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형님, 아론입니다.

북섬의 타우랑가에도 오셔야죠.

by 돌밭

코니와 채팅이 일상으로 자리 잡은 후에도 다른 사람으로부터 Language exchange 하자는 메시지가 종종 왔지만 관심 밖이었다. 하지만 2022년 어느 늦가을에 받은 메시지는 단박에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뉴질랜드 북섬 타우랑가에 사는 그는 우리나라에서 3년 간 지낸 적이 있고 아내가 한국인이라고 했다. 지체 없이 메일을 보냈다. 메일을 받고 한번 더 놀랐다. A4 한 장 분량의 회신의 전반은 영어, 후반은 우리말이었다. 아론과 인연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1989년생인 아론은 코니가 사는 남섬 크라이스트처치가 고향으로 10대 초반에 가족이 북섬 타우랑가로 이사했다. 그는 고등학교 졸업 후 우리나라로 건너와 처음 1년은 서산시 대산읍에서 이후 2년은 대구에서 보냈다고 한다. 계명대학교 한국어학당에도 1년 6개월 다닌 그는 대구에서 지금의 아내 가영님을 만나 결혼해 딸 둘을 두고 있다. 딸 바보 아론의 첫째는 브리아, 둘째는 오클랜드 공항까지 아론과 함께 마중을 나온 제이드다. 가끔씩 아론이 보내주는 브리아, 제이드 모습은 귀엽기 그지없었다.


다운로드.png 아론의 집은 타우랑가 북서쪽 외곽 신흥주택가 "오모코라"에 위치한다


아론의 집은 북섬 베이오브플렌티(Bay of Plenty) 타우랑가 북서쪽 외곽 신흥주택가 "오모코라"에 위치한다.

Language exchange의 매력 중 하나는 우리나라였더라면 거의 가까워질 일이 없을 것 같은 사람과도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구 반대편에 사는 30대 중반인 아론은 나와 거의 스무 살 차이가 나지만 그 다름으로 우리는 가까워질 수 있었고, 코니는 나보다 세 살 많은 먼 나라 여성이지만 어쩌면 그 점 때문에 우리는 만날 수 있었다. 우리는 많은 점에서 서로 달랐지만 상대가 외국인이기에 열린 마음을 가지고 다가갈 수 있었다. 만약 아론과 코니가 우리나라 사람였다면 어림없을 일이다. 우리는 어떤 사람을 처음 만나는 순간 본능적으로 판단을 한다. 같은 나라 문화권일 경우 우리는 다양한 문화적, 언어적 코드를 활용해 그가 어떤 사람인지 순식간에 스캐닝하게 된다. 사진을 할 때 우리나라 사람의 피부색은 조금만 틀어져도 바로 어색한 것을 알아차리지만 다른 나라 사람들은 한참 어긋나게 표현되어도 눈치채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런 인식의 오류가 외국인 친구를 만날 때는 열린 마음으로 작동하는 것 같다. 우리나라는 친구 범위가 너무 좁다. 사전을 찾아보면 친구는 "가깝게 오래 사귄 사람"이라고 정의되어 있지만 현실에서는 거의 동년배로 한정되는 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친구의 범위인 듯하다.


"제가 어떻게 불러야 할까요?"

"아론님도 알겠지만 한국은 이름보다는 관계를 호칭으로 부르는 문화가 있죠. 형님이라고 부르면 어떨까요?"


그 후 아론의 한국어 메일의 첫 문장은 "안녕하세요. 형님."으로 시작되었다. 형님이란 호칭이 그렇게 다정하게 들린다는 것도 아론 덕분에 알았다. 우리는 영어와 한국어로 메일을 번갈아 주고받았다. 내 영어 메일은 아론이 교정해 주었고, 그의 한국어 메일은 내가 봐주는 식이었다. 간혹 교정본과 별개로 좀 더 한국어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도록 아론이 보내온 한국어 메일 전체를 내 스타일로 다시 써서 보내준 적도 있었다. 아론은 영어 메일과 함께 이를 본인의 육성으로 녹음한 파일도 같이 보내주기도 했다. 묵직한 저음의 듣기 좋은 톤이다. 명실공히 Language exchange였다.


