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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연 Sep 17. 2020

케이크가 나에게 의미하는것

 


베이킹을 하게 되면서 알게 된 것 중 한 가지는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은 생각보다 디저트, 케이크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단 것, 짠 것은 당연히 맛있는 것이라고 믿어온 어린아이 때부터의 패러다임에 지각 변동 같은 이 현실은, 어른이 되어서도 종종 느끼는 충격이었다. 하지만 베이킹을 시작하고 사람들에게 케이크와 쿠키를 나누어주면서 더더욱 많은 이들이 그렇다는 것. 물론 나이가 들어가면서 사람의 입맛이 변하니 함께 나이 드는 내 주변 사람들도 변하는 것이겠지. 그래도 나를 골치 아프게 하는 질문, 단맛은 인간의 혀가 본능적으로 좋아하는 느낌이 아니라는 것인가? 지금도 그것에 놀라움을 느낀다.


 나에게는, 나를 답답하게 하거나 뭔가 거슬리는, 또는 이해 안 되는 상황에 대해 최대한 표현하고 불편해하며 내가 그것이 왜 마음에 안 드는지, 저 사람은 왜 저렇게 행동하는지 그 이유를 생각하는 것으로 그 뾰족한 감정을 완화시키는, 일종의 내 감정 보호 기재가 있다. 부정적 시각을 긍정적 사고로 바꾸려 노력하는 것이다라고 잘 포장할 수도 있겠지만 실은 그런 것은 없고 그냥 '피하지 못한다면 나라도 보호하자' 전략.

 누가 '제가 워낙 단 걸 안 좋아해서요'라고 말하면 괜스레 예민해지고 베베 꼬인 위화감을 느낀다. 날 이상하게 생각하려나? 저 사람은 왜 단 것을 싫어할까, 트라우마가 있나, 아니면 그냥 자라오면서 단 맛을 자주 접하지 않아서 그냥 낯설어하는 걸까, 아니면 그냥 맛을 모르는 건가. 이해가 안 되는 일에 대해 보통 나 자신을 납득시키기 위한 해결책을 찾아내고는 하지만 이건 정말 모르겠다. 왜 안 좋아하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 그래서 여전히 이상하고 신기하다. 뭔가 본능을 거스르는 독특한 사람처럼 느껴진다고 할까. 이런 나에게 '달지 않고 맛있다'는 말만큼이나 모순적인 말이 또 있을 리 없다. 버터와 설탕이 섞이고 동그란 모양으로 구워진 후 또 버터와 설탕이 섞인 크림으로 꾸며진 커다란 원형 케이크. 어떻게 싫은 수 있지...?





  한때는 누구나 디저트를 좋아하는 건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여 보려고 하던 때가 있었다. 그러자 세상은 너무 어두워졌고, 내가 나이를 들어가며 배우는 사람과 세상에 대한 찝찝한 하나하나의 감정들처럼, 내 정신에 오염이 생겼다고 느껴졌다. 그래서 차라리 나와 같은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마음을 집중하기로 했다. 사람은 복잡하고 지능적이니 몇 개의 항목으로 유형을 분류할 수 없지만 이유나 배경이 어찌 되던 디저트를 좋아하는 우리의 본능은 닮아있으니, 종종 세상을 정면으로 받아들이기 싫을 때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내 종족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괜찮다고 느꼈다. 단지 내 종족이 나와한 편임을 좀 더 분명히 알려줬으면 좋겠다. 그냥 봐서는 잘 알 수가 없다.

 단 것이 먹고 싶을 때(당 당길 때) 그냥 편의점에 가서 아무 군것질거리를 고르면 된다. 케이크에 대한 구체적 감정이 있다면 달라진다. 단순하게 케이크가 먹고 싶다는 것은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얼그레이 케이크가 먹고 싶은 것과 당근 케이크가 먹고 싶다는 얘기는 다른 얘기고, 초콜릿 케이크와 레드 벨벳도 서로 매우 다른 감정이다. 나의 경우, 심하게 스트레스받은 날엔 진한 초콜릿 케이크가 먹고 싶고, 세상이나 사람들에게 관대하고 싶을 때 딸기 케이크를 먹고 싶다. 단순한 감정에 충실하고 싶을 땐 파운드케이크가 생각난다.

 유치하지만, 케이크 좋아한다고 하면 그 사람과 즉각적 유대감이 생김을 부정할 수 없다. 그래서 어떤 케이크를 좋아하는지, 어떻게 먹는 것이 좋은지, 어떤 이유에서 먹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정말 순수하게 즐겁고 행복하다. 케이크에 대한 사랑은 서로 비슷한 이유로, 또는 다른 이유로 생겨난다. 개인에게 케이크는 어떤 의미이고 기분일까? 때로는 맛보다는 케이크가 가진 의미가 중요한 경우도 있다.  형제자매가 많은 집에서 자랐다면 일 년에 하루 나만을 위해 존재하는 어떤 것일 수도 있고, 살면서 여유가 없었다면 나를 위한 달콤한 사치가 될 수도 있겠다. 한동안 알고 지내던 사람과 처음으로 디저트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 사람의 케이크 취향을 이해하게 되는 순간들이 그 사람에 대한 나의 이해도가 달라지고, 어디선가 그 케이크를 보면 그 사람이 생각나기도 한다.




