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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연 Aug 16. 2020

베이킹을 안 한 한 달

 지난 3주가 좀 넘는 시간 동안 감당하기 벅찬 변화가 일어났다. 너무나 시원시원하게 내려 버린 내 인생의 결정들로 인해 나는 망설일 시간이나 느릿한 과정을 즐길 새도 없이 여러 가지 일을 겪었는데, 이런 방식의 삶 전개에서 좋은 점은, 걱정하며 심사숙고하는 마음의 불편함을 겪지 않아도 삶에 변화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이 상황에 대해 고민하지 않고, 두껍고 단단하게 풀과 나뭇가지가 뒤 엉킨 열대의 정글 속을, 한 손으로 든 전기톱으로 가르며 나아갔다. 하지만 이 시간 동안 굉장히 피곤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결혼을 하고 강아지를 입양했다. 살을 더 붙이자면, 또는 요약하자면, 별 다른 행사 없이 혼인 신고에 반지까지 맞추는 것으로 결혼식을 대신하고 몇 년간 함께 고민만 하던 반려견 입양을 했다.

 이 결혼의 특수성 때문에 단, 장기적으로 처리해야 할 일들로 몸과 마음이 바빠졌고, 새로 온 강아지도 훈련시켜야 하고, 이렇게 마음이 팔려 있는 일이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성격 때문에 베이킹은 뒷전이 되고 말았다. 신경 쓰이는 일 이외에는 크게 신경 쓰지 못하고 오로지 한 가지 일만 해치워야만 하는 피곤한 성격을 가진 탓에, 내 시간의 대부분은 골치 아픈 일을 헤쳐 나는데만 쓰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한 동안 베이킹을 안 하면서 약간 불안한 마음이 들었던 것이 사실이지만, 이내 '어차피 나를 위해 하던 일이고, 내 마음에 여유가 있을 때 하면 되겠거니'하고 언제나 펼쳐져 있던 베이킹 노트를 닫아 버렸다. 내가 괴롭도록 바쁘다는데 하던 허튼짓 안 한다고 뭐라고 할 사람도 없겠지. 마음이 불편하다 보니 내가 그토록 혐오하는 뉴에이지 철학/ 처세술서의 제목 같이 들리는 말들은 내 자신에게 하게 되었다. '치열하지 말 것', '아무것도 이루지 않아도 된다', '내려놓기'..... 그러다 어느덧 정말 무던해지고 그냥저냥 현실에 만족하는 나를 발견했다.

*첨언하자면, 저런 제목의 처세술서 읽는 사람 치고 진짜로 열심히 살아서 지쳐있는 사람은 없고, 단지 자신의 게으름과 목표가 없음에 대한 위로와 정당화를 위해 찾고 있는 것뿐이다. 그런 것을 용인하는 책들의 존재가 참 거슬린다. 

 하지만 그 무던함은 땡볕에 놔둔 버터크림 보다 빨리 사그라들었다. 참고로 버터크림은 생각보다 빨리 녹지 않는다. '아 빨리 뭔가 만들어야 하는데' 하는 생각보다는 대체적으로 신경질적인 마음과, 시간이 지나고 있음을 느끼는 조급함에서 그것을 알아챘다. 처리해야 할 일들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분명히 어떤 면에서는 현실적인 고충들 때문에 내가 할 일을 못하고 있다는 불만이 컸다. 나의 결혼 생활을 국가로부터 인정받고 함께 살기 위해 수많은 서류를 준비해야 하는 것에서 국경과 국적이라는 자격과 분류가 개개인에게 범하는 폭력성이나 인권에 대한 침해.. 뭐 이런 것들 때문에 쿠키 하나도 못 만들고 있는 게 아니냐는 드라마틱한 감정도 있었다.

