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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쇤 Aug 17. 2021

갑자기 찾아온 돌발성 난청이라는 불청객

제발 좀 쉬라고 몸에서 간절히 보내는 신호

평범했던 어느 하루, 정확히 어느 순간부터인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오른쪽 귀에서 소리가 웅웅거리게 들리기 시작했다.


비행기가 이륙한 뒤 급작스런 기압차로 인해 귀가 먹먹한 느낌과 비슷했다. 처음에는 '큰 일 아니겠지'하고 넘겼다. 그런데 증상은 그 다음날 아침에 자고 일어났을 때도 이어지더니, 사무실에 출근한 뒤 더 심하게 느껴졌다. 키보드 타이핑 소리, 에어컨 소리 등 사물의 소리는 확장되어 크게 들리고, 정작 사람이 내는 말소리는 먹혀서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 급기야는 귓속에서 삐-하는 소리가 나는 이명 증상까지 나타났다. 심각성을 깨닫고 병원에 가서 청력 검사를 했다.   


'환자 분은 돌발성 저주파 난청입니다.'


청천벽력 같은 진단 결과였다. 오른쪽 귀에서 저주파 음역대의 소리에 대한 청력이 떨어지는 것 같다고 했다. 서른 살 인생 살아오면서 크게 병원 신세 진 적 없이 건강했는데, 내게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은 꿈에도 몰랐다. 순간 눈가에 눈물이 핑 돌았다.


질환이 발생한 정확한 원인을 알 수가 없어서 돌발성 난청이라고 한다. 이 질환을 겪는 사람의 7-80% 정도는 정상 수준으로 청력을 회복하지만, 잘못되는 경우 청력 손실이 올 수도 있다고 의사 선생님이 심각성을 일깨워 주셨다. 술 약속이 없으면 집에서라도 주 2-3회는 꾸준히 혼술을 하는 나인데, 금주령이 떨어졌다. 카페인도 가급적 피하는 게 좋아서 아침마다 꼭 마시는 커피도 조심해서 섭취해야 했다. 내 경우는 다행히 그래도 초기에 발견했기에 약을 먹고, 충분한 휴식을 취하면 예후는 좋을 것이라 하여 마음이 놓였다.


돌발성 난청 증상을 겪고 있다고 주변에 알리니 '요새 스트레스 많이 받았어?'라는 반응이 가장 많았다. 원래 업무에서 오는 어느 정도의 스트레스를 감당하는 건 모든 직장인의 숙명이고, 딱히 최근에 심각하게 스트레스받는 일은 없었던 것 같았다. 누군가는 내가 최근에 바디 프로필 준비를 하면서 식단 조절 및 운동하느라 무리해서 그런 것이 아니냐고 물어봤다. 준비 과정이 힘들기는 했지만 그래도 나름 즐기면서 식단도 챙기고, 운동한 거라서 그렇게 무리한 건 아닌 것 같은데...


그런데 돌발성 난청이라는 불청객이 갑자기 나를 찾아온 원인 파악을 위해 곰곰이 생각해보니, 주변 사람들의 말이 다 맞는 것 같았다.


바디 프로필 촬영을 준비하기 시작한 2월부터 지금까지 나는 참 쉬지 않고 달려왔더라. 나름 즐겁게 준비했다고 기억이 미화되었지만 촬영 준비 막바지 한 달가량은 하루 3시간이라는 운동량에, 탄수화물 섭취를 줄인 탓에 엄청난 피로감이 나를 짓눌렀고, 촬영이 끝나고 나서는 5개월 동안 못 즐긴 것을 누리기 위해 친구들을 만나고, 여행을 다니며 열심히 놀았다.  그리고 회사에서는 팀장으로서 더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긴장을 풀 틈 없이 끊임없이 스스로를 갈고 닦아야 했다.


갑자기 찾아온 돌발성 난청은 잠시 바쁘게 달리던 것을 멈추고, 충분한 휴식을 취하라고 몸에서 보내는 간절한 신호 같았다.



첫 진단을 받은 날로부터 2주가 지났다. 금주 상태를 유지하면서 꾸준히 약을 복용하고 있다. 일주일 동안은 운동도 쉬었다. 가끔씩 이명 소리는 들리지만, 청력은 이전 수준으로 회복했고, 귀가 먹먹거리는 증상은 거의 사라졌다.


몸이 아프다는 것은 기존에 일상에서 아무렇지 않게 누리던 것들이 실은 얼마나 귀한지를 깨닫는 과정 같기도 하다. 일단 몸이 아프면 먹을 수 있는 음식과 음료의 선택지가 확 줄어든다. 술은 가장 먼저 끊어야 하는 종목의 1순위고, 카페인 섭취도 가급적이면 줄여야 한다. 짠 음식도 피해야 하기에 김치찌개, 라면 등의 빨간 국물 음식은 멀리해야 한다.


청력 회복을 위해 에어팟도 낄 수 없게 되었다. 출, 퇴근길 그리고 헬스장에서 운동하면서 에어팟을 꼭 귀에 끼고 노래를 듣는지라 처음에는 에어팟 없는 일상이 너무 심심하고 불편했다. 그러나 이주 정도 에어팟 프리 라이프를 지속하니 굳이 음악을 듣지 않아도 무언가에 집중할 수 있는 힘이 길러지고, 답답하게 막히는 것 없이 뻥 뚫린 환경에 내 귀도 완벽 적응한 것 같다.  


증상이 완화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8월 한 달 동안은 방심하지 않고 내 몸과 마음의 회복에 집중하는 시간을 가져보고자 한다.


나에게 갑자기 찾아온 돌발성 난청이 찾아왔던 것처럼, 만약 갑자기 몸이 아프기 시작했다면, 그건 휴식이 필요하다고 당신의 몸이 간절히 보내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Photo by Jessica Flavia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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