 케이크에 대한 가장 오래된 나의 기억은, 물론 사진을 통해 지닌 기억이지만, 6살 생일 파티의 케이크가 아닐까 . 미국에 살았던 때라 생일 케이크도 전형적인 미국식 생일 케이크였다. 대형 슈퍼마켓에서 파는 직사각형의 버터크림 케이크였는데 윗면에는 101마리 달마티안의 캐릭터 그리고 Happy Birthday (내 영어 이름)이라고 쓰여 있었다. 하얀 바탕에 핑크가 섞인 테두리 파이핑과 강아지 캐릭터 그림, 그리고 모두에게 나눠주고도 내가 충분히 먹을 수 있는 크기 까지, 그야말로 완벽한 케이크. 또 다른 기억 하나는 어릴 적 미국 생활을 마치고 돌아와 (미국 생활중 한국을 잠시 방문했었는지도 모른다) 이모네 집에서 친척 동생과 놀고 있던 날이었는데 내 생일이었던 것 같다. 누군가 케이크를 꺼내 나에게 선뵜는데, 오래된 한국식 버터 케이크이었다. 어설픈 조각들 같은 기억이지만 유일하게 기억나는 포인트는 동그랗고 빨간 체리 젤리 장식 포인트였다. 그것이 기억나는 이유는, 내가 눈의 희 둥그레 져 내 앞의 케이크를 바라보는데 순식간에 '체리 내 거!' 라며 그 젤리를 채가서 자기 입에 쏙 넣어버렸다. 당연히 나는 통곡을 하고 울었다. 내 케이크에, 그것도 가장 중요한 젤리 장식을 그렇게 얄밉게 채가다니, 그때 받은 충격이 지금까지 생생하다. 한국 집 특유의 장판 바닥과 조금은 휑했던 방과 약간은 어둑한 조명과 낮게 드리워진 햇빛 까지. 거기서부터 케이크에 대한 집착이 생겨난 걸까? 이런 에피소드 말고도 작은 부스러기처럼 남아있는 케이크에 대한 잔상들이 있다. 할아버지와 신라호텔(아닐 수도 있지만 어떤 호텔이었던 것 같다) 내 로비의 라운지에서 어른들은 차를 시키고 나는 케이크를 시켜주셨는데, 웨이트리스가 트레이에 담긴 음료를 차례로 내주던 중 너무 신이 난 내가, 아직도 트레이에 있던 케이크 접시를 얼른 낚아챘다. 할아버지가 나무라셨던 기억이 난다. 작고 네모난 케이크에 아마도 모카 크림이었고, 당시 특유의 젤리로 그려진 꽃 장식이 있었다. 재밌는 것은 맛을 보고 나서는 어린 마음에 '윽 내가 원한 것은 이런 맛이 아니었는데'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이미 그때부터 한국 베이커리에 대한 아쉬움이 시작된 것일까?



   케이크로 인해 당황할 수 있다는 것도 꽤 오래전에 알았다. 고등학교 때였던 것 같은데, 학원 선생님의 생일을 위해 학생들이 케이크를 준비했는데, 케이크를 책임졌던 친구가 고구마 케이크를 준비했다. 거기서 받은 충격이 아직도 생생하다. 생일 케이크에 고구마 케이크라니..? 그 당시 우리가 달리 어떤 케이크를 고를 수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상식적으로 고구마 케이크는 생일 당사자에게 무례할 정도로 그 자리에 어울리지 않은 선택이 아닌가? 노르스름한 가루가 덮이고, 제과점의 로고가 박힌 이슬 맺힌 납작한 초콜릿 장식(먹으면 혓바닥을 왁스로 코팅하는 그런)이 올려진, 조금 차디찬 무스 같은 고구마 케이크와 그것이 놓여있던 책상, 그 학원 교실의 조명과 공기가 생생하다. 다음으로 충격받은 생일 케이크 선택은 티라미수였고 마지막으로는 다름 아닌 내 생일날 누군가가 사 온 청포도 타르트였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케이크의 모습은 접시 위에 놓인 작은 조각 케이크는 아니다. 인색한 45도 각도의 뾰족한 코너 말고, 커다란 홀(whole) 케이크의 모습. 한 조각 정도는 빠져 있어도 괜찮다. 다르게 생긴 이런 케이크들이 불규칙적으로, 하지만 굉장히 치밀히 게도 보게 좋게 차려져 있는 모습은 좋은 것을 넘어 나를 겸손하게 만드는 숨 막히는 대자연의 풍경 같기도 하다. 베이커리가 딸린 카페나 레스토랑에 갔을 때, 전면에 병풍처럼 펼쳐진 케이크와 디저트들은 생각만으로 가슴속이 벅차오른다. 웨이팅 스태프의 친절한 미소나 인사보다 더 행복한 환영 인사가 아닐까. 내가 레스토랑이나 카페를 연다면 입구들 들어서자마자 의자와 테이블이 보이기도 전에 디저트로 가득 찬 테이블을 전면에 내세워 오는 이를 격하게 환영할 것 같다. 그런 광경은 적어도 나에게는 '나는 당신이 행복하길 바란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집 거실이 이렇다면 매일매일이 행복하겠지. 영양과 칼로리는 중요하지 않다. 가득 찬 디저트 테이블을 바라보면 수많은 선택지 중 그 어떤 것도 틀린 답이 아니라는 확신. 모든 일이 다 잘 될 것은 기분. 내 삶의 작은 고충 정도는 해결되는 그 기분을 케이크가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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