 부정적 감정이라는 것이 참 위험한 것이, 베이킹 못하고 있다고 이렇게 불편해하면서도 이것만 지나면 실컷 만들어봐야지 하는 그런 디저트 리스트를 짜는데도 의욕을 잃었다. 보통은 노트에 수 십 가지 아이템을 적어 놓고 이걸 언제 다 만들어보지- 하며 설렘과 불안으로 꼬이는 위장을 붙잡고 쿡북이 꽂혀있는 책꽂이 주변과 부엌 근처를 이리저리 배회한다. 하지만 이 시간이 지나면 이것도 만들고 저것도 만들어야겠다는 약속들이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싶을 때, 그땐 진짜 걱정을 해봐야 하는 것이 아닐까.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굳이 하려고 크게 애쓰지 않아도 된다고 가지려 했던 불안한 마음이, 결론적으로는 베이킹을 통해 채워져야 함을 알게 된 것이다.

  가족들과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가졌던 식사 자리에, 그래도  케익은 있어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에 급하게 이단 케이크를 만들어 봤다. 웨딩 케익이니까. 믹서를 덜 쓰면서 만들 수 있는 케익을 만들고 싶어 초콜릿 케익으로 선택했고 1단은 일반 케익, 2단은 남편도 먹을 수 있는 글루텐 프리 케익으로 만들었다. 두 시간 안에 버터크림을 만들고 장식까지 해야 했던 탓에 디자인은 투박하지만 귀엽게 하는 것으로 했다. 나쁘지 않게 구색도 맞췄고, 무엇보다 모두들 맛있게 잘 먹어주었다. 가장 뿌듯했던 것 역시 남편도 자신의 웨딩 케익을 먹을 수 있었고, 굳이 글루텐 프리 식단을 하지 않는 가족들도 밀가루 없는 케익에 만족했던 것. 심혈을 기울여 만들던 과거의 케익들에서 느꼈던 것 과는 뿌듯한 감정을 얻고 나니, 실은 그동안 좀 마음이 떠나 있던 케익을 또 만들어보고 싶어 졌다.

  케익에 대한 가장 큰 내 문제는 디자인의 동기 부여가 없다는 것이었다. 아무것도 없는데서 감정을 일으켜내서 케익을 장식하는 일은 정말 어렵다. 이런 컬러에 저런 파이핑이 들어간 케익을 만들어보고는 싶은데 단지 그게 구성이 예쁘다는 이유만으로는 쉬이 기쁜 마음으로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만드는데 이유나 목적이 있으면 생각 없이도 좋은 결과가 나오는데 그동안 그게 없다 보니, 시각적으로 기가 막힌 아이디어가 떠올라도 왜 해야 하는지 이유를 모르겠으니 실행으로 옮기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그동안 몇 번이고 스케치만 해 놓고 만들지 않았던 침대 시트 케익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우리 집 강아지가 온 지 며칠 되지 않았을 때 큰 맘먹고 침대에 올려놔 주었는데, 우리가 자리를 비운 한 10초 사이에 소변을 봐 버렸다. 소변 훈련이 되어있던 강아지라 그냥 어이가 없고, 망설임 없이 시트를 벗겨내고 세탁기에 집어넣은 뒤 바보 같이 웃고만 있는 강아지 얼굴을 보는 그 순간순간, ' 아 이게 앞으로 우리가 살아야 할 인생이구나' 싶었다. 강아지가 온 지 며칠 됐을 때 느꼈던 아뿔싸, 우리가 왜 그런 결정을? 라면 잠시 공황에 빠졌던 순간과는 다른 기분이었다.


 그것이 내 인생의 새로운 챕터를 여는 중요한 계기라고 느꼈고 이 케익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단순히 케익을 만들 아이디어와 동기 부여를 준 것뿐이긴 하지만, 나의 베이킹에 시시때때로 제동을 걸곤 했던 생각과 실행 사이 그 '목적'의 부재를 메꿀 방법을 조금 알게 된 것 같다. 그 간극을 메꿈으로써 내가 가졌던 베이킹의 공허함과 일종의 켕김(죄의식이라고 표현하기엔 내가 정말 지은 죄가 없어서) 없이 내게 떠오르는 이미지들을 구현해 낼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다음 단계는 조금 더 순서가 바뀌어서, 무형의 감정이나 의미가 비주얼화 되는 과정인데, 이 학습은 또 언제 될 것인지 기다려지기도, 또 막막하기도 하다. 일단 이유 없이 적어 내려가는 상상들은 계속해서 해보기로 했다. 이렇게 또 사건이 터져 실행에 옮길 용기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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