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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쇤 Apr 25. 2021

운전을 시작하니 세상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진짜 어른이 된 느낌

작년 8월, 첫 차가 생겼다.


새로 뽑은 따끈따끈한 신차였으면 좋았겠지만, 내 첫 차는 2006년식 SM3. 친척 언니가 샀다가 우리 오빠가 잠깐 타다가 나에게로 대물림된 그야말로 패밀리 카였다. 명의를 이전하기 위해 차량 등록 사업소에 간 날, 오랜 세월 동안 감가가 많이 되어 정말 놀라울만치 적은 취득세를 내서 놀랐던 기억이 난다.


2013년도에 운전면허를 취득한 뒤로 6년 동안 운전대를 한 번도 잡아본 적이 없었다. 게다가 무슨 오기였는지 1종 보통으로 면허를 땄기에 오토 차를 모는 것은 처음이어서 (물론 스틱보다는 오토가 훨씬 쉽지만) 더 긴장이 되었다.


첫 주행을 하는 날 '나 초보니까 제발 나를 비켜가주세요ㅠㅠ'라는 마음을 담아 .. 글자를 크게 인쇄해 붙였다. 그걸 오빠가 보더니 이렇게 붙이면 초보라고 무시한다고 매몰차게 바로 떼 버렸다. 아빠가 조수석에 타고, 오빠가 뒷 좌석에 동행한 첫 주행 내내 심장이 벌렁거렸다. 앞만 보면서 가기도 바쁜데 끼어들기할 때는 양옆도 잘 봐야 하고... 쉽지 않았다. 운전을 잘하는 사람들이 새삼 정말 대단해 보였다.



역시나 제일 어려웠던 건 후진 주차였다. 옛날 차라 후방카메라 옵션이 없어 사이드 미러에만 의지해야 했기에 더 어려웠다. 그래도 별난 자존심은 있어서 '후방 카메라를 따로 설치하라는' 주변의 조언을 한 귀로 흘리고 각종 유튜브 영상을 열심히 보면서 후진 주차 방식을 수학 공식처럼 외우고 다녔다.


본가가 있는 경기도 시흥에서 약 두 달간의 연습을 마치고 나서야 부모님은 안심이 되셨는지 나와 함께 차를 서울로 보내주셨다. 주중에는 차를 집에 두고 대중교통으로 통근하고, 주말에만 잠깐 몰다 보니 운전 실력이 한동안 느는 것 같다가도 제자리였다. 서울에서는 겁이 나서 차를 가지고 나가기도 쉽지 않았는데, 제주도, 강릉 등 여행지에서 렌트한 차로 여행지 구석구석을 쏘다니는 경험을 몇 번하니 실력이 금세 늘게 되었다.




신기했던 건 운전을 시작한 뒤로 세상을 바라보는 또 다른 시야가 트였다는 것이다.


이전에는 횡단보도의 녹색, 적색 보행자 신호만 바라봤던 나였지만 운전을 시작한 뒤로 직진 신호, 좌회전 신호, 비보호 좌회전, 보행 신호시 유턴 등 도로에서의 신호 체계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제는 사거리 횡단보도에서 보행자 녹색 신호를 기다리고 있노라면, 자동차 신호등을 보며 교통의 흐름을 나름 예측하며 각기 다른 방향으로 질서 정연하게 바쁘게 움직이는 차량의 행렬을 신기하게 바라보곤 한다. 신호를 적당히 봐가면서 요령껏 무단 횡단할 수 있는 눈치도 기를 수 있게 되었다.


운전하면서 또 달라진 점은 차종에 관심이 생겼다는 것이다. 운전을 시작하기 전에는 아반떼와 소나타가 어떻게 다른 지도 구별할 수 없었을 정도로 무지했지만, 지금은 웬만한 차는 육안으로도 바로 구별할 수 있고, 마음에 드는 차를 발견하면 시세는 얼마인지 바로 검색해보기도 한다.


이렇게 다양한 차를 스치면서 머릿속으로는 훗날 나만의 드림카 이상형을 완성해가고 있다. 지금은 세단을 몰지만, 차박이 가능한 SUV를 타고 싶다. 날씨 좋은 날 햇살을 만끽할 수 있는 선루프 옵션을 무조건 추가할 것이고, 기왕이면 흔한 흰색, 그레이보다는 강렬한 레드 컬러를 선택하고 싶다. 운전 초기 때만 해도 '안전제일' 주의라 VOLVO XC시리즈 SUV를 탐냈지만 저 세상 가격인지라 보다 접근이 쉬운 베뉴, 셀토스, 티볼리 등의 소형 SUV로 눈높이를 낮췄다.



운전 = 가능성의 확장


운전을 시작한 지 이제 7개월째 차. 이전에는 체할 정도로 떨리고 쿵쾅거리던 심장이 평온해지고 한층 여유롭게 운전할 수 있게 되었다. 나만의 운전 스타일도 나타나고 있는데 '스피드 레이서 기질이 있다'는 소리를 내 차에 태운 지인들로부터 종종 듣는다. 코로나 사태가 종결되고 하늘 길이 열린다면 속도 제한이 없는 독일 아우토반(Autobahn)에 가서 신나게 쌩쌩 질주하고 싶은 버킷 리스트가 생겼다.


본가에서 독립하여 나만의 집이 생겼을 때 삶의 가능성이 확장되었던 것을 경험했는데, 운전을 하게 되니 더욱 적극적으로 세상 밖으로 나가 삶을 경험하고 다채롭게 즐길 수 있는 가능성이 확장된 느낌이다.  


얼마 전 스트레스가 극심했을 때 연차를 내고 혼자 운전해서 강화도에 다녀왔다. 서울을 떠나 강화도를 가는 내내 수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고, 강화도에서 딱히 특별한 구경을 하지 않았지만 그 자체로 힐링이 되는 시간이었다. 3시간이라는 짧은 시간을 보내고 집에 돌아왔을 때는 생각이 어느 정도 정리되고, 내일 다시 출근을 할 힘을 낼 수 있었다.   


내가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네 바퀴 덕에 이제는 비행기, 기차, 버스 노선이 닿지 않아 쉽게 가보지 못했던 대한민국 곳곳을 돌아다닐 수 있게 되었다. 마침 해외여행도 못 가게 된 지금 국내 여행을 만끽할 수 있는 최적의 시기가 아닌가 싶다. 그렇게 발길이 닿는 곳마다의 매력을 발견해나가면서, 가능하다면 나의 인생 로망인 게스트하우스를 차릴만한 적절한 터전을 물색해보고 싶다.


이제는 운전에 자신감이 붙어서 만나는 사람마다 '나 이제 운전 완전 잘해'라고 떵떵거리는데, 그럴 때마다 주변 사람들 하나같이 '그럴 때 사고가 제일 많이 나. 조심해'라는 말을 잊지 않고 건넨다.


초심 잃지 않고 안전 운전하면서 내게 주어진 이 삶을 더욱 열심히 즐겨야겠다. 이제야 진짜 어른이 된 느낌이다.   


다음은 운전해서 어디로 가볼까?

표지 사진 by Ondrej Bocek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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