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용과 1766년"이 내게 알려준 길
선구적 식견과 실행력을 겸비한 소수를 제외한다면 대다수의 삶은 다른 인생의 모방이다. 나도 그렇다. 동경하는, 내가 흉내 낼 수 있는 모방 대상을 찾았다. 읽었던 책을 다시 보기를 즐기는데 강명관 교수님의 "홍대용과 1766년"이 그랬다. 여기서 자극을 받고 용기를 얻어 늦깎이 영어 공부를 시작했다.
나는 조선 후기 새롭게 등장한 사상사의 흐름을 실학이라고 배었지만 그 연원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국사 수업에서 실학, 북학이라고 배웠다. 홍대용은 순전히 개인적인 지적 호기심에서 동지사(연말에 청나라로 떠나는 조선시대 사신단)의 자제군관의 자격을 얻어 사신단의 일행으로 연경(베이징의 옛 이름)에 가서 선진 문물을 접하고, 그토록 바라던 학문적 소양을 갖춘 지식인을 만나 여러 날에 거쳐 깊은 대화를 나누고 서로 지기(知己)가 되는 친분을 쌓았다. 여행의 견문, 청나라 친구를 사귄 시말과 대화를 정리해 "건정동회우록(乾淨衕會友錄)"이란 책을 써서 주위 친구들에게 보여주고 중국의 벗들과도 편지를 교환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실학자의 대명사로 알고 있는 박지원, 이덕무, 박제가는 홍대용이 들려준 경험담에서 깊은 감명을 받고 그가 놓은 길과 인맥을 따라 이후 연경을 방문하고 우리가 지금 실학이라고 부르는 조선 후기 새로운 사상사의 물결을 만들어 냈다.
책은 크게 두 파트로 나뉜다. 앞 첫 부분은 담헌 홍대용에 대한 소개와 그의 청나라 연행(燕行) 준비 과정 그리고 여러 청나라 문물을 접하면서 겪은 에피소드와 소회다. 내가 깊은 감명을 받은 두 번째 부분은 홍대용이 청나라 지식인을 만나고 우정을 쌓는 과정을 보여준다. 책의 백미라 하겠다. 담헌은 과거를 보기 위해 절강성에서 상경한 엄성, 반정균, 육비를 만나 다양한 주제를 넘나들며 여러 날 동안 수준 높은 대화를 나누면서 국경을 초월한 깊은 우정을 쌓았다. 더욱이 주자학, 병법, 천문학, 음악에도 조예가 깊은 담험은 고매한 인품과 깊은 학문적 소양으로 중국 지식인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엄성은 헤어지는 날 슬픔을 이기지 못해 눈물을 보이며 "바다가 마르고 돌이 썩을 때까지 오늘을 잊지 말라."란 말로 작별의 아쉬움을 표시했다. 세명의 중국인 지식인 중 담헌이 가장 아꼈던 엄성, 그는 주자학, 양명학, 불경, 시서화에 능한 엄친아였으나 입신보다는 학문에 전념하라는 담헌의 충고를 받아들여 과거를 포기하고 고향 절강성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엄성은 이듬해 겨울 복건성 지방에 가정교사로 갔다가 그곳에서 병을 얻었고 고향 항주로 돌아와 한 달을 넘기지 못하고 그만 죽는다. 담헌은 그 이듬해인 1768년 육비와 반정균이 보낸 편지에서 엄성의 사망 소식을 들고 비탄에 잠겼다. 제문과 간단한 제물을 북경을 거쳐 다시 항주로 보냈는데, 그것이 항주에 도착한 것은 엄성의 대상(大祥, 두 번째 기일)이었다고 한다. 항주 사람들은 참으로 기이한 일이라고 하였다. 이후 엄성의 형 엄과와 친구 주문조가 담헌에게 편지를 보냈지만 제때 전달되지 못하고 십 년 뒤 북경에 갔던 이덕무의 손에 의해 담헌에게 전해졌다. 담헌은 이 편지를 통해 엄성이 죽을 때까지 자신을 그리워했다는 것을 알고 또 한 번 비탄과 감격에 젖는다. 담헌은 엄과와 주문조에게 편지를 보내 위로한다.
너무도 감동적인 여행기 "홍대용과 1766년"은 내게 진한 여운을 남겼다. 나를 돌아보는 계기도 되었다. 척박한 여건에서도 담헌은 기회을 만들어 선진문물을 접하고 청나라 지식인들과 아름다운 우정을 나누었는데 지금은 마우스 클릭 몇 번, 손가락 터치 몇 번이면 전 세계가 연결되는 세상이고, 초중교부터 의무교육으로 영어를 배우는 게 우리네 현실인데 나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다는 말인가? 나도 해보고 싶었다. 단순히 신문이나 도서를 영어로 더듬더듬 읽는 수준을 벗어나 해외 친구와 감정을 교류하는 하고 상호 방문하는 단계까지 나도 가 보고 싶어졌다.
나는 코니와 아론을 알게 되면서 이 꿈만 같은 열망을 하나하나 현실로 만들어 갔다. 이메일과 채팅과 전화 대화를 통해 다양한 주제로 그들과 얘기를 나누었다. 서로 정성들인 기념품을 소포로 여러 번 주고 받고 코니와 상호 방문까지 했다. 아론은 올해 말에 온 가족이 우리나라를 방문하기로 했다가 여행경비가 부담되어 내년이나 내후년으로 미룬 상태다. 아론에게 한국에 오면 대전 우리집에 꼭 오라고 했고 그도 너무 기대된다고 말했었다. 돌밭(石田) 버전의 "홍대용과 1766년"은 그렇게 순항하고 있었다. 하지만 열정 어린 내 도전에도 그림자가 다가올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