그때까지도 나는 영어로 말해본 적이 거의 없었다. 코니와는 카톡으로 나누는 대화였고, 몇 번 통화를 시도했지만 그나마 미국 영어 발음에 익숙해진 나에게 뉴질랜드 엑센트는 또 다른 난관이었다. 게다가 코니의 표현은 평이한 영어보다는 살짝 기교가 들어간 영어에 가까웠다. 읽기는 어찌어찌 해보겠는데 귀로 듣는 영어는 도무지 감당이 안 되어 코니와 통화는 포기한 터었다. 이런 와중에 아론이 내 영어회화 공부를 도와주고 싶다면서 통화를 적극 제안했다. 내가 주저하자 "형님은 그냥 제가 하는 말을 듣기만 하다가 가끔 간단한 질문만 해도 돼요. 재미있을 거예요"하면서 용기를 북돋워 주었다. 어느 하루 카톡의 음성통화 기능을 이용해 아론과 통화를 시도했다. 나는 얼떨결에 우리말로 말문을 열었는데 대답하는 아론의 한국어가 너무 자연스러워 영어를 쓴다는 생각도 잊은 채 1시간 정도를 내리 우리말로 통화했던 것 같다. 마치 몇 년 전 전 뉴질랜드로 이민 간 절친한 사촌동생과 통화하는 느낌이랄까. 우리말로 통화를 하고 나니 오히려 다음부터는 영어로 통화해야겠다는 마음이 절로 들었다.


아론의 영어는 발음도, 표현도, 내용도 선명했다. 코니와 마찬가지로 크라이스트처치 출신이지만 그가 쓰는 영어에서는 뉴질랜드 특유의 억양이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영어로 말하다 보면 부족한 실력으로 내가 실제 하고 싶은 말의 10~20% 밖에 표현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내가 말하는 영어를 일일이 교정해 주지 않았다. 내게 말할 기회를 주면서 "저 시간 많아요. 잘 안 되더라도 편하게 얘기해 보세요. 그러다 보면 늘어요."라고 말하는 듯했다. 내 마음을 다 알고 있다는 듯 아론은 여유와 인내를 가지고 버벅대는 내 영어를 들어주었다. 우리나라에 대한 그의 백그라운드는 우리가 공감대를 가지고 대화를 이어가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이론과 영어로 통화하면서 그간 혼자서 공부하며 흩어져 있던 영어가 조금씩 퍼즐이 맞춰진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한국에서 지낼 때 경험담, 오클랜드에 사는 형, 부쩍 오른 집값, 근교 나들이, 아이들 이야기, 아내 가영님, 가족과 함께 오클랜드에서 남섬 픽턴까지 갔던 크루즈여행, 회사 업무, 미국 정치판 등 우리는 미리 화제를 정하지 않고 그때그때 자유롭게 이야기했다. 우리의 일상 대화가 그렇듯이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가 관심 있는 주제가 나오면 다시 꼬리를 물고 파고들었다. 2시간씩 매주 두어 번 영어 통화를 했던 것 같다. 헥시온(Hexion) 이란 미국계 화학회사에서 교대직으로 근무하는 아론은 그 무렵 회사의 가동률이 낮아서 널널해진 야간 근무 시간을 활용해 통화했다. 너무 근무 시간이 여유로워 이러다 잘리는 건 아니지 아론이 걱정할 정도였다. 코니와 실전에서 채팅으로 익힌 영어가 아론과 통화를 할 때 많은 도움이 되었다.


