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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쇤 Apr 23. 2021

여행은 돌아오기 위해 떠나는 것이다.

일탈이 아닌, 결국 회귀

얼마 전 주말 강릉에 1박 2일 여행을 갔다가 돌아오는 일요일 오후의 KTX였다. 새파란 바다를 보며 멍 때리고, 테라로사 커피 공장도 방문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가 비로소 현실로 복귀해야 할 시간이 되니 슬슬 마음이 초조해졌다. 쌩쌩 달리다가 원주를 지났을 무렵부터 한껏 속도를 늦추고 달리는 기차가 영영 서울역에 도착하지 않기를 바랐다. 

여행의 끝을 부여잡고 늘어지고 싶었지만 뭐 별수 있나. 결국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삐삐삐삐 삑'


도어락을 해제하고 문을 열었다. 집 문이 열리는 순간, 방금까지 나는 여행 중이었다는 사실이 까마득히 멀게 느껴질 정도로 항상 이곳에 있었던 것만 같다. 비로소 여행이 끝나는 순간이다.


내일이 오면 어김없이 출근을 해야 하기에 풀리지 않은 여독을 뒤로하고 부지런히 움직였다. 여행 가방 속 물건을 정리하고, 빨래를 돌리고, 간단하게 요리를 해서 저녁을 먹었다. 그리고 설거지를 하던 중이었다. 문득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일상에서의 평범한 루틴이 너무 소중하게 느껴졌다.


결국 여행은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는 과정이고, 돌아오기 위해 떠나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나의 사고는 어느새 서른이 되어버린 나이와 직장인이 된 나의 변화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대학생 시절의 나의 여행은 한국을 벗어나 새로운 곳으로 떠나는 데 중심이 있었다. 한국이라는 작은 우물 밖을 벗어나 내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다른 언어, 문화, 풍경을 가진 세계를 경험하는 것.


진지하게 취업을 고민하기 전인 대학교 3학년 때까지 나는 해외에 있는 회사에 취업하여 그곳에서 살아가게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나의 세계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했고 예측 불가능했다.       


삶에서 예측 불가능보다 예측 가능성의 영역이 더 커지고, 안정성을 더 선호하게 된 이후 떠나는 여행은 대학생 시절의 여행과 미묘하게 다르다.


여전히 내가 발 딛지 못한 세계의 매력적인 여행지를 동경하며, 회사에서의 일로 스트레스를 받고 일탈처럼 떠나기도 하지만 결국 여행의 목적은 새로운 경험을 통해 시야를 넓히고, 에너지를 한껏 충전해서 일상에  충실하고, 내가 맡은 역할을  잘할  있도록 하는 ,  일상으로의 귀환에 있다.   


김연수 작가는 그의 산문집 「언젠가, 아마도」에서 여행을 갔다가 한국에 돌아와 입국장을 빠져나오는 순간이 진짜 여행은 시작이라고 했다.

입국장을 빠져나오면 한국이라는 익숙한 세계가 펼쳐지면서 오랫동안 잊고 지낸 감각이 되살아난다. 하늘의 빛깔과 공기 중의 습도와 높은 천장으로 울려 퍼지는 한국어의 발음. 지금의 '' 만들어지기까지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세계로 다시 귀환한 것이다. 이제 집으로 돌아왔으니 여행은 끝난 것인가? 다시 돌아온 일상을 예전과 똑같이 바라본다면 그렇다고 말할  있으리라. 하지만 전과 다른 시선으로 일상의 모든 것을 바라볼  있다면, 나는 이전과는 다른 존재가   있다. 여행자란 가만히 앉아서 풍경을 바라보는 사람이지만,  순간에도 그는 조금씩 바뀌고 있다. - 「언젠가, 아마도」


코로나 시국으로 더 이상 예전처럼 해외 방방곡곡을 돌아다니지 못하더라도, 쓸 수 있는 휴가의 한계로 여행의 기간이 짧아졌어도 여행을 통해 전과 다른 시선으로 일상을 바라볼 수 있다면, 여전히 여행이 가져다주는 가치는 유효하다.


여행의 진정한 묘미는 떠난 곳에서의 새로운 세계를 마주할 때가 아니라 돌아와서 변화한 나의 세계를 마주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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