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st Coast로 가는 길
코니가 먼저 제안한 방법은 집에 머물면서 크라이스트처치 인근을 당일 또는 1박 2일 여정으로 1주일 남짓 동안 가볍게 둘러보는 것이다. 괜찮은 방법이다. 언제든 원하면 쉴 수 있고 숙박비도 아낄 수 있으니까. 그렇지만 남섬의, 아니 어쩌면 뉴질랜드의 가장 대표적 관광지인 퀸즈타운이나 밀포드 사운드 같은 곳은 볼 수 없다.
잠시 여행으로 뉴질랜드를 찾는 관광객에게는 이런 지역 명칭은 낯설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옆자리에 동승한 젊은 부부는 퀸즈타운과 테카포 호수에 다녀오는 길이라고 했다. 나더러 어디에 갔었냐고 묻기에 웨스트코스트 지역을 둘러봤다고 했더니 거기가 어디냐고 한다. 하지만 코니와 얘기를 나누기 위해서는 꼭 알아두어야 했다. 딸 라일라가 다니는 대학이 어디냐고 물으니 오타고 지역의 더니든에 있다고 했다. 웨스트 코스트 불러 지역에 가서는 싱싱한 연어가 별미라고도 했다.
Lonely Planet의 "New Zealand's South Island Road Trips" 은 남섬을 속속들이 누비는 다양한 루트를 소개하고 있다. 가이드북에서 가장 끌렸던 코스는 "서던 알프스 서킷(Southern Alps Circuit)"이라고 명한 루트다. 크라이스트처치에서 출발해 아서스패스를 지나 호키티카를 거쳐 퀸스타운까지 갔다가 호수가 아름답고 밤하늘 별을 보기에 최고의 장소라는 테카포 호수를 경유해 돌아오는 남섬의 명소를 크게 한 바퀴 도는 코스다.
코니의 남편 쉐인은 12~14일까지는 필요 없고 8일 정도면 해당 코스를 충분히 둘러볼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주야장천 차만 타는 여행은 원하지 않았다. 여러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과감한 생략과 집중이다. 퀸스타운과 테카포 호수는 깨끗이 포기했다. 갔던 길을 되짚어 와야 하지만 웨스트 코스트에 집중하기로 했다. 다만 돌아오는 여정은 차가 아니라 세계 최고의 단거리 열차 여행 TOP 10에 꼽힌다는 "트랜즈 알파인"을 타기로 했다. 코니에게 열차표 예매를 부탁했다.
이제 출발이다. 코니, 쉐인과 함께 크라이스트처치를 떠나 폭스빙하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6일간의 여정이다. 트랜즈알파인 예매표는 출력물을 준비하라고 해서 가는 길에 쉐인이 일하는 소방서에서 프린트했다.
차가 시내를 벗어나자 광활한 캔터베리 평원이 펼쳐진다. 방풍림으로 경계가 나뉜 드넓은 목장과 나무도 없는 황량한 민둥산이 끝없이 이어진다. 서부영화 속 풍경 같다. 왕복 1차선 도로지만 거의 직선에 가까운 데다 차도 별로 없어 100km/h 넘게 차를 몰아도 빠르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이제 캔터베리 평원이 끝나고 서던 알프스 산맥의 굽이치는 도로가 시작된다. 우리가 태백산맥 경계로 동서를 영동과 영서로 부른다면 남섬은 3,724m 쿡산까지 있는 남섬을 남북으로 가로지른 서던 알프스 산맥을 경계로 웨스트 코스트와 캔터베리 지역으로 나뉜다. 소방서에서 운전교관으로도 일한다는 쉐인의 운전 솜씨가 일품이다. 내가 한번 핸들을 잡고 싶다고 했더니 급경사에 와인딩 코스니 나중에 안전한 도로에서 하는 것을 추천한다. 대청호의 드라이브길과 보은의 말티재, 영동의 도마령을 좋아하는 내게는 이런 길이 제격인데... 아쉽다.
굽이치는 고갯길을 한참 재규어를 사정없이 몰아붙여 도착한 곳은 Pippa’s Lookout 이다. 처음 마주한 뉴질랜드의 호수 풍경이다. Lake Lyndon. 잔잔한 물결에 멀리 산이 들어오는 멋진 풍경이다. 나는 경치에 취해 잠시 머물고 싶지만 쉐인은 길은 재촉한다.
다음에 잠시 차를 세운 곳은 Castle Hill Rocks. 중간에 커다란 돌이 거인들처럼 곳곳에 놓여있는 이국적인 풍광이다. 여유가 된다면 천천히 둘러봐도 좋을 곳이지만 이곳도 먼발치에서 잠시 사진만 찍고 패스. 갈길이 멀다.
이어서 잠시 들른 곳은 간이역 카스다. 트랜즈알파인으로 돌아올 때 지나갈 것이다. 이제는 없어진 우리의 한적한 시골역 같은 분위기다. Cass 간판을 배경으로 쉐인과 함께 하는 사진을 코니가 찍어주었다.
드디어 아서스패스 빌리지에 도착했다. 고갯마루라고 짐작했었는데 와보니 양쪽으로 높은 산에 둘러쌓인 골짜기다. 하이킹(여기서는 트램핑)을 하는 듯 커다란 배낭을 맨 등산객 여럿이 눈에 띈다. 커피나 음료를 좋아하지 않는 나는 물을 한병 사고 역시 코니와 쉐인은 커피/카푸치노 각각 한잔씩 한다. 이름 모를 새가 전혀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테이블위를 겁 없이 오간다. 잠시 아서스패스 동네를 거닐면서 한국의 가족과 통화했다. 지구 반대편이지만 시간대가 서로 크게 차이나지 않는 뉴질랜드 여행이 주는 매력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