도 무리에서 나와 있다. 정말 신기한 것은 나처럼 무리에서 나온 사람을 누군가의 소개 없이 길에서 우연히 만나 연애를 하고 결혼도 했다는 것이다.
그동안 무리와 함께 뛰고 나의 목표인지 무리의 목표인지 모를 무언가를 좇느라 정작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원하는지에 귀 기울이지 않고 살아왔었다. 파이어를 앞두고 일하지 않는 시간이 조금씩 늘어나면서 나는 이 시간을 내가 좋아하거나 원하는 것을 찾고 시도하는데 쓰고 있다.
그동안 초원을 혼자 걸어보니 어려움이나 위기가 많이 있었지만, 시행착오는 교훈이 되었고 상처는 약이 되었다. 이제는 아내와 지혜를 모아 함께 걷고 있으며, 우리의 삶이 아이에게도 참고가 된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