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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미스트 Feb 02. 2022

집안 곳곳은 나의 실수들로 채워져 있었다.

무소속 생존기

    월급을 받는 직장생활과 달리 자영업(1인 법인)은 수입이 일정하지 않다.

 

   월급생활을 주식에 빗대어 ETF라고 한다면, 자영업(1인 법인)을 운영하는 것은 주가가 들쭉 날쭉한 개별주에 가깝다.(상장회사도 아니니 잡주에 가깝다고 해야 할까?) 자영업은 수입이 풍요롭기도 하지만, 때로는 갑작스러운 추운 겨울을 알 수 없는 기간 동안 견뎌내야 한다. 풍요로울 때를 기준으로 산다는(소비하는) 것은 즐겁지만, 겨울이 찾아왔을 때 풍요로울 때의 소비습관을 버리지 못하면 그 겨울은 유독 더 춥게 느껴진다.


   내가 생각한 가장 좋은 방법은 경제적 자유를 얻을 때 까지는 자존감을 해치지 않을 정도로의 소비 수준을 지키며, 생활 규모를 작고 간소하게 가져가는 것이다.


   간소한 삶을 시작한 것은 아마도 2017년쯤이다.


   가격에 상관없이 사들이는 물건, 자동차, 맛집 심지어 파인 다이닝에도 돈을 아낌없이 쓰는 나의 모습과, 일에 정신적 육체적으로 힘들어하는 상반된 내 모습이 어딘가 잘못됨을 느꼈던 것이 발단이었다. 물론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산 물건이었다. 하지만 물건들은 이내 필요 없음의 정체를 드러내며 집안의 공간을 차지하고, 처치 곤란으로 변해 버렸다. 사람이 사는 공간에 물건들이 번식하며 살고 있었다. 그리고 대출을 더 발생시켜서라도 더 큰 평형의 집으로 이사를 고려하기 시작했다.


   고생하는 나에게 주는 선물이라며 샀던 '유지비 따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3500cc 가솔린 수입 SUV'는 '유료'주차장에서 웅장한 자태를 뽐내며 대부분의 시간을 주차칸에서 쉬고 있었다. 맛있게 먹었던 그 많은 음식들은 차라리 블로깅이라도 했다면 아마 파워블로거가 되었을 수도 있었겠지만 나는 사진조차도 거의 남기지 않았다.


   일이 막상 힘들다 힘들다 하면서도 이런 것들이 나에게 편리함과 즐거움 그리고 활력을 준다고 자조했다. 하지만 그동안 일에 쏟은 나의 에너지와 시간은 일회성 비용 또는 무자비한 감가상각과 함께 사라졌다. 그리고 그만큼 다시 벌기 위해 나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가족을 두고 집을 나서야 했다. 정말 편리하고 즐겁고 활력을 주는 그런 것들일까?


   그래서 그만 두기로 했다.


   결혼 전에 18만 키로 달린 수동변속기 새 차(주요 부품을 거의 다 바꿨으니)에도 큰 불편함 없이 나름 행복했었는데,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 18만 키로 수동변속기 차로 만족 기준을 돌려놓고 다시 생각했다. 내 삶은 기본적인 것(이동수단)에 만족하지 않고 끝없는 옵션을 추구하고 있었다. 내가 스스로 멈추지 않는다면 욕심은 결코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나도 나이가 들어가고 있고, 언젠가 노동소득은 줄거나 중단될 것이며, 결국 필수적이지 않은 것들과는 이별할 수밖에 없음을 깨달았다.


  집안 곳곳은 나의 실수들로 채워져 있었다.


   눈에 보이는 필요 없는 물건부터 비우기 시작했다. 옷부터 시작해서 그릇, 안 보는 책, 물건들, 필요하다 생각했지만 필수품이 아닌 것들은 조금씩 그리고 과감하게 내다 버렸다. (아름다운 가게에 기부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최근에야 알았다.) 깊은 구석에 박혀있는 바람에 다시 산 물건들이 꽤 있었다.


   자동차를 처분하고 출퇴근을 위해 버스를 타기 시작했다. 옷은 최대한 단순하게 입고, 웬만한 곳은 걸어 다녔다. 관공서 등의 외부 볼 일은 바쁘면 버스나 택시를 탔고, 그게 아니라면 한여름에도 양산을 쓰고 걸어 다녔다. 프린터 AS 받으러 버스를 타고 왕복 두 시간을 다녀온 적도 있다. 급할 때 막 택시 타고 다녀도, 차를 운용하는 것보다 무조건 저렴했다. 솔직히 저렴함보다 홀가분함에 그런 불편함을 더 즐겼던 것 같다.


   운전하고, 주차할 곳을 찾는 일련의 행위들에서 벗어나 보니 오히려 차를 몬다는 것이 시간과 에너지의 소모가 상당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차에서 내려 주차를 하지 않고 건물로 들어가는 것이 무척 편리했다. 회장님들이 운전을 안 하는 이유가 있었다. 현재는 코로나 시국이라 다시 차를 구입하여 타고 있지만, 차 없이 출퇴근하던 몇 년은 보기완 다르게 유익한 점이 많았다.




   생활 규모를 줄인 후 1년 정도 지나니 집도 생각도 몸도 굉장히 슬림해졌다. 고정지출을 줄여나갈 때마다 마음이 점점 더 가벼워졌다. 꼭 벌어야 하는 수입이 예전보다 크지 않으니, 마음에도 그리고 가정에도 평화와 여유가 찾아왔다. 그 당시에 번아웃과 우울증 뿐만 아니라 공황 증세도 있었다. 수고스러웠던 1년이라는 시간이 생활비를 대폭 줄였을 뿐만 아니라 나의 고통을 많이 치유해주었다.


   그때 마침 사업에 겨울이 찾아왔지만, 어려운 시기를 무난히 넘길  있었다. 아직도 퇴근길 버스 창밖을 보며 속으로 ' 다행이다'라는 말을 떠올렸그때가 잊히지 않는다. 그때부터 간소한 삶에 더욱 믿음을 갖게 되었다. 그런 삶에 적응해 가던  '파이어'족이라는 표현을 뉴스 기사에서 우연히 읽게 되었다.


출처:한국일보


    은퇴를 두려워하기보다, 기꺼이 전략적으로 준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보통 사람들에게 은퇴와 수입 절벽이 두려운 존재였다면, 이들은 오히려 은퇴를 새로운 삶의 시작, 주체적인 삶의 시작으로 여기는 듯했다. 필수소비를 최소화하고, 비 필수소비로 얻는 만족을 내려놓기로 한 나의 삶이 파이어족이라는 단어와 연결되기 시작했다. 노동소득에서 자본소득으로의 전환을 꾀하는 경제적 자유 Financial Independance의 방법은 2019년에 ‘파이어족이 온다’라는 책을 읽은 것을 시작으로 현재에도 진행되고 있다.




   최근에 이사를 하며 한 1톤은 버린 것 같다.


   생활의 군더더기를 걷어내고, 간소하게 살기 위해 노력한다. 간소한 삶은 보릿고개와 추운 겨울에도 마음의 평화와 여유를 주며, 경제적 자유를 더 빨리 만날 수 있게 해 준다고 믿는다. 나는 이런 과정을 통해 내가 생각하는 삶의 본질(자유)을 더 빨리 즐기려고 한다. 필요하지 않은 소비는 나의 자유를 늦출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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