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쁠 때나슬플 때나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되기
브런치 작가가 된 후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지 1년 반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나는 50편의 글을 브런치에 차곡차곡 쌓아왔고, 작년에는 다른 작가님들과 함께 공동저자로 독립출판 책을 발간하기도 했다. 그리고 얼마 전에는 구독자 수가 400명이 넘어간 감격스러운 순간을 맞이했다. (아직 부족한 제 글을 읽어주시는 구독자 분들 정말 감사합니다.)
나는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사는 부류의 사람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습관적으로 처리하는 루틴이 있고, 매일 하루의 끝에는 To do list를 지워가며 '오늘도 알차게 잘 살았구나' 안도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일도 개인적인 일상도 큰 문제없이 잘 살고 있는데도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럴 땐 십중팔구 글쓰기에서 잠시 손을 놓고 있을 때가 그렇다. 무거운 마음으로 숙제하듯이 일요일 오후 책상에 앉아 글을 꾹꾹 써 내려간다. 마침내 발행하기 버튼을 누르면 비로소 비어있던 마음의 조각이 채워진 느낌이 든다.
꽤나 오랜 시간 나 스스로 글쓰기에는 소질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아무래도 수능 점수로는 인서울 하기가 힘들다고 판단해 친구와 함께 논술 학원에 발걸음을 했던 적이 있다. 논술학원 선생님은 기본 실력 테스트를 위해 어떤 주제에 대해 삼십 분의 시간을 주고 써보라고 하셨다. 너무 오래전 기억이라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거창하게 어떤 물음을 던지고, 이후에 내 생각을 써 내려갔던 것 같다. 선생님이 내 답안을 보더니, 논술은 이렇게 질문형으로 시작해서는 안된다고 딱 잘라 말씀하셨다. 친구와 내가 쓴 답안을 대조하면서 선생님은 내가 논술에는 소질이 없는 것 같다고 아주 솔직하게 평가했다. 친구와 직접적으로 비교를 당하니 너무 창피했다. 논술은 깔끔히 포기하고 수능 준비에만 몰두하기로 결심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스스로 글에는 소질이 없는 사람으로 낙인찍었던 것은.
그런데 나는 글을 못 쓰는 사람이 아니었다. 봉사활동차 아프리카 말라위에 파견 갔던 1년 동안 말라위 지부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에 관한 글을 주기적으로 한국의 후원자들을 위해 연재한 적이 있었다. 그때 본부의 담당자로부터 내 글이 생생히 현장을 잘 전달한다는 칭찬을 들었고, 어떤 후원자는 내가 쓴 글이 올라오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소식도 들었다. 그때부터 글쓰기에 조금씩 자신감이 들기 시작했다. 훗날 우연히 들여다본 초등학교 때 앨범에는 내가 받은 각종 상장이 모아져 있었는데, 의외로 각종 교내 독후감 대회에서 수상을 많이 했더라. 잠시 기억이 왜곡되었지만, 나는 글쓰기를 원래부터 못했던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저 나에게 맞는 스타일의 글쓰기를 최근에서야 찾을 것일 뿐.
5번 탈락의 고배를 마시고 작년 2월 어렵게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그 이후 평균적으로 한 달에 2-3편의 글을 브런치에 발행해왔다. 올해 8월에는 무려 5편의 글을 썼다. 물론 아무런 글도 쓰지 못하고 허무하게 지나간 달도 있다.
아직 뚜렷한 책 출간 계획도, 지켜야 하는 마감 일정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1-2주에 한 편의 글을 완성하는 삶의 루틴을 지키고 있다. 이렇게 글을 꾸준히 쓰다 보니, 덩달아 인스타그램 포스팅도 활발해졌다. 긴 산문의 형태로 풀기 힘든 생각 및 감정은 짧은 길이의 절제된 시로 탄생하기도 했다. 글을 쓰기 시작한 뒤에야 나는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가 굉장히 강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어떨 땐 글, 시, 가볍게는 인스타그램 포스팅으로 내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고, 그리고 그럴 때 나는 깊은 행복감을 느낀다.
내가 변해서 글쓰기가 좋아졌는지, 글쓰기를 하면서 나라는 사람이 변한 건지 잘 모르겠다. 생각해보면 둘 다 맞는 것 같다. 부끄럽지만 반 오십이라는 나이가 될 때까지 독서는 내 취미가 아니었다. 책 읽는 것은 따분했고, 차라리 다른 일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했다. 지식과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채워지고 흘러야 넘쳐야 나만의 생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법. Input이 없으니 Output도 없었던 것이다. 독서를 즐겨하기 시작하고, 일 년 평균 독서량이 24권을 넘어가는 시점부터 내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것이 더 이상 어렵지 않게 느껴졌다.
그리고 글을 쓰면서 나라는 사람의 체질이 바뀐 것도 맞다. 나는 주로 에세이를 쓰기 때문에 글의 소재가 대부분 나와 나를 둘러싼 사람들이다. 글을 쓰는 과정에서 내 주변 사람들을 떠올리며 그들의 행동과 말을 곱씹기도 하고, 기억을 더듬어 십 년 전의 어린 나를 조우하기도 한다. 같은 문장이더라도 조사 및 기호에 따라 다른 느낌으로 읽히기에 최대한 조심스럽게 글을 쓰려고 노력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글을 쓰면서 감정도 풍부해지고 나라는 사람이 더욱 섬세해졌음을 느낀다.
끊김 없이 꾸준히 글을 쓰고 싶지만, 가끔은 정말 마땅한 글의 소재가 없어 써 내려갈 수 없을 때가 있다. 브런치 작가 데뷔작인 인생에 한 번은 아프리카 브런치 북을 10회로 종결한 뒤 고민은 더 깊어졌다. 이후 이런저런 도전기, 문득 스쳐 지나가는 생각들, 그리고 최근에는 직장에서 팀장으로서의 겪는 고군분투기를 써 내려가고 있는데, 글 소재에 대한 영감은 어쩔 때는 나를 단골처럼 자주 방문해주시다가, 어쩔 땐 한 달 동안 발걸음 하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런데 최근 내 안의 외로움과 고독이 깊어지게 한 어떤 일로 인해 글을 쓰고 싶다는 욕구가 차오른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어렸을 땐 왜 많은 노래 가사들이 이별에 관한 내용뿐인 걸까 궁금했던 적이 있는데 이제야 알겠다. 외로움과 고독의 감정은 창작의 강력한 근원이 되어준다.
고독과 외로움의 중심에 닿았을 때 술을 마시며 감정을 흘려보내는 대신, 글을 쓰며 생각과 감정을 온전히 담을 때 비로소 내 안의 쓰는 영혼이 자리잡기 시작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은 기쁠 때보다는 슬플 때 더 글을 쓰고 싶다는 욕구가 드는 것 같다. 앞으로도 내 안의 쓰는 영혼을 꾸준히 기르고,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가슴속의 감정, 생각을 끌어내서 손 끝으로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