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니 가족의 자취를 찾아가는 여정
공항을 빼면 처음으로 만난 인파다. 리버사이드 마켓은 언뜻 우리네 마트의 푸드코트 같은 분위기인데 규모가 크고 과일이나 음료도 같이 팔고 공연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여행 전에 코니가 시내 관광을 할 때 여기서 점심을 먹으면 좋을 거라고 했었다. 점심 나절이라서 더욱 활기가 넘친다. 다양한 음식을 한 장소에서 골라 먹을 수 있고, 날씨가 좋으면 야외 테이블에서도 경치를 즐기면 식사가 가능해 한번 들러볼 만한 곳이다. 생각보다 한국 여행객이 많아 놀랐다. 우리말 대화가 심심치 않게 들린다. 눈요기는 즐겁지만 입이 짧은 나로서는 처음 보는 갖가지 음식에 선뜻 용기가 나지 않는다. 차라리 코니가 내 취향을 감안해 알아서 골라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말을 건네 보았지만 그녀는 내 선택권을 끝까지 존중해 준다.
재작년 코니와 전주에 갔을 때 일이다.
"점심으로 무엇을 먹을까?"
"전주에 왔으면 비빔밥 먹고 말걸리 한잔 해야지."
오지랖이 넓은 나는 어떤 전형적인 아이디어가 있을 때 상대방에게 적극적으로 제시하는 데 비해 코니는 내 취향을 끝까지 배려하는 면이 있다. 하지만 취향이라는 것도 내가 익숙한 것들에 둘러싸여 있을 때 얘기고 낯선 환경에서는 나도 내가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원하는 것을 보여주기 전까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다"라고 했던 스티브 잡스의 말처럼.
점심을 마치고 그녀의 딸 베르티가 아르바이트하고 있는 쇼핑몰로 향했다. 캔터베리대학 3학년인 그녀는 사진으로 봤던 것보다 훨씬 앳되고 발랄하다. 가방을 비롯한 잡화를 취급하는 쇼핑몰 1층에 위치한 매장이다. 우리가 선호하는 가방의 색상은 아무래도 절제된 무채색에 가깝다면 - 나만 그런가? - 여기에 전시된 상품은 서로 경쟁하듯 다양한 칼라를 자랑한다. 다 함께 쇼핑몰 2층 벤치로 자리를 옮겨 인사를 나눴다. 그녀는 20대 후반 남자 친구 딜런과 함께 지내고 있다. 우리 같으면 소개는커녕 쉬쉬할 일이다. 문화적 차이를 보여주는 단면이다. 우리 사회의 이중적 면이기도 하고. 일상을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보여주는 코니가 고맙다. 코니는 함께 웨스트코스트 여행에서 돌아오면 이번 토요일 저녁에 집에서 바베큐파티를 할 테니 베르티에게 남자 친구 딜런과 같이 오라고 일러두었다. 원래대로라면 지난 금요일에 내가 도착하는 날이었지만 비행기가 12시간이나 연착하는 바람에 미뤄진 것이다.
코니가 일하는 회사를 둘러보고 싶어졌다. Strawberry Sound 라는 시청각장비 시공, 유지관리 전문 업체다. 크라이스트처치, 더니든, 퀸즈타운에 각각 지사가 있는데 이곳 크라이스트처치 사무실에는 10여 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예정에 없던 내 부탁에 코니는 일요일에는 사무실에 보안 시스템이 동작 중이기 때문에 출입이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시도해 보자고 한다. 회사에 도착 후 그녀는 보안회사로 몇 번의 연락 후 보안시스템 작동을 해제시켰다.
정감 넘치는 사무실이다. 직원 1~2명마다 각각 별도의 사무실을 쓰고 풍경이 낯설기도 하고 놀랍기도 했다. 정말 공간을 풍요롭게 쓰고 있었다. 책상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우리네 사무실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딱딱한 사무실 느낌이 들지 않아 좋았다. 그녀의 업무 책상에 앉아 포즈를 취해가며 사진 촬영을 부탁하기도 했다. 사무실 창문 너머 시시철철 변하는 계절과 날씨를 보면서 일하는 재미가 쏠쏠할 같다. 사무실 풍경마저도 이국적이다. 각종 기자재가 있는 작업장도 함께 둘러봤다. 샵투어인 셈이다.
