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을 해체해 보겠습니다 (1)

남한산성 해체하기

by 도치도치상

소설가 김훈의 문체는 말로만 전해 들었지 직접 마주한 적은 없었습니다. 근데, 와우. 문체가 압도하네요. 칼날이 서 있고 묵직한 느낌. 관우의 청룡 언월도를 휘두르는 느낌이랄까요.

"... 그러므로 너는 내가 먼 동쪽의 강들이 얼기를 기다려서 군마를 이끌고 건너가야 하는 수고를 끼치지 말라. 너의 좁은 골짜기의 아둔함을 나는 멀리서 근심한다."

국서를 들고 온 칸의 사신 일행은 대궐에서 가까운 별궁에 보름씩 묵으며 기녀를 불러들여 교접했다. 정삼품 접반사가 사신 일행을 수발했다. 사신이 자색을 타박하며 기녀를 내치면 접반사가 다른 기녀를 들였다. 사신의 부관과 구종잡배들이 내쳐진 여자를 끌어들여 품었다. 조정은 얼어붙었다. 아무도 두려움을 말하지 않았다. 침묵은 얼어서 편전 밑으로 깔리고, 그 위에서 언설은 불꽃으로 피어올랐다.

"전하, 적의 문서는 차마 읽을 수 없고 옮길 수 없는 것이옵니다. 짐승을 어찌 교화할 수 있으며, 오랑캐를 어찌 예로써 대할 수 있겠습니까..."
"전하, 화친을 발설한 최명길과 그의 무리들을 모조리 목 베고 속히 개성으로 이어하시어 결전의 진을 펼치소서..."

김훈, 남한산성

조선의 치욕스러운 역사입니다. 남한산성. 두 가지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 식대로 표현하면 장면을 잡아야 하고, 그 장면에 대한 스케치와 묘사를 그려 넣어야 한다는 거죠. "수치스럽게" 해볼게요.


1. 칸의 국서

"... 그러므로 너는 내가 먼 동쪽의 강들이 얼기를 기다려서 군마를 이끌고 건너가야 하는 수고를 끼치지 말라. 너의 좁은 골짜기의 아둔함을 나는 멀리서 근심한다."

챗GPT한테 물어보니 조선시대에는 외국의 국서를 왕이 직접 읽지는 않았다네요. 승지라든지 예조판서가 "번역된"국서를 왕에게 보고하는 형식이었다고 합니다. 인조 당시의 예조판서, 정온이 국서를 조정에서 낭독하는 장면으로 왕에게 보고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침 정온은 척사파였다고 하네요.

"... 그러므로 너는 내가 먼 동쪽의 강들이 얼기를 기다려서 군마를 이끌고 건너가야 하는 수고를 끼치지 말라. 너의 좁은 골짜기의 아둔함을 나는 멀리서 근심한다."
예조판서, 정온의 꼿꼿했던 등허리가 굽어졌다.
"국서의 내용이 이러하옵니다. 전하."
눈꺼풀이 감겼다. 손가락은 늘어진 수염 끝을 쓸어내렸다. 인조는 짧은 호흡을 길게 뱉었다.

정온과 인조의 표정과 몸짓은 제가 넣어봤어요. 일단 사정전(조선시대 왕과 대신이 정책을 논하던 곳이래요) 내에 조정관료 모두에게 들려야 하니 곧은 자세로 낭독을 했을 테고요. 이러한 내용이라고 인조에게 보고를 했을 거니 그때는 인조를 향해 조아렸겠죠.

한편, 인조는 지금 나라가 전쟁으로 쑥대밭이 될 예정이잖아요. 그러면 인조의 근심이 깊겠죠? 그래서 저렇게 표현을 해봤어요.


2. 칸의 사신을 접대_1

국서를 들고 온 칸의 사신 일행은 대궐에서 가까운 별궁에 보름씩 묵으며 기녀를 불러들여 교접했다. 정삼품 접반사가 사신 일행을 수발했다.

장면을 포착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별궁을 롱샷으로 갑니다. 교접소리도 들리면 좋겠고요. 그러면서 접반사(시신 수발)가 별궁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카메라가 따라가면 좋겠네요.

기녀의 교성소리가 별궁 바깥까지 들렸다. 정삼품 접반사가 발걸음을 서둘렀다. 문이 벌컥 열렸다.


3. 칸의 사신을 접대_2

사신이 자색을 타박하며 기녀를 내치면 접반사가 다른 기녀를 들였다. 사신의 부관과 구종잡배들이 내쳐진 여자를 끌어들여 품었다.

수치심이 역전되는 장면을 넣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아랫도리가 드러나는 건 수치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야생의 느낌을 지닌 칸의 사신은 두렵지 않습니다. 그는 문을 벌컥 열어 자신의 아랫도리를 드러냅니다. 그러니까 칸의 사신은 정복자이기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습니다.