뉴질랜드로 여행을 처음 계획했을 때는 아론을 알기 전이었다. 코니의 방한 후 여행 계획에 대해 구체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했다. 코니가 말했다. "3주는 되어야겠지." 그녀의 한국 여행이 3주였다. 사실 3주라고 해도 비행시간을 제하고 나면 실질적으로는 2주 반이니까. 추위를 질색하는 나는 뉴질랜드 여름의 끝자락인 2월 말에서 3월 초를 택해 3주간 비행기표를 먼저 예매했다. 먼저 코니와 일정을 대강 논의했다. 남섬에서 2주, 통가리로 알파인 트레킹을 포함한 북섬에서 1주일로 큰 틀을 잡고 구체적으로 어디를 갈지 톡을 주고받으며 상상에 들떴다. 북섬 가운데에 있는 화산지대인 통가리로 알파인 크로싱을 간다면 바바라가 같이 가겠다고도 했었다. 코니의 남편 쉐인은 그 얘기를 듣자 "거기는 나무 한 그루 없는 화성(火星) 같은 곳인데 뭐 볼 게 있다고 거길 가나?" 하는 반응이었다고 한다. 여행자는 평소 못 보던 풍경에 목마른 법이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였다. 3주 휴가 계획을 회사에 말하니 동료들의 당혹스러운 표정이 먼저 읽힌다. 나라도 그랬을 것 같다. 3주 휴가도 앞뒤 자투리 기간까지 감안하며 실제로는 거의 한 달 가까이된다. 우리나라에서 일주일만이라도 마음 편히 휴가를 낼 수 있는 직장인이 얼마나 될까 싶다. 결국 수수료를 물고 2주 항공권으로 변경했다.


휴가 계획을 확정하고 아론에게 알리자 그의 첫마디다. "형님. 그러면 타우랑가에도 오셔야죠. 엄청 기대되네요. 여기 오시면 저희 집에서 지내면 돼요. 쓸데없이 호텔에 돈 쓸 필요 없잖아요." 근자에 누구한테 이런 환영을 받아 보았던가! 남섬으로 국한되었던 여정이 북섬까지 확장되는 순간이었다. 아론에게 이런 말도 했었다. "전생이 있다면 아마 난 뉴질랜드 사람였을 거야."


코니는 내가 뉴질랜드에 오면 웨스트코스트에 계신 시아버지를 같이 방문할 수 있다는 얘기도 했다. 아론은 아버지와 함께 보트 투어를 가면 좋을 거라고도 했다. 그들은 자신의 세계를 내게 자연스럽게 보여주고자 했다. 정(情)이란 우리나라가 가진 독특한 문화적 맥락 속에 있는 정서라서 외국어로 잘 옮겨지지 않는 단어라지만 정작 나는 타인을 향한 열린 마음을 보여주는 코니와 아론에게서 정을 느꼈다. 나중에 아론이 한국에 왔을 때 명소를 보여주는 것도 좋지만 우리의 일상을 보여주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론, 나중에 한국에 들어오면 내가 다니는 회사를 한번 보여주고 싶군요. 구내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한번 돌아보면 재미있을 거예요."

"정말 재미있겠군요. 기대되네요."

아론의 반응은 기대 이상이다.


반면 코니가 한국에 왔을 때 주변 사람들에게 부담 없이 소개해 주고 싶었지만 생각처럼 되지는 않았다. 저녁에 코니를 데리고 갈 테니 평소 먹는 밥상에 그냥 젓가락 하나 더 놓으면 된다고 했지만 형수님은 손사래를 쳤다. 친한 회사 동료에게도 비슷한 제안을 해봤지만 부담스러워 하기는 매한가지였다.


사진가로 세계를 누볐을 윤광준은 한 책에서 다음과 비슷한 뉘앙스로 말했던 것 같다. " 젊었을 적에는 웅장한 대자연을 보면 가슴이 벅차곤 했죠. 하지만 나이가 들고 보니 사람과 연결고리가 없다면 감흥을 주지 못하더군요. 그저 자연만 담은 사진보다는 그 안에 사람이 있을 때 사진은 비로소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합니다."


아론, 코니! 이제 난 당신들의 이야기를 들으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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