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West Coast. 푸르른 세상.

아서스 패스를 지나자 세상은 푸른색으로 변했다.

by 돌밭

아서스패스를 지나면서 서부영화 같던 황량한 풍경은 온통 무성한 삼림으로 바뀌었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눈의 고장)이었다"라는 소설 "설국"의 첫 문장처럼 경치는 순식간에 옷을 갈아입었다. 이미 차창 밖의 공기마저도 촉촉해졌다. 이제 West Coast다. 웨스트 코스트 대표 도시 그레이마우스의 강수량은 년 3,000mm에 이른다.


고갯마루에서 내려다 보이는 전망이 일품인 "오티라 대교(Otira Viaduct)"다. 코니가 웨스트코스트 가는 길에 꼭 둘러봐야 할 곳이라고 했던 명승이다. 다리 아래로 보이는 것은 오티라강이다. 뒤편으로 보이는 계곡의 풍광도 멋을 더한다. 사계절이 하루에 다 있다는 변화무쌍한 뉴질랜드 날씨처럼 오티라 대교 위 하늘은 구름으로 덮여있지만 반대편인 우리가 왔던 길은 선명한 푸른 하늘이다.


오티라 대교를 지나 길가에 차를 세웠다. 계곡물을 손을 담그고 싶어 코니가 위험하다고 말릴 새도 없이 가파른 계곡 아래로 내려갔다. 쉐인이 나더라 물을 마셔보라고 손짓하기에 한 모금 마셔보니 물맛이 아주 좋다. 특이하게 보이는 갈색 바위는 그 위에 자라는 이끼 때문이란다. 믿기지 않아 바로 검색해 보니 그 말이 맞다. 쉐인에게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우니 흐뭇한 미소를 머금는다.


잠시 후 모리슨 육교(Morrisons Footbridge)에 도착했다. 옆으로 난 철길로 간간이 화물열차가 지나간다. 쉐인은 소를 수송하는 열차라고 했다. 강을 가로지르는 육교를 건넌다. 쉐인이 육중한 몸으로 다리를 흔들면서 장난을 친다. 그는 다리 중간에 멈췄고 나는 끝까지 가 보기로 했다. 건너편 강가에서는 등산객 2명이 늦은 점심을 먹고 있었다. 쉐인은 지금은 갈수기라 강 수위가 낮지만 비가 내려 물이 불면 볼만하다고 했다. 다리를 건너 돌아와서 코니와 쉐인을 함께 사진에 담았다. 코니의 소녀 같은 잔잔한 미소와 선글라스를 쓴 쉐인의 포스가 대비되는 순간을 잘 잡아냈다. 이번 여행에서 건진 최고의 사진이라고 자부한다.


크라이스트처치부터 줄곧 탔던 73번 도로를 벗어나 잭슨(Jacksons)에서 레이크 부루너 로드(Lake Brunner Rd)로 방향을 틀었다. 잠시 후 들른 곳은 포에루아 호수(Lake Poerua)다. 쉐인이 성큼성큼 호수로 들어가더니 물이 따뜻하다며 나도 들어오라며 손짓. “Come in, Come on” 들어가 보니 "앗 차가워!" 소리가 절로 난다. 역시 추위에 강한 백인, 나는 놀라며 “Is it warm?, Are you polar bear?”라고 조크를 날리니 쉐인이 어깨를 으쓱하며 어이없다는 듯 웃음으로 답한다.


차를 계속 몰아 리프돈(Reefton)에 도착했다. 한적한 시골 마을이다. 코니가 좋아하는 골돌품점 “Reefton Sencondhand” 라는 중고품 점에 들러 옛날 정취를 느껴보다. 그릇부터 액세서리, 자그마한 가구까지 다양한 중고품을 취급하는 가게다.


차를 몰아 Blackball을 거쳐 Grey강을 왼쪽으로 끼고 그레이마우스까지 달렸다. 트랜즈알파인 시발점인 그레이마우스역이 차창 너머로 보인다. 차를 남쪽으로 더 몰아 오늘 최종 목적지인 “Paroa Motel”에 도착했다. 실제 와보면 숙소는 통상 인터넷 예약 사이트에서 봤던 것보다 못하기 마련인데, 웬걸! 기대 이상이다. 크고 널찍한 객실, 화장실과 별도로 있는 세면대, 근사한 식당, 잠깐 걸으면 닿는 해변. 간판은 모텔이라고 내걸었지만 내가 생각한 모텔 수준의 숙소가 아니었다. 코니가 추천한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짐을 풀고 바다를 보러 나갔다. 숙소 뒤편이 바로 해변이다. 끝이 가물거리는 해변에 나 말고는 아무도 없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광활한 이 해변에서 내가 주인공이다. 파도가 밀려드는 태즈먼해를 나 홀로 바라보면서 이역만리 여행자의 고독을 느낀다. 숙소로 돌아오니 쉐인이 웃으며 한마디 던진다. Very Crowd Beach?


코니 내외는 호텔 주인과 아이들 근황까지 서로 챙길 정도로 가까운 사이였다. 일반적인 여행객으로 맛볼 수 없는 상황이다. 모텔에서 같이 운영하는 식당은 메뉴도 다양하고 훌륭하다. 특히 beef steak는 가격도 저렴하고 맛도 훌륭하다. 추천 1순위하고 말하고 싶다.


저녁을 마치고 해변으로 나갔지만 아쉽게도 일몰은 놓쳤다. 벌써 7시 40분. 7시20분경이 일몰이다. 잠시 더 거닐다 숙소로 돌아와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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