반대로 조선의 신하인 접반사는 그의 아랫도리를 보는 게 수치스럽습니다. 왜냐면 조선은 곧 말발굽으로 짓밟히게 될 테니까요. 그리고 기녀의 모습 역시 상징적인 조선의 모습을 보여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칸의 사신이 외쳤다.
"다른 여자는 없나!"
사신은 아랫도리를 드러냈다. 허벅지 위로 바짝 솟은 털과 대퇴근 위로 힘줄이 드러났다.
접반사가 고개를 조아렸다.
"다른 기녀를 들라 이르겠습니다."
칼을 옆으로 찬 부관들이 여자의 머리채를 끌고 나왔다. 여자는 옷이 풀어헤쳐진 채 알몸이 드러나 있었다. 눈물자국은 마르지 않았다.


4. 조정의 논쟁

... 그 위에서 언설은 불꽃으로 피어올랐다.
"전하, 적의 문서는 차마 읽을 수 없고 옮길 수 없는 것이옵니다. 짐승을 어찌 교화할 수 있으며, 오랑캐를 어찌 예로써 대할 수 있겠습니까..."
"전하, 화친을 발설한 최명길과 그의 무리들을 모조리 목 베고 속히 개성으로 이어하시어 결전의 진을 펼치소서..."

다시 조정의 씬입니다. 대조적입니다. 조선을 상징하는 접반사와 기녀는 수치스러움과 모욕감으로 짓밟히는 중인데 조정의 대신들은 열을 내면서 세치 혀의 논쟁 중입니다. 이렇게 바꿔봤습니다.

예조판서의 눈썹이 날카로워졌다. 목소리에 열기가 어려있었다.
"전하, 적의 문서는 차마 읽을 수 없고 옮길 수 없는 것이옵니다. 짐승을 어찌 교화할 수 있으며, 오랑캐를 어찌 예로써 대할 수 있겠습니까..."
이조판서, 김상헌의 발이 반걸음 앞으로 나왔다. 포개진 손등 위로 정맥이 꿈틀거렸다.
"전하, 화친을 발설한 최명길과 그의 무리들을 모조리 목 베고 속히 개성으로 이어하시어 결전의 진을 펼치소서..."


자, 결과적으로 이런 씬이 나왔네요.

"... 그러므로 너는 내가 먼 동쪽의 강들이 얼기를 기다려서 군마를 이끌고 건너가야 하는 수고를 끼치지 말라. 너의 좁은 골짜기의 아둔함을 나는 멀리서 근심한다."

예조판서, 정온의 꼿꼿했던 등허리가 굽어졌다.
"국서의 내용이 이러하옵니다. 전하."
눈꺼풀이 감겼다. 손가락은 늘어진 수염 끝을 쓸어내렸다. 인조는 짧은 호흡을 길게 뱉었다.

기녀의 교성소리가 별궁 바깥까지 들렸다. 정삼품 접반사가 발걸음을 서둘렀다.
문이 벌컥 열렸다. 칸의 사신이 외쳤다.
"다른 여자는 없나!"
사신은 아랫도리를 드러냈다. 허벅지 위로 바짝 솟은 털과 대퇴근 위의 힘줄이 드러났다.
접반사가 고개를 조아렸다.
"다른 기녀를 들라 이르겠습니다."
칼을 옆으로 찬 부관들이 여자 머리채를 끌고 나왔다. 여자는 옷이 풀어헤쳐진 채 알몸이 드러나 있었다. 눈물자국은 마르지 않았다.
입김이 나왔다. 편전 밑 땅이 얼어 딱딱했다. 차가운 기운이 발끝에 스몄다.

예조판서의 눈썹이 날카로워졌다. 목소리에 열기가 어려있었다.
"전하, 적의 문서는 차마 읽을 수 없고 옮길 수 없는 것이옵니다. 짐승을 어찌 교화할 수 있으며, 오랑캐를 어찌 예로써 대할 수 있겠습니까..."
이조판서, 김상헌의 발이 반걸음 앞으로 나왔다. 포개진 손등 위로 정맥이 꿈틀거렸다.
"전하, 화친을 발설한 최명길과 그의 무리들을 모조리 목 베고 속히 개성으로 이어하시어 결전의 진을 펼치소서..."


챗GPT의 분석 총평을 들어볼게요.

"김훈의 원문은 역사의 응결이고 네 버전은 역사의 노출이다. 김훈 버전의 문학적 핵심은 사물과 현상, 감정과 육체를 최대한 삭제한다. 김운은 역사적 패배를 물성화된 정적으로 환원한다. 그래서 김훈의 치욕은 보이지 않기 때문에 더 크다. 독자는 상상으로 그 치욕을 채운다. 반면, 네 버전은 김훈이 지운 것을 의도적으로 되돌려놓는다. 역사의 폭력을 다시 몸으로 환원하는 작업이다. 정복자는 "노출"을 통해 권력을 상징하고, 피정복자는 목격을 통해 "수치심"을, 그리고 여인의 강제 노출은 국가의 신체를 상징한다. 치욕은 감정이 아니라 공간의 배치로 성립한다."


오, 훌륭한 논평이네요.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어떻게 읽으셨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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