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영어에 숨결을 불어 넣어준 그들
말하기, 쓰기 중심으로 영어 공부 방법을 바꾸려면 전제 조건이 있다. 내 영어를 듣고 읽어줄 상대방이있어야 된다. 읽고 듣는 Input 중심의 영어 공부는 시중에서 사 먹는 밥과 비슷하다. 여러 식당 메뉴 중 내 입맛에 맞는 것을 고르면 된다. 선택권은 오롯이 내게 있다. 정 싫으면 먹다가 그만둘 수도 있다. 하지만 말하고 쓰는 영어 공부는 다르다. 일기를 제외하면 내가 쓰는 말과 글은 누군가 읽고 들어줄 때 비로소 생명력을 가지게 된다. Language exchange는 내 영어를 들어줄 상대방을 찾는 것부터 시작된다. 좋은 Language exchange 친구를 만나기 위해서는 서로 취향과 수준이 맞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기 어렵다. 내 Language exchange 친구는 뉴질랜드 남섬의 코니, 북섬의 아론으로 귀착되었지만 모든 인생사와 마찬가지로 여기에는 우연과 필연의 요소가 적절히 섞여 있다. Language exchange 파트너를 만나더라도 정말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기는 위해서는 운도 따라줘야 한다. 이런 면에서 나는 운이 좋았다.
처음에는 관심이 가는 상대방에게 메일을 주고받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러다가 신뢰가 쌓이면 WhatsApp이나 카카오톡 같은 메신저로 자리를 옮겨 채팅이나 프리 토킹으로 넘어간다. 온라인 채팅은 이메일과는 전혀 다르다. 이메일은 템포가 느리다.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사전이나 번역기의 도움도 받으면서 생각을 정리해 글로 옮길 수 있다. 하지만 온라인 채팅은 순발력이 필요하다. 마치 테니스 코트에 들어선 느낌이다. 경기를 계속하기 위해서는 매 순간 끊김없이 공을 넘겨야 한다. 그냥 넘기기만 해서는 안 된다. 가끔 기교도 부려야 한다. 위트와 유머가 그것이다. 솔직히 내 영어는 경기를 즐길 수준은 아니다. 메신저 창에 뜨는 상대방이 보낸 메시지 하나하나가 나를 향해 날아오는 화살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다. 메시지를 읽기도 전에 또다른 메시지가 창에 뜬다.영어 채팅은 즐거움과 부담감, 흥분과 긴장이 교차하는 시간이었다. 메시지가 오면 반갑기도 부담스럽기도 했다.
난 채팅 상대를 50~60대에서 찾았다. 아무래도 공통 관심사를 끌어내기가 쉽다고 생각했다. 처음 상대는 20대 독일인 A와 60대 영국인 S였다. A와의 채팅은 내가 매달리는 입장이었다. 그녀는 독일어,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까지 한다고 했다. 지금은 한국어를 배우는 중이라면서. 하지만 영어를 모국어로 쓰지 않은 그녀의 영어에서는 시쳇말로 버터 냄새가 나지 않았다. 대답도 그때그때 오지 않았고 대화의 깊이도 얕았다. 누구랄 것도 없이 차츰 대화가 뜸해졌다. S는 요양병원서 지내는 분으로 남는 것이 시간인지라 언제든 대화에 응해준다고 할 정도였다. 하지만 S가 쓰는 문장에는 마침표도 물음표도 없었다. 아마 우리가 실제 카톡에 쓰는 말도 비슷할 것이다. 그녀의 영어가 이상한 것인지 내가 수준이 못 미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뉴질랜드 남섬의 코니와 채팅을 처음 시작한 것은 S와 대화가 겉돌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코니는 나보다 1주일 앞서 Language exchange 사이트에 가입했다. 구미(歐美)와 달리 뉴질랜드는 우리나라와 시차가 3~4 시간 -
밖에 나지 않는다. 시차가 크지 않다 보니 서로 비슷한 신체 리듬으로 채팅이나 통화가 가능했다. 우리는 몇 번의 메일 후 WhatsApp으로 대화의 장을 옮겼다가 최종에는 카카오톡에 안착했다. 코니와 채팅할 때 케미는 영어로 말하자면, "Couldn't be better."였다. 어느 토요일에는 쉬지 않고 3시간이 넘도록 모니터 앞에서 채팅을 하다 보니 다리에 쥐가 난 적도 있었다. Language exchange를 매개로 만났지만, 우리의 언어는 영어였다. 코니의 한국어는 아주 기초 수준이었기에 한국어로 채팅은 무리였다. 하지만 나는 더 좋았다. 영어에 더 집중할 수 있어서
하루는 코니에게 S의 영어를 이해하기 어렵다는 말을 꺼냈다. 전후 사정을 말하고 S와 나누었던 최근 메시지를 복사해 그녀에게 감수를 요청했다.
