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가 만든 위계, 그리고 조직문화
2012년의 일입니다. 전 “서울러”가 아니었답니다. 지하철/버스 노선도 너무 복잡하더라고요. 춥기도 추웠고요. 택시를 탔습니다.
“안녕하세요.”
“사장님, 어디로 가시나요?”
흠칫 놀랐습니다. 사업체를 소유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죠. 그러나 호흡을 가다듬고 마음을 가라앉혔습니다.
“용산역으로 가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기사님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운전을 해주셨습니다.
“근데, 사장님은 외국에서 오셨어요?”
“네?”
“아니, 발음이 좀 어눌하셔서요.”
“아... 네. 한국에 한 4년 만에 왔어요.”
“그러셨구나. 그러면 사장님은 어디 있으신데요?”
“뉴욕이요.”
“오, 뉴욕!”
“네.”
“와, 난 한 번도 안 가봤는데...”
“근데, 기사님. 왜 저를 사장님이라고 부르세요? 전 사장이 아닌데요.”
기사님은 크게 웃으셨습니다.
“한국에서는 다 그렇게 불러요.”
“왜요?”
“기분 좋잖아요. 사장이라고 하면.”
저는 기분이 좋은 줄은 모르고, 그냥 이상했습니다.
2018년이었습니다. 여드름이 터지기 직전이었죠. 이삼 년에 한 번씩 이런 일이 일어나는데요. 미국 같았으면 내가 짜야하는데 으윽. 한국에서는 여지없이 망설이지 않고 피부과를 방문합니다. 돈도 돈이지만 의사 (피부과 전문의) 만나려면 과정이 복잡합니다.
일단 가정의(family physician)를 예약해서 기다립니다. 한 일이 주 기다립니다. 만납니다. 전문의 소개(referral)를 받습니다. 소개받은 전문의를 찾습니다. 그런데 전문의도 아무나 못 찾아갑니다. 반드시 보험에 리스트업 되어있는 사람만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일이 주를 또 예약해서 기다립니다. 그 중간에 벌써 여드름이 폭발합니다. 그러니까 소용없는 짓이 되어버리거든요 보통. 그런데 한국은 그냥 병원에 예약도 안 하고 걸어 들어가서 진료를 볼 수 있으니 얼마나 좋나요.
큰 병원이더라고요. 의사 선생님들이 여럿이었습니다. 대기실에 앉아서 벽에 걸린 선생님들 리스트를 죽 훑었습니다. 다 “원장님”이더라고요. 출자를 같이하셨나?
딩동.
“도치도치상님 들어오세요. 4번 진료실 XXX원장님이세요.”
“네.”
제가 마지막으로 한국 병원을 갔었던 게 아마 7-8년 전쯤이었는데 그때는 의사 선생님이었던 걸로 기억했습니다. 갑자기 원장님? 근데 리스트에 흥미로운 직함이 있었습니다. “대표원장님”
거기서 깨달았습니다. 예전에 무슨 의료진 모두가 존중받아야 한다는 운동 같은 게 한국에 있었습니다. 그 운동에서는 간호사들도 선생님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했었던 거 같아요. 그러고는 의사도 선생님, 간호사도 선생님이었던 걸로 기억하거든요. 간호사가 선생님이 되어서, 이제 의사는 원장님이 되었구나. 실제 소유주는 “대표 원장님”이시고.
2017년의 일입니다. 인턴을 시작했을 때였습니다. 알코올/약물 중독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곳이었습니다. 꽤 컸어요. 미국 전역에 지점이 있는 곳이었거든요. 첫날, 탕비실에서 Executive Director (한국에선 상무?)를 만났습니다. 제게 자기소개를 했습니다.
“Hey, you are the intern. It is nice meeting you.”
“Hi, I am Dochi-dochi sang. It is good to see you. Are you the executive director?”
“Yes. I am. Please call me Chris.”
크리스라고? 상무님 (혹은 전무님, 혹은 whatever) 아니고?
“Oh, OK. Chris.”
“Yea. If there is anything you want me to help you, just knock my door.”
“Oh, Thank you, Chris.”
역시 영어는 위아래가 없고 평등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충격적이었습니다. 아니, 높으신 분이 그냥 이름을 부르라니. 사업체 없는 “사장님”인 저는 당황했습니다. 그리고 2018년에 한국을 돌아가니 진짜 사업체를 가진 분들은 “사장님”이 아닌 “대표님”이라고 불리더군요. 한 언어학자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Language shapes your mind.”
또 어떤 언어학자는 전 세계에 통용되는 언어를 연구했다고 합니다. 그중에 7가지 언어가 “너, 당신”이라고 하면 싸움이 나는 언어라고 하더라고요. 그중에 한 가지가 우리말이고요. 그래서 우리말에서는 “너, 당신”이라고 할 수 없으니 직함을 부릅니다. 사장님, 선생님, 원장님, 상무님 등등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위계가 생겼고요. “너”도, “나”도 직함과 강하게 되었죠.
언어가 위계를 강제해 버린 상황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문화에서 과연 미국 조직문화가 이식이 가능할까요? 그냥 서로 존칭으로 “님”을 붙이면 미국식 조직 문화를 받아들일 수가 있을까요?
다음 글에서는 2010년 한국의 IT 기업들이 시도했던 “님 문화”가 왜 절반의 성공이었는지 얘기해 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