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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쇤 Mar 01. 2021

동면

2021년 2월 28일 일기

한동안 펜을 들지 않았다. 딱히 하얀 빈 종이에 꾹꾹 놀러 담고 싶은 가슴속의 말이 많지 않았던 것 같다.


2021년 새해를 맞이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2월의 마지막 날이라고 한다. 1월에서 2월로 넘어오는 것은 너무 쉽고 자연스러웠는데, 매년 2월에서 3월로 넘어오는 순간은 항상 '아뿔싸'하는 느낌이 드는 것 같다. 떠오르는 1월 1일의 태양을 보면서 거창하게 세웠던, 그러나 잠시 잊고 있었던 새해 다짐들이 생각났다. 해가 길어지고, 날이 따뜻해지니 마치 긴 겨울잠에서 깬 동물처럼 살아있음을 느끼며, 이런저런 계획을 부지런히 세우게 된다.    

그림 속 배경은 아프리카 말라위의 Mulanje Mountain


한동안은 정체기였다. 딱히 문제가 있었던 것은 없었고, 오히려 매일 '운동-출근-퇴근' 루틴을 반복하면서 건강하고 규칙적인 일상을 보냈다. 그런데도 정체기라고 느낀 것은 숨 쉬고, 먹고, 자고 하는 것 외로 생산적인 일을 해내지 못했기 때문일 테다. 작년에는 참 생산적으로 글, 시, 영상 등으로 기록을 남겼는데 올해는 그렇게 할 마음을 먹는 것조차 쉽지 않음을 느낀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 따뜻한 커피와 독서를 즐기는 아침

작년까지만 해도 주말, 휴일, 평일 퇴근 후 저녁 집에서 차분히 보내는 시간 자체가 힐링이고, 에너지가 채워지는 시간이었다. 바깥에서 활동하는 시간이 많다가 가끔 즐기는 집에서의 시간이 꿀같이 달았을 테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역전되었다.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져서 더 이상 주말에 집에서 진득하니 쉬는 것이 가슴 깊숙한 곳에서 차오르는 행복감을 예전만큼 선사해주지는 않는다고 느낀다.


그렇다고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다시 열심히 사람을 만나고, 배움의 기회를 찾아 바깥으로 돌아다니고 싶은 마음이 막 솟구치는 것은 아닌 게 신기하다. 어느새 이 8평 남짓한 Comfort zone에 익숙해졌나보다. 편안한 나만의 안식처를 떠나 예측 불가능한 만남, 기회 그리고 피로가 있을 바깥세상을 마주하기가 두려워졌다. 그러나 이제는 나를 둘러싸고 있는 알을 깨고 바깥으로 나설 때가 되었다고 느낀다.



너무  일상이 평온해서 문제 같다. 최근 PT를 시작한 이후로 매일 운동하며 몸을 건강히 가꾸고 있고, 회사에서도 적당히 바쁘며 문제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런데 뭔가 2% 부족함을 느낀다. 역시 인간은 바쁘지 않고 한가하면 쓸데없는 생각을 많이 하는 이상한 동물이다.


그래도 '지금 내가 누리는 이 순간이 얼마나 감사한가'하는 생각에까지 미치면, 초조해하지 말고 이 순간도 잘 즐겨보자고 스스로에게 되뇐다.


봄에는 글도 열심히 쓰고, 흘러가는 시간을 움켜쥐고 음미할 수 있는 내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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