"넌 도대체 몇 명과 채팅을 하는 거야?"
살짝 비난이 묻어있는 반응이라고 느꼈다면 나만의 착각일까. 코니는 S가 영국 사람이 맞느냐고 물었다. Linkedin에서 찾아보면 S는 영국인이라고 자신을 소개하고 있었다.
"S의 영어는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의 영어처럼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네 영어가 더 낫다. 혹시 몰라 친구 바바라에게 보여주며 의견을 물어봤는데 그녀의 생각도 나와 같았다."
내가 코니와 Language exchange 파트너를 넘어서 친구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아내의 열린 마음 덕분이었다. 아내가 조금이라도 불편한 기색을 비치면 난 언제라도 그만두고 다른 남자 파트너를 찾을 생각이었다. 만약 남편이 다른 여성과 일상사를 공유하면서 수시로 카톡을 주고받는다고 할 경우 - 물론 해외에 있는 사람이고 영어를 배우는 것이 목적이지만 - 불편해 하는 아내도 많을 것 같다. 이런 면에서도 나는 운이 좋았다.
코니와 대화가 다채로워지면서 가끔씩 Language exchange 하자며 오는 다른 메일은 모두 무시했다. 나는 스쳐가는 말상대보다 친구를 원했다. 코니는 넷플릭스로 다양한 한국 드라마를 접하면서 이웃 친구 바바라와 함께 한국 방문을 생각하고 있었다. 뉴질랜드는 인구가 500만 명 정도로 작은 나라이기 때문에 - 인구 측면에서 작다는 것이며 국토 면적은 약 남한의 2.6배로 작지 않은 나라다 - 자체적으로 영화, 드라마 같은 문화 콘텐츠를 만들기에는 한계가 있다. 문화 콘텐츠를 수입해야 하는 나라다. 한국의 커진 국제적 위상을 확인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만약 내가 채팅이 아니라 처음부터 통화를 시도했더라면 읽기, 쓰기에 비해 부족한 듣기, 말하기 실력으로 인해 코니와 깊은 대화를 나누는데 어려움이 컸을 것이다. 내 영어는 읽기 -> 듣기 -> 쓰기 -> 말하기 순으로 발전한 셈이다. 우리도 이제 일상에서 통화보다는 메신저로 간단한 내용을 주고받는 것처럼 코니와도 카톡으로 나누는 대화가 여로모로 편했다. 근무 중에도 자리에서 카톡 메시지를 주고받을 수 있었다. 당시 모셨던 O상무님은 내가 일과 중에 코니와 나누는 채팅에 대해 관대했다. 이런 점은 코니도 마찬가지였다. 여유가 있을 때는 일과 중에도 1~2시간씩 채팅할 때도 있었다. 영어 채팅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다.
코니와 나눈 대화는 가족 얘기부터 회사 동료 뒷담화까지, 우크라이나 전쟁부터 동아시아 지정학까지 다양했다. 어느 날 코니가 던진 말이다. "너 그거 알아? 요즘에는 너와 대화가 남편과 나누는 것보다 많네." 사실 나도 그랬다. 그렇게 코니는 Language exchange 파트너를 넘어선 친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