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9] 충청남도 부여
늦여름과 초가을 사이의 애매한 문턱, 노란색 똑딱이를 들고 부여 자온길을 찾았다.
언제부터인가 도시재생 프로젝트라는 키워드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백제의 마지막 수도였던 부여, 독립서점 겸 카페 '책방 세간'을 중심으로 형성된 자온길은 도시재생 프로젝트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는 지역이었다.
대게 도시는 비슷한 발전 과정을 거치는데, 원도심에 인구가 늘어나면서 거주난, 주차난 등 여러 문제들이 생기게 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 늘어난 인구를 흡수하기 위해 원도심 주변으로 신도심이 생겨나게 된다. 인프라가 편리한 신도심으로 인구 이동이 일어나면서 원래 도시의 중심이었던 원도심은 자연스레 낙후되고 쇠퇴의 길을 걷게 된다. 이렇게 낙후 지역으로 전락한 원도심을 로컬만의 역사, 음식, 문화 자원을 중심으로 콘텐츠를 만들어 다시금 사람들의 발걸음이 향하는 매력적인 장소로 만드는 것이 도시재생 프로젝트의 취지다.
내가 도시재생 프로젝트가 이루어지는 지역을 좋아하는 이유는 다른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공간, 전시 등의 콘텐츠가 어우러져 그 지역만의 특별한 분위기를 조성하기 때문이다. 유럽 여행을 몇 번 다녀오고 나서 국내 여행을 다니면서 느낀 점은 각자의 독특한 풍경과 로컬 브랜드를 가진 유럽의 도시에 비해 우리나라의 도시는 어디를 가든 천편일률적인 모습을 띄고 있다는 것이었다. 서울이든, 강릉의 골목이든 어디를 가도 올리브영, CU 등의 편의점이 있었다. 살던 곳을 벗어나 여행을 왔지만 특색 있는 건축물, 상점 등의 로컬 콘텐츠가 있는 골목길을 찾아볼 수 없는 것이 아쉬운 점 중의 하나였다. 그래서였을까. 잡지, 책을 통해서 도시 재생 프로젝트가 이루어지고 있는 지역을 알게 되면 언젠가 방문해볼 심산으로 하나 둘 지도에 저장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부여 자온길을 찾게 되었다. 꽤 거리가 되었지만 당일치기로 다녀오기로 했다. 책, 인터넷 여기저기서 자온길의 사례를 여러 번 접했던지라 출발 전부터 많은 기대가 되었다.
관광객들로 어느 정도 북적일 거라 예상했는데 이상하리만큼 조용하고 인적이 드물었다. 지난달에 방문했던 춘천도 그렇고 부여도 코로나 19로 강화된 사회적 거리두기의 영향을 고스란히 겪고 있는 듯했다. 게다가 폭염으로 인해 문을 닫은 상점이 많아 거리는 더 쓸쓸했다.
사람이 많아서 레스토랑에서 웨이팅을 해야 하는 것을 꺼려지지만 그렇다고 너무 사람이 없다고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사람의 온기가 없는 늦여름의 부여 자온길은 잔잔했지만 오히려 쓸쓸하게 느껴졌다.
지역 재료를 활용하여 음식을 만드는 레스토랑이 있다고 하여 도착하자마자 그곳을 찾았다. 그런데 무슨 이유인지 임시 휴업 중이었다. 할 수 없이 2번째로 점찍었던 양식 레스토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 레스토랑은 다행히 영업 중이었지만 코로나로 인해 예약제로 운영되어 안타깝지만 내가 방문한 시각에는 식사를 할 수 없었다. 이쯤 되니 무엇을 먹느냐가 아니라, 그저 내가 갈 수 있는 곳을 찾아 배를 채우는 것이 중요해졌다.
간단하게 샌드위치로 배를 채우고 드디어 자온길의 중심, 책방 세간에 방문했다. 한때 담배가게였던 곳에 자리 잡은 책방 세간은 전통과 현대적인 감성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인테리어가 인상적이었다.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 책을 읽고 있는데, 사장님이 주문하지도 않은 얼그레이 쉬폰 케이크를 서비스로 주셨다. 케이크를 다 먹었을 무렵에는 지역에서 재배한 포도를 맛보라고 주셨다. 혼자서 조용히 스쳐 지나가는 듯 왔지만 "네 존재를 우리도 알고 있어"라고 무언의 메시지를 주는 것 같았다.
책방 세간을 나와 바로 옆에 있는 공예 편집샵 부여 서고에 들렀다. 이런저런 소품을 구경하는데 인자한 인상의 사장님이 "선생님은 어디서 오셨어요?"라고 말을 걸어왔다. 그러더니 머리끈으로도 활용할 수 있는 팔찌를 선물로 주셨다. 낯선 여행객에게 너그럽게 베풀어준 자온길의 환대에 갑자기 마음이 벙쪘다.
집으로 돌아가기 전 백마강(금강) 주변을 걸었다. 강변의 푸른 언덕과 나무들이 잔잔한 강물 위로 데칼코마니처럼 비쳤다. 누가 그림으로 그려놓은 듯이 잔잔하고 아름다웠다.
당일치기 일정으로 스쳐 지나가는 듯 부여 자온길에 왔지만 로컬 사람들이 베풀어준 환대 덕분에 짧은 시간이었어도 이곳에 스며들 수 있었다. 여행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건 역시나 '사람'이란 걸 다시금 깨닫고 간다.
카메라: Kodak M35
필름: 코닥 컬러필름 컬러플러스 200-36
현상: 여기현상소