사무실을 뒤로하고 남섬 최대의 항구가 있는 리틀턴 방향으로 향했다. 크라이스트처치 남동쪽 외곽 리틀턴터널을 좀 못 미쳐 산기슭에 별장처럼 자리한 것이 코니의 딸 Verity가 남자 친구 Dylan과 같이 사는 곳이다. 먼발치에서 코니의 설명을 들었다. 멀리 보이는 산은 여름인데도 노랗게 민둥머리를 하고 있다. 내가 그 이유를 물으니 코니는 당연하다는 듯 "여름이잖아"라고 답한다. 크라이스트처치의 여름 강수량은 40~50mm/월에 그친다. 우리 겨울 강수량과 비슷한 수준이다. 뉴질랜드 자연환경은 13세기 경에 이주했다는 마오리족에 의해, 19세기 이후 유럽인(주로 영국)들에 의해 크게 훼손되었다. 산도 사냥과 목축을 위해 산림을 불태워 민둥산이 되었다고 한다.
차를 돌려 돌아오는 길에 이름 모를 공원 옆에 차를 세운다. 의아해하는 나를 보더니 빙긋 웃음으로 답한다. 그녀를 따라 공원 안에 들어서고 군데군데 비석과 꽃을 보자 공원묘지임을 알아차렸다. 그녀의 부모님, 오빠 묘비 앞에 서서 잠시 고개를 숙이고 묵념으로 예를 표했다. 그녀의 어머니는 작년 가을에 노환으로 돌아가셨기에 "Sorry. I’m late"라며 한번 더 고개를 숙이는 코니가 웃으며 어깨를 친다.
다음으로 우리가 도착한 곳은 길이 막힌 이름 모를 나대지였다. 크라이스트 대지진 후 현재의 집으로 이사하기 전 코니의 집이 있었던 곳이다. 곳곳에 보이는 Driveway(진입로)가 이곳이 한때 주택가였음을 말해주고 있다. 저 발치에 있었던 그녀의 옛집이 그 당시 두 동강으로 부서져버렸다고 했다. 보험 회사의 지루한 보상 절차가 끝나고 나서 이 택지는 이렇게 버려진 땅이 되었다.
그녀와 가족의 자취를 찾아다닌 크라이스트처치 시내 관광을 끝내고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돌아왔다. 코니의 큰언니 집을 지나쳤다. 커다란 나무가 옆에 있는 좀 낡은 집이다. 코니 집 근처에 있는 둘째 언니 집은 - 나는 구글지도로 여러 번 봐서 알고 있다. - 그냥 설명도 없이 그냥 지나간다. 안타깝게도 그녀는 둘째 언니와 불편한 관계다. Shane에서 다녀온 곳을 얘기하며, 코니 둘 때 언니집은 그냥 패스했다고 말하니 Shane은 피식 웃는다.
저녁은 수잔과 마이클 내외와 함께 한국 불고기 레스토랑에서 먹기로 했다. 그들 부부는 신혼 초기 코니네 집에서 세 들어 살았는데 그 당시에는 형편이 어려워 코니가 집세를 좀 낮춰줬다고 한다. 그 후 좋은 인연을 이어가고 있고 나중에는 자동차 관련 사업으로 성공 후 조기 은퇴를 했다고 한다.
식당 이름이 GOGI다. 전에 코니가 가족과 가끔 외식을 한다면 언급했던 곳이다. 손님은 동양인보다 여기 현지인이 더 많다. 안쪽 큰 테이블에는 한국인으로 보이는 일행이 자리 잡고 있다. 잠시 후 수잔, 마이클 부부 도착했다. 마이클은 무릎 연골 수술을 했다며 목발을 짚고 있다. 좌석 배치는 코니/나/수잔, 맞은편에 쉐인/마이클이다. 메뉴는 불고기, 삼겸살, 갈비다. 고기양이 제법 많다. 내가 집게와 가위를 들고 실력을 발휘해 보기로 했다. 모처럼 만나 나를 가운데에 두고 서로 빠르게 이야기를 주고받는 데 솔직히 그들끼리 하는 얘기는 10~20%도 이해하기 힘들다. 부족한 영어 실력의 한계를 한번 더 느낀다. 수잔 부부의 애들은 도쿄와 히로시마에서 유학하고 있다.
내가 잠시 화장실에 다녀오는 동안 불판도 갈지 않고 쉐인이 시꺼멓게 탄 석쇠 위에 고기를 굽고 있다. 내가 ”Who is the culprit? 라고 하니 다들 웃음.
즐겁게 저녁을 마치고 주차장에서 작별인사를 나눴다. 저녁식사 비용이 30~40만원 정도 나온 모양인데 마이클이 냈다면서 코니 내외가 놀란다. 어둠이 드리운 시내를 가로질러 집에 도착해 남섬에서 